사냥은 남자다움을 증명하는 수단이라고 말콤은 생각했다. 엽총을 들고 야생의 대자연으로 들어가 진짜 사냥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돈은 없었기에 대신 사람을 사냥하기로 했다.
말콤은 총으로 한방에 사냥감을 죽이는 것보다는 맨 손으로 때려 잡는 편이 훨씬 남자답다고 생각했다. 사냥이란 우월감의 확인이었다. 내가 상대의 운명을 지배한다는 초월적 권력 의식. 총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주먹을 쓰는 것이 그런 쾌감을 극대화 하기 더 용이했다. 말콤은 15살이 될 때까지 어린이나 여자 같은 쉬운 사냥감에 손을 대다 그 중 한명이 척추를 잘못 맞아 영구 장애 판정을 받는 바람에 소년원에서 5년 동안 재사회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말콤이 소년원에서 배운 건 사냥의 쾌감은 남자를 상대로 할 때 더하다는 것이었다. 저항하지 못하는 사냥감은 시시했다. 사냥감이 격렬히 저항할수록 사냥의 심리적 보상은 증대되는 법이다. 레벨업 한 느낌. 나 자신을 증명한 느낌. 더 크고 강한 권력을 쟁취한 느낌. 말콤에게 인간 사냥은 업적이자 자아 실현이었다. 그는 소년원에서 갈고 닦은 인간 사냥 기술을 사회에서 활용하길 간절히 기대했다.
그날 밤 말콤은 소년원 친구 제이슨과 함께 밤거리를 거닐며 사냥감을 물색 중이었다. 처음 택한 사냥감은 키가 훤칠한 젊은 남자였는데 말콤은 이 남자가 운동 신경이 뛰어난 근육질의 상남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남자는 자신을 잡으려는 말콤과 제이슨의 손을 차례로 뿌리치고 재빨리 도망갔다. 남자가 도망치며 날린 잽에 말콤은 코뼈를 얻어 맞고 남자를 더 이상 뒤쫓지 못했다.
이봐 좀 헐렁한 놈으로 하자고.
제이슨이 제안했다. 런던의 밤거리는 인적이 드물다. 적당한 사냥감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3km를 더 헤매고 다닌 뒤에야 난간에 기댄 채 휴대폰을 들여다 보는 배불뚝이 중년 남자를 발견했다.
조준 완료.
말콤은 유쾌한 팔자 걸음으로 중년 남자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남자가 휴대폰에서 시선을 거두고 말콤을 바라 보는데 표정이 기분 나쁘다.
아저씨 나 지금 똥 마려운데 휴대폰으로 똥 싸는데 좀 찾아 주쇼?
남자는 말콤을 무시하고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린다. 말콤이 남자의 휴대폰을 뻇아 드는 순간 남자는 말콤의 턱에 주먹을 꽂는다. 제이슨이 달려 들자 박치기로 코를 받아 버린다. 말콤이 칼을 꺼내자 귀신 같은 솜씨로 팔을 꺾어 칼을 말콤의 목에 겨눈다. 제이슨이 뒤에서 달려들자 다시 귀신 같은 솜씨로 팔을 반대로 꺾어 칼을 제이슨의 눈알에 꽂는다.
어! 어억!
말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초고속 비디오처럼 지나가 버린 것 같았다. 겁을 먹은 말콤은 뒷걸음질 친다. 남자가 다가가자 또 다른 칼을 꺼내지만 금방 다시 팔이 꺾인다. 칼은 이번엔 말콤의 목에 꽂힌다. 세로로 꽂힌 칼은 대동맥을 건드리지 않고 숨통 깊숙히 들어가 박힌다. 말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죽음의 공포가 몸을 휘감았다. 말콤은 숨을 쉴 수 없었다. 자신의 목에 꽂힌 칼을 건드릴 수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았다.
남자는 지금 이 사건을 목격 중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길 건너에 어느 젊은 남성과 노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이 두 명의 목격자가 자신의 원래 목표와 관련된 자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임무는 실패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동네 양아치들의 출몰에 임무는 깨끗이 실패해 버렸다. 그는 교체될 것이다. 임무는 당분간 재개되지 못할 것이다.
10분 전 농림청 건물 행사장에서 대런은 브로디의 아버지 윌리엄 버크가 과음 상태라는 사실을 알았다. 브로디의 회의가 길어지자 대런은 브로디에게 “아버지를 먼저 집에 데려다 드리겠다”고 말을 전하고 함께 행사장을 빠져 나와 호텔로 향했다. 윌리엄 버크는 택시를 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술이 거나하게 취했으니 호텔까지 밤 산책을 즐기겠다는 거였다.
2명의 양아치가 시비 거는 장면을 먼저 본 사람은 윌리엄 버크였다. 윌리엄 버크는 이들의 분쟁에 개입하려 했으나 대런이 말렸다. 대런은 양아치들이 아마추어라는 사실을 알았다. 위험에 처한 쪽은 중년 남자가 아닌 양아치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대런은 중년 남자가 로리 맥닐리의 축구 선수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여기 온 것일까? 아닐 테지. 하지만 분명 우리들 쪽에 용건이 있었을 것이다. 그 용건이 무엇이든 축구 선수의 등장은 팜플러스의 사정이 절박함을 의미한다.
대런은 팜플러스 측 사정엔 관심이 없었다. 그는 맥닐리의 축구 선수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도 관심이 없었다. 대런은 방금 쓰러진 두 명의 양아치들의 행동을 복기 하고 있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분명했다. 아마추어는 자기 증명 욕구에 시달린다 - 죽고 사는 생존의 문제를 자아 실현의 문제라고 착각한다. 걸음걸이에, 제스처에, 목소리에, 행동 하나하나에 불편한 자아가 덕지덕지 묻어 다닌다. 움직임이 가벼울 리 없다. 행동 하나하나 모두 상대에게 간파 당한다. 저런 꼴이 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달리는 차를 뛰어 넘던 유도 도복 사나이도 그랬다. 그는 자기 증명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좋든 싫든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자의식은 죽음을 의미한다. 이기고 싶다는 의식. 해내야 한다는 강박. 살고 싶다는 생각. 죽음에 대한 공포... 죽음을 부르는 미끼다. 미끼가 노출되는 순간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의 아가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다.
대런은 축구 선수의 프로다운 동작을 복기했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움직임 하나하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마추어였다면 저 사람과 붙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겠지. 대런은 자신이 지금껏 유치한 자기 증명 욕구에 빠지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했다. 대런은 자신이 지금껏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 반드시 운 때문은 아니란 생각을 했다. 지금 보니 모든 죽음과 생존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처음부터 운 따윈 존재하지 않았을지 몰랐다. 저 양아치들이 죽고 내가 살아 있는 건, 운이 아닌, 선택의 결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