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s files #17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던 대학에서 배운 건 거짓말과 엉터리 지식 뿐이었다. 대학은 자유롭지 못했고, 학생들은 졸업 후 돈에 얽매인 노예가 되었다. 나는 자유롭게 살기로 했다. 

.............사자 우리 안에 사슴을 넣으면 사슴이 잡아 먹힌다. 아무도 이것을 죄라고 하지 않는다. 자연 본성이기 때문이다. 자연이 인간에 심어준 본성은 인간 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 종족 살해, 아동 성욕, 이종 교배욕... 이런 본성은 '이상 형질' 혹은 '정신 장애'로 규정된다. 

.............사람과 덩치가 비슷한 개나 사슴을 도로에서 치어 죽이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을 도로에서 치어 죽이면 상상하기 어려운 귀찮은 문제에 시달리게 된다. 개나 사슴 목숨이 사람보다 못하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사람이 개나 사슴보다 머리가 좋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개보다 낮은 아이큐의 사람을 죽이면 죄가 되지 않는가? 혹시 사람은 직업을 갖고 일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노숙자를 죽이면 죄가 되지 않는가? 아니면 말을 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벙어리를 죽이면 죄가 되지 않는가?

정성주는 이단아였다. 그는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자가 되었다. 도망자가 된 그는 더 큰 범죄를 저지르며 세상을 조롱했다. 

정성주가 한국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 간 곳은 중국이었다.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중국 시골에 접골원을 차렸다. 접골원은 인가 받지 않은 야매 병원이었다. 폐가를 대충 병원처럼 단장해 놓고 후불제로 운영됐다. 치료를 받고 병이 나으면 돈을 내라는 거였다. 정액제도 아니어서 자기가 내고 싶은만큼 내면 됐다. 돈이 아니라 쌀이나 버섯, 닭이나 돼지로 치료비를 내도 상관 없었다. 개중엔 인력으로 치료비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가족의 병을 낫게 해주었다고 정성주를 위해 결초보은 평생 몸 바친 사람들도 있었다. 

접골원은 유명해졌다. 가난한 시골 노인들 뿐 아니라, 병원에서 병을 고치지 못한 도시인들도 찾아 왔다. 인근 병원들에 의해 불법 의료 행위로 고발되었으나 정성주의 병원에서 은덕을 입은 공안 간부에 의해 불기소 처리 되었다. 접골원은 “자원 봉사자”들에 의해 으리으리한 철근 콘크리트 병원으로 재탄생했고, 정성주의 병원은 공인된 치료 기관이자 의학 연구소로 탈바꿈 했다. 

고통 받는 사람들, 생에 희망을 잃었던 사람들이 정성주에 의해 구원 받았다. “죽은 사람도 되살리는 능력을 지녔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은 실례를 통해 증명되었고, 증명된 사실들은 호사가들에 의해 전설처럼 부풀려졌다. 정성주는 신이 되었다. 정성주의 병원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은 신의 은총을 입은 것이고, 정성주의 병원에서 죽은 사람은 원래 죽을 목숨이었다. 정성주의 모든 말이 신격화 되었고, 그가 내린 모든 선택의 결과 역시 신적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신을 믿지 않는, 종교가 없는 광신 집단. 정성주는 자신을 과학자라고 했다. 사이비가 아닌 진짜 과학자. 극과 극은 통하는 걸까. 진짜 과학자는 사이비 광신 집단의 교주가 되었다. 

정성주의 병원은 셀 수 없이 많은 “자원 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됐다. 이들은 임금을 받지 않았고, 병원에 기부되는 자원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군대 같은 엄격한 규율과 철저한 위계 질서로 조직화 된 이들은 지역 사회의 권력이 되었다. 사람 목숨을 쥐고 흔드는 교주와 광적 충성심으로 무장한 신도들은 공권력도 감히 어쩌지 못하는 지역 사회 권위로 자리잡았다. 

정성주는 기존 의료계에 적대적이었다. 의사들을 혐오했다. 타 병원과의 협력을 거부했으며, 뜻깊은 의사들의 자원 봉사도 거절했다. 정성주가 외부 의사들과 접촉하는 경우는 국경 없는 의사회의 방문 때 뿐이었다. 기존 의료계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국경 없는 의사회는 정성주와 죽이 맞았다. 

팬데믹 시기 중국을 방문한 국경 없는 의사회의 어느 영국인 의사는 더욱 그랬다. 캐런 리즈. 캐런의 부친은 의사였다. 대형 병원 병원장이었던 부친은 2명의 자식을 모두 의사로 키웠다. 캐런의 조부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원래 경주마 키우는 가업을 물려 받을 운명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그의 운명을 뒤바꿔 놓았다. 그는 전쟁터에서, 가족의 관점에선 무모한, 하지만 국가적 관점에선 영웅적 활약으로 이름을 날렸고 이를 계기로 정치계 입문했다. 캐런의 집 응접실 벽은 조부의 무모한 활약으로 받은 훈장들로 도배돼 있었고, 그가 역사적 유명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로 즐비했다. 

캐런은 반항아였다. 가문의 명성을 위선적 허영으로 여겼다. 캐런에게 조부는 전쟁 영웅이 아닌 살인자였고, 아버지는 의사가 아닌 정치 모리배, 아첨꾼이었다. 캐런은 의사 자격증을 딴 뒤 가출했다. 국경 없는 의사회의 일원으로 세계를 떠돌다 중국에서 정성주를 만났다. 정성주는 캐런이 꿈꾸던 인물이었다. 타락한 자본주의 의학을 구원한 영웅, 인간 세상의 위선을 극복한 “이방인”이자 미래의 예언자였다. 그의 조부가 저지른 살인은 합법이었고 정성주가 저지른 살인은 불법이었으나 캐런은 신경 쓰지 않았다. 

캐런은 정성주의 딸을 낳았다. 딸을 처음엔 캐런이 기르다 캐런이 죽은 뒤 정성주가 길렀다. 정성주가 유럽 제약사들을 상대로 거래를 시작한 것은 딸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딸이 영국 국적자였으니 그에게 합법적인 유산을 물려주기 위함이라는 추측이었다. 

제약사들과의 거래는 일종의 미끼라는 해석도 있었다. 정성주의 연구소는 중국 공안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정성주는 이미 오래 전 중국 정부와 결연을 맺었고, 자신의 “다이어트 약”의 상업적 가치를, 제약사와의 쇼케이스를 통해, 중국 정부에 확인시킨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여기까지가 아일린이 정성주에 대해 알아온 내용이었다. 브로디는 정성주와 협상을 위해 아일린 펠란을 중국에 보냈다. 회사 법무팀에서 일하는 아일린은 버크 오거닉스 최고의 협상 카드였다. 그는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전세계를 돌아 다니며 살았다. 그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데 어색함이 없었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주눅드는 법이 없었고,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지도 않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쉽게 호감을 주는 성격인데다 설득력 있는 화법을 구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어를 할 줄 알았다. 

...정성주의 병원은 쓰촨성에서 제일 유명한 병원이에요. 지금 예약을 하면 7년 뒤에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해요. 

아일린은 2달 동안 청두시와 그 일대를 돌아다니며 정성주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청두는 아일린이 어릴 때 살던 곳이라 정보를 수집하기 용이했다. 청두 시민 절반 이상이 정성주를 알고 있었으며, 불치병에 걸려도 그를 찾아가면 낫는다고 믿었다. 정성주의 초상화를 붙여 놓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가정집도 있었다. 그들에게 정성주는 의사가 아니었다. 병의 고통과 죽음을 물리치기 위한 부적이자, 토템이자, 신의 가호였다. 

…정성주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도 만났어요. 대부분 의학계 사람들이지만, 객관적인 입장인 사람들도 있었죠. 그 사람들은 정성주를 “고통의 신”이라고 불러요. 정성주는 사람을 살리는데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 고통을 통제하는데 재능이 있는 거라고. 다들 병원에 안 아프려고 가는 거니까, 정성주 병원에선 허튼 말 없이 “아프다, 안 아프다” 둘 중 하나만 결정해 주니까, 그래서 지금의 명성을 얻은 거라고. 

…고통을 없애는 데도 천재적이지만, 고통을 가하는데도 천재적이라고 해요. 정성주에게 밉보인 사람들 중엔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다 죽은 사람들, 고통이 너무 심해서 자살한 사람들 얘기가 많아요. 정성주 병원에서 몇 년동안 행패를 부리던 진상 패거리들이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신장이 썩어 들어가는 병에 걸려서 온 몸이 새까맣게 변해 죽었다는 얘기도 있고, 불합리한 행정 처분으로 병원을 괴롭혔던 어떤 관청 직원은 극심한 어지럼증과 구토증으로 아무것도 못 먹다 말라 비틀어져 죽었다는 얘기도 있고…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정성주 관련한 소문들이 다 그런 식이에요. 신화에 나오는 권선징악 스토리 같죠. 그런 소문들이 그를 더 신적인 존재로 만들었죠. 

…정성주는 분명 우리 측 제안에 관심이 있었어요. 정성주 측에서도 생각을 많이 해봤더라고요. 우리 제안이 왜 자신에게 이득인지, 왜 우리가 필연성을 주장하는지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거절한 이유가 더 납득이 안 되는 거죠. “내 연구가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라는 알 수 없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죠. 

…정성주도 알고 있는 거죠? 사장님이 자기 아들이란 거?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말을 꺼내지 않았어요. 

브로디는 협상을 위해 혈연 관계를 내세우고 싶지 않았다. 정성주와의 혈연 관계는 5년 전 끝났다. 브로디는 그와 건설적인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자 했다. 그는 정성주와의 협상에 분명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정성주는 서양의 제약사들이 당근과 채찍으로 자신을 길들이려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버크 오거닉스가 그들과 다른 종류의 회사라는 사실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브로디가 아일린의 통해 전달한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브로디가 제안한 명분도, 상호 호혜적 이득도, 미래에 대한 청사진도, 모두 싫다고 했다. 

브로디는 협상 결렬을 예상하고 있었다. 브로디는 왠지 정성주의 심리를 이해할 것 같았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 어떤 수를 둘지 알 것 같았다. 

브로디는 정성주의 다이어트 약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라지 않았다. 그런 건 이미 오래 전에 개발했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브로디가 놀란 건 그걸 상용화 한 거였다. 그걸 상품으로 만들어 외국 제약사에 팔기로 했다는 거였다. 그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동참할 인간이 아니었다. 가족이 생기고 상황이 달라졌어도 인간의 DNA는 바뀌지 않는다. 70년 동안 유지된 사고 방식이 바뀔 리 없었다. 

브로디는 아일랜드 정부의 계획을 신뢰할 수 없었다. 아일랜드에는 MI6 같은 정보국도, SAS 같은 특수부대도 없다. 제약업에 관심 있는 나라는 지금 모두 정성주가 가진 것에 눈독 들이고 있을 것이다. 아일랜드는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했다. 아일랜드가 그런 경쟁에서 이겨 본 역사가 있을까? 

브로디에겐 대안이 있었다. 대런 월시. 브로디는 대런을 아일린과 다른 비행기로 중국에 보냈다. 다른 날짜 다른 공항을 통해 정성주의 병원으로 보냈다. 아일린이 돌아 가고 한달 뒤, 대런은 정성주의 병원에 잠입했다. 거기서 대런은 정성주의 파일을 가져올 것이다. 어쩌면 이미 다른 경쟁자들이 먼저 파일에 손 댔을지 모른다. 정성주의 파일을 입수하고 싶은 이들은 많을 것이다. 어쩌면 대기표를 뽑고 기다렸을지 모른다. 대런은 백예순한번째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관 없다. 정성주 파일은 손에 넣는다고 읽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브로디는 정성주의 사업에 대해 생각했다. 사업가로서 정성주의 사업 모델을 생각해 보았다. 그의 의술은 밥벌이를 위한 게 아니었다. 그는 특이하게도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 아니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호기심이었다. 그는 인간의 운명을 알게 된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게 시시해진 그는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게 더 재밌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게 다른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였다. 자본 없이 돌아가는, 호기심을 동력으로 돌아가는 사업. 자기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매출도, 지출도, 현금 흐름도 없이 돌아가는 사업. 광적인 호기심과 믿음만으로 수십년 동안 번창한 사업. 그리고 이제는, 세상의 도움 없이, 세상을 지배할지 모를 사업. 

작품 등록일 : 2026-03-14
최종 수정일 :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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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ody’s files #16

크으 정성주 얘기 넘 재밌어 앞으로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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