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s files #25
런던행 비행기는 1시 40분이었다. 베이징 공항에는 새벽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쉴 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주은은 엄마와 처음 공항에 갔던 때를 기억했다. 씨엠립 공항엔 벤조인 Benzoin 수지 냄새가 가득했다. 어디서나 향을 피우고 동냥을 받는 캄보디아의 냄새였다. 주은은 엄마의 손을 꼭 쥐었다. 엄마는 주은의 손을 마주 쥐었다. 엄마의 냄새가 짙어졌다. 주은은 엄마가 언제나 자신의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평생 곁에서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늘 혼자였다. 엄마를 찾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엄마는 늘 혼자였다. 집은 언제나 이사를 다녀야 했고, 엄마는 누구와도 정을 붙이거나 오래 만나지 않았다. 주은은 엄마의 유일한 친구였다. 둘은 서로 말이 없었지만 유대감이 깊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냄새를 싣고 어디론가 떠밀려 가고 있었다. 서로 다른 냄새는 쏟아졌다 고였다 사라졌다 나타나며 공항 구조물 사이로 섞여 들었다. 주은은 냄새가 강물 같다고 생각했다.

주은은 내성적이었다. 그는 엄마가 그의 인생의 전부이길 바랐다. 그는 엄마와 함께 깨끗하고 조용한 곳에 정착하고 싶었다. 강이 내려다 보이는 작은 집 발코니에 엄마와 함께 하루종일 책을 읽고 싶었다. 그는 책 냄새가 좋았다. 책은 엄마 같았다. 같이 있으면 마음이 평온했다. 오래될수록 좋은 냄새가 났다. 그는 책 냄새를 맡기 위해 책을 읽었다. 엄마가 집에 없는 동안 엄마의 냄새를 그리기 위해 책을 읽었다. 그는 책 읽는 엄마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했다.

주은은 엄마가 밖에서 낯선 남자 냄새를 뭍혀 올 때마다 두려움을 느꼈다. 엄마가 다른 남자를 만나 다른 아이를 낳아 다른 가족을 꾸릴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괴로웠다. 언젠가 엄마가 집에 늦게 온 적이 있었다. 엄마는 단정한 차림새였지만 평소와 달랐다. 엄마 안에 다른 남자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주은은 엄마가 밖에서 무엇을 한 것인지 몰랐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이것이 자신이 가장 두려워 하던 냄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후로 주은은 한달이 넘도록 엄마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주은에게 아버지와 동일한 후각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엄마가 깨달은 건 그때였다.

엄마 대신 고향에 가는 거야.

공항 탑승 게이트에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절반은 중국인이고 절반은 서양인이었다. 주은은 중국인도 아니고 서양인도 아니었다. 영국인 여권을 들고 있었지만 주은은 본질적으로 무국적자였다.

주은은 다시 중국에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없는 중국에선 더 이상 뿌리 내리고 살 수 없었다.

아버지의 장례식 후 주은은 신변을 정리했다. 병원은 시에 기증되었고, 연구소는 중국 정부에 기증되었다. 병원과 연구소 모두, 주체만 바뀔 뿐, 예전처럼 운영될 것이며, 그곳 사람들도 모두 예전처럼 일할 것이다. 량이 아저씨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유산은 량이 아저씨에 의해 보존될 것이며, 아버지의 유언대로 아버지의 이름은 어디에도 남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인간의 운명을 점칠 수 있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살 것이라고 한 사람은 정말로 그렇게 살았다. 아버지는 한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누구도 예외가 없었다. 

불교 신자인 량이 아저씨는 주은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네 아버지는 부처의 환생이라고. 하지만 불교는 살생을 금하지 않았던가. 량이 아저씨는 아버지의 행적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량이 아저씨는 아버지의 무엇을 보고 그런 말을 한 걸까?

주은은 부모의 죽음을 생각했다. 그들은 완력에 의해 죽임 당했다. 그들이 죽은 이유는 그들의 삶의 방식 때문이었다. 주은은 자신이 부모의 삶의 방식을 따를 경우 자신도 다르지 않은 운명을 맞을 것이라 생각했다.

주은은 신원미상인의 최후를 떠올렸다. 그는 장베이 공항 지하 1층 화장실에서 죽어 가고 있었다. 구토와 발작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초점 맞지 않는 눈, 어깨에 발작적 경련. 아버지를 살해한 후 그는 18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구토증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스테로이드 중독자였고, 목에 긁힌 상처가 남아 있었다. 아버지가 남긴 치명적 일격이었다. 고통의 신을 죽인 대가였다. 신원미상인은 듣도 보도 못한 처절한 고통 속에 죽어 가고 있었다.  

주은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손톱에 남은 생체 조직은 누가 접근했는지, 그리고 그는 지금 어떤 상태일지 생생히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그냥 두면 아버지의 의도대로 죽을 운명이었다. 하지만 주은은 그의 최후를 직접 봐야만 했다. 

그를 보낸 사람이 누군지 단서를 얻으려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주은은 그가 사실상 뇌사 상태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인간으로서 기능은 끝났지만 다른 기능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때 반사적으로 오른손이 올라오지 않았다면 주은은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신원미상인은 기계화된 청부 살인 업자였고, 죽어 가는 순간에도, 그의 몸은 대뇌의 명령 없이 반사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주은은 신원미상인의 숨통을 끊고 싶었지만 그건 자비였다. 그는 죽고 싶어 하고 있었다. 고통이 중단되길 바라고 있었다. 주은은 칼에 찔린 손을 지혈하고 피를 닦았다. 또래 여자들이 선크림과 립밤을 넣고 다니는 가방 주머니에 주은은 수술 도구와 지혈제를 넣고 다녔다. 

주은은 화장실 문을 잠갔다. 이곳이 그의 무덤이 될 것이다. 앞으로 1시간은 더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사람 죽이는 걸 업으로 삼아온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살려 달라 목숨을 구걸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팔과 다리도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한순간 죽고 사는 것은 50%의 확률이다. 죽고 사는 경우의 수가 계속 되면 생존 확률은 희박해진다. 다시 그런 상황을 맞지 않는 게 최선이다. 주은은 그런 상황을 맞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런던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었다. 엄마는 주은과 자신의 삶을 더 이상 비루한 운에 맡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주은은 엄마에게 모질게 굴었던 일이 떠오를 때마다 이를 악물고 슬픔을 억눌렀다. 엄마는 딸 앞에서 한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주은에게 자신의 사정을 이해시키려 하지 않았다. 모든 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인생을 혼자 살았지만, 언제나 도와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엄마는 스스로를 돕는 사람이었고, 사람들은 자진해서 엄마를 도왔다. 하지만 스스로 도와야 할 다른 존재가 태어나자 엄마는 더 이상 다른 이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의 도움이 가장 필요하게 됐을 때, 그때부터 엄마는 모든 걸 혼자 해야 했다. 엄마는 주은을 혼자 낳았고, 혼자 키웠다. 우기에 강이 범람해 식료품 공급이 끊길 때마다 엄마는 다른 캄보디아 인들과 똑같이 흙탕물 사이로 뗏목을 저어 우유와 쌀가루를 얻어 왔다.

주은은 엄마의 외로움을 생각했다. 영국의 은수저 집에서 자란 젊은 백인 여자가 진흙밭에서 구호 물자로 연명하는 캄보디아 인들과 아귀 다툼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을 때, 그때 느낀 것은 자의식도, 자괴감도, 원망도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엄마는 외로웠을 것이다. 낯선 이들과의 고통스런 이질감에, 아버지에게 버림 받았다는 생각에, 집에 돌아와도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자신이 아닌 아버지를 닮은 딸에게, 엄마는 매일 비참한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주은은 자신의 후각 능력이 엄마에겐 가슴 저미는 비수였을 것이란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엄마는 주은에게 후각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안 뒤 더 이상 대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엄마는 묵묵히 딸이 보고 배우도록 했다. 말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본보기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주은에게 보여준 가장 사무친 본보기는 울지 않는 법이었다. 주은은 엄마가 얼굴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집으로 도망쳐 왔던 때를 기억했다. 두 명의 남자에게 공격 받은 상흔이 생생했다. 엄마는 울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차를 보내 달라고 했다. 엄마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계속 참으며 이 악물고 움직였다. 자신과 딸이 안전해질 때까지. 엄마의 행동 패턴은 주은의 머리 속에 각인되었다. 비참하고 위급한 지경에 몰릴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엄마를 따라 했다. 엄마는 주은을 사랑했다. 엄마는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하는 법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엄마에게 모질게 굴었던 일이 떠오를 때마다, 자신만 아니었다면 엄마가 더 행복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 때마다, 주은은 이 악물고 서러운 감정을 억눌렀다.

런던행 비행기의 탑승 게이트가 열렸다. 바깥 공기가 쏟아졌다. 냄새는 강물 같았다. 여기저기 서로 다른 사연의 분자 알갱이를 싣고 흘러 왔다 흘러 갔다. 익숙했던 중국의 냄새가 옅어지고 있었다. 

주은은 앞으로 더 이상 아무 것에도 익숙해지지 않기로 했다. 아무 것에도 애착을 갖지 않기로 했다. 엄마의 죽음과 함께 모든 인간적 감정도 죽었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생은 자신이 잇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은은 사람은 책과 같다고 생각했다. 책은 버려지거나 불타지만 책의 내용은 누군가 기억하고 인용한다. 주은은 무엇에도 연연하지 않기로, 아무 것에도 아쉽지 않기로 했다. 

주은은 아버지의 죽음에 연민을 갖지 않았다. 아버지는 너무 오래 제사장으로 살았다. 그게 생존 본능을 무뎌지게 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제사장의 운명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두려워 한 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운명이었다. 아버지는 파일이 브로디 버크에게 넘어가선 안 된다고 했다. 자신의 유전자 절반을 공유한 피붙이임도 아버지는 브로디를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어째서 브로디를 두려워 한 걸까? 

.............세상의 부조리를 피하기 위해 도망친 세상에서 나는 또 다른 부조리에 적응하며 살아야 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네 엄마도, 나도, 비현실적인 명분에 이끌려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는 삶에 내몰렸다. 우리는 네가 우리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기 바란다. 

.............엄마 일은 유감이다. 엄마가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행복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 진리를 알면 사사로운 인정은 느끼지 못 할 것이라 생각했다. 네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모두 벌어진 일이고 후회는 무의미하다. 잠깐이지만 너와 함께 남은 인생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인생에 그런 결말은 가당치 않다고 결론 내렸다.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나지만 과학자로서의 운명은 너에게 이어질 것이다. 넌 겨우 17살이지만 내가 지금껏 발견한 것들을 세상에 실현할 수 있다. 넌 그럴 능력이 있다. 내 시체가 발견되면 화장을 부탁한다. 아무것도 남기지 말아라. 나 정성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생명의 유전 형질은 세월의 지배를 받는다. 지금의 유전 형질과 내후년의 유전 형질은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운명은 정해지지 않으며 시간의 흐름을 따른다. 개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서로 얽힌 굴레에 의해 명멸한다. 우리는 모두의 일부이며 모두는 시간을 구성하는 파편이다. 우리는 인간의 운명을 점칠 수 없으며 고통을 피할 수 없다.

.............브로디 버크. 너의 배다른 형제다. 그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에게 파일이 넘어가선 절대로 안 된다. 

작품 등록일 : 202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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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주가 더 무서운데22
캐런 생각 했구나 주은이 덕인거 같네

진실로 사랑하는 법을 알고 있던 캐런..사무친다ㅠㅜ
  
나는 왜이렇게 눈물이 나지ㅠㅠ
진미오징어   
왜지? 왜 두려워한걸까
정성주가 더 무서운 사람인거 같은데

왜 그는 브로디를 왜 두려워한걸까
복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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