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s files #15
외국어에 대한 조예가 깊어지면 차이점이 아닌 공통점에 눈 뜨게 된다. 특히 유럽인들이 이웃나라 언어를 배울 때는 더욱 그러한데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모든 유럽 언어가 인도유럽어라는 조상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외국어와 모국어의 공통점을 인식하기 시작하면 언어에 대한 이해가 시작된다. 외국어에 능통해진다는 것은 이 언어로 말할 때나 저 언어로 말할 때나 같은 심정이라는 걸 깨달았음을 의미한다. 세월이 흐르고, 사는 곳이 멀어져, 지금 서로 다른 언어를 쓰지만, 원래 모두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언어로 말했다는 사실을 이해했음을 의미한다.

브로디는 심문실에 살인 용의자를 앞에 두고 있었다. 용의자를 바라보며 브로디는 생각했다. 이 사람과 자신은 1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어느 현생 인류의 조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용의자 배 속에 기생하는 회충과 인간은 8억년 전 지구에 출현했던 어느 원생 동물의 서로 다른 자손이라는 사실을.

브로디는 어릴 때 식탁 위를 날아다니던 파리로부터 인간의 냄새를 맡았을 때를 기억했다. 브로디는 그때 느낀 당혹감이 DNA에 대한 첫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생명체의 본질은 DNA이고, DNA는 생명체 간의 공통점이다. 지구상에 최초로 등장한 어느 생명체로부터 시작된 30억년 역사의 가장 무자비하고 간결한 기록이다.

브로디는 “아일랜드 인”이라는 집단의 DNA 냄새를 맡았다. 지금껏 브로디가 만난 범죄자들과, 경찰들, 그리고 다른 모든 아일랜드 인들. 이들은 모두 5천년 전 지금의 프랑스 북부 해안에서 건너온 한 줌 이주민의 자손들이었다. 브로디가 지금껏 맡았던, 서로 다르다 생각했던 세상의 냄새는 거짓이었다. 너와 나의 다른 점은, 다른 점이 아니라, 변질된 공통점이었으며, 세월과 장소에 의해 누적된 시간의 흐름임을 알게 되었다.

용의자 개빈 번은 은퇴한 사업가였다. 그는 연쇄 살인범이었다. 연쇄 살인범들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폭력성이나 중독성의 냄새는 개빈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순수하게 필요에 의해 살인을 했다. 그는 금전적 목적으로 사람들을 죽였다. 지난 10년 간 운영해 온 그의 사업은 살인으로 유지되었다.

그는 끔찍한 부성애의 남자였다. 그는 아들을 원했다. 첫번째 부인 사이에서 아들이 생기지 않자 지역 신문에 "아들 낳아 줄 여자를 찾는다"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수 차례의 외도를 통해 그는 아들 2명을 얻었고 사업으로도 성공했다. 그는 드럼린 지방의 담배 농장주였다. 담배의 원료가 되는 오토포라 종 재배에 관한 특허를 획득해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도시민이 되고 싶었다. 도시에서 교육 받고 유명 학벌을 따고 교양있고 세련된 상류층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그는 자신이 시골에 뼈를 묻을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다. 시골에 태어난 건 불운이었고 조물주의 실수였으니 자신은 도시에 가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인생을 새로 시작하기엔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생각한 그는 “대리 만족”을 계획했다. 딸은 결혼하면 다른 집안의 일부가 되지만 아들은 자신을 "대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개빈은 땅을 팔고 조강지처와 이혼했다. 2명의 아들을 명문대에 보내고 6자리 연봉의 도시 전문직 종사자로 만들기 위해. 하지만 아들들은 아버지와 생각이 달랐다. 자신들은 아버지를 대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들은 결혼 뒤 아버지와 인연을 끊었다. 도시 배우자와 화목을 도모하기 위해선 무지렁이 농촌 부모를 멀리해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었지만, 본인 욕심으로 배다른 형제를 낳은 아버지의 무분별함에 대한 반감이 뿌리 깊었다. 

개빈은 배신감에 몸서리 쳤다. 그에겐 그를 결코 배신하지 않을 착한 딸들이 있었지만 개빈은 그들을 자식 취급 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이에게 인생을 기대지 않기로 했다. 자신의 힘으로 도시 상류층이 되기로 했다. 아들들이 감히 무시할 수 없는 부자가 돼 아들들에게 복수하기로 했다. 그는 빠르게 부자가 되는 법을 찾았다. 

사업 기반을 대부분 팔아 치워 재기가 어려워 보였지만, 개빈은 이런 상황에 대비했던 것처럼 보였다. 빈 깡통에 불과한 사업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해 투자 회사를 차리고 사람들에게 돈을 투자 받았다. 점차 더 많은 돈을 투자 받아 점점 더 많은 돈을 갚지 않는 피라미드 금융 사기였으나 한가지 다른 점은 투자자를 착한 사람들로만 골랐다는 점이었다.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은 은행 신용도가 높았다. 그래서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거절할 줄도, 의심할 줄도 몰랐다. 개빈은 이들의 수호 천사 역을 자처했다. 착한 이들의 노후를 풍족하게 만들어 줄, 그들의 자식들에게 더 많은 유산을 물려 줄, 마음씨 고운 은인 행세를 했다. 사람들은 집을 담보로, 자식 재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아낌없이 개빈의 사업에 투자했다. 

개빈은 투자가 목표액을 달성할 때마다, 혹은 투자자들의 신용 한도가 임계점에 도달할 때마다 회사를 파산시켰다. 그런 뒤 투자자들에게 눈물의 사죄 편지를 쓰고 잠적했다. 그리고 다른 곳에 다른 사업체를 차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많은 투자자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가끔은 개빈에게 항의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개빈의 투자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종적을 감췄다. 개빈은 이들이 불법 투자에 대한 거액의 보상을 받고 처벌 받지 않기 위해 잠적한 것으로 위장했다.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의 인생을 털어 개빈은 더블린 시내에 빌딩을 매입했다. 그는 빌딩 입대업으로, 사채업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마침내 아들들에게 복수할 위치에 올랐다고 생각했다. 

아들 때문에 시작한 사업은 아이러니 하게도 아들 때문에 몰락했다. 영국계 금융회사에 다니던 큰 아들은 아버지의 사업에, 용인하기 어려운 수준의 회계 부정이 있음을 간파했고, 이를 금융 당국에 신고했다. 당국은 개빈의 사업이 그간 수백 건의 금융 사기로 승승장구해 왔다는 사실을 인지했고, 개빈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개빈이, 금융 범죄 외에도, 십수 건의 실종 사건과 관련됐다는 사실이 밝혀진 건 브로디 때문이었다. 개빈의 사업과 관련해 실종된 사람들은 9명이었고, 대부분 잠적 혹은 자살로 위장됐으나 브로디가 사건에 개입한 뒤 이야기가 달라졌다.

브로디는 장기 미제 사건이 된 에스커 주택가의 화재 사망 사건에서 변종 오토포라의 냄새를 맡았다. 사망자는 개빈의 동거녀였다. 그의 투자 고객이었던 사람의 아내였다. 그녀는 남편이 사망한 뒤 개빈에게 의지하고 살았는데, 사망한 남편 역시 개빈의 손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을 개빈에게 살해될 때까지 몰랐다. 

개빈은 인자한 얼굴의 작고 평범한 노인이었다. 사회 생활이나 대인 관계에 문제가 없었고, 정신적 혹은 물질적 결핍을 경험한 적도 없었다. 그에겐 과한 충동성을 일으키는 유전자도, 공격성이나 반골 기질을 나타내는 신경 세포와 호르몬의 흔적도 없었다. 아일랜드 역사상 가장 비열한 연쇄 살인마 중 하나로 기록된 개빈 번은, 유전적으로, 평범한 이웃 노인이었다. 

브로디는 동물의 기원에 대해 생각했다. 30억년 전 처음 지구에 탄생한 최초의 동물 세포와 지금 눈 앞에 앉아 있는 개빈 번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욕구를 느끼고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움직이는 방식은 동물이 지난 수십억년간 공유해 온 DNA의 본질이다. 18세기 제임스 와트의 증기 기관차와 21세기 가솔린 스포츠카는 둘 다 “불을 때워 구동 기관을 돌리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1만년 뒤 미래 인류가 증기 기관차와 페라리를 같은 종의 기계로 구분할 것처럼, 개빈 번도, 늑대도, 상어도, 거미도, 아메바도, 10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의 지적 생명체의 관점에서 모두 동일한 종으로 분류될 것이다. “사욕을 위해 다른 생명을 희생시키는 원리로 작동하는 생명체”라는 점에서. 

브로디는 나무가 되는 법을 생각했다. 나무는 동물 진화의 무모한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1억 2천만년을 살았다. 눈 앞의 욕망에 하염없이 고통받고 도태되고 변화하는 동물들을 바라보며 나무는 오랜 세월 조금씩 천천히 가지를 뻗었다. 

지난 3년 간, 범죄자들을 만나며, 그들의 냄새를 맡으며, 브로디는 나무가 되는 법을 생각했다. 동물의 고통은 태생적 운명이라는 사실에, 세상엔 선도 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 모든 것이 인간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지어낸 거짓말이라는 사실에 브로디는, 동물의 삶으로부터 멀어져, 나무의 삶에 동경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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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시청에서의 마지막 날, 브로디는 경시청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원래 순금으로 된 경찰 배지를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예산이 부족했다고 했다. 대신 순”동”으로 만든 감사패와 배지를 받았다.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지만, 브로디는 더블린 경시청의 명예 수사관으로 위임되었다. 

더블린 경시청의 좁은 건물 복도에서 열린 브로디의 조촐한 “퇴임식”에는 그의 그동안 노고에 감사하기 위한 많은 선물들이 와 있었다. 브로디의 눈길을 끈 것은 뺑소니 살인 희생자의 어머니가 만들어 준 선물이었다. 무릎 담요였다.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던 20대 남성을 고의로 치어 죽인 사건이었다. 사고를 낸 차에는 번호판이 없었다. 남자를 치고 지나간 차는 급정거 후 전속력 후진, 쓰러진 남자를 깔아 뭉갰고, 피해자는 몸이 박살났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3일만에 경추 골절에 의한 호흡 곤란으로 사망. 

범행에 쓰인 차가 불 탄 채로 발견되는 바람에 영구 미제 사건이 될 뻔 했으나 브로디는 타이어 자국에 남은 냄새로 차의 과거와 범인의 행적을 추적할 수 있었다. 

범인은 화풀이를 한 것이었다. 여자와 헤어지고, 직장에서 잘린 뒤에, 충동 투자로 가진 돈을 모두 잃자, 세상에 화풀이를 하기 위해 차를 몰고 나가 살인을 저지른 것이었다. 사건 발생 일주일만에 용의자는 체포했고, 용의자는 수갑을 찬 채 도망가다 차에 치어 죽었다.

희생자 어머니가 직접 짠 무릎 담요에는 브로디로 보이는 남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남자는 한 손엔 밀을, 다른 한 손엔 벼락을 들고 있었다. 그림 밑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아들이 꿈에 나왔습니다. 이제 마음이 편해졌다고 하네요. 감사합니다.” 

작품 등록일 : 2026-03-13

▶ Brody’s files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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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어보면서 마음가짐을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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