롭 키넌은 버크 오거닉스 마케팅부 직원이었다. 그는 이직한 지 3개월 된 롭은 전 직장이 팜플러스였다. 수다 떨기 좋아하는 그는 팜플러스와 버크 오거닉스의 차이점에 대해 농담하는 걸 즐겼다.
팜플러스에서 출시한 돼지고기 상품명은?
“무농약 무항생제 목초만 먹여 키워 잡내 없는 100% 순수 천연의 단백질.”
버크 오거닉스에서 출시한 돼지고기 상품명은?
“돼지고기.”
버크 오거닉스가 직원들에게 주는 명절 선물은?
“가족 호텔 1일 숙박권 및 저녁 식사 이용권.”
팜플러스가 직원들에게 주는 명절 선물은?
“구내 식당 10% 할인 쿠폰.”
건설업에 진출한 버크 오거닉스가 제일 먼저 지은 건축물은?
“직원 수영장.”
건설업에 진출한 팜플러스가 제일 먼저 지은 건축물은?
“창업주 동상.”
롭은 팜플러스 안티anti 팬이었다. 롭은 팜플러스 직원이었을 때부터 이 회사는 정말 상종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고 했다. 그는 팜플러스가 버크 오거닉스를 옥죄는 상황을 비관하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버크 오거닉스가 팜플러스에 인수되고 롭은 또 이직을 해야 될 수도 있지만 그는 낙관적이었다. 앞으로 망할 회사는 팜플러스이지 버크 오거닉스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팜플러스에서 신입 들어오면 부서 배치 어떻게 하는지 알아요? 관상으로 정해요. 지원 부서 분명히 똑바로 적어 냈는데 단 한명도 자기가 적은대로 배치되는 걸 못 봤어요. 얘는 세일즈 관상이다 해서 세일즈 보내고, 얘는 사막 기후 관상이다 해서 두바이 해외 영업팀에 보내요.
더 웃기는 건 임원 발령이에요. 임원 발령은 관상이 아니라 별점을 봐요. 탄생 년월일시랑 그때그때 별자리 위치에 따라 임원들 운명이 갈리는 거죠. 업무 능력이랑 전혀 상관없는 거에요. 다행인가 모르겠지만, 이런 야바위질에 당한 직원들은 영문을 몰라요. 자기가 왜 이 부서에 떨어졌는지, 왜 임원 자리에서 잘렸는지 전혀 모르는 거죠.
직원 자리 정하는 거야 자기들 마음이라고 쳐도, 업무 비용 처리 안 해주는 거랑 퇴직금 떼먹는 건 너무 하는 거죠. 업무 비용 처리 안 해줘서 더럽다고 그냥 떼이고 나간 직원들도 많고요, 퇴직금 소송 건도 아마 전국에서 팜플러스가 제일 많을 거에요.
롭은 마케팅을 지원했지만, 관상에 따라, 대외협력부에 배치 받았다. 대외협력부는 핵심 부서였다. 타이틀이 “대외 협력”이라고 돼 있었지만 사실은 경쟁사들을 제거하기 위한 곳이었다. 적대적 인수, 소송, 영업 방해 등의 수단으로 경쟁사를 도태시키고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사실상 기업의 생존을 책임지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롭은 팜플러스 창업자 로리 맥닐리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부서에는 회사 창업 공신들이 많았다. 이들은 회의 중에도, 점심 시간에도, 술자리에서도, 로리 맥닐리의 무용담을 자주 이야기 했다. 롭이 팜플러스를 그만 둘 즈음 롭은 로리 맥닐리의 자서전을 써도 될 정도로 그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됐다.
로리 맥닐리는 키가 160cm 얼마 밖에 안 되는 키작남이거든요. 근데 그 집에서 180cm가 안 되는 사람은 로리 하나였던 거에요. 그 사람 증조부였던 코난 맥닐리는 키가 180cm가 넘는 거인이었거든요. 대기근 당시 고리대금업을 했는데, 집에 돈은 많은데 먹을 게 없었던 거죠. 온 가족이 쫄쫄 굶고 있으니까, 코난 맥닐리가 아무 말 안 하고 어딜 혼자 찾아 간 거에요. 사람 고기 파는 곳을. 거기서 자기 왼팔을 잘라서 가족들 먹거리로 쓴 거죠. 맥닐리 집은 아직도 그때 코난 맥닐리 팔 잘랐던 칼을 가보로 간직하고 있다고 그래요.
그 집안 가풍이 그래요. 걱정 금지 좌절 금지. 대기근에 먹을 게 없는데도 뭐 어떻게 되겠지 하고 오래 키우던 소랑 거위랑 닭을 전부 다 잡아서 매일 고기국 해먹고 해맑게 낄낄 대다가 진짜로 먹을 게 없으니까 사람 팔을 잘라다 먹은 거죠. 웃기는 건 그 사람 고기를 노약자한테 준 게 아니라 팔팔한 남자들한테만 줬다는 거에요. 밖에서 먹을 걸 구해 올 사람들은 남자들이니까 남자부터 먹여야 한다고 그 집에 애랑 노인이랑 몸 약한 여자들은 아무것도 못 얻어 먹고 굶어 죽었대요.
로리 맥닐리는 태어날 때 왜소했거든요, 그 집이 세계관이 원래 약육강식 세계관이라 쭉정이는 안 키운다, 이런 철학이 있었단 말이죠. 그래서 밥을 안 줬대요. 도태되라고 버려둔 거에요. 고기 같은 거 키 큰 형들한테만 주고 로리는 남아서 버리는 개밥 같은 것만 주면서 키운 거죠. 그래서 키가 못 자란 거에요. 다른 형들이랑 똑같이 키웠으면 로리도 키가 평균을 웃돌았겠죠.
그렇게 차별받고 자랐는데 가풍은 고스란히 이어받아요. 집에서 고기를 안 주면 풀을 먹으면 된다, 집에서 풀을 안 주면 밖에서 풀 뜯어 먹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대요. 걱정 금지 좌절 금지가 DNA였던 거에요 그 집안 사람들에겐.
집에서 사실상 버린 자식이었는데 공부를 잘했대요. 밖에서 사람 패고 돈 뜯던 깡패 집안에서 처음 정상적인 지능을 가진 사람이 태어난 거죠. 그 전까지는 죄를 저지르고 감방에 가도 판결문을 이해 못하니까 뭘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건지 몰랐거든요. 그 집에서 로리가 처음으로 문명인 노릇을 하기 시작한 거에요. 집안 식구들이 하도 감옥을 제집처럼 들락날락 하니까 처음엔 변호사가 되겠다고 법대를 갔대요. 근데 워낙 무식한 집이라서 부모가 애 학업에 관심이 없었죠. 변호사가 돼서 뭐하느냐고. 그거 되면 밖에서 사람 패는 거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냐 이런 생각이었던 거죠. 변호사가 돼서 집안 깡패들 감옥에서 빼내줘도 인정 받기 어려울 거 같으니 로리는 대학을 때려 치우고 집안 사업에 뛰어들어요.
맥닐리 집에서 하던 사업 중에 영국산 양모를 싸게 수입해다 아일랜드에 비싸게 파는 게 있었거든요. 사채로만 사람 등처먹은게 아니라 바가지로도 사람 등처먹던 집이었어요 거기가. 근데 로리가 발상의 전환을 한 거에요. 바가지를 영국 놈들한테 씌우자고. 그 싸구려 양모를 표백해서 영국에 역수출한 거에요. 더 비싼 값에. 로리의 재능이 시작된 거죠. 쓰레기도 명품으로 둔갑시켜 팔아먹는 재주. 대상을 가리지 않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등처먹는 재주. 이때부터 로리 맥닐리는 맥닐리 비즈니스의 실세가 됩니다.
실세가 된 로리가 제일 먼저 한 건 돈을 빌린 거에요. 그때까지 돈을 빌려주는 사업이었잖아요, 근데 사채업으론 푼돈 밖에 못 번다, 크게 빌려서 크게 번다, 이게 사업 기조가 됐죠. 돈을 빌려서 땅을 산 거에요. 땅을 사서 소를 기르고, 양을 기르고, 감자를 키우고, 옥수수를 키우고, 길을 내서 절대 망할 수 없는 기업이 되겠다, 지금의 팜플러스가 된 거죠. 이 과정에서 로리는 나쁜 짓들을 했지요, 기존 땅 주인들의 땅을 뺏기 위해, 경쟁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사기 뇌물 공갈 협박 폭력 심지어 납치 살인도 저질렀죠.
그때 희생당한 사람 중 하나가 가브리엘 존스턴이었거든요, 아일랜드 최초의 유기농 사과를 팔았던. 지금은 아무도 모르지만 뉴스에도 난 사람이에요. 기적의 사과를 만든 기적의 농부라고. 농약 한번 주지 않는, 병충해에 자연 면역력을 가진 사과로 한때 유명했죠. 존스턴이 농약 알러지가 심한 사람이었어요. 농약 냄새를 맡으면 숨 쉬기가 힘든 천식 같은 증상이 있어서 자기는 농약을 뿌리지 않고 자생할 수 있는 농작물을 기르겠다, 그리고 30년 동안 사과 나무를 키운 거에요. 수백번을 실패하면서 깨달았대요. 비결은 흙에 있다고. 수십년 동안 흙을 만든 거에요. 농약 없이도 병에 걸리지 않는 슈퍼 튼튼한 식물을 만드는 흙. 존스턴 농장에 흙을 본 사람들이 그래요. 세상에 그렇게 새까맣고 기름기 가득한 흙은 본 적이 없다고. 사과도 엄청 크고 달고 향이 강했다는데 이제는 구경할 수 없는 전설의 사과가 됐죠. 아무튼 존스턴 농장이 그 지역 명물이었는데, 로리가 이곳에 농산물 집하장을 지어야 한다고 땅을 강제로 팔게 한 거에요. 지역 주민들이랑 공무원,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로리를 막았죠. 존스턴의 과수원은 절대로 없어지면 안 된다고. 집하장 다른 곳에 지으라고. 근데 로리가 그래요, 한번 마음 먹으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인간이거든요. 그래서 존스턴이랑 주민들에게 각서를 써요. 존스턴의 과수원은 그대로 유지하겠다, 그의 사과는 앞으로 팜플러스의 유통망을 통해 해외에도 수출될 것이다, 지역 사회를 위한 문화 시설을 세우고 사회 환원도 약속하겠다, 지금 땅을 파는 것이 모두를 위한 길이다, 그리고는 땅을 비싼 가격에 사들였죠. 땅의 소유권이 넘어가자마자 사람들을 배신합니다. 존스턴의 사과 나무들을 전부 베어 버리고, 땅에 시멘트를 부어 버려요. 농산물 집하장을 지어야 한다고 해놓고, 다른 데 더 입지 좋은 데가 생겼다면서, 그 땅을 중고차 업체에 임대 놓습니다. 중고차 업체는 몇 년 뒤에 망해서 나가고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오래된 시멘트 공터가 됐어요. 로리에겐 애당초 필요 없는 땅이었죠. 이유없이 고집을 부린 거에요. 원래 그런 인간이에요 뭐든 처음 마음 먹은대로 해야, 자기 계획대로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리곤 땅값을 너무 비싸게 쳐줬다고 생각했는지 존스턴에게 주기로 한 잔금도 주지 않고, 사회 환원 약속도 깡그리 어겼죠. 존스턴은 자기 인생을 바친 땅도 잃고 돈도 잃고, 나머지 생을 계약서에 명시된 잔금을 받기 위해 소송으로 세월을 탕진하다 홧병으로 죽습니다.
이때 저지른 짓들을 덮기 위해 팜플러스는 회사 이미지 세탁을 해요. 위대한 아일랜드를 위한 투자라고, 아일랜드를 위해 몸 바친 아일랜드 독립 운동 후손들을 위한 재단을 세워요. 후손들한테 돈도 주고 집도 주고 직장도 주고, 열혈 애국 기업으로 포장한 거죠. 시민 단체들이랑 언론사에 돈을 퍼준 것도 이때부터였어요. 돈으로 세상을 길들여서 평판을 조작한 거죠.
모든 게 계획대로였는데, 계획대로 아일랜드 천년왕국이 건설됐는데, 버크 오거닉스가 나타난 거에요. 버크 오거닉스는 팜플러스 유통망 밖에서 물건을 파는데, 물건이 너무 잘 팔린다는 거죠. 그냥 잘 만들어서 잘 팔리는 게 아니라, 제품 생산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게 문제 거든요. 팜플러스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난 거에요. 팜플러스 입장에선 지금껏 유통이든, 재료든, 종자든, 인프라든, 어느 하나만 막으면 이기는 게임을 해왔는데, 버크 오거닉스는 그게 하나도 안 먹히는 거죠. 종자도, 재료도, 모든 걸 자체 개발해 버렸으니까. 제일 무서운 건 버크 오거닉스의 생산 방식이 대세가 될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되면 팜플러스는 졸지에 과거의 재래식 비주류 기업으로 전락하겠죠, 지금 팜플러스의 젖줄인 유통, 임대, 재료 등이 전부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얘기죠.
지금껏 걱정 금지 좌절 금지 인생 철학으로 살아왔는데, 가만 보니까 지금 이 경우는 다른 거에요. 사람이 직감이란 게 있잖아요. 안 될 것 같다는 직감. 로리 맥닐리는 그걸 느낀 거에요. 버크 오거닉스의 등장에, 한번도 해 본 적 없는 걱정을 하게 된 거에요. 이번엔 내 마음대로 안 될 수도 있다는 본능적인 불길함. 그걸 난생 처음 느낀 거에요.
지금쯤 로리는 존스턴의 망령을 떠올릴 거에요. 그때 그런 짓을 저지른 게 업보가 된 것이 아닌가, 그 땅을 덮고 시멘트를 깐 게 저주가 된 것이 아닌가. 본인은 그런 미신 따위 믿지 않는다고 하겠지만, 로리가 점성술사 데리고 다니는 거 사람들 다 알거든요. 모든 결정을 미신쟁이 조언에 따라 내려요. 어쩌면 그때 존스턴 땅도 점성술사 말을 믿고 그랬던 것일 수 있죠. 미신은 또 다른 미신을 부르는 법이거든요. 배신이 또 다른 배신을 부르고, 불신이 또 다른 불신을 부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