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s files #23
준 리즈 June Reese는 원래 정주은이었다. 아버지가 죽은 뒤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엄마의 성을 붙였다. 그의 엄마도 죽었지만 주은에게는 아버지 쪽 연고가 없었다. 

정주은의 부모는 의사였다. 국경없는 의사회Medecins Sans Frontieres 소속이었다. 국경없는 의사회 중국 지부에서 만나 연을 맺었다. 둘은 결혼식을 올리거나 공식적인 부부 관계를 승인 받은 적이 없으나 한때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부부 사이로 지냈다.

엄마 캐런은 딸을 임신한 상태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버지를 떠나 캄보디아로 향했다. 그곳에서 혼자 주은을 낳아 키웠고, 주은의 나이 8살 때 자객에게 피살당했다.

엄마 캐런 리즈는 영국인이었다. 유서 깊은 부자집에서 태어난 캐런은 집의 교육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18살이던 어느 날 아버지가 피어싱의 위험성에 대해 설교했던 것이 떠올라 귀와 코를 뚫었다. 금속이 살 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느낌이 좋다며 뺨에도 추가로 피어싱을 박았다. 같은 해 대마를 피우다가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당했고 학교 기숙사 짐을 싸는 동안 평소 자주 갈등을 빚었던 스테파니라는 이름의 급우를 두들겨 패 왼쪽 송곳니를 부러뜨렸다.

캐런은 남이 정해준대로 사는 것이 싫었다. 내가 이렇게 살겠다는데 다른 이가 가치 평가를 하는 것도 싫었다. 그는 학교를 나와 집에 전화했다.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부모님에겐 유감이 없다고 말했다.

캐런은 런던 이스트 엔드 어느 난방이 잘 들어오지 않는 주택에 들어가 낮에는 식당 서빙을 보고 밤에는 술집 청소를 했다. 캐런은 빈민들이 득실대는 유흥가가 마음에 들었다. 평소 보지 못했던 다양한 사람들을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고약한 향신료 냄새를 풍기는 인도와 터키 사람들은 어릴 때 읽었던 먼 나라의 전래 동화를 생각나게 했다.

캐런이 18살에 사귀었던 남자는 터키계였다. 그는 값비싼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녔다. 남자는 이 비싼 탈 것을 어떻게 구했는지, 무슨 사연이 있는지 말하지 않았다. 사랑에 눈이 멀었는지 원래 충동적인 성격이었는지 그는 캐런에게 청혼하면서 자신의 모터사이클을 결혼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자신이 목숨 걸고 지킨 보물이라고 했다. 사거리에서 튀어나온 트럭을 피하기 위해 급회전을 하다 바닥에 미끄러졌는데 모터사이클의 펜더가 상하는 걸 막으려고 자기 다리를 바닥에 깔았다고 했다. 그때 살이 까지면서 뼈가 하옇게 드러났었다며 그때의 상처를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캐런은 애당초 남자와 결혼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지금 잠시 좋은 관계일 뿐이었기에 관계에 대한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캐런은 남자의 다리 상처를 보고 그를 멀리 하기로 했다. 캐런도 모터사이클이 좋았다. 하지만 그런 게 인간의 몸을 대체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모터사이클은 망가지면 걸어 다니면 되지만, 몸이 망가지면 걸어다니지 못한다.

캐런은 남자와 그의 무리들이 처음엔 자신의 인생관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50년 뒤 미래를 위해 오늘을 구차하게 살지 말자는 그들의 인생관은, 그러나, 빈곤과 무절제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엊그제까지 돈과 마약과 여자를 공유하는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다 오늘 당장 배가 고파지면 1-2파운드어치 대마 가루 때문에 서로에게 칼을 휘두르는 것이 이들의 삶이었다. 은행에 돈을 쌓아 두려 자유를 착취하는 기성 세대의 모순을 탓하던 이들이 모터사이클 한 대에 인간의 목숨도 우습게 여겼다. 캐런은 남자의 모터사이클 때문에 2명의 목숨이 희생됐다는 사연을 들은 뒤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캐런은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해 의대에 들어갔다. 부모가 정해준 삶을 충실히 따랐다. 그는 의대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오빠의 학생 시절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들었다. 의대를 수석 졸업하던 날, 아버지와 오빠가 졸업식에 참석해 그를 안아 주었다. 가족은 캐런의 제도권으로의 귀환이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캐런은 여기까지가 정해진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전문의 시험을 통과한 뒤 국경없는 의사회에 들어갔다. 북아프리카를 시작으로, 아프가니스탄, 네팔 그리고 중국, 캐런은 제도권의 인생을 버리고 전세계를 돌아 다녔다. 중국에서 정성주를 만날 때까지.

정성주은 과묵한 의사였다. 그는 모두가 함께 일하고 싶은 유능한 의사였다. 그는 말이 없었으나 눈에 띄었다. 그에겐 단지 생각만으로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독특한 형질이 있었다. 캐런처럼 문학과 과학을 사랑하는 비주류 감수성에겐 그런 형질이 더욱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캐런은 정성주의 눈에서 짙은 잿빛을 보았다. 세상 사람들이 정성주의 눈에서 자비와 구원을 보았으나 캐런은 정성주의 눈에서 어둠과 두려움을 느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정성주에 대한 두려움은 정성주와 관계를 맺고 아이를 임신을 한 뒤에도 계속되었다.

캐런은 다른 사람들도 자신에게 두려움을 느낄지 생각해 보았다. 캐런은 평소 인상이 강하다는 말을 들었다. 캐런이 빤히 쳐다 볼 때마다 남자들은 당황했다. 어떤 친구는 캐런에게 카리스마가 있다고 했다. 지능에 짓눌리는 기분일 것이라고 했다. 캐런은 가끔 사람들에게 그런 기분을 느꼈다. 곤충학자가 개미를 관찰하는 기분. 캐런은 스스로 적지 않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자기 손으로 지하철 티켓도 끊어 본 적 없는 온실 속 화초들 앞에선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캐런은 신을 믿는 인간은 겁쟁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온실 속 화초들을 경멸한 이유도 그들이 신을 믿기 때문이었다. 종교가 신이라는 허수아비로 사람들 호주머니를 털 수 있는 건 공포와 경외심 때문이다. 캐런은 정성주에게서 그걸 느꼈다. 공포와 경외심은 사랑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신을 사랑한다는 건 분명 거짓말이었다. 왜냐면 신은 인간과 상호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캐런은 자신이 정성주를 사랑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캐런은 정성주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정성주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었다. 자신과 정성주의 관계가 인간과 신의 관계와 무엇이 다를지 생각해 보았다. 신의 말은 거짓말이고 정성주의 말은 진실이라는 사실 외에 무엇이 다를지 궁금했다.

캐런은 사랑은 인생에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껏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들은 신을 믿는 나약한 인간들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캐런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30대 초반의 외과 의사 빈스는 캐런과 가장 장기간 연인 관계를 유지한 사람이었다. 관계가 지속될수록 가슴이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는 기분이었지만 빈스는 도저히 관계를 끝낼 수 없었다. 그는 성탄절 휴가 기간 마취제를 남용하고 담배불로 허벅지를 자해한 뒤에 마침내 캐런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캐런에게 이런 메모를 남겼다.

…우리가 연인 관계로 있던 지난 9개월 동안 저는 시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당초 우리의 관계는 수개월에 불과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시간을 연장해서 얻는 것은 말기 암 환자의 고통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결국 여기까지 왔습니다. 미래를 예견하며 사는 것이 누구에겐 절망일 수도 누구에겐 두려움일 수도 있겠지만 저에겐 완전한 무의미였습니다. 환자의 의미없는 생명 연장에 반대하며 살아왔지만 막상 본인이 그런 상황에 처하면 신념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난 9개월은 이제 제 인생에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지난 9개월간 간절했던 감정은 차라리 스톤헨지나 빅토리아 여왕 동상에 대한 숭배였기를 바랍니다.

캐런은 정성주와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그동안 본의 아니게 고통 주었던 수많은 남자들을 떠올렸다. 그는 그들에게 뒤늦게 미안함을 느꼈다. 캐런은 자신이 사실 생각처럼 그렇게 냉혹한 성격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자신도 그들과 다를 것 없는 보통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캐런은 정성주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임신 6개월의 몸으로, 2년 간의 고통스러운 기다림을 끝내고, 더 나약해지지 않기 위해 정성주를 떠났다. 그는 정성주가 미안해하지도 후회하지도 않을 거란 사실을 알았다. 그럼에도 떠나면서 메모를 남겼다.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렸을 때 당신의 눈빛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눈이 항상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런지 그때 알았습니다. 당신은 선천적으로 인간에 대해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토끼를 물어 죽인 늑대에게 무정하다 말하지 못한다는 걸 머리 속에 새기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당신이 원하는대로 아이는 혼자 낳아 키우겠습니다. 아이에게 당신을 찾지 말도록 단단히 교육 시키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캐런이 주은을 낳은 곳은 캄보디아 프놈펜 외곽의 외국인 숙소였다.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으나 프놈펜 시내 산부인과에는 무자격 의사와 간호사들이 너무 많았다. 침상에 누운 환자가 매번 ropivacaine 대신 oxymorphone을 써야 한다고 설명할 생각을 하니 혼자 가정 분만을 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난산이었다. 4시간 가량 진통 중에 캐런은 2번이나 기절했다. 진통 완화제가 없었으나 불결한 환경 때문에 감히 질 부위를 찢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인간의 어처구니 없이 불합리한 분만 구조보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운명적 난점보다, 캐런의 머리 속을 괴롭힌 것은 정성주에 관한 생각이었다. 버림 받은 고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혼자 아이를 낳으며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는 것이 그로부터 버림 받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자꾸 파고 들었다.

캐런은 원래 아들을 원했다. 왜 그런지는 몰랐다. 아마도 이 다음에 커서 엄마를 보호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을지 몰랐다. 캐런은 딸에 대한 실망감을 억누르기 위해 몹시 애썼다.

강하게 키울 수 있어.

캐런은 그러기로 마음 먹었다.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고 누구에게도 고통받지 않는 여자로 키우기로 마음 먹었다. 젖을 떼자마자 혼자 판단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걸음마를 뗀 뒤론 스스로 먹을 것을 찾고, 아픔을 참고, 욕구를 억제하며, 기회를 포착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아이에게 칼을 피하지 말고 다루도록 가르쳐라.

캐런은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랐다. 외과에선 칼을 쓸 일이 많았다. 외과는 인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생겨난 기술이면서 동시에 생명을 쉽게 죽이는 방법도, 본의 아니게, 익히는 곳이었다. 칼질 한번에 환자의 생사가 오가는 순간을 수도 없이 경험하며 캐런은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깃털처럼 가벼운지 배웠다.

캐런은 딸을 약하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 위협을 받으면 두려움에 떨기 전에 위협의 원인을 제거하도록 가르쳤다. 캐런은 딸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 잔혹한 이기주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생명의 무게가 다른 생명보다 무겁다는 걸 가르쳤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캐런은 딸이 비록 불행해질지언정 남에게 희생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주은은 말을 배웠지만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캐런은 딸에게 꼭 필요한 말만 하도록 가르쳤으나 주은은 너무나도 말 수가 적었다. 새로운 사물을 보고도 그게 뭔지 묻지 않았다. 생소한 현상을 목격해도 그게 왜 그런지 묻지 않았다. 캐런은 딸의 침묵과 무표정을 볼 때마다 절망감을 느꼈다. 딸은 사물과 현상을 파악하는데 언어 정보를 이용하지 않았다. 딸은 정성주처럼 냄새를 맡고 있었다.

캐런은 주은이 가진 후각 능력을 의식하지 않으려 애썼다. 혹시라도 나중에 딸이 아버지를 찾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염려했다. 캐런은 주은에게 냄새에 관한 지식을 일부러 가르쳐 주지 않았다. 냄새에 의존하지 않도록 했다. 캐런은 딸이 아버지를 닮지 않기를 바랐다.

캐런이 피트라는 이름의 미국인과 사귄 것은 새 인생을 살기 위함이었다. 캐런은 정성주의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니던 병원을 그만 두었다. 그리고 주은을 고급 외국인 학교에 보내 다른 아이들과 동일하게 키우려 했다. 캐런은 딸을 위해 부유한 남자를 만나 안정적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피트는 프놈펜에서 가장 큰 여행사를 운영 중인 비즈니스맨이었다. 그가 앙코르와트와 가까운 지역에 리조트를 2채 운영한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지만 캐런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피트가 돈을 어떻게 벌 든 그건 자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캐런은 결혼하자는 피트의 구애를 끈질기게 뿌리치며 사이 좋은 동거인 관계를 유지했다. 피트는 성실하고 꼼꼼한 남자였다. 피트는 캄보디아에 아동 성매매범들이 많다며 주은의 등하교시 매번 운전 기사를 붙여 주었다. 캐런은 피트의 편집증적 성격이 거슬렸지만 함께 사는데 큰 문제가 된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캐런은 영국에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캐런은 그의 가족과 그들이 속한 사회의 가식과 요식 행위에 적응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렇다고 10대 때처럼 방탕하고 무의미한 생활을 할 생각도 없었다. 캐런은 자신이 택한 삶이 자신에게 가장 맞는 삶이라고 스스로 정당화했다.

정성주를 만난 것도 평생 그런 삶을 꿈 꿨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정성주는 그의 삶의 이상ideal이었다. 정성주의 말과 행동은 모두 진실이었다. 냉혹한 진실이었지만 캐런은 그런 게 좋았다. 학생 시절 의대 교수과 선배들이 보여준 한심한 보신주의와 기득권 의식을 보며 캐런은 졸업과 동시에 이곳을 영원히 뜨기로 맹세했다. 현대 의학 시스템을 유지하는 원동력은 인간의 고통과 죽음이었다. 인간의 고통과 죽음은 그들에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 돈벌이를 위한 기회였다. 모든 것은 의사 개인의 양심과 의지가 아닌 그들이 속한 시스템의 문제였다. 개개인의 선의와 헌신은 현대 의료 시스템의 거대한 굴레 아래 무의미한 잡음으로 사라졌다. 

의사라는 위선자들과 평생 살아온 캐런에게 정성주는 찬란한 빛이었다. 정성주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주고 치료비를 받지 않았다. 기존 제약사의 약 단 한가지도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 개발한 치료법만으로 전지전능한 치유력을 보였다.

정성주를 중국에서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칠순쯤 돼 보이는 노파가 몹시 아픈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온 적이 있었다. 아들은 피부병 환자였다. 돌팔이 사기꾼에게 사기 당하고 엉터리 치료법에 곰팡이성 피부염까지 얻어 한쪽 눈도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노파는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은 저주라며 정성주 앞에서 통곡했다.

정성주는 아무 말 없이 아들의 옷을 전부 벗기고 지하에 만들어 놓은 돼지 우리에 넣고 문을 잠갔다. 그곳에서 정확히 35일 동안 숫돼지들의 공격 받으며, 극도로 제한된 음식만 섭취하며, 추위와 공포에 생사를 오갔다. 35일 뒤 정성주는 아들을 돼지 우리에서 꺼내 점성이 강한 검은색 액체를 몸에 발라 주었다.

3개월 뒤 아들은 완전히 회복된 모습으로 어머니와 함께 다시 병원을 찾았다. 어머니는 전재산을 털어 산 금두꺼비를 정성주에게 주었다. 어머니는 정성주 앞에 엎어져 머리카락이 흙투성이가 되도록 조아리며 통곡했다. 어머니에게 정성주는 신이었다. 사기꾼들의 신은 기도를 들어줄 뿐이지만 정성주는 생명을 되살려 주었다.

정성주가 머무는 곳에는 따르는 무리가 많았다. 그들은 사이비 종교의 신도들과 같아서 정성주를 위해 목숨도 내어줄 각오가 돼 있었다. 정성주가 운영하는 병원은 신도들에 의해 유지되었다. 필요한 물품과 식량과 노동력은 신도들에 의해 한 순간도 지체되지 않고, 넘치도록 제공되었다. 

캐런은 정성주와의 만남이 후회스럽지 않았다. 정성주로부터 태어난 딸은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의 대가라고 생각했다. 캐런은 주은을 행복하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주은을 위해서라면 영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캐런은 주은이 피트의 집에서 메스암페타민 플라스틱 봉지를 발견했을 때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주은은 평생 맡아 보지 못한 냄새의 물체에 호기심을 느낀 것 같았다. 피트가 왜 그렇게 돈이 많은지, 왜 그렇게 주변에 사람들이 많은지 모든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캐런은 즉시 짐을 챙겨 피트의 집을 떠났다. 그리고 영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주은에게 말해주었다. 이제 엄마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될지 캐런은 딸에게 들뜬 마음으로 설명해 주었다. 캐런은 그러는 내내 정성주가 보고 싶었다. 돌아가기 전에 단 한번이라도 보고 싶었다. 그러자 주은이 입을 열었다.

아빠는?

주은은 엄마의 마음을 읽는 듯 했다. 딸의 무표정은 상대의 마음을 읽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런은 정성주 대신 딸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성주가 보고 싶을 때마다 주은을 보며 마음을 달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출발 전날 캐런 모녀는 프놈펜 시 중심의 호텔에 묵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공항행 리무진을 예약해 놓았다. 주은은 화장실에 양치질을 하고 있었다. 치약의 인공 소나무 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나무 향이 아니라 아카시아 냄새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낯선 남자의 냄새를 맡았다. 엄마를 부르려고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온 집안 가득 피 냄새를 맡았다.

엄마는 창틀 잡고 쓰러져 있었다. 낯선 남자는 엄마를 다시 한번 찌르려 하고 있었다. 주은은 본능적으로 달려가 남자 등에 매달려 목을 졸랐다. 남자가 휘두른 칼에 얼굴을 맞은 것 같은데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다. 엄마가 창백한 얼굴로 일어나 남자의 칼을 두 손으로 쥐고 손목을 물었다. 남자가 칼을 떨어뜨렸다.

주은은 떨어진 칼을 주워 남자의 오른쪽 허벅지 안쪽에 깊숙히 꽂아 넣었다. 대동맥이 흐르는 곳이었다. 오래 전 엄마는 그곳이 끊어지면 죽게 된다고 가르쳐 주었다.

주은은 피투성이가 된 엄마의 손을 꼭 쥐었다. 엄마의 몸이 식어가고 있었다. 눈 앞의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 주은의 심장과 두뇌 맥박이 맹렬히 뛰었다. 절망감에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는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8시 출발이잖아, 늦지 마…

작품 등록일 : 2026-03-18
최종 수정일 : 20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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