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린 킨젤라에겐 독특한 화법이 있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이미 일어난 일이라고 말한다. 아직 꽃봉오리만 달린 아이리스를 보고 지금 활짝 폈다고 말하거나, 다음주에 배송될 화분이 이미 집 문 앞에 와 있다고 말한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단지 시간을 건너 뛰는 거였다. 확정적 미래의 일을 현재 완료됐다고 시간 차이를 지워 버리는 것이다. 지인끼리는 애교로 봐줄 수 있었으나, 회사 일을 할 때는 심각한 업무 차질을 빚었다.
버크 오거닉스 토지 개발부에 다음주 도착 예정인 규조토는 에린의 머리 속에 지금 이미 도착한 상태였다. 에린이 보낸 전사 메일에 규조토는 이미 도착한 것으로 명시돼 있었고, 운송 업체들은 회사로부터 하루치 운송비를 보전 받아야 했다. 버크 오거닉스 직원들은 에린과 사내 의사 소통을 할 때 일종의 프로토콜을 따라야 했다. 에린이 현재 완료형 표현을 쓴 경우, 그게 언제 이행-완료된 것인지 시각을 재확인하기 전에는 어떤 액션도 취하지 말아야 했다.
동사의 미래형을 현재완료형으로 바꿔 말하는 에린의 말버릇은 아마도 멸균실에 오래 갇혀 산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멸균실의 인생은 언제나 미래에 대한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은 에린에게 현재 일어난 일이어야 했다. 그의 머리 속에, 도화지 위에, 이미 일어난 일로 확정돼 있어야 했다. 겐티아나의 형광빛 파란 꽃은 에린에게 식물 도감 속 사진도, 먼 미래 보게 될 야생화도 아닌, 지금 자신의 멸균실 선반 화분 위에 피어 있어야 했다.
그게 에린의 정신을 지켜주었다. 생의 대부분을 멸균실에 갇혀 지낸 에린은 정신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 스스로 식물의 생리를 닮아 갔다. 식물이 햇빛을 향해 가지를 뻗어 자양분을 생산하는 것처럼, 에린도 미지의 미래를 생존을 위한 자양분으로 삼았다. 손에 닿지 않는 비현실 속 미래는 에린에게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생존의 이유였다.
아일랜드 농림부에서 주최한 공청회에는 농업 관계자들보다 기자들이 더 많았다. “토지 생산성 개선”은 지난 2년간 아일랜드 농업계 가장 큰 이슈였다. 대부분의 농업 관계자들, 국내 최대 농업 관련 기업들과 민간 단체들, 심지어 영국 농림청에서도, 이 충격적 내용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이번 공청회는 “내부자”들에게 알려진 이야기를 “외부자”들에게 고지하기 위함이었다.
문제는 이 공청회의 연설자가 에린 킨젤라였다는 점이었다. 브로디의 결정이었다. 토지 생산성 개선 프로젝트는 발기인도, 주체도, 모두 버크 오거닉스였다. 버크 오거닉스는 자신들이 개발한 토양 개선 기술을 독점 소유하는 대신 국가에 “기증”해 버렸고, 이 토양 개선법 도입을 장려하기 위한 공청회를 개최한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웅변력이 좋은 연사를 써야 했는데 뜻밖에도 에린 킨젤라로 결정된 거였다.
참석자들은 에린의 말에 혼란을 겪고 있었다. 혼잣말처럼 우물거리는 말투도 알아듣기 힘든데 시제가 매번 미래형에서 현재 완료형으로 바뀌는 바람에 뭐가 어떻게 됐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처음엔 왜 에린이 이 자리에 나오게 됐는지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병원을 떠나 자연으로 간 불치병 환자”, “땅에서 영생을 얻은 자”, 에린은 아일랜드 땅의 기적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상징은 상징일 뿐, 업무는 현실이었다. 에린은 현실과 너무 오래 동떨어져 살았다. 세상과 담을 쌓은 채, 너무 오래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았다. 에린은 사적 관계에서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누구와도 쉽게 관계를 맺었고, 누구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업무 관계는 그렇지 않았다. 에린은 분명 현실 업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사람들은 에린의 부정확한 말투에, 부자연스러운 표정과 제스처에,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법에 인내심을 잃기 시작했다. 왜 저렇게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을 연사로 세웠는지 주최 측의 판단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이리시 인디펜던트의 피츠패트릭 기자는 버크 오거닉스의 사업에 가장 많은 기사를 쓴 언론인이었다. 그는 버크 오거닉스의 사업에도, 에린 킨젤라의 사연에도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는 에린 킨젤라의 알아듣기 어려운 연설 내용을 최선을 다해 성의껏 정리했다.
- 인류 문명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건 온난화가 아닌 토양 생산성.
- 전세계 농토가 흡수할 수 있는 탄소의 양은 아마존 밀림의 수백배. 화력 발전소를 줄이는 것보다 토양 탄소 흡수율 - 토양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대기 탄소 농도 줄이는데 수백배 효과적.
- 자연 생태계와 인류 문명 모두 “토양 건강”에 의해 운명이 결정됨에도 인류는 대기 중 탄소 농도에만 병적으로 집착.
- 토양 생산성은 해당 토양에 서식하는 식물군에 의해 결정. 이는 식물의 뿌리에 기생하는 미생물군 때문임.
- 균근 vesicular arbuscular mycorrhiza은 식물 뿌리에 기생하는 대표적인 미생물, 야생 식물은 물론 작물에도 기생: 양분 흡수, 병충해 방어, 경쟁자를 물리치고, 동맹을 끌어들이고, 상호 소통.
- 비유를 하면, 인간 내장에 인간을 수호하는 기생충이 사는 것과 동일. 병균이 침입하면 내쫓고, 동맹을 불러오고, 양분을 구해오거나, 다른 개체로부터 양분을 공유 받는 것.
- 지난 1만년 인류의 농경법은 균근을 “퇴치”하기 위한 전쟁. 경작, 경운, 제초, 비료, 농약 등 균근이 더 이상 작물과 공생할 수 없는 환경 구축.
- 악순환 발생. 작물은 갈수록 자생력 약화, 인간은 작물을 부양하기 위해 더 많은 비료와 농약과 기계 노동 자원을 투입, 결과는 토양의 황폐화. 비료, 농약, 기계 노동이 아니면 식물 생존 불가능.
- 버크 오거닉스는 농약 생산을 중단하고 균근의 번성을 유도하는 약제 개발에 성공. 기존 균근보다 훨씬 강력한, 자연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균류 개발…
피츠패트릭 기자는 타이핑을 멈추고 손을 들어 질문했다.
버크 오거닉스는 아직 매출의 30%가 농약 판매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언제 생산을 중단한 거죠?
에린이 대답했다.
말씀하신 대로 버크 오거닉스는 농약 생산 판매를 주력으로 성장해 온 회사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수년 안에 농약 생산을 전면 중단하고 토양 균류 성장을 촉진하는 약물 제조로 전환할 예정입니다.
피츠패트릭 기자가 다시 물었다.
하지만 방금 전엔 이미 농약 생산을 중단하고 약물 제조로 전환했다고…
에린은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저는 앞으로 그럴 예정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알아듣기 힘들 게 말을 하는데, 이제 보니 본인이 본인 말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회의감이 들었다. 본인이 한 말도 책임지지 못하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힘들게 저 사람의 말을 받아 적어야 하는가. 안 그래도 산만했던 공청회장은 잡담장으로 변했다. 웅성대는 소리가 커지더니 이윽고 절제 없이 자유로워졌다.
사람들이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연단 위 에린에게 관심도 흥미도 잃었다. 에린은 자신이 통제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에린은 스스로를 탓하지 않았다. 그는 누구 탓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남을 탓하지 않는 것처럼 자기 자신도 탓하지 않았다.
에린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무례하게 굴어도, 거짓말을 해도,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에린은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다.
무균실에 홀로 갇혀 있는 동안 에린은 한 번도 부모를 탓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가 약속 시간보다 몇 시간씩 늦게 병원 도착해도, 약속한 그림책을 구해 주지 못해도, 에린은 어머니를 탓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머리 속엔 언제나 미래의 일이 현재 완료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에린의 머리 속에 아직 오지 않은 어머니는 이미 병실에 도착해 자신과 정담을 나누고 있었고, 구하지 못한 동화책은 이미 침대 맡에 펼쳐져 있었다.
벚나무가 봄 눈을 맞으며 벚꽃을 피우는 이유는 봄이라는 계절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지난 수백만년의 세월 동안 그래 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봄이 올 것이며, 이미 봄은 와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벚꽃은 4월의 늦추위에 의심도 원망도 갖지 않는다. 에린에게 벚꽃은 미워하지 않는 마음이었다.
에린은 무균실에서 나무의 삶을 꿈꾸었다. 햇빛을 향해 가지를 뻗고, 물을 향해 뿌리를 내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눈과 손은 가지였고, 내장 기관은 뿌리였다. 계절의 순환은 나무를 배신하지 않으며,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준다. 나무가 된 에린은 조급할 것이 없었다.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에린은 자기가 한 말이 사람들에게 재미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자기도 지금까지 한 말이 재미없었다. 회사에서 시켜서 한 것이지 스스로 하겠다고 한 건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여기서 읽은 글은 회사에서 원래 써준 글도 아니었다. 농림부에서 여덟 번쯤 수정해서 더 재미없게 만든 글이었다.
에린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로 했다. 남이 적어준 글을 읽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자고 생각했다.
라나-아이먼이에요. 저희 회사에서 개발했다는 약제 이름.
청중의 잡담이 잦아 들었다. 사람들은 에린의 말투가 달라진 걸 알았다.
라나 헤이즈. 아이먼 페들러. 부부였어요. 두 사람 이름을 따서 지었죠. 향수 이름처럼. 우리 회사에서는 “향수”라고 불러요. 밭에 뿌리는 향수.
조금 전까지 에린은 스크립트를 뒤적이며 청중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제는 그러지 않았다. 차분해졌다. 눈치 보지 않았다. 스크립트는 필요 없었다.
라나를 먼저 뿌리고 그리고 6개월 뒤에 아이먼을 뿌려요. 6개월 전에 뿌린 라나가 자연 상태 균류 성장을 촉진하고, 그 후에 뿌린 아이먼이 새로운 균류의 뿌리 침투를 도와요. 2개의 서로 다른 균류는 경쟁-공생 관계를 형성해 더 많은 양분을 숙주에게 공급하고 더 강한 적들로부터 숙주를 보호해요.
피츠패트릭은 “슈퍼 균근”의 탄생이라고 적었다. 이게 지난 2년 동안 농업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토양 생산성 개선”의 실체였다. 기존의 균근은 척박한, 경쟁이 치열한 야생의 환경에 최적화 돼 있었다. 멀리 있는 양분을 조금씩 더 많이 끌어 오는데 적합하지만, 고열량 에너지를 단시간 내 축적해야 하는 현대 작물의 성장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이번에 개발된 버크 오거닉스의 슈퍼 균근은 화학 비료에 저항력이 뛰어나며, 거기서 직접 양분을 흡수하는 능력도 있었다. 슈퍼 균근은 숙주의 뿌리를 확장해 더 많은 흙을 뒤덮고 마침내 숙주의 줄기를 타고 올라온다. 슈퍼 균근이 “점령”한 숙주의 줄기는 그물 모양의 균근 균사가 감쌌고, 일반인들도 맡을 수 있는 진한 흙냄새를 풍겼다.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세상 어떤 농약보다 강력한, 병충해 방제 향이었다.
에린의 프레젠테이션 화면은 여기서 멈췄다. 에린은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를 넘겨 라나-아이먼 농법의 미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다. 농림부에서 제안한 유통 방식을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에린은 더 이상 남이 시킨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에린은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리나와 아이먼은 고등학교 동창이었어요. 아이먼은 어릴 때 부모가 돌아가시고 친척 집에 입양된 남자였어요. 집이 가난해서 중학교 때까지 철공소에서 일 하느라 고등학교를 2년 늦게 들어갔어요. 라나와 같은 반이었지만 둘은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대요. 한번은 교사가 신문 기사를 소개하면서 고등학교 졸업이 늦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생 벌이가 40% 적다고 그랬나 봐요. 아이먼을 두고 한 말이죠. 고등학교 입학 자체가 2년 늦었는데다 교사랑 사이도 안 좋았거든요.
근데 그때 라나가 그랬대요. “남들이랑 똑같이 살면 그렇겠죠.” 이 말을 듣고 아이먼이 놀랐대요. 교사가 학생을 기 죽이려고 한 말인데 그게 아니라고 말해준 거잖아요. 아이먼은 라나의 말을 기억했어요. 남들과 똑같이 살지 않으면 된다. 그 말이 아이먼의 인생을 바꿨죠.
졸업 후 아이먼은 사업을 해요. 자전거도 하고 양돈장도 했어요. 실패도 했지만 “남들과 똑같이 살지 않으면 된다”는 신념으로 하니까 결국 되더래요. 사업이 자리 잡은 아이먼은 라나를 찾아요. 20년 전 자신에게 “남들과 다르게 살면 된다”는 말을 해준, 사실은 그에게 한 말도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 말을 해준 라나를 찾았죠.
그동안 라나는 대학에 갔어요. 원래 공부를 잘 했거든요. 영국 명문대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거기서 왕따를 당해요. 방송반에 들어갔는데 아일랜드 촌년이 왔다고 무섭게 군기를 잡았대요. 방송실에 밤새도록 갇힌 적도 있고, 물 한 모금 못 먹는 가혹 행위를 당하다 양잿물을 마시고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죠. 결국 학교에 나가지 않게 돼요. 대인 공포증에 걸린 거죠. 기숙사에 틀어 박혀 밖에 나가지 않고 종일 비디오만 빌려 봤대요. 수업 출석을 안 하니까 친구들이 찾아 가서 수업 오라고 끌고 나왔는데 알았다고 하고 도망갔대요. 3학기 연속 출석을 안 해서 제적을 당해요. 고향으로 돌아와 또 칩거 생활. 그렇게 15년을 살고 있었던 거에요. 아이먼이 라나를 찾았을 때.
칩거 폐인이 된 라나를 찾아온 아이먼이 그랬대요. 나는 당신이 그때 해준 그 말을 듣고 살고 싶어 졌다고.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아이먼은 던아니Dunany에 땅을 샀어요. 가난할 때 좁은 집에 살아서 돈을 벌면 넓은 땅에 큰 집을 짓고 싶었대요. 거기 동물들을 길러요. 닭이랑, 돼지랑, 소랑, 말이랑 양. 그리고 꽃들도 심었어요. 수선화랑, 들장미, 조가비, 이스터 릴리, 디기탈리스… 거기 라나를 데려왔어요. 아이먼은 라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사귀자는 말도, 청혼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같이 살았어요. 아이먼은 동물을 기르고, 라나는 꽃을 길렀죠. 둘은 친구였어요. 결혼하지 않았지만 세상 어떤 부부보다 사이가 좋았죠. 둘의 농장이 커지고 유명해졌대요. 지역 언론에도 나고 멀리서 사람들도 찾아왔죠. 사람들이 여기 이름이 뭐냐고 묻길래 이름도 지었어요. “사는 게 좋아서 Like Living 농장”이라고.
둘은 그렇게 15년을 같이 살았어요. 아이먼이 폐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라나는 아이먼의 말을 기억했어요. “나는 당신의 말을 듣고 살고 싶어졌다.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칩거 폐인이었던 라나는 아이먼의 친구로 새 인생을 살았어요. 앞으로도 영원히 아이먼의 친구로 살다 죽을 것이라 생각했고 아이먼이 없는 인생은 생각하지 않았죠. 라나는 아이먼을 사랑했던 것 같아요. 그를 사랑해서 그를 기념하고 싶었죠. 자신이 살아 있는 한, 사는 게 좋아서 사는 한, 아이먼은 잊혀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라나가 제가 살던 코크 하버을 찾아 왔을 때 저는 아팠어요. 구내염이 심해서 음식을 잘 먹지 못했고 눈에는 엄청 큰 다래끼가 나서 앞이 잘 보이지도 않았죠. 라나는 소문을 듣고 찾아 왔다고 했어요. 코크 하버에 꽃을 기르는 소녀가 있다고. 아픈 소녀지만 꽃 기르는 걸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2시간 넘게 트럭을 몰고 찾아 왔대요. 라나는 잔뜩 부은 제 눈을 이리저리 만져 보고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했어요. 금방 나을 거야. 걱정하지 마.
라나는 트럭으로 자기 농장 꽃들을 실어 왔어요. 실라 Spring Squill, 카우립스 Cowslips, 야생 클라리 Wild Clary 같은 야생화들이었는데, 원래 아일랜드 땅에 살던 야생화들과는 다른 것들이라고 했어요. 남편이랑 키운 개량종이라고 했어요. 저희 꽃밭을 한참 돌아 본 뒤에 자기가 가져온 꽃들을 심었죠. 해가 저물 때까지.
라나는 그 뒤로도 시간이 될 때마다 저희 집을 찾아 왔어요. 왜 저희 밭에 꽃이 잘 자라지 않았는지 이야기해 줬어요. 같은 식물끼리만 있으면 생존력이 떨어진다는 거에요. 서로 다른 종류의 식물은 서로를 해치기도 하지만, 생존력을 높여주기도 한다는 거에요. 서로 다른 어떤 식물들을 어떻게 심느냐에 따라 개화율이 달라진다고 했어요.
자기들도 처음엔 몰랐대요. 아이먼이 길렀던 돼지 완다가 알려주더래요. 아이먼은 돼지들을 산책시키거든요. 그때마다 완다는 풀 냄새를 맡아요. 그리고 한참을 서 있는 거요. 이 풀이 좋은 거 같다고. 완다가 고른 풀들이 지금 라나 농장을 뒤덮고 있어요. 완다가 좋아하니까 가져와 심어야지 생각한 건데, 이 풀들이 농장의 꽃들을 바꿔 놓았대요. 여름만 되면 비실비실 하던 꽃들이 섞어 심기를 하니까 다른 성질의 식물로 거듭난 거죠.
라나는 그 방식대로 저희 집 꽃밭도 바꿔 줬어요. 완다는 죽어서 없었지만, 라나는 아마도 패턴을 이해했던 거 같아요. 저희 집 꽃밭은 그 다음 해부터 꽃들이 더 많이 피고, 잎도 더 무성해졌죠.
그리고 제 병도 나았어요. 그때만 해도 죽는 줄 알았거든요. 열이 하루에 몇 번씩 40도씩 치솟고, 밥도 못 먹고, 이제는 진짜 죽으려나 보다. 그래도 꽃들이 피어서 다행이야. 병원이 아닌 꽃밭에서 죽게 돼 감사해. 그렇게 생각했지요. 엄마랑 아빠랑 너무 아플 때마다 꽃밭에 나가 누웠어요. 제 소원이었거든요. 꽃들 사이에서 죽는 게. 하지만 그때마다 죽지 않고 살았어요. 그리고 그때마다 이상하게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은 거에요. 죽으려니까 살이 빠지나 보다 했는데, 사실은 몸이 낫기 시작한 거죠.
라나가 한 말이 맞았어요. 라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에요. 병이 나을 거란 걸. 라나가 나중에 그랬어요. 그때 제 눈이 퉁퉁 부어서 아무것도 안 보일 때 자기는 알았다고. 제가 누구보다 살고 싶어 한다는 걸.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했어요. 어떤 식으로든 살게 된다고 했어요. 살고자 하는 마음은 타고 나는 게 아니라 길러지는 거라고.
완다가 죽을 때 아이먼이 그랬대요. 자기는 오래 전부터 이때를 대비해 왔다고. 죽음에 너무 슬퍼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자기도 언젠가 이렇게 죽을 것이니 라나 당신도 대비해야 한다고. 라나는 아이먼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라나는 자기가 먼저 죽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아이먼 없는 인생은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라나는 아이먼의 자식을 낳지 못한 것을 비통해 했어요. 아이먼의 자식이 있었다면 이렇게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 같았죠. 라나는 아이먼의 말을 뒤늦게 깨달아요. 아이먼이 키우던 동물들을 보면서, 꽃들을 키우면서, 오랜 세월 뒤에 깨달아요. 자식을 남기는 게 중요한 건 아니라는 걸. 라나는 우린 서로 다른 개체도, 다른 종도 아니라고 했어요. 돼지도, 닭도, 개도, 꽃도, 나무도, 모두 서로의 운명의 공유하는 생명이라고 했어요. 어느 누구도 서로 따로 떨어져 살고 죽지 않는 거에요. 모두 서로의 삶과 죽음을 이어 받으며 사는 거에요. 몸 안의 세포들처럼. 아이먼의 말은 아마 그런 뜻이었을 거라고 했어요. 완다의 죽음에 의연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도, 그런 뜻이었을 거라고 했어요.
제 병이 나은 이유도 그거였어요. 멸균실에 살 때는 저 혼자였으니까. 누구와도 삶을 공유하지 않았으니까. 몸이 점점 약해졌던 거죠. 라나-아이먼 농법은 그런 뜻이 있다고 생각해요. 생명은 고립될수록, 다른 생명들과 격리될수록, 약해지는 거에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거에요. 멸균실에서 나와서 다른 생명들과 삶을 공유하는 거죠. 제가 그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라나-아이먼은 저를 위한 치료제였고, 우리 아일랜드 땅을 위한 치료제도 될 거에요.
에린의 스피치는 여기가 끝이었다. 원래 듣기로 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청중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청중 중 한명이 물었다.
라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요?
에린이 답했다.
라나는 2년 전 죽었어요. 암으로. 제가 임종을 지켰죠. 라나는 아이먼 곁에 묻혔어요. 그들의 무덤 주변에 매년 수십종의 야생화들이 피어요. 가을엔 예닐곱 종의 자두 나무들이 열매를 맺고요. 라나는 농장을 버크 오거닉스에 기증했어요. 제가 버크 오거닉스에 들어온 뒤로 라나는 회사에 대해 많은 걸 물어 봤죠. 버크 씨에 대해서도. 버크 씨는 기증 받은 라나의 농장을 공원으로 만들었어요. 라나-아이먼 추모 공원. 화원이자, 농장이자, 두 사람을 위한 거대한 묘지인 거죠. 오늘 말씀드린 농법에 라나-아이먼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를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살고자 하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했지요. 둘의 이름은 앞으로 영원히 함께 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