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s files #11
브로디가 기억하는 최고의 날씨는 15살 때의 스코틀랜드였다. 가족이 처음 간 해외 여행이었다. 8월의 마지막 날이었고 바람이 몹시 불었다. 여행사 전세 버스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함께 타고 있던 머피 가족은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분다고 버스에서 내리지 않았다. 브로디는 머피 할아버지의 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코틀랜드는 영국인들에게 미지의 땅이었다. 영국인들에게 아일랜드는 "자기들 땅"이었지만, 스코틀랜드는 "남의 땅"이었다. 아버지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착해서 그렇다고 했다. 영국인들이 아일랜드 사람들을 만만히 보고 남의 땅을 자기들 땅으로 삼은 거라고 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험한 땅에 살아 성격이 험하다고 했다. 누가 만만히 대하면 칼을 들고 피를 보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새로 산 리코 카메라로 어머니 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다. 어머니는 원래 여기로 신혼 여행을 오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돈이 충분치 않았다. 아버지는 가난을 탓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어머니의 신혼 여행이 좌절된 후 가난에 고통 받았다. 아버지는 자급적 삶을 살기 위해 농업을 자신의 업으로 삼았을 것이다. 아쉬운 게 있으면 스스로 충당하는 삶의 방식에 자부심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 것에 좌절감을 느꼈다. 버거운 빚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도, 친자식을 낳지 못한 것도,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 들였다. 

어머니의 신혼 여행의 꿈이 38년만에 이뤄진 것에 아버지가 느낀 건 기쁨이 아닌 회한이었을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해안 들판 위에서 소녀처럼 즐거워 하던 어머니를 보며 아버지의 고통받던 마음은 얼마나 위로 받았을까. 날씨가 좋아 다행이었다. 

대서양을 맞댄 스코틀랜드의 절벽은 해일처럼 밀려드는 파도와 오후 3시의 햇빛을 받아 무쇠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구름이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절벽 위론 고원지대 풀들이 무릎 아래 무성했다. 씨알이 맺히기 시작한 hairgrass 사이로 햇빛이 노랗게 부서져 내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진을 찍자고 불렀다. 브로디는 사진 찍는 게 싫었다. 시각은 포장이고 냄새는 본질이다. 브로디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시각에 의존한다고 생각했다. 카메라, TV, 아이맥스 영화관, 빌딩, 교회, 인터넷... 불필요한 시각적 경이에 너무 많은 자원을 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장엄한 풍경에 아무 느낌이 없었다. 그는 냄새를 맡고 있었다. 이곳 땅의 냄새가 아일랜드와 얼마나 다른 지 이해하고 있었다. 이곳은 그에게 다른 세상이었다. 단 한 번도 개간된 적 없는, 곤충 외 어느 동물의 서식지였던 적도 없는 이 고대의 땅은, 수억 년 전 대서양 바닥에 가라앉은 형제들과 다른 운명을 맞아, 지난 수천만 년 동안, 물보라와, 편서풍과, 불사의 고지대 풀들에 의해 형질이 결정되었다.

아버지의 리코 카메라는 중고였다. 아버지와 농기구를 거래했던 아론이 "싸게 판다"고 넘긴 것이었다. 실제로 아버지가 구매한 가격은 백화점에서 파는 새상품과 거의 같은 가격이었고, 구매 후 이주일 만에 뷰파인더가 고장나 일주일 동안 수리를 맡겨야 했다. 브로디는 아론이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 알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일반 중고 가격의 2배를 주고 산 것이란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평생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성실하고 정직하고 가난한 아일랜드 인의 전형이었다. 노동으로 부가가치를 생산하고, 세금에, 판단착오에, 부정직한 사람들에게 대부분을 빼앗기고 남은 부스러기로 삶을 꾸리는 사람이었다. 그의 삶에 “진전”이란 게 있었다면 빚이나 고통의 감소가 전부였다. 

아버지는 버크 오거닉스의 대주주가 된 뒤에도 전과 다름없이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예전과 다름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뜯기고 이용 당하며 살았다. 

얽매인 삶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땅에 얽매여 고통받는 굴레의 삶을 사는 거라 생각했다. 죽지 못해 사는 삶. 살기 위해 땅에 인생을 바쳐야 하는 삶. 땅을 떠나면 죽는 인생. 어릴 때 브로디는 땅이 고통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식물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브로디는 땅에서 작물을 기르며 자연의 인내를 배웠다. 땅을 바꾸기 위해, 숱한 고행을 겪으며, 예상할 수 없는 세월을 기다리며 깨달았다. 농업은 식물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길을 터주는 것이란 사실을. 다그치지 않는 것, 바라보고, 관찰하고, 되새기는 것이 농업의 가장 어려운 기술이란 사실을 이해했다. 

어릴 때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행동이 이해된 건 브로디가 농업에 더 이상 조바심 내지 않았을 때였다. 땅은 인간의 계획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브로디는 아버지 인생에 대한 가치 평가를 중단했다. 

브로디가 알면서도 말하지 않게 된 건 이때부터였다. 과묵함은 농부의 후천적 형질이었다.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하기까지 농부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수만가지 변수에 묵묵히 대응하고 기다릴 뿐이다. 땅은 계절의 순환에 저항하지 않으며 농부는 자연의 섭리에 토 달지 않는다. 

브로디는 자신이 아버지와 얼마나 다른지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아버지와 외모, 기질, 생각, 사상 모든 것이 정반대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사춘기가 지나고, 농부가 되기로 한 뒤로, 자신이 어느덧 아버지를 닮아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땅에 얽매인 게 아니라 동화된 거였다. 땅은 서로 다른 DNA의 개체들과, 서로 다른 수만가지 종들을 동일한 형질로 만든다. 지금껏 땅으로부터 삶을 구했던 모든 생명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도 땅과 함께 과묵해졌다. 계절의 순환과, 오만가지 자연의 변수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 바위 같은 마음으로 바뀌었다. 브로디는 땅에 의해 아버지와 하나가 됐음을 깨달았다.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유전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매일 동 트기 전 밭에 나갔다. 아버지에겐 일요일도 교회도 없었다. 어머니를 잃은 그날도, 아버지는, 밤새 목석처럼 식탁에 앉아 있다 평소와 같은 시간에 밭으로 나갔다. 아버지에게 고통은 나무의 나이테였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안으로 새겨졌다. 

해가 뜨기 시작했다. 새까맣던 대지에 붉은 주름이 일렁였다. 검푸른 지평선이 가로로 길게 눈부신 금빛 띠를 둘렀다. 아버지는 허리를 펴고 해를 바라 보았다. 브로디는 아버지가 쟁기를 꼭 붙든 채, 뜨는 해를, 한 시간 가까이 미동 없이 바라보는 걸 기억했다. 그 순간이 아버지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회한과 번뇌에서 자유로운 순간. 슬픔과 고통에서 해방된 유일한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땅을 사랑했다. 땅은, 고통의 원인이 아닌, 가족이자 피붙이였다. 아버지에게 농업은, 노동이 아닌, 인생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브로디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나는 죽으면 묻어줄 자식이 있으니 복 받은 거야. 내가 죽으면 지금 이 밭에 묻어줘. 날 묻은 자리에 매년 감자가 자라게 해줘. 내 아들은 감자를 키울 줄 아니까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야. 

작품 등록일 : 202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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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요
You   
아버지 ㅡ.ㅜ
Kelly   
재밌다 소장
악어   
너무 좋다
sc*****   
❤️ 왜 유료가 아닌가염 ㅠ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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