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어요. 겨울 밤이었는데 반소매 옷을 입고 있었죠. 여름이 갑자기 겨울로 바뀌었던 것 같아요. 횡단보도가 있어요. 횡단보도가 너무 넓고 깜깜해서 건너편이 보이지 않아요. 그 앞에서 신호를 기다려요. 무이는 주차 방지 말뚝 위에 앉아 있어요. 파란불이 켜졌어요. 무이 우리 이제 건너자 그러는데 무이가 옆으로 몸을 돌려 앉아요. 우리 이제 건너야지 하니까 고개를 돌리더라고요. 저 혼자 횡단보도를 건넜어요.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너무 춥고 외로운 거에요. 너무 미칠듯이 외롭고 답답해서 울었어요. 울다가 잠에서 꺴어요.
에린은 꿈 이야기를 했다. 브로디는 에린을 사장실로 불러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 안부를 묻고 사적인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에린의 꿈 이야기를 들었다.
에린의 아들은 4살이었다. 시무스Seamus라는 이름에 “무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면역 결핍증이 있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무이는 정상이었다. 에린은 아이를 낳자마자 브로디에게 데려왔다. 브로디는 얼떨결에 무이의 대부가 되었고, 매주 한번씩 무이를 만나 신체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줘야 했다.
무이는 아빠를 닮았다. 아빠를 닮아서 수줍음이 많았다. 아빠의 이름은 유진 맥밀리언. 농림청 토지 관리과 직원이었다. 에린은 결혼 전 유진을 브로디에게 데려 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유진에게 생물학적 결격 사유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에린의 평소 성격과 맞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에린은 절박했다. 그가 살아온 면역 결핍의 인생은 절대로 아이에게 물려줄 수 없는 것이었다.
유진은 건강하고 착실한 남자였다. 에린은 아이를 낳고 달라졌지만, 유진은 달라지지 않았다. 에린의 지독한 육아 히스테리에도 유진은 평상심을 잃지 않았다. 무이에게 젖병을 한 시간 일찍 물렸다고 삼일 동안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을 때도, 운전 중 차에서 쫓겨나 집까지 걸어 왔을 때도, 유진은 평소처럼 묵묵히 기저귀를 갈고 설거지를 했다.
...불행하다고 생각했어요. 더 이상 고통 없는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고통은 돌아오는 것 같아요. 멸균실에서의 삶과 지금의 삶을 비교하면 불행할 이유가 없는데. 멸균실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다 있잖아요. 사람이 무엇 때문에 불행해지는 걸까 생각했어요. 멸균실에서 나오지 않고 그대로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 그런 일은 없었겠죠 왜냐하면 견딜 수 없이 불행했을 테니까.
에린의 소원은 소박했다. 무이가 첫돌을 맞을 때까지 부모님이 살아 있는 거였다. 하지만 에린의 부모님들은 에린이 임신하고 몇 달만에, 이제 모든 의무를 다했다는 듯, 수명이 다 된 기계처럼, 차례로 숨을 거두었다. 임신이 기뻤던 건 그동안 고통 받았던 부모님에 대한 보답이기 때문이었다. 갓 태어난 아이를 보고 부모님이 얼마나 기뻐할까 그 생각만으로 에린은 스스로 대견하고 뿌듯했다.
부모의 장례식에서 에린은 울지 않았다. 그는 울지 않는 아이였다. 부모님이 “우리 에린은 울지 않아요” 하며 자랑스러워 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에린은 울음을 참았다.
…북극곰은 먹이를 찾기 위해 매일 8시간 얼음장 같은 바다 속을 헤엄쳐요. 동물원 북극곰은 매일 밥이 나오지만 하루종일 8m도 움직이지 못하고 갇혀 있다 정신병에 걸려요. 어째서 완전히 행복해질 수 없는걸까 생각했어요. 어째서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생기는 걸까. 어째서 우리는 배가 고파도 불행하고 배가 불러도 불행한 걸까 생각했어요.
고통과 불행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형태만 달라질 뿐. 석양이 붉게 물든다는 말처럼 뻔한 사실이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도, 고통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다. 8시간 얼음 바다를 헤엄치는 북극곰에게 불행하느냐 묻는다면 무슨 대답을 들을까? 농부는 행복과 불행의 개념이 없다. 아버지에게 행복하셨느냐고 묻는다면 아버지는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생각해 본 적 없으니까. 행복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모를 테니까. 누구도 행복을 위해 농사를 짓지 않는다. 아무도 불행하지 않기 위해 농사를 짓지 않는다. 그들 세상엔 그런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사는 것 뿐이다. 사는데 그런 생각 하지 않는 것 뿐이다.
에린은 자신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애를 낳고 몸이 쇠해진 탓 같았지만, 그게 아니란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 몰랐다. 병에서 나은 게 아니라 다른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에린은 브로디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에린은 병원을 믿지 않았다. 에린은 브로디를 믿었다. 자신의 상태를 가장 잘 알 사람은 브로디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어떻게 될 지, 어떻게 해야 할 지 아는 사람도 브로디 밖에 없다고 믿었다.
…인간도, 식물도, 같은 목적으로 산다고 하셨어요. 인간이 번식을 위해 사는 것처럼, 식물도 번식을 위해 사는 거라고. 농업은 식물의 번식욕을 이용하는 사업이라고. 꽃도, 감자도, 옥수수도, 번식의 욕구를 극대화 한 결과물이라고. 처음에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저도 무이를 낳기 위해 살아온 것 같아요. 저희 부모님이 저를 낫게 하고 돌아가신 것처럼, 저도 어쩌면 무이를 낳고, 건강하게 자라는 걸 보고, 이제 역할을 다 한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꽃이 피면 지기 마련이고, 저도 꽃을 피웠으니, 이제는 질 때가 된 게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어요. 무이가 더 클 때까지 함께 했으면 좋겠지만 그건 자연의 뜻이 아닐 수 있잖아요. 개인의 욕심인 거잖아요.
브로디는 무이의 건강 상태에는 관심이 없었다. 무이는 완벽하게 정상적인 아이였다. 브로디는 의사도, 생물학자도 아니었지만, 경험에 의한 직감을 갖고 있었다. 무이가 엄마 같은 증세를 보일 가능성은 없었다. 브로디가 관심 있는 건 에린이었다. 에린은, 어쩌면, 쉬징의 전철을 밟을 수 있었다. 브로디는 매주 에린의 체온와 체중을 검진하고 있었다. 에린은 체중이 줄고 있었다. 식욕엔 문제가 없었다. 그는 원래 소식가였고 체지방이 거의 없었다. 문제는 체온이었다. 체온이 삼일에 두번 꼴로 39도까지 올랐다. 에린의 몸은 곰팡이를 적대하고 있었다. 땅 주인은 소작농을 몰아내고 싶었지만 소작농은 땅을 실질 지배하고 있었다. 에린과 곰팡이의 공생 관계는 깨진 것이 분명했다. 이제는 에린 쪽에서 제2의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었다.
…지금껏 누굴 원망해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앨리슨 이모는 엄마 돈을 떼먹고 도망 갔어요. 엄마는 그 돈으로 저를 더 좋은 병원으로 옮겨 준다고 했는데 그렇게 못해서 매일 이모를 원망하며 울었죠. 저는 그때 멸균실 유리벽에 꽃그림을 그리고 있었어요. 북극에서 피는 꽃들이라고, 여름이면 북극곰들도 이 꽃을 볼 수 있다고 엄마한테 자랑했어요. 그걸 보고 엄마는 더 크게 울었죠. 우리는 더 가난해졌지만 그래도 저는 살아 있는 게 좋았어요. 병원 유리벽 안이지만 엄마 아빠에게 꽃그림을 자랑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죠.
…엄마 아빠에게 받은 사랑을 남편에게 베풀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에겐 남편이 엄마 아빠나 마찬가지니까. 근데 자꾸 남편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요. 남편처럼 착한 남자 없다는 거 알면서도, 매일 아침 눈 뜰 때마다 후회하고 반성하면서도, 매번 다시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해요.
…나무가 되는 법을 생각했어요. 인간이 나무가 될 수 있을까. 사는 게 고통이면 나무처럼 언제든 사는 걸 그만 둘 수 있을까. 사는 게 좋으면 나무처럼 영원히 살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남편에 대한 원망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에린은 공생 관계를 깨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의 몸에서 곰팡이를 제거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거나 멸균실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에린은 멸균실의 인생을 살지 않을 것이다. 그가 멸균실에서 십년을 살 수 있었던 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래의 희망이 모두 완료된 지금, 에린은 다시 그때의 삶을 살 수 없었다.
에린은 공생을 선택할 것이다. 인간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된다 하더라도, 에린은 곰팡이와 함께 사는 길을 찾을 것이다. 그는 분명 식물의 삶을 그리고 있었다. 곰팡이와 공생이 지속 가능한, 식물의 삶을 꿈꾸고 있었다.
생명의 삶은 번식으로 완료된다. 하지만 인간은 번식을 하면 삶에 집착을 갖는다. 꽃을 좋아했던 해맑은 소녀는 아이를 낳고 달라졌다. 모두에게 천사 같았던 에린은 아이를 낳은 뒤 삶에 집착했다. 누구보다 삶에 의해 고통받는 사람이 되었다.
…라나의 삶을 동경했어요. 나도 라나처럼… 땅에서 시작된 인생 땅으로 돌아가겠다고. 얽매이지 않고 의연하게 살다 가겠다고. 라나도 아이가 있었다면 달랐을까요? 저처럼 죽는 게 무서웠을까요?
에린은 웃고 있었다. 죽는 게 무서운 자신의 모습이 우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멸균실 밖 세상으로 용감하게 뛰어 들었던 예전의 에린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는 행복할 수 있겠지 싶을 때마다 찾아온 절망. 에린은 자신의 기구한 인생을 희화화 하고 있었다.
정성주가 쉬징을 만난 건 30년 전의 일이었다. 쉬징도, 에린도, 백년에 한번도 보기 힘든 희귀 사례일 것이다. 에린의 샘플을 접한 정성주는 30년전 쉬징을 처음 봤을 때와 달랐을 것이다. 쉬징은 한번 쓰고 버릴 샘플이었지만, 에린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30년 전에는 아무 것도 몰랐지만 지금은 많은 걸 알고 있었을 테니까. 브로디는 정성주의 언어로 쓰여진 부분이 궁금했다. 별 것 아닌 내용을 암호화 할 이유는 없다. 정성주는 에린의 샘플에서 중요한 걸 발견한 것이다.
식물과 곰팡이를 공생하게 하는 법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물과 곰팡이가 공생하는 법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 모든 건 추정일 뿐이다. 정성주는 머리 속 추정을 실현한 거였다. 이론을 증명한 게 아니라, 이론 상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 막연한 것들을 현실화 한 것이다. 정성주는 분명 에린의 샘플에서 뭔가를 발견했을 것이다. 어떤 조건이 공생 관계를 만드는지, 혹은 해제하는지 알아냈을 것이다. 정성주의 언어는 해독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