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일리 교수는 사회학자였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쳤다. 사회학자로 25년을 살아 왔지만 그는 생물학에 관심이 많았다. 자신을 운명론자라고 했다. 인간과 사회의 운명을 결정 짓는 것은 사람의 생물학적 유산이라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 교사 시절 지도했던 남학생 하나를 알고 있었다. 남학생의 아버지는 충동성 장애가 있었다. 3건의 폭행과 1건의 살인으로 결혼 후 대부분의 인생을 교도소에서 살았고 가족은 피폐한 삶을 살았다. 남학생은 오라일리에게 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오라일리는 학생을 문제아 반에서 꺼내 공부하는 법을 가르쳤다. 학생이 사범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심리 상담사를 붙여 충동성 치료를 받게 했다. 학생은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로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결혼해서 3명의 자녀를 낳았고 나이 40세에 검찰에 기소됐다. 3건의 강간과 1건의 살인 혐의였다. 영구 미제 사건이 될 뻔 했으나 브로디의 집요한 추적으로 꼬리가 잡혔다.
동물은 식물과 참 다르다는 생각을 했죠. 식물은 정성을 들이면 그만큼 자라거든요. 하지만 동물은 아무리 해도 원래대로 돌아가더군요.
오라일리 교수는 원예에 취미가 있었다. 원래 잔디밭이었던 자기 집 마당을 뒤엎고 수십종의 나무와 꽃을 심었다. 그의 집 마당엔 사시사철 꽃이 핀다고 했다. 그는 식물의 환경 적응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식물은 동물보다 훨씬 다양하고 유연한 변이를 일으킨다. 동물의 학습 능력보다 식물의 변이가 환경 적응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종species이란 DNA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한 울타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은 북극에 사나 적도에 사나 원래 캐릭터가 바뀌지 않는데, 단세포 동물들과 박테리아, 곰팡이, 균류들은 환경에 따라 캐릭터가 뒤바뀝니다. 심지어 다른 개체로부터 DNA를 넘겨 받아 완전히 다른 개체가 되기도 하니까 말이죠. 종이라는 개념이 없는 겁니다. DNA의 지배를 받지 않는 거죠.
오라일리 교수는 브로디가 대학에서 명예 학위를 받도록 한 장본인이었다. 브로디는 학위 수여가 쓸데없는 짓이라 여겼으나 왠지 오라일리의 말투가 마음에 들어 제안을 받아 들였다.
이렇게 하면 된다, 저렇게 하면 된다, 이론적으론 다 맞는 말이죠. 근데 안 한단 말이죠. 아무리 잘 알아도 안 해요. 아무리 세뇌에 가까운 반복 교육을 받아도 안 해요. 왜 안하겠어요. 그런 유전자를 타고 났으니까. 세상을 오래 살수록 머리로 아는 건 쓸모가 없더라고요. 머리로 아는 건 머리로 아는 것일 뿐이고, 실제 운명을 결정짓는 건 몸뚱이고 DNA란 말이죠. 누굴 만나든, 어떤 환경에 처하든, 무얼 배우고 경험하든, 할 사람은 하고, 안 할 사람은 안 한단 말이죠. 아무리 머리로 타이르고 명령하고 가르쳐도 말이죠. 타고난 DNA 때문에.
인간은 DNA라는 “기생충”의 지배를 받는다는 게 제 운명론입니다. 그게 인간이 미생물들과 다른 점이죠. 일종의 아이러니 아니겠습니까? 인간은 타고난 운명이 있는데, 박테리아나 곰팡이는 그런 게 없다는 거.
오라일리 교수는 인간마다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는 누구의 운명도 점치지 못했다. 정성주는 운명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의 운명을 점칠 수 있었다. 브로디는 둘이 어떻게 다른지 알 것 같았다. 오라일리 교수는 문명론자, 정성주는 자연주의자였다. 문명은 모든 것이 정해져 있어야 속 편하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오라일리 교수는 기업의 로비 활동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기업의 기본적 존재 이유는 물건을 파는 것인데, 물건을 팔려면 유통을 해야 하거든요. 이때 필요한 것이 폭력이었단 말이죠. 유통을 하려면 땅 위를 지나가야 하니까 그 땅에 지배력을 가진 토착 세력과 부딪칠 수 밖에 없었죠.
팜플러스가 왜 농작물을 팔게 됐는지 아세요? 창업주 로리 맥닐리는 원래 육류 사업을 하려고 했어요. 육류가 마진이 높으니까. 그래서 루콘 지방 도축 시장에 가서 협상을 했는데, 잘 안 되니까 애들을 보낸 거에요. 데리고 있던 깡패들을. 그때만 해도 맥닐리는 도축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몰랐죠.
그 사람들 매일매일 온 몸에 피를 뒤집어 쓰고 사는 사람들이에요. 하루종일 생명을 죽이고 고기를 절단하다 보면 그런 원초적인 감각이 없어져요. 죽음이나 고통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말이죠. 깡패들이 와서 하도 깽판을 치니까 도축장 주인 중 한 명이 소뼈 자르는 칼로 깡패들 어깨를 쪼개 놓은 거에요. 하마터면 상반신이 세로로 두동강 날 정도로 엄청난 상처였다는데, 그 뒤로 아무도 도축장에 가지 않게 된 거죠.
그래서 맥닐리는 농작물을 팔기로 한 거에요. 아무래도 식물 기르는 사람들은 고기 자르는 사람들보다 양순하니까... 맥닐리는 그때 생산망과 유통망을 장악할 때 이용했던 폭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요. 로비스트라는 이름으로.
팜플러스의 로비 형태를 보고 있으면 굉장히 뭐랄까 원초적이랄까, 단도직입적이죠. 그 사람들이 고용하고 있는 로비스트들 중에 번호가 붙은 이들이 있거든요, 축구 선수 등번호처럼. 이 사람들이 청부 업자들이에요. 주로 사업에 방해가 되는 토착 세력들과 '협상'을 하는 거죠. "49번이 핀글라스 땅 주인이랑 축구 좀 하고 와" 이렇게 되는 거죠.
맥닐리는 분명 그때 도축 업자들에게 배운 게 많았을 거에요. 짖는 개는 아무도 무서워 하지 않는다는 거죠. 짖지 않고 곧바로 숨통을 물어 뜯는 개가 무섭다는 거죠.
맥닐리는 동네 깡패가 아니라 프로를 고용하고 있어요. 맥닐리가 부리는 로비스트들은 대부분 무국적자들입니다. 등록된 신분이 없어요. 국가에서 보기엔 유령이나 다름 없죠.
사람이 살다 보면 언젠가는 한번쯤 저 사람 좀 누가 죽여줬으면 좋겠다 생각할 때가 있는데… 특히 사업을 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더더욱 절박해지죠. 제발 누구 좀 죽어줬으면, 쟤 하나만 죽으면 모든 게 일사천리인데, 이런 생각 안 해본 사업자 아마 없을 겁니다.
맥닐리는 그걸 실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희생자도, 경찰도, 국가도, 맥닐리 본인도,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가 홀연히 나타나 죽어 줘야 할 사람을 죽이고 사라지는… 참으로 편리한 능력을 가진 거죠.
이런 로비 활동은... 유럽 각국의 거대 기업과 자본가들이 아주 오래 애용해 온 사업 방식입니다. 자주 쓰지 않아서 그렇지, 10년에 한두번 쯤 꼭 필요할 때가 있거든요. 이게 꽤 오래된 전통이에요. 16세기 유럽 상인들이 거대 자본을 모으면서 여러 사람들과 이해 관계가 복잡해지니까 문제를 쉽게 해결할 방법을 찾은 거죠.
오라일리 교수는 팜플러스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한때 동업이라도 했던 것처럼.
팜플러스는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타협과 공생이 아니라 독점과 안정을 위한 기업으로 사는 거죠. 그게 팜플러스에 DNA니까. 그리고 창업주의 DNA이기도 하고.
브로디에겐 한때 좋은 물건을 만들면 저절로 장사가 되는 줄 알았던 시기가 있었다. 안정적인 생산 환경을 구축하고 지속적으로 양질의 제품을 만들면 영원히 사업이 유지되는 줄 알던 때가 있었다. 그런 사업은 직접 알고 지내는 동네 사람들 상대로 장사 할 때 유효했다. 일면식도 없는 수백 수천만명의 인구를 상대로 사업을 하기 시작하면 "생산"의 문제에서 벗어나 "정치"의 문제로 비화된다.
팜플러스는 애당초 "정치"로 사업 기반을 닦은 기업이었다. 처음부터 스스로 생산하는 건 없었다. 창업주 로리 맥닐리는 사채업으로 모은 자본을 유통에 투자했고, 유통업으로 모은 자본을 "정치"에 투자했다. 그 “정치”가 버크 오거닉스의 목을 조른 것이다.
브로디에게 돌파구를 제안한 사람이 오라일리 교수였다. 브로디가 국회에서 "식량 품종 개발 지원을 위한 입법안"에 참고인으로 불려왔을 때였다. 브로디는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오라일리 교수와 국회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버크 씨는 집에서 먹는 주식이 뭔가요?
예?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식량을 생산하는 사람은 집에서 뭘 먹나 다들 궁금해하지 않나요?
감자 먹는데요.
그냥 감자?
개량 품종인데… 매킨토시 블랙이라는 품종에 가까울 겁니다.
뭐가 다르죠?
색이 다르죠. 검은색, 남색, 빨간색, 노란색, 주황색... 7가지 정도 됩니다.
영양소도 다 다르겠네요?
그렇죠.
시장에 내다 팔 먹거리 품종이 무궁무진 하겠죠? 버크 오거닉스에는?
종류가 많은 건 사실입니다.
그 신문 기사... "먹고 살아야 가능하다"는 인터뷰 기사 봤습니다.
오래 전 아닌가요?
전 그 기사를 보고 생각했어요. 버크 씨가 아일랜드의 미래라고.
예?
국가의 기원은 농업입니다. 애당초 식량 공급원을 장악한 집단이 있었기에 국가가 가능했던 거죠. 기사 내용을 보니 버크 씨는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 같더군요. 생산하는 사람이 보상을 받는 시스템.
...
사회가 복잡다단해지다보면 그게 안 된 채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아요. 팜플러스가 그 예죠.
....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가장 막강한 폭력 조직은 정부입니다. 버크 오거닉스도 그렇지만, 팜플러스 로비스트들 때문에 수족이 잘려나간 기업들이 많아요. 로비스트 친구들이 아무리 설치고 다녀도 정부에서 한번 마음 먹으면 하루 이틀만에 존재를 뿌리 뽑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아일랜드 정부에서는 팜플러스 로비스트의 신원을 다 파악하고 있어요. 그들에 의해 실종된 희생자들도.
...
전 뭐든 기원을 따지는 사람입니다. 사람에게는 DNA라는 기원이 있어서 그걸 알면 그 사람이 나중에 어떻게 죽을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 스스로를 50%의 운명론자라고 하지요. 아무리 적어도 50%는 맞힐 수 있거든요.
하고 싶으신 말씀이...
우리 당에서는 전략적 미래를 찾고 있어요. 누구도 감히 어쩌지 못할 막강한 힘을 가진 미래... 미국은 그걸 원자폭탄으로 봤죠.
...
저희는 그걸 감자로 보고 있습니다. 대기근의 유산이랄까. 아일랜드의 전략적 미래는 핵무기가 아니라 식량이라는 거죠. 핵무기가 없어서 아쉬울 사람은 미국 러시아 대통령 밖에 없겠죠. 하지만 식량이 없으면 모두가 아쉽죠. 왜냐하면 죽으니까.
...
저희는 버크 오거닉스의 성과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미래가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죠. 전유럽을 지배할 미래.
저한테 원하시는 것이...
정성주에 대한 얘기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엔 거대 자본 제약업이 없지만 대신 버크 씨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
어차피 정성주의 파일은 다른 이가 입수해도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저희가 그걸 갖다 드리면 그걸 국가의 미래를 위해 써 주실 수 있나요?
…
지금 답변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가 그 파일을 손에 넣은 뒤에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게 사실...
물론 다른 계획도 갖고 계시겠죠. 정권은 바뀌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정권이 골백번 바뀌어도 과학의 진보는 퇴보하지 않습니다. 지금 정권의 미래와 상관없이 버크 씨가 남긴 유산은 아일랜드 땅에 남을 겁니다. 버크 씨는 회사의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이고, 우리는 당의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이지만, 둘의 이해 관계는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희가 파일을 손에 넣은 뒤에 말씀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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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디가 콤 메이시라는 작가를 알게 된 건 오라일리 교수 때문이었다. 오라일리 교수는 브로디에게 책을 많이 선물했는데 대부분 오라일리 소유의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들이었다. 오라일리 교수는 콤 메이시가 브로디와 통하는 데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가 처음 브로디에게 선물한 콤 메이시의 책은 "지속 가능한 경제, 그 참혹한 거짓말"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자연에는 한계 비율이 있다. 일정 면적의 땅이 지탱할 수 있는 생명체 수에는 한계가 있다. 식물은 한계 수 이상 싹을 틔우지 않으며, 한계 수를 넘어선 동물 개체는 도태된다. 동물은 자연의 한계 비율에 대한 직감을 갖고 있어서 과잉 잉태된 수정란을 유산시키거나, 태어난 새끼를 죽인다. 자연 생명체는 언제나 자연의 한계 비율 내에서 다른 종들과 경쟁한다.
.............자연의 한계 비율을 무너뜨린 것이 인간의 경제다. 농경작을 하고 저수지를 만들고 농약과 비료를 써서 인간은 자연의 한계 비율을 넘어섰다. 농업을 통해 인간은 자연이 허락한 것보다 더 많은 개체 수를 낳았고, 그 위에 경제 시스템을 만들었다.
.............아일랜드 대기근은 인간의 경제 시스템이 무너질 때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현상 중 하나였다. 주식이었던 럼퍼 감자가 병충해로 멸종하자 아일랜드는 지옥이 되었다. 당장에 먹을 것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산으로 강으로 나가 입에 쑤셔 넣을 것을 찾았다. 산 속의 식용 가능한 모든 풀들이 뽑혀져 나갔고 나무 껍질이 하얗게 벗겨졌다. 강에는 사람들이 휘저어 놓은 검은 흙탕물만 남았고 물고기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흙탕물을 들이켜야 했다. 경제가 사라지고 자연의 한계 비율로 돌아가자, 한정된 땅 위에 과잉 생산되었던 인간들이 한꺼번에 종말을 맞았다.
.............아일랜드 대기근은 인간 경제 활동의 결과이기도 했다. 당시 아일랜드엔 병충해의 영향을 받지 않은 농작물들이 있었다. 이 농작물들을 기아에 허덕이던 지역에 팔았으면 아일랜드는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농작물들은 영국으로 수출되었다. 아일랜드 인구의 절반이 굶주림과 약탈과 질병으로 죽어 가는 중에 아일랜드의 모든 잉여 생산물은 영국으로 향했다. 아일랜드의 잉여 농작물은 대영제국 경제 시스템의 일부였다. 정해진 양의 농산물을 정해진 시점에 시장에 내다 판다는 경제 계약은 300만명의 목숨보다 소중했다.
.............자연의 한계 비율을 대신한 경제는 인류 역사를 지배해 왔다. 사람들은 인류 역사의 흐름을 지도자의 인품에서 찾는다. 지도자만 잘 선출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을 한다. 하지만 지도자가 인간의 경제 시스템을 뒤바꾼 경우는 없었다. 지도자도, 전쟁도, 혁명도, 대기근도, 대재앙도, 인간의 경제 시스템을 바꾼 적은 없었다. 그런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농경으로 시작된, 잉여 농산물에 의한 인간의 경제 시스템은 1만년 이상 변함없이 유지되며 세계 어디나 인간의 사회 문화 정치 패턴을 동일하게 고착시켰다.
.............로마 시대의 노예 경제는, 노예 제도가 철폐된 19세기와 20세기에도 합법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인간을 사고 팔 수 없다고 노예 경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값싼 노동력은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존재한다. 자연이 허락한 것보다 더 많은 잉여 개체를 낳았기 때문이다.
.............19세기 영국은 미성년자를 노예 경제 체제의 연료로 사용했다. 저소득층 가정은 아이가 5살이 되면 푼돈을 받고 아이를 공장에 팔았다. 공장에 모인 아이들은 매일 아침 돼지죽 한접시를 먹고 광산으로, 굴뚝으로, 용광로로,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이들은 모두 예외없이 하루 12시간 넘게 일을 했으며 일요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 대부분은 영양실조와 과로와 폐질환으로 16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당시 스패너 연장 하나 가격이 현재 화폐 기준으로 60파운드 정도였다. 당시 영국의 10살짜리 노동자가 받는 주급이 현재 화폐 기준으로 30파운드 정도였다. 인간의 경제 시스템에 따르면 인간은 스패너보다 저렴했다. 그리고 스패너보다 더 많은 일을 시킬 수 있었다. 스패너는 다시 사는데 비용이 들지만 인간은 언제나 넘치도록 수급 가능하다는 것이 경제 시스템의 요점이었다.
.............인류는 과거의 희생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넘치도록 수급이 가능하다"는 경제 시스템의 요점은 법을 쉽게 무력화 시켰다. 20세기에도 노예 산업은 유럽 어느 나라에나 만연해 있으며, 자국민을 수급하기 어려울 경우 언제든 제3세계 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 식민지 시대의 무법 경제는 20세기에 들어 고도로 정교화 되었고, 오늘날엔 식민지 시대보다 훨씬 더 많은 인구가 반인권적 노예 계약에 의해 부려지고 있다.
.............인간에 의해 키워지는 가축들로 관심을 돌리면 문제는 더 생생해진다. 매년 영국에서만 1억마리 가까운 닭이 도살되는데, 닭을 도살하는 법에 대해선 특별한 규제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가장 돈이 적게 드는 방법이 쓰인다. 예산이 풍족한 경우, 닭을 컨베이어 벨트에 거꾸로 매달아 머리를 절삭기에 통과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예산이 부족한 경우, 양계장의 인부들이 일일이 닭의 머리를 밟아 죽이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 경우 추가 설비나 인력에 대한 비용이 들지 않지만 닭이 부서진 머리를 달고 달아나는 불쾌한 광경을 자주 보게 된다.
.............동물의 죽음은 어차피 정해진 것이니 어떻게 죽이든 상관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1억마리의 생명 대부분이 1년 이상의 일생을 손바닥만한 감금 시설 내에서 보낸다는 것은 명백한 잔혹행위다. "동물"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움직이며 사는 생명체"다. 동물 존재의 핵심은 움직인다는 것이다. 동물은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할 때보다 움직이지 못할 때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동물은 굶어 죽거나 다른 사망 가능성이 더 높을 때도 본능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택한다. 인간도 다르지 않다. 먹을 것이 풍족하게 공급되는 감금장치에서 평생을 사느니 생존 가능성이 0%나 마찬가지인 사막으로 도망가 자유롭게 죽는 것을 택한다. 동물을 감금해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동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말살하는 것이며, 동물에게 가능한 최대한의 고통을 가하는 것이다.
.............인간에 의해 키워지는 동물들 대부분은 일생을 지옥 같은 고통을 받으며 살다 도살된다. 그래야 경제적 수지타산이 맞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마리에 5파운드도 되지 않는 비용으로 닭을 먹을 수 있는 이유는 이런 극단적 잔혹 행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수지타산을 위해 인간이 다른 동물 종에게 가하는 범죄 행위는 이미 인간이 문학 작품에서 묘사한 지옥의 참혹함을 한참 넘어섰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시작된 경제는, 이제 인류의 목적이 되었다. 현대 인류는 생존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경제를 위해 산다. 개체의 생존 도구였던 DNA가 생존의 목적이 된 것과 다르지 않다. 경제는 현대 인류의 DNA다.
.............인간 경제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이것이 자연의 한계 비율을 파괴해야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인간 경제는 태생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원리에 기반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경제"란 "하얗게 빛나는 검은색"과 다를 것이 없는 모순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