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렉 존스 기자와의 인터뷰는 런던의 호텔 미팅룸에서 진행됐다. 첫 인터뷰 후 1년만이었다. 존스 기자는 미팅룸에 한시간 먼저 와 있었다. 그는 전날 있었던 컨퍼런스 녹화 영상을 돌려 보고 있었다.
…이 금고의 문을 연 사람이 프리츠 하버였습니다. 독일인이었고, 유태인이었고, 대머리였습니다. (청중 웃음)
…프리츠 하버는 독일의 바스프BASF 연구원이었던 칼 보슈와 함께 질소와 수소 기체를 반응시켜 암모니아를 대량 생산하는 법을 산업화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리츠 하버가 먼저 기술을 개발해 놓은 걸 칼 보슈가 공장 대량 생산 가능하도록 만든 거죠. 이게 하버-보슈 공법이라 불리는 이 암모니아 생산법, 인류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기술이었습니다.
…전기, 석유, 내연 기관, 의료 기술… 모두 획기적인 기술이었지만 인구 수는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 이 차트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인류의 개체수는 하버-보슈 공법이 도입되고 수직 상승합니다. 원래 15억 언저리에서 지지부진하던 인구수가 하버-보슈 공법 이후로 단숨에 80억까지 치솟은 거죠.
…프리츠 하버는 1918년 노벨상을 받습니다. “공기로 빵을 만드는 기적”을 행한 그는 애국자였습니다. 나치 독일에게 하버-보슈 공정은 무한한 인명을 살상할 마법의 자원이었습니다. 화약도 비료와 같은 성분으로 만들어집니다. 질산 나트륨, 질산 칼륨, 질산 암모늄 등의 질소 화합물이죠. 하버-보슈 공법 전에는 화약을 만들기 위해 새똥을 갖다 썼죠. 당시엔 그게 유일하게 대량 취득 가능한 질소 화합물이었으니까. 1차 대전 발발 후 독일은 새똥 수입이 중단됐음에도 가공할 양의 폭약을 생산해 전유럽을 공포로 몰아 넣었습니다. 하버는 자신의 기술이 독일 군사력의 주축이 된 것을 몹시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대머리는… (청중 웃음)
…1차대전 중 독가스 무기를 개발했고, 독가스로부터 독일군을 보호하기 위한 방독면도 개발했습니다. 하버는 총 8종의 독가스 무기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 염소 가스chlorine는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을 학살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첫번째 아내 클라라가 그의 눈 앞에서 권총 자살을 했음에도 하버는 계속 화학 무기 개발에 열을 올렸습니다. 민족이 아닌 국가를 선택한 거죠. 그리고 나치 정권이 득세하자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모든 지위를 박탈 당하고, 평생 충성했던 조국으로부터 도망쳐야 했죠. 가족들은 영국으로 피신시키고 유럽을 떠돌다 굶어 죽게 되자, 민족의 고향 이스라엘로 일자리를 찾아 가던 중 고질병으로 사망합니다.
미팅룸에 브로디가 들어왔다. 둘은 반갑게 웃으며 악수했다. 존스 기자에게서 냄새 제거제 냄새가 났다. 브로디는 존스 기자가 자신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생활을 공유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브로디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함인지는 알 수 없었다.
비행기를 타고 오셨다고요.
예.
비행기는 불편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신경안정제 먹으면 괜찮습니다.
컨퍼런스는 어떠셨습니까?
생각보다 규모가 크더라고요.
사람들 반응은 어땠습니까?
얼굴 맞댄 자리에선 좋게 이야기하겠죠.
잘 이해하던가요?
예… 그렇다고 어떤 결정을 내릴 지는 아직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 인터뷰를 하는 이유는 알고 계시겠죠. 라나-아이먼 농법에 대한 기사를 쓰려는 겁니다. 저는 잘 알고 있지만, 해당 기술을 개발한 본인 버전의 이야기가 필요해서요. 간략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내용은 사전에 이메일을 통해 조율돼 있었다. 브로디도 언론 보도의 중요성을 잘 알았다. 그동안 PR 부서도 만들고 인터뷰 준비도 열심히 했다. 하지만 막상 실제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는, 언제나 그랬듯,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라나-아이먼 농법은 그러니까… 곰팡이를 이용한 농법입니다. 곰팡이란 게 땅의 생태계를 지배하는… 바이오 인프라 같은 거였는데… 다 죽은 겁니다. 인간이라는 환경 변수 때문에...
지난 인터뷰의 경험으로 존스 기자는 브로디가 인터뷰에 능숙하지 않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아무 문제 없다는 듯 브로디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정리해 확인시켜 주었다.
그래서… 여기서 핵심은 트리코데르마Trichoderma라는 곰팡이죠? 식물 뿌리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곰팡이고, 우리 일상에서도 흔하게 보는 곰팡이, 지하실 습한 곳에서도 피는 곰팡이, 근데 이 곰팡이가 식물의 수호 천사였다는 거죠? 병충해를 막고 독성 물질을 분해하고 양분 흡수를 돕는? 반대로 다른 곰팡이 종족들에겐 악마이자 폭군이었고, 다른 곰팡이들을 죽이는 독을 생산하니까.
그렇습니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트리코데르마를 이용하면,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는, 궁극의 친환경 농법을 개발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지금껏 성공하지 못한 거죠. 버크 오거닉스가 오기 전까진.
정확히 말하면, 농약을 쓰지 않는 겁니다. 비료는 선별적으로 쓰면 되고요.
그러니까 요지는 트리코데르마라는 곰팡이가…
트리코데르마 변종 곰팡이.
트리코데르마 변종 곰팡이가 화학 비료가 뿌려진 땅에서 번성한다는 거죠. 비료로부터도 양분을 취하고 작물로부터도 양분을 취하고?
실제론 비료에서 얻은 양분을 작물에 더 효과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합니다. 작물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관계죠.
트리코데르마 변종으로 라나-아이먼 농법을 개발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은데… 다른 곰팡이, 미생물들과의 경쟁에서 패퇴하는 문제가 있었다고요.
일년쯤 지나면 작물에 대한… 독점력이 약해지는 겁니다. 식물에서 양분을 취하려는 다른 미생물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거죠.
그래서 다른 곰팡이와 “결혼”시키는 거군요.
예. 곰팡이 생태계는… 자연 상태에서 독점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공생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기로 합니다.
구체적으로…
저희가 곰팡이의 생존력을 강화해도 시간이 지나면 독점력을 잃고 약해집니다. 혼자일 경우 독점력이 유지되기 어렵죠. 하지만 경쟁 종을 이식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아스페르길리우스Aspergillus 곰팡이 일종인데, 사람 몸에 기생하면 폐병을 잃으키는데 이게 식물에 기생하면 푸사리움Fusarium 같은 무서운 곰팡이들을 잡아 줍니다. 이 곰팡이를 옥수수라는 “한 집”에 넣는 거에요. 서로 맞춰가며 살도록.
예…
첫번째 곰팡이 종이 처음 6개월 동안 옥수수 뿌리를 장악하고 작물의 자원을 독점하죠. 이들 세력이 피크에 달했을 때, 두번째 종을 투입하면,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한 항생 물질을 만듭니다. 그런데 이 항생 물질들이, 이상하게도, 서로에게 결정적 타격을 주지 못하는 거에요. 이들은 서로의 항생 물질에 적응해 살고, 제3의 균류들에 치명적 타격을 주는 거죠.
무적의 항생제가 만들어지는 거군요.
저희는 의도적으로 개발했지만… 자연계엔 이런 공생-연합이 많이 존재할 겁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수천억 경우의 수에 의해 우연히 만들어지는 거죠. 문제는, 자연 상태에선, 이런 공생 연합이 인간 땅에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거에요.
그래서… 화학 물질로 오염된 환경에서 죽지 않는 곰팡이 공생 연합… 심지어 물과 양분이 거의 없는 흙에서도, 기존 작물보다 더 크고 강하고 맛 좋은 종자를 생산하는.
그렇습니다.
곰팡이의 생리를 어떻게 바꿔 놓은 건가요? 냄새의 힘인가요?
냄새를 잘 맡는 건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분자 성분을 탐지하는 기계들이 정교화 되면서… 제 코는 현장에선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기계가 버크 씨보다 냄새를 잘 맡는 거죠.
저도 일 할 때 기계 보고 데이터를 얻습니다.
하지만 기계에서 나온 데이터는 단편적이잖아요. 조각난 하나의 데이터일 뿐이잖아요.
…
버크 씨는 그렇지 않잖아요. 전체를 볼 수 있잖아요.
…
브로디는 “전체를 본다”는 의미를 생각했다. 정성주의 말이 생각났다. “나는 감기에 걸린 사람에게서 왜 그런 냄새가 나는지 알았다”고. 일반인들에겐 아무 의미없는 말이지만 브로디 입장에선 충격적인 말이었다. 감기 걸린 사람에게선 정말로 이상한 냄새가 나기 때문이었다. 분명 병에 걸린 사람 냄새인데, 병에 걸린 사람과 다른 냄새였다. 대체 왜 이런 냄새가 나는 걸까. 감기는 브로디에겐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정성주는 전체를 본 걸까? 브로디가 정성주의 파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직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일까? “생명의 진화는 공생의 결과”라는 말은 감기의 냄새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버크 씨?
예, 예.
무슨 생각하십니까?
뭔가 생각나서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회사들은 트리코데르마 기반의 항생제 개발에 실패했는데, 버크 오거닉스는 성공한 이유에 대해 알고 싶은 거거든요. 그게 정말 CEO의 후각 능력 때문인지.
능력이 업적을 이루는 거 같진 않습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남들이 하지 못한 걸 성공한 걸까요?
…
버크 씨?
절박함 아닐까요?
예?
다른 회사들은 상업적 목적이었으니까 절박함이 덜했을 거고, 저희는 호기심이었으니까 절박함이 더 했을 겁니다.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그 반대 아닌가요?
돈을 벌 생각이면 단편적인 정보에 집중하게 됩니다. 반면에 호기심에서 접근하면 전체를 보게 되죠. 게다가… 돈이 목적이면 쉽게 포기하는데, 호기심은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
호기심이 절박한 지경에 도달하는 건 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유일한 차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존스 기자는 브로디가 시인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예전보다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았다. 브로디가 사람과 식물의 유사성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이 생각났다. 다 같은 신경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거 아니냐고. 결국 동일한 목적을 달성하지 않느냐고. 처음엔 식물에 미친 사람의 과대망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분명한 근거가 있는 것 같았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그런 말이 나왔어요. 제2의 하버-보슈 공법이라고. 하버가 “공기로 빵을 만드는 기적”을 행했다면, 버크 오거닉스는 “곰팡이로 빵을 만드는 기적”을 행했다고.
하버-보슈 공법은 이거 아니면 죽는 상황에서 발명된 거라 앞다투어 도입됐지만, 라나-아이먼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다들 잘 먹고 살고 있어서 도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죠.
그래서 유럽 연합에서 이번에 컨퍼런스를 연 거잖아요. 법령 제정도 눈 앞에 두고 있고.
하버-보슈 공법은 전쟁 자원 때문에 각광 받은 기술입니다. 정치든 경제든 기술이든… 농업은 우선 순위가 최하위입니다. 사람들 굶어 죽는 건 의외로 권력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 얘기 컨퍼런스에 연설자로 나오신 아일랜드 농림청 분이 한 말 같은데.
예. 우리 농림청 토지 정책 과장 엘빈 몰로이였죠.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분 같더라고요.
그 분 별명이 사학자(historian)라... 아일랜드 정부종합청사에서 역사 동호회를 운영하고 있죠.
프리츠 하버 얘기 인상적이더라고요.
본인과 동일시 하더군요. 머리숱이 없는 것 때문에.
버크 씨와 동일시 하는 거 같던데요.
저는 머리숱이 많은데요.
제2의 농업 혁명을 두고 한 말이겠죠. 프리츠 하버는 노벨상 수상자잖아요? 지금의 인류 문명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하버-보슈 공법 때문이니까… 그런 대전환기가 왔다는 관점 같은데요.
허황된 말처럼 들리는데요.
게다가… 민족 정체성이 다르다는 공통점도…
하버는 나치 정권 때문에 차별받았고… 저는 차별받지 않았습니다.
아시겠지만, 저희는 기사를 최대한 흥미진진하게 쓰는 게 목적이라서요, 이번 기사에 프리츠 하버와 버크 씨의 유사점을 언급하려고 합니다. “천재 이방인” 이런 모티브로.
프리츠 하버도 본인이 이방인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일단 기분 나쁘지 않으시다는 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어떻게 쓰든 기자님 재량입니다.
이건 궁금해서 묻는 건데… 버크 오거닉스가 라나-아이먼 농법을 아일랜드 정부에 넘겨준 건 국가 소유 토지에 대한 사용권을 얻기 위함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런 것도… 기사화 할 필요가 있는지요?
기사를 쓰려면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해야 해서요.
…
버크 오거닉스가 최근 몇 년 동안 팜플러스에 적지 않은 땅을 빼앗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부동산 개발을 통한 금융 사업이 팜플러스의 주력 사업이죠 - 농업은 명분이고. 버크 오거닉스의 주력 사업은 제조업이고요 - 농업은 버크 오거닉스에게 생존 기반이죠.
….
팜플러스는 자신들에게 필요한 게 뭔지 정확히 알고 있어요. 땅을 더 많이 차지하고 땅의 미래 가치를 높이는 거죠. 그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버크 오거닉스의 제조 기술을 갖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아이러니하게도, 버크 오거닉스의 궁극적인 목표도 더 많은 땅을 차지하는 거잖아요.
…
그런데 지금 아일랜드 땅도 모자라 해외 있는 땅마저 잃고 있는 상황이죠. 팜플러스는 그러니까 버크 오거닉스를… 순수한 바이오 테크놀로지 기업으로 만들 계획인 거죠. 자기들이 인수하기 편하도록.
…
좋게 말하면 그런 거고... 사실은 회사 팔다리 몸통을 다 다르고 머리만 남겨 놓겠다는 생각인 거죠.
…
그래서 버크 오거닉스에서 궁지에 몰려 꺼낸 카드가 라나-아이먼 농법이고요, 이 카드를 받은 아일랜드 정부가 버크 오거닉스의 수호 천사가 된 상황인 것 같은데…
애당초 저희 땅을 빼앗긴 건 정부 측 로비의 결과였습니다. 아일랜드 정부가 저희 아군이라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버크 오거닉스는 국가 소유 땅에서 사업을 하게 된 거죠 이제.
…그런 셈이죠.
저희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부 쪽에 붙는 것보다는… 다른 기업에 붙는 걸 먼저 생각 안 해보셨느냐는 겁니다. 영국에만 해도 버크 오거닉스와 합작하려는 기업들이 줄을 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저는 의심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비관주의자도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껏 저희에게 먼저 접근한 회사들은 모두 적대적 인수 의도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농산업계에 공생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 건지요? 버크 오거닉스에만 한정된 상황인지요?
제가 산업 현황에 대해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지금껏 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공생보다 약육강식에 익숙한 환경입니다.
회사가 인수되는 것에 대해선 고려해 본 적 없는지요? 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지 않습니까? 그런 불확실성을 감내하는 것보다는 마음 편한 선택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보셨을 것 같은데.
저희는 원래 버크 오거닉스가 아니라 버크 캐미컬이었고, 농약으로 돈을 번 회사입니다. 원래 농약으로 돈을 번 회사가 이제는 농약을 쓰지 않는 법으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 곰팡이를 죽여서 돈을 번 회사가 이제는 곰팡이를 키워서 돈을 벌고 있습니다.
…
곰팡이를 연구하면서 기업의 생존 방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둘 다 목적에 도달하는 최단거리 길을 찾습니다. 둘 다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저희도 그렇고, 팜플러스도 그렇습니다. 곰팡이가 곰팡이를 잡아 먹으려는 겁니다. 서로 다른 곰팡이가 공생하는 상황이 아니라 서로 죽여야 하는 상황입니다. 팜플러스는 제가 지금까지 본 어떤 기업보다 곰팡이 생존 방식을 닮았습니다.
…
그들이 버크 오거닉스를 인수하려는 까닭은 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생존을 보장받기 위함입니다. 라나-아이먼 같은 농법이 보편화 되면 기존 사업 대부분을 접어야 합니다.
브로디의 말의 요지는 라나-아이먼 같은 신기술은 기존 질서에 이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지금 세계 농산업은 하버-보슈 공법에 기반하고 있다. 밭을 경운하고, 물을 주고, 비료를 주고, 농약을 뿌리고, 추수를 하는 모든 과정이 시스템화 돼 있다. 모두가 이 시스템으로 먹고 산다. 비료 공장도, 농약 공장도, 농기계 판매자도, 종자 생산자도, 이 시스템이 있기에 생존을 유지한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갑자기 필요 없어진다면, 다른 시스템으로 대체되면, 판이 엎어진다. 기득권이 무너진다.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도, 아무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기술도, 기득권에 불이익이면 도입되기 어렵다.
제가 인수를 거부하는 까닭은 팜플러스가 제 회사를 인수하려는 이유와 동일합니다. 그쪽이나 저나 생존하고 싶은 겁니다. 지속가능한 농법 같은 대의명분은 나중 일이고 일단은 살고 봐야 하는 겁니다. 제 회사가 인수되면 회사는 사라지는 겁니다. 지난 10년 동안 쌓아온 회사 존재 기반이 땅에 묻히는 겁니다. 저들은 우리 회사 기술을 손에 넣고 활용하려는게 아니라 통제하려는 겁니다. 자신들 생존에 위협이 되는 기술이기 때문에 자신들 손 안에서 관리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말하면, 그러니까 대유법을 쓰자면, 하버-보슈 공법이 현재 세상의 질서고, 이 질서를 기반으로 지난 100년 동안 문명이 발달해 왔단 말이죠. 라나-아이먼은 그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는 반질서인 것이고.
예.
그래서 버크 오거닉스 입장에서 유일한 생존법은 정부의 보호를 받는 것 뿐이고.
예.
그런데… 아까 처음에 같이 들어왔던 분은 못 보던 분인 것 같은데요.
비서입니다.
비서 분 성함이…
대런 월시입니다.
그 분… 개인적으로 알던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가요?
경찰서에서 만나셨다고.
예. 피의자였죠.
이런 말씀드려도 될까 모르겠는데… 살인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루머가 있습니다.
대런은 마약 유통으로 처벌 받았습니다. 살인으로 기소된 적은 없습니다.
어떤 사건이었죠?
어떤 사건 말씀이시죠?
처음 두 분이 만나게 된 사건.
마약범들끼리 총질을 했던 사건입니다. 2명이 죽었죠.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대런 월시… 비서 분은 그들 죽음과 관계가 없는 거고요.
예.
지금도 경시청 일을 하고 계십니까?
그 얘긴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되는데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물어 보는 겁니다.
이제 몇 건 남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몇 건이나 해결하신 거죠?
잘 모르겠습니다. 30건을 넘긴 게 몇 달 전인 거 같은데…
그 중에 제일 기억 남는 사건은 뭐가 있을까요?
브로디의 기억에 가장 잊혀지지 않는 건 학교 지하실에 갇혀 죽은 임신한 여고생 사건이었다. 여고생과 불륜 관계였던 교사가, 고의적으로, 임신한 여고생을 감금 살해한 사건이었다. 그게 하마터면 완전 범죄가 될 뻔 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브로디는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브로디는 자신이 범죄 해결사였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경시청에서의 일은 브로디에겐 그저 개인적인 경험이었다.
하지만 존스 기자는 궁금해한다. 브로디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브로디는 기자의 재촉에 마지 못해 이야기했다.
BBC 다큐멘터리였는데, 인간 사는 마을 쓰레기 장에서 죽은 곰을 봤습니다.
예.
곰이 배가 고파서, 밤에, 인간 사는 마을로 들어와 쓰레기를 뒤진 거에요. 쓰레기 중에 먹을만한 걸 골라 먹은 게 아니라… 닥치는대로 다 먹은 거에요.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래서 배 속에 들어간 각종 오물과 플라스틱과 위험한 물질들 때문에 배가 찢어지고 감염돼서 죽은 거에요.
예…
그걸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안 먹고 굶어 죽는 편이 훨씬 덜 고통스러웠을텐데, 왜 저렇게 죽었을까.
…
곰만 그런 게 아니거든요. 개도 그렇고 고양이도 그렇고 사람도 그래요. 배가 고프면 쓰레기를 먹어요. 그리고 고통스럽게 죽어요. 굶어 죽은 사람들 배 속을 보면 대부분 흙이 나와요. 흔히 존엄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이건 존엄하고 관련이 없는 얘기입니다. 지금껏 동물의 움직이는 기능이… 고통을 피하기 위해, 더 온전한 삶을 추구하기 위함이라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에요.
…
범죄 사건을 하면서… 쓰레기 장에서 죽은 곰 생각이 나더라고요. 저거 먹지 않는 게 더 이롭다는 거 뻔히 알면서, 그래도 먹는다는 겁니다.
…
곰이 멍청해서 그런 게 아니라… 동물이 그렇게 만들어진 겁니다. 인간도… 저거 먹지 않는 게 더 이롭다는 거 뻔히 알면서 먹어요.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사생결단 목숨 걸고 먹습니다. 그리고 죽습니다. 아주 고통스럽게.
…
어떻게 보면… 고통을 쫓아 다니는 거에요. 많은 인간들이, 어쩌면 절대다수의 인간들이, 고통없는 삶 대신, 고통 가득한 죽음을 택합니다.
제가 처음에 말씀을 안 드렸는데…
뭘요?
사실 오늘 인터뷰의 진짜 목적은 라나-아이먼 농법이 아닙니다.
그럼 뭐죠?
라나-아이먼도 중요한 얘기지만… 사실은 정성주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 보기 위해 자리를 마련한 겁니다.
무슨 이야기죠?
최근 유럽 제약사들이 정성주와 거래를 했습니다.
무슨 거래요?
다이어트 약을 개발했다고 하더라고요. 기존 다이어트 약들은 신진대사를 통제하거나, 식욕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살을 빼는데, 정성주의 약은 그런 게 아니더랍니다. 섭취한 칼로리보다 더 많은 칼로리를 소모하게 만드는 약이었답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기생충 같은 건가요?
아뇨. 그 사람의 행동 방식을 바꾸는 겁니다.
어떻게요?
그건 제가 버크 씨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입니다. 그걸 어떻게 했는지 그걸 알아낼 사람은 버크 씨 밖에 없습니다.
무슨 말이죠?
곰팡이를 이용했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곰팡이요?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환각제들이 곰팡이로 만들어지는데, 정성주는 이 환각 물질을 이용해서 사람의 특정 행동 패턴을 바꿉니다. 예를 들면, 밥을 100칼로리를 섭취하면, 자기도 모르게 200칼로리를 소모할 때까지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겁니다.
믿을 수가 없는데요.
제약사들도 당연히 처음엔 안 믿었죠. 그래서 직접 가봤대요 중국에.
그랬더니요?
실험을… 쥐랑 닭이랑 비둘기, 그리고 돼지로 하고 있더랍니다. 곰팡이를 어떻게 키우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지금 여기처럼 기계를 쓰지 않더랍니다. 순전히 자신의 원시적인 직감으로 생체 실험을 하고 있는 거죠.
음…
곰팡이를 감염시키는 거에요. 쥐랑, 닭이랑, 돼지에게. 곰팡이에 감염된 개체군이랑 그렇지 않은 개체군을 일주일 동안 비교해서 보여준 거에요. 그랬더니 진짜로 정성주가 주장한대로 더 많은 칼로리를 섭취할수록 더 많은 움직임을 보이는 거에요. 실제로 살이 빠지는 거죠.
음…
제일 무서운 건, 이걸 사람한테도 실험한다는 거에요. 정성주 연구소의 가장 무서운 점은 다들 자발적으로 생체 실험자가 된다는 거에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정성주가 하자고 하면 하는 거죠. 사람도 곰팡이에 감염된 개체군과 그렇지 않은 개체군이 쥐 닭 돼지가 보여줬던 것과 같은 차이를 보이더란 겁니다.
감염된 곰팡이는 치료가 가능한 겁니까?
효과 지속력이 2-3주 정도라고 합니다. 2-3주 뒤엔 실험체의 면역력이 해당 곰팡이를 제거하는 거죠. 그 부분도 제약사에서 확인했고요.
그래서… 그걸 제약사에 판 건가요?
살 빼는 약은 하나의 샘플이고, 다른 약들도 있다고 쇼케이스를 연 겁니다. 그런 식으로 사람 행동 패턴을 의도대로 바꿔 놓을 수 있다는 거죠.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마음 먹어도 안 되는 걸 되게 만드는 약이잖아요. 공부 잘하게 만드는 약, 일 잘하게 만드는 약, 세계 신기록을 세우게 하는 약... 이런 게 가능하다는 말이잖아요.
…
정성주가 대체 어디까지 손을 댄 건지 궁금해서 사람들이 알아봤대요. 또 뭘 더 개발했는지. 정신 지배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특정 대상에 대한 정신 지배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쥐가 거머리를 먹어요. 원래 안 먹거든요. 독성이 있으니까. 근데 먹더랍니다. 먹다가 토 하면서 계속 먹어요. 피를 토하고 죽을 때까지. 인분을 먹는 사람도 봤답니다. 거머리를 먹는 쥐처럼… 눈을 까뒤집고 침을 질질 흘리면서 인분을 먹더랍니다. 환각에 빠진 거죠. 환각에 빠져서 평소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을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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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만 죽일 수도 있는 거에요. 상상 속 이야기도 아니고, 미친 과학자의 망상도 아닌 겁니다 실제로 그게 가능하다는 걸 보고 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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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정성주가 버크 씨와도 거래를 시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버크 씨도 분명 그쪽의 의도나 계획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쪽은 정상적인 비즈니스 거래가 가능한 사람이 아닙니다. 제약사들도 이제는 깨달았을텐데요.
예. 맞습니다. 매번 거래를 할 때마다 말이 바뀌더랍니다. 한다고 했다가 안 한다고 했다가. 하지만 이걸 이대로 무시하기엔 너무 위험 부담이 큰 거죠.
흠…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라나-아이먼 농법보다 정성주의 “다이어트 약”이 더 무서운 겁니다.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릴 잠재력이 훨씬 강하죠. 기존 약은 아픈 사람들에게만 팔았는데, 정성주의 “약”은 아프지 않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다 파는 거잖아요.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고, 어떤 결과를 낳을지도 모르는데… 이 약이 시장에 풀리면 말 그대로 세상이 뒤집어지는 거잖아요.
지금 제약사들은 그럼… 서로 눈치 보기 게임을 하고 있는 건가요?
말씀하신대로 정성주는 예측이 불가능한 사람인데다 뭘 제대로 기록해 놓지 않는 버릇이 있어서… 모차르트 같은 인간이죠, 제약사에서는 서로 좀 더 생산적인 - 문명화된 방식으로 거래를 진행하자고 정성주를 설득하는 중입니다. 현재 제약사들은 서로 합의 하에 공동의 채널을 통해 정성주와 의사 소통을 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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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은 버크 씨라고 생각합니다. 정성주는 이제 70이 넘은 나이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유산을 물려 줄 겁니다. 지금 정성주의 모든 기록은 암호화 돼 있는데 그 암호 체계를 이해하려면 자기처럼 냄새로 세상을 이해해야 하거든요. 아까 말씀드렸죠. 정성주가 이걸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버크 씨 뿐이라고.
음…
정성주와 지금까지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말해주실 생각 없는지요?
그런데 기자님…
예.
정성주 쪽 일은 원래 기자님 업무 범위에서 벗어난 일 아닌지요?
아까 호기심 얘기하셨죠. 호기심이 절박한 지경에 도달하는 건 인간이 짐승과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고. 제가 지금 그렇습니다. 두 명의 천재가, 수십년 간의 실험 끝에 도달한 최종 정착지가 곰팡이였단 말이죠. 한 명은 그걸 인간에 적용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다른 한 명은 그걸 식물에 적용하는 방법을 개발한 거죠. 전자는 대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기술이고, 후자는 세계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술이란 말이죠. 제 호기심이 절박한 지경에 도달하지 않는 게, 그게 이상한 일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