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s files #9
브로디는 시골 초등학교를 다니다 더블린으로 전학을 갔다. 시골 학생들과 지적 수준 차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었다. 대도시 고등학교를 다니면 수준 차가 줄어들겠지 생각했으나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애당초 일반 학생들과 브로디의 지적 수준은 전학으로도, 월반으로도 좁혀지기 어려웠다. 

브로디는 학생들이 무식한 건 괜찮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교사들이었다. 브로디 입장에서 교사들과 학생들의 지적 수준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사들은 단지 일탈 행동을 하지 않을 뿐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담임이 브로디에게 물었다. 

대학 진학 관련해서 부모님하고 얘기해보았니? 

아뇨 아직. 그보다 대학 가는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 궁금한데요.

한 학기에 2000유로에서 3000유로 정도 들지. 그러니까 4년을 다니면 최소한 1만 6천 유로 든다고 봐야지.

가면 뭘 가르쳐 주나요?

뭘 가르쳐 주긴. 네가 배우고 싶은 과목을 여러 명이 돌아가면서 집중적으로 가르쳐 주는 거야. 가령 네가... 넌 대학 가면 뭘 공부하고 싶은데?

브로디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농업이요.

그래 네가 농업을 전공한다고 치자.

교사는 킥 웃다가 말을 이었다. 브로디 집이 농사를 짓는다는 사실을 아는 담임 교사로서는 사려 깊은 행동이 아니었다.

농업에도 여러 가지가 있잖냐? 가령 종자를 관리하는 것도 있겠고, 밭을 관리하는 것도 있겠고, 농기계를 관리하는 것도 있겠고, 유통이랑 마케팅, 내다 파는 것에 관한 것도 있겠고...

브로디가 중간에 말을 끊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고요, 대학에 가면 그런 거에 대해 세계에서 제일 잘 알게 되나요?

교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고 볼 순 없지. 그래도 대학에 있는 교수들은 최소한 너보다는 농업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그 사람들에게 많은 걸 배울 수 있다는 거지.

심각한 회의가 들었지만 브로디는 몇 가지 더 물어 보았다.

대학 졸업을 하면 취직도 시켜주는 건가요? 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돈을 벌 수 있는 건가요?

교사는 재미있다는 듯 대답했다.

그렇진 않아. 바로 돈을 벌 수 있는 전공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아. 공부를 더 해야 되는 경우도 있고 취업 준비를 따로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아무튼 대학은 너희들 인생을 책임져 주는 데가 아니야. 대학은 그냥 더 많은 지식을 쌓게 해주고 교양을 쌓게 해주고... 아, 그리고 무엇보다 인맥을 쌓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지.

브로디는 최소 1만 6천 유로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부어서 얻는 것이 알량한 지식과 교양, 그리고 어디 써먹을지 모를 인맥 뿐이라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보다 더 어이 없는 것은 그런 것들을 위해 4년이라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4년이면 지금 아버지 농장에서 250톤에 달하는 농작물을 생산할 수 있다. 4년이면 양배추 밭에 양배추만 키워도 11개 종의 양배추 30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말이 쉬워 30톤이지 지금 눈 앞에 있는 담임 교사가 평생 먹은 밥을 전부 도로 토해 내도 30톤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대학에 안 가면 무슨 불이익이 있나요?

담임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브로디같은 교내 성적 최우수자가 대학을 안 가는 것은 교사로써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다.

꼭 그렇...진 않아. 대학에 가지 않아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면 되는데... 대학 안가는 건 왜 물어 보는데?

브로디가 대답을 하지 않자 교사는 말을 이었다.

지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사회 상류층인 사람들, 그러니까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거의 다 대학을 나왔어. 대학을 나오면 그런 사람들 계층에 들어가기가 쉬워지는 거야. 그런 기회를 박탈 당한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불이익일 걸.

브로디는 대학에 가지 않기로 했다. 브로디에겐 “대학 졸업자”라는 사회 계층에 속하기 위해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는 게 더 큰 불이익이었다. 아버지는 자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더블린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 보낸 것이다. 아버지는 대학 교육이 어떤 것인지 몰랐던 것이다. 그저 ‘자식이 공부를 잘하니까 대학을 보내야지’라는 순진한 생각으로 아이를 도시로 보낸 것이다. 브로디는 아버지가 실망하지 않게 하려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했다. 아버지가, 무의미한 기대가 아닌, 현실적인 희망을 갖게 하려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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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디는 열로우카이트 병원 연쇄 살인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다. 지난 6개월 동안 이 병원에서 6명의 환자가 목숨을 잃었다. 처음엔 의료 과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누군가 고의로 환자의 생명 유지 장치에 손을 댄 것이었다. 

첫번째 환자가 죽었을 때는 담당 간호사의 과실로 오인, 해당 간호사가 기소되었다. 하지만 두번째 환자가 죽자 병원에선 이것이 과실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 병원 안에 있는 누군가 고의적으로 환자를 살해한 것이었다. 

병원의 CCTV는 출입구, 리셉션, 주차장, 엘리베이터, 일부 홀에만 설치돼 있다. 병실에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 환자 사망 당일 외부인의 출입은 없었다. 내부인의 소행이었다. 병원 직원이거나, 아니면 환자이거나. 

병원 건물은 다른 건물들과 다르다. 냄새가 쌓이지 않는다. 건물 안의 모든 일은 그날 그날 소독제에 의해 씻겨 버린다. 병원은 모든 냄새가 라이브다. 지금 건물 안의 인간과 미생물과 기계에 의해 실시간 냄새가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마지막 희생자는 투석 치료를 받던 환자였다. 밤 사이 누군가 투석기에 손을 댔고, 투석기는 오작동, 투석된 혈액에 발생한 기포로 인해 사망했다. 담당 간호사 외 지문은 발견되지 않았다. 담당 간호사는 알리바이가 있어 수사 대상에서 제외. 범인은 지문을 남기지 않은 것이다.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손에 뭔가를 끼고 투석기를 조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6건의 사망 사건 모두 같은 패턴이었다. 

지문은 남지 않았지만 발자국은 남겼을 것이다. 공중에 떠서 이동할 수는 없으니까. 휠체어를 타고 접근했을 수도 있지만 휠체어의 냄새는 없었다. 투석기 앞에는 희미한 발자국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병원 직원, 경찰, 검시관, 그리고 희생자의 냄새를 제외한다. 공적인 목적의 발자국이 아닌, 사적인 목적의 발자국을 구별한다. 환자 슬리퍼의 냄새가 있었다. 다른 발자국들은 도장 찍듯 분명한 흔적을 남겼지만 이 환자의 슬리퍼는 유령처럼 희미하고 투명했다. 

병원이 아니었다면, 위생에 힘쓰지 않는 장소였다면, 슬리퍼 냄새를 추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브로디는 슬리퍼의 흔적이 남은 자리에 한참 코를 대고 있었다. 슬리퍼에는 발냄새가 배기 마련이다. 슬리퍼를 끌고 여기까지 왔다면 슬리퍼 주인의 발냄새가 스며 나왔을 것이다. 동물은 오래 움직일수록 더 많은 분비물을 분비한다. 어떤 유전자를 갖고, 어떤 일을 했고, 방금 전 어디 있었는지, 자기 자신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흘린다. 

일인실에 입원한 환자였다. 이 환자는, 격리된 입원실에, 혼자, 오래 누워 있었다. 발자국의 냄새가 그렇게 희미했던 이유다. 발을 쓰지 않으니까, 사람과의 접촉이 없으니까, 발에서 스며 나온 냄새가 희미했던 것이다. 첫번째 살인이 발생한 이후 6개월 이상 일인실에 입원 중인 환자는 한명 뿐이었다. 

로만 스키퍼. 일년 전 뇌졸중으로 입원해 코마 상태에 빠진 환자였다. 6개월 전 의식이 회복됐으나 며칠 후 다시 코마 상태에 들어간 장기 입원 환자였다. 

병원에서는 “그럴 리 없다”고 했다. 로만 스키퍼는 사실상 식물 인간 상태며, 상태가 전혀 호전되고 있지 않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로만의 뇌 활성 사진을 수사관들에게 보여주었다. 몸을 움직이려면 이 부분이 활성화 돼야 하는데 지금도 여전히 6개월째 죽어 있는 상태라고. 특히, 그렇게 복잡한 기기를 조작하려면 뇌 전체가 완벽히 정상 작동해야 한다고. 

의사들의 설명은 브로디에게 의미가 없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로만 스키퍼였다. 그가 유일한 용의자였다. 브로디 입장에서 범인은 범행 현장에 지문을 남긴 것과 다름 없었다. 흐릿했지만 어쨌든 용의자와 정확히 매칭되는 지문이었다. “그럴 리 없다”는 말은 그들의 개인적 의견일 뿐이었다. 

브로디와 수사관들이 경찰서로 돌아가 이후 계획을 논의하던 중 손님의 방문을 받았다. 병원 간호사들이었다. 엘렌과 수지 2명의 간호사였다. 담당 환자가 살인 사건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오래 동안 경찰 조사를 받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로만 스키퍼가 범인으로 지목된 것에 추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경찰서를 방문한 것이었다. 

간호사들은 살인 사건으로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했다. 경찰에서 혐의가 없다고 했음에도 그래도 여전히 의사들은 간호사들을 의심했고 간호사들은 의사들을 의심했다. 기기를 조작한 솜씨가 웬만한 의료인 수준이기 때문이었다. 두 명의 간호사들은 로만이 깨어 돌아다니는 걸 봤다고 했다. 로만은, 의학적으로 코마 상태인지 몰라도, 한밤중에 깨어나서 돌아다니는 것이 확실하다고 했다. 엘렌은 몇 달 전 로만의 침대가 비어 있는 걸 봤다고 했다. 혹시 몽유병 같은 건가 싶어서 복도를 돌아보고 왔더니 로만이 다시 침대에 누워 있었다고. 수지는 로만이 밤에 슬리퍼를 신고 나갔다 돌아온 흔적을 여러 번 봤다고 했다. 그때마다 잘못 봤겠지, 착각이겠지 생각했는데 브로디의 말을 듣고 그게 착각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간호사들은 코마 상태의 환자가 일어나 돌아다닌 사례가 드물지 않다고 했다. 인간 뇌가 복잡해서 의학적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고 했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을 끝내고 싶다고 했다. 로만이 기소되면 법정에서 증언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로만은 기소되지 않았다. 로만이 범행 당시 사용한 슬리퍼와 위생 장갑 등 많은 증거들이 제출됐지만, 검찰은 병원 의사들의 “그럴 리 없다”는 증언을 더 믿었다. 경찰에서는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로만의 병실에 경보기를 설치했다. 병원의 근무 외 시간에 로만이 병실 밖을 나가면 경비와 당직자, 그리고 경찰이 출동하기로 했다. 하지만 경보기는 울리지 않았다. 로만이 며칠 뒤 죽었기 때문이다. 

로만 스키퍼는 운수업을 운영하는 사업가였다. 그는 사회적 기준에서 “선량한 사람”이었다. 그는 우수 납세자로, 기부 천사로, 여러 번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일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6개월만에 기적적으로 회복했는데 당시 그를 찾은 사람은 회사 직원들 밖에 없었다. 그가 가족들과 어떻게 연이 끊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어떻게 다시 코마 상태에 빠졌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정말 알 수 없는 건 그가 왜, 어떻게 사람을 죽였느냐는 거였다. 대뇌가 깨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척추 신경의 작용만으로, 몸을 그토록 정교하게 움직여, 사람들을 죽였다는 게 가장 이상한 점이었다. 몽유병 나이트메어 버전이었을까. 로만 스키퍼의 무의식은 무엇 때문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었기에, 식물인간 상태에서 연쇄 살인마가 된 것일까. 

엘렌 간호사는 로만이 최근 10년 동안 병원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었다고 했다. 심혈관 질환으로 병원에 자주 입원하는 동안 환자들의 생명 유치 장치에 익숙해진 것이 아닌가, 그런 기계들을 가까이서 자주 보다 보니 한번 만져 보고 싶었던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고 했다. 

로만은 무료했던 건지 몰랐다. 아무도 찾아 오지 않는 일인 병실에서 혼자 죽을만큼 심심했던 것일지 몰랐다. 뇌가 잠든 상태에서조차, 그의 몸은 무료함에 치를 떨었던 건지 몰랐다. 

우수 납세자, 기부 천사 로만 스키퍼는 사회적 가면이었고, 그의 본심은 다른데 있었던 것인지 몰랐다. 그의 뇌가 작동하지 않는 틈을 타 본심이 작동한 건 아닐까. 억눌렀던 욕구가, 자연 본능이 깨어난 건 아닐까. 그게 로만의 살인 동기 아니었을까. 

동물은 생존을 위해 다른 개체를 희생시키도록 설계됐다. 생존을 위해, 번식을 위해, 재미를 위해, 다른 생명을 해치는 것이 동물의 태생적 삶의 방식이다. 브로디는 로만 스키퍼가 과연 예외적인 사례일까 궁금했다. 그가 과연 예외적 불운에 의해, 예외적 악마적 본성 때문에 연쇄 살인마가 된 것일까. 혼수상태였다는 변명를 제외한다면, 로만 스키퍼가 지금껏 다른 범죄자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다른 점이 있긴 한 것일까 궁금했다. 

작품 등록일 : 2026-03-10

▶ Brody’s files #10

▶ Brody’s files #8

오.
어떻게 코마상태에서 간헐적으로 깨서
살인을 저질렀을까?
Kelly   
와....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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