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디는 죽어 가는 여자 옆에 서 있었다. 여자는 브로디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없어도 잘 살아야 해.
여자 옆에 낯선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남편도 아버지도 형제도 친척도 아니었다. 남자는 여자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자의 임종을 지키고 있었다.
남자의 아내는 아이를 낳지 못하고 죽었다. 임신 중 살해 당했다. 남자의 아내를 죽인 사람은 여자의 남편이었다.
남자는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세상 모든 회계사 중 가장 사려 깊을지 몰랐다. 남자는 여자에게 당신이 낳은 아이를 지켜주겠다고 말했다.
여자는 남자의 말을 믿었다. 그리고 편히 죽었다.
브로디는 여자가 낳은 아이였다. 브로디는 꿈에서 이 광경을 반복해서 목격했다. 브로디는 여자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여자가 불쌍하다 느낀 건 회계사 뿐이었던 것 같았다. 인생은 아이러니라고 생각했다.
회계사는 브로디에게 이름을 붙여 주지 않았다. 그에겐 아직 감정이 남아 있었다. 아내를 살해한 자의 피가 섞여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브로디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브로디가 미웠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브로디는 외국으로 입양됐다. 원래 행선지는 네덜란드였으나 입양 업체가 영어 이름을 잘못 붙이는 바람에 아일랜드로 바뀌었다.
브로디는 아일랜드에서 자랐고 30살이 되던 해 회계사를 만났다. 눈이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회계사는 브로디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척 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아내와 뱃속의 아이가 왜 죽어야 했는지, 브로디의 아버지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고 싶었다고 했다.
회계사는 브로디가 비참하게 살길 바랐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아직 브로디의 아버지가 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자식이라도 고통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려운 환경에 입양돼 그런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이 대견스럽다고 했다.
…넌 충분히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어. 아마도 하늘이 준 보상이겠지. 네 애비는 파괴를 일삼았지만 자식은 그 반대의 길을 걷고 있으니 아이러니랄까.
…넌 아마 네 어머니를 닮았을 거라 생각해. 고통의 크기로 보자면 가장 큰 피해자는 네 어머니였겠지. 네 애비가 그런 짓을 저지른 뒤로 네 어머니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네 어머니가 너를 낳기 전에 내게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나. 자신의 자식이 아버지의 죄를 보상하며 살게 해달라고.
…널 입양 보낸 건 나였다. 내 입장에선 널 다시 보지 않기 위해서였지만, 살인자의 아들로 부모없이 크는 것보단 아무도 모르는 외국에서 새 삶을 사는 것이 나을 거란 생각도 있었다.
…난 네게 원하는게 없다. 넌 네 애비의 죄를 보상할 필요도, 희생자의 명복을 빌 필요도 없다. 넌 그냥 지금처럼 훌륭하게 살면 돼. 그러면 된 거야.
브로디는 정성주의 죄를 보상할 생각은 없었다. 브로디는 정성주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생각이 없었다. 그는 한번도 정성주를 아버지라고 부른 적도, 그렇게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는 생물학적 기증자일 뿐이었다.
브로디는 정성주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했다. 문을 밀고 들어가는 순간 코 안으로 왈칵 쏟아져 들어온 냄새. 익숙한 냄새. 자신의 냄새. 그가 평생 한번도 맡아 보지 못했던 “가족”의 냄새. 브로디는 냄새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자신과 소름 끼치도록 닮은 냄새. 냄새가 닮았다면, 성격도, 지능도, 지금 이 후각도 닮았을까. 그렇다면 정성주도 지금 나처럼 문 너머 또 다른 자신의 냄새를 맡고 있을까.
정성주는 브로디와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는 브로디에게 자신의 기록을 남겼다. 그는 오래 전부터 자신의 과학 연구를 물려 받을 후계자를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 정성주는 브로디를 자신의 후계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브로디는 정성주가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저지른 모든 살인엔 목적이 있었다. 정성주의 첫 희생자였던 회계사의 아내도 그랬다. 그러나 브로디는 그 사실을 회계사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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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디가 받은 정성주의 일기에서 일부 발췌. 모든 일기엔 년도와 날짜 없이 월(month)만 적혀 있음.
3월
의사는 내가 어릴 때 생각했던 직업이 아니었다. 의사는 죽어가는 사람 상대로 돈을 버는 장사꾼이었다. 절박한 사람들로부터 돈을 벌기가 얼마나 쉬운지 의사처럼 잘 아는 이들도 없다.
5월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냄새를 맡으면 이 사람이 건강한지 병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의사가 되면 왜 그런 냄새가 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 의학 지식으로는 왜 감기 환자에게 그런 냄새가 나는지도 알 수 없다. 병을 치료하는 직업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병에 걸린 사람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이 없다.
11월
의사는 죽음에 둔해지고 고통에 예민해진다. 죽음은 안도와 평온, 임무의 완료를 의미하고, 고통은 두려움과 불안, 임무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고통이 필요한 것인가? 이런 과도한 고통이 생존에 도움 되는가? 어떤 필요와 의도에 의해 이런 고통이 생겨난 것인가?
12월
의료업의 목적은 수명 연장이다. 이 때문에 부조리가 발생한다. 아무도 고통 받는 삶을 연장하고 싶지 않다. 동물도, 인간도, 고통을 끝내고 싶지 고통을 지속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현대 문명은 반대를 강요한다. 끔찍한 고통을 강요하며 수명을 연장토록 강제한다. “고통의 감소”보다는, “생환”, “수명 연장” “백년 장수”가 더 극적으로 느껴진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선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아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안식을 찾을수록 의료업이 돈을 벌 기회는 줄어 든다.
8월
조류는 먹이가 부족한 시즌에도 2개 이상의 알을 낳는다. 늦게 알에서 깨인 새끼는 버려진다. 형제 갈등, 부모의 편애, 심지어 먹이가 충분해도 늦게 나온 새끼는 죽는다. 먼저 나온 새끼에게 살해되거나, 부모가 먹이를 주지 않아 굶어 죽는다. 처음부터 낳는 알의 수를 조절하면 될 일이지만 자연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기계적으로 불필요한 개체를 생산해 고통과 비극을 반복한다. 맹목적인 종의 유지를 위해 끝없이 기계적인 희생을 감수한다.
3월
잉여surplus는 모든 것의 원인이다. 경제도, 문명도, 예술도, 의학도, 잉여 생산 자원의 결과물이다. 고통도 그렇다. 고통과 감정, 모든 희로애락은 잉여 생산의 결과다. 바이러스와 아메바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잉여 세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능과 목적에만 충실하기 때문이다.
6월
모든 생명은 번식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생명의 번식 기능은 공장의 생산 기능과 다르지 않은데 더 비효율적이고 비인간적이다. 공장은 제품이 과량 생산되면 생산을 중단한다. 생명은 그렇지 않다 수십억에 달하는 개체가 수천년의 세월 동안 고통받고 죽어야 번식이 조절된다. 생명의 번식은 비효율과 고통이다. 누군가는 조물주의 실수라고 해석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조물주라는 것이 정말 존재한다면 실수도 무능도 아니다. 고의다. 의도적으로 계산된 결과다.
10월
병원에 근무하면 제일 먼저 맡는 냄새가 죽음의 냄새다. 동물의 몸은 죽을 때를 안다. 몸이 죽을 때를 인지하고 머리에 명령을 내린다 이제 죽을 준비를 하라고. 몸이 더 이상 살지 않기로 했을 때 풍기는 냄새, 죽음의 냄새다. 자연의 잔혹성은 이미 죽기로 한 몸을 그냥 죽게 하지 않는다. 고통에 이 악물고 벌벌 떨다 죽게 한다. 이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몇 달 동안 겪는 경우도 있는데, 인간의 경우 몇 년씩 겪는 일도 흔하다. 병원 때문이다. 가족들은 고통 받는 가족의 생명 유지 중단을 요구하지만 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보다 못한 일부 가족은 몰래 환자실에 들어가 생명 유지 장치를 끄고 “자체 안락사”를 시도한다. 그리고 감옥에 간다. 모두를 위한 선택이지만 인간 사회는 이를 살인이라 단죄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다. 인간 세상의 부조리는 자연의 부조리로 귀결된다. 애당초 자연이 그렇게 만들어졌고 인간 세상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9월
유전자 명명법은 유전 형질의 복잡성과 해석의 다양성에 대응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다. 의도는 이해하지만 실제 사용하기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영어 알파벳처럼 비논리적인 언어를 유전자 명칭에 사용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다. 내가 발견한 유전 형질 중 표기법이 명시된 것은 열개 중 한 개도 되지 않는다. 유전자와 유전 형질을 정의하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9월
냄새는 분자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다. 여기까지는 논리적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분자의 종류와 구조와 조합이 달라질 때마다 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때부터 논리적 해석이 불가능해진다. 뇌의 기억이 아닌 생체 직감에 의존해야 한다. 유전자도 그렇다. 단순 형질은 표기가 쉽지만, 생명체의 종류 환경 공생 경쟁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변수가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한다. 논리 표기가 아닌 직관에 의존해야 한다.
1월
진화는 죽음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죽음이 없으면 진화도 없다. 법, 의학, 병원, 생물학, 농업, 건설업, 통조림, 보도 블럭, 헬멧, 브레이크, 신호등... 모두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생긴 것들이다.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다. 사람이 한 명 죽으면 인류는 진화한다. 간접적으로나마.
11월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30년 이상 자행된 미국 생체 실험은 지금의 상식으론 이해가 어려운 범죄 행위였다. 놀라운 건 그렇게 사람들을 희생시켰는데 실험을 주도한 의사들이 처벌받긴커녕 학계의 권위자로 존경 받았단 사실이다. 유태인과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생체 실험을 자행했던 2차 대전 전범들은 마땅한 처벌을 받았던가? 그들이 남긴 의학 지식들은 누가 가져간 것일까?
5월
안과는 안정적인 직업이다. 목숨과 관련 없지만 목숨만큼 중시된다. 책임질 일은 적고 벌이는 많다. 모험과 스릴을 즐기는 사람에겐 권할 수 없는 직업이다. 못 견디게 지루해서 그만 둘 테니. 내가 이비인후과를 선택하지 않은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12월
결혼에 뜻이 없는 남자들도 결혼을 한다. 그리고 평생 구속돼 산다. 창살 없는 감옥에 자진해 기어들어 간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이 역시 자연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부조리 중 하나겠지.
1월
번식을 위해선 정착이 필요하다. 결혼이라는 제도의 이유다. 결혼은 안정적 번식을 위한 제도. 번식할 생각이 없는 남자가 결혼을 했다면 그 결혼은 무효로 봐도 될까.
12월
엄마가 아이를 낳고 눈이 멀어 버린다면, 그 낳은 자식이 spina bifida이라면.
3월
실종자가 사망자로 인정받기란 쉬운 일이다. 최소한 한국에서는.
2월
도망자의 삶은 충동적인 것이 아니었다. 계획된 것이며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다. 언젠가 아이가 애비를 찾는다면 솔직히 이야기할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계획으로 도망자가 됐는지.
3월
남자는 자아 성찰 기능이 없다. 대신 정당화를 한다. 남자는 정당화의 동물이다. 내가 일기를 쓰는 이유다. 일기를 처음 쓴 건 살인 충동을 느꼈을 때였다. 외과에서 안과로 전공을 바꾸었을 때였다. 싸이코패스였다면 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 역시 정당화의 일부일까.
6월
냄새는 소모를 의미한다. 냄새가 나는 건 물질을 구성하는 분자가 기화됐기 때문이다. 물질의 냄새는 그 물질이 소모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언젠가 사라질 것을 의미한다. 무기물보다 유기물의 냄새가, 기계보다 생명의 냄새가 강렬한 까닭은 덧없는 운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6월
무기물은 안정이고 유기물은 불안이다. 무기물은 예측 가능하지만 유기물은 그렇지 않다. 무기물은 수학의 영역이고 유기물은 예술의 영역이다. 무기물은 고고학이고 유기물은 미래학이다. 무기물은 냉정하지만 유기물은 열정과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냄새로 보는 세상은 이분법적이다.
8월
기존 세상의 부조리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면 동일한 부조리가 변형된 형태로 반복된다. 내가 만든 세상도 예외가 아니다. 나는 다를 것이란 생각은 인간만 할 수 있는 비과학적 착각이다. 우리는 자연 생태계라는 룰에 따라 산다. 인간은 자연 생태계의 룰이 마음에 들지 않아 문명을 건설했지만 근본적으로 동일한 형태의 부조리를 반복한다. 외계 행성의 자연 생태계는 이와 다를까. 지구 자연의 부조리는 외계 행성에선 반복되지 않을까. 지구 생태계의 부조리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지구 생태계도 외계 행성 생태계도 물리 화학 법칙에 지배된다. 부조리의 근원은 물리 화학 법칙일까. 아니면 물리 화학 법칙 위에 만들어진 생태계일까.
9월
질병의 역사는 면역 체계의 역사와 동일하다. 둘은 수억 년 군비 경쟁을 벌이며 서로를 강하게 만들었다. 언제나 승자는 면역 체계였다. 질병은 면역력에게 져도 죽고 이겨도 죽기 때문이다. 면역력을 이기면 질병은 숙주가 죽으며 함께 죽는다. 치명적인 질병일수록, 면역 체계에 더 가혹한 승리를 거두는 질병일수록, 수명은 더 짧아진다. 일부 질병은 면역 체계에 이기지도 지지도 않으면서 숙주와 함께 천수를 누린다. 대표적인 예가 감기다.
9월
동물의 면역 체계는 수억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중국 열대 우림에 사는 양서류 종은 피부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항생물질을 배출하는데 이 물질은 인간이 만든 어떤 항생제보다 광범위하고 효과적이다. 인간 면역 체계는 이 양서류의 항생 물질보다 효과적이다. 양서류처럼 방어벽을 높고 두껍게 세운 것이 아니라 침입자의 자유로운 출입을 허용한다. 그런 뒤 침입자에게 꼭 맞는 무기를 쏘아 죽인다. 이 무기는 다른 유사 침입자들에게도 동일한 살상력을 발휘하며 침입이 재발할 때마다 새로 업그레이드 된다. 인간 면역 체계는 동물 면역 진화의 정점이다.
10월
침입자가 인간 면역 체계로부터 생존하는 법은 2가지다. 1) 인해전술로 면역력을 압도하거나, 2) 인간 몸의 일부로 인정 받고 받아들여지거나. 암 세포의 미덕은 돋보이지 않는데 있다. 돌연변이지만 나는 너희들과 다르지 않은 한 몸이라 강조한다. 처음부터 무리수를 두는 침입자는 면역 체계에 살해되거나 숙주와 함께 사멸한다. 동화assimilation는 침입 생명체의 생존 코드다. 숙주 세포들과 동화되지 못하는 침입 생명체는 빠른 시간 내 도태된다.
12월
의학의 맹점은 건강한 사람이 아닌 아픈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다는데 있다. 성공이 아닌 실패에, 강자가 아닌 약자에 집중하기에 발전의 가능성이 줄어든다. 의학의 진보를 원한다면, 질병을 막는 방어자의 관점이 아닌, 질병을 일으키는 공격자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1월
유전 형질과 교육은 영원한 대립 관계다. 인간 문명은 교육에 의해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유전 형질은 교육과 상관없이 발동되며 어떤 강력한 교육도 무력화 시킨다. 인간의 행동은 교육이 아닌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도록 만들어졌지 다른 사람의 조언에 따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행동 교정이 실패하는 까닭은 머리가 몸을 지배한다는 미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뇌가 사람 말을 알아듣기 때문이라고, 사람 말을 알아들으면 행동도 교정될 것이라 믿는 것이다. 뇌의 명령은 휘발성이다. 세뇌를 통한 행동 교정은 또 다른 세뇌를 통해 무력화 되거나 역효과를 낳는다. 유전 형질의 핵심은, 머리가 몸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몸이 머리를 지배한다는데 있다. 행동을 교정하려면 뇌가 아닌 몸, 척추 신경계에 자극을 줘야 한다. 몸에 주어지는 자극은 인간의 행동 뿐 아니라 뇌도 바꾼다. 대뇌 중심적 세계관으로는 유전 형질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
2월
전기 고문 사례는 인간 행동 교정에 관한 결정적 증거를 제공한다. 경계 두려움 공포가 몸뚱이를 지배하면 행동 패턴이 뒤바뀐다. 공황장애 피해망상은 기계적 상흔이다. 부차적 부작용이다. 전기 고문에 의해 달라지는 인간의 행태엔 그것만 있는 게 아니다. 1) 반사 신경 및 기억력이 초인적 수준에 이름, 2) 소극적 성격이 적극적으로 바뀜, 3) 무기력과 우울증 사라짐. 이 3가지는 다수의 피고문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임에도 주목받지 못했다. 뇌에 전기 자극으로 우울증 치료를 하는 정신과 시술과 비교하면 분명하다. 뇌에 가한 자극은 휘발성이다. 효과가 제한적이다. 동일한 고통을 주는데 불구하고 머리 전기 자극은 치료법이고, 몸 전기 자극은 범죄라는 법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11월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는 다이아몬드 회사의 마케팅 문구는 은유적이다. 다이아몬드는 탄소다. C, Carbon, 탄소. 세상 만물의 근원이며 어떤 경우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의 몸도 그렇다. 썩어도, 녹여도, 태워도, 핵폭발으로 흔적 없이 사라져도 몸을 구성했던 탄소는 입자 하나 사라지지 않고 보존된다. 지구 모든 생명체는 탄소에서 탄생해, 탄소를 흡수하고, 탄소를 내뿜으며, 탄소로 돌아간다. 생명이란 탄소에 어떤 성분이 더해지는지에 관한 것이다. C를 둘러 싸고 무수히 많은 원소들이 결합해 생명을 이루었다가 다시 떨어져 나가면서 C로 돌아간다.
11월
지구 생태계는 식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지구 생명은 직간접적으로 식물에 생존을 의존한다. 탄소 생산자기 때문이다. 먹이 사슬 최하위층인 식물은 실제론 최상층이다. 자신을 섭취할 대상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자기 몸을 먹을 대상을 선택함으로서 세상을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으로 만든다. 벼와 밀이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한 생물종이 된 이유는 이들이 인간을 자신들을 섭취할 대상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양분과 면역력을 제공했던 곰팡이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인간이 대신한 것이다. 인간은 쟁기를 발명해 기존의 풀을 밀어내고 벼와 밀을 심었다. 수천수만 년 동안 인간은 해가 뜨기 전 밭에 나가 해 질 때까지 일했다. 농경이 시작된 이래 1만년 동안, 인간들은 벼와 밀의 번영을 위해 살았고 지금도 벼와 밀의 확고한 번영을 위해 천문학적 자원을 쏟아 붓는다.
12월
식물의 가장 경이적 능력은 다른 개체와 쉽게 한 몸이 된다는 점이다. 식물은 바이러스, 박테리아, 곰팡이 뿐 아니라 지의류, 심지어 다른 식물의 몸마저, 필요한 경우, 자신의 몸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땅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식물은 물 위에서도, 물 속에서도, 바위에서도, 심지어 공중에서도 번성한다. 이론적으로 식물은 어디서도 번성할 수 있다. 시멘트, 아스팔트, 금속, 심지어 동물의 피부에서도. 어떤 생명체와도 한 몸을 이루는 능력은 식물을 지구 생태계의 지배자로 만들었다.
11월
의사는 인간의 운명에 대해 생각한다. 질병 유전자를 타고난 건 기계적 결함이다. 단순 체질 조사로 운명을 점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싶은 운명은 정상적 유전자를 타고 났음에도 일찍 죽거나 정상적 기능을 못하는 경우다. 어떤 유전자 조합이, 어떤 유전와 어떤 환경의 결합이 인간의 운명을 몰락으로 이끄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정상적 유전자의 몰락을 행동 패턴의 결과로 이해한다. 우리는 인간의 행동 패턴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알아야 한다. 병원에 갇혀 사는 한 우리 의사들은 인간 운명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병든 사람, 죽어 가는 사람들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병원에서 보지 못하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병적인 결말을 맞는 이들을 관찰해야 한다. 범죄자들이 대표적이다.
1월
장례식장을 지배하는 감정은 쾌락이다. 상주와 유족들 슬픔의 이면엔 쾌감이 있다. 장례식장에서 왁자지껄 폭소가 터져 나오는 것은 무례가 아니라 자연스러움이다. 인간은 무기력이 아닌 쾌락을 추구한다. 슬픔과 기쁨, 사랑과 미움, 분노와 평정은 쾌락이라는 동전의 앞뒷면이다. 인간의 예술 창작 행위에 숭고한 가치는 없다. 그들은 지루했을 뿐이다. 몰입할 게 필요했던 것이다. 스포츠와 게임, 도박, 그리고 범죄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동일한 동기에 의한 동일한 행태, 즉 유희 추구다. 유희 추구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닌 생명의 본질이다. 생명은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지 않는다. 물리 화학 관점에서 같은 종의 바이러스 개체들은 같은 공장에서 찍어낸 나사못처럼 같아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같은 종의 바이러스도 개체마다 서로 다른 행태를 보인다. 방금 분열한 바이러스 개체들이 같은 환경에서도 완전히 다른 행태를 보이며, 가끔 혹은 때때로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성질을 띠게 된다. 사람들은 일란성 쌍둥이가 동일한 인생을 살 것이며 동일한 운명을 맞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생명은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지 않으며, 이런 생명의 본질은 개체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2월
우리는 생명이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우리는 생명의 본질이 개체의 삶이나 운명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우리는 생명이 정해진 이야기가 아닌 날씨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우리가 날씨에 대해 예측할 수 있는 건 내일의 날씨는 오늘과 다르다는 것 뿐이다.
4월
오랜 세월 진화는 적자생존의 결과라고 믿었다. 하지만 죽음과 생존으로는 진화의 결과를 설명할 수 없다. 죽음과 도태는 진화의 꼬리다. 경쟁과 공생이 진화의 머리다. 먹이 사슬, 짝짓기, 기생충, 질병… 다른 생명들과 부대낀 삶이 진화를 촉진한다. 생존하기 위해, 번식하기 위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생명은 최단시간 내 진화한다. 같은 종 간의 우호적 경쟁도 진화를 촉진하는 원동력이다. 음악, 스포츠, 미술, 언어 등 경쟁에 의해 발달하는 모든 능력이 백년도 안 되는 세월 동안 믿기 힘든 수준으로 진화되었다. 적자생존도, 대물림도,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지 못한다. 진화는 절박함의 결과다. 시간의 길이가 아닌 절박함의 강도가 진화의 모습을 결정짓는다.
5월
동종 간의 경쟁/공존으로 사고 방식이 진화하고 능력치가 향상되는 경우는 흔히 목격되며, 학술적으로도 연구되었다. 하지만 다른 종과의 경쟁 혹은 공생으로 인간 개체가 진화하는 사례는 드물게 연구됐다.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의 피 냄새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피 냄새와 어떻게 다른지 아무도 모른다. 모든 생명체는 다른 종의 생명체와 공존하는 순간 달라진다. 특히, 그 다른 종이, 인간의 체내 정착한 경우, 인간의 유전 형질은 뒤바뀐다.
6월
생명체는 설계 도면에 따라 조립된 전자 제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수십 년의 시간이 걸렸다. 난 이제야 감기 환자에게서 왜 그런 냄새가 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은 생태계를 위한 세상을 만들었지 개체를 위한 세상을 만들지 않았다.
7월
한때 인류는 빛을 입자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전자 알갱이가 쏟아진 것이 빛의 정체라고 여긴 적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어째서 반대의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생명체는, 입자의 결합이 아닌, 파동일 수 있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았을까. 입자론에 갇히면 생명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생명을 파동-흐름으로 이해하면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이해된다.
8월
번영과 쇠락, 고통과 희로애락은 시간을 구성하는 흐름이다. 삶과 죽음은 명멸하는 빛의 연속이다. 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