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런 월시.
그의 어머니는 영국 웸블리 구장의 티켓 판매원이었다. 암표상과 거래한 것이 들통나 전과 기록을 세운 뒤 실직자가 됐다. 그때가 임신 5개월. 직장을 구하기 위해 아일랜드로 건너 왔으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고, 웩스포드의 공립 보건소에서 갓 낳은 아들을 버린 채 도주했다. 이후 알코올 중독자로 살다가 쿨록에서 행상인에게 살해당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대런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대런은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었다. 고아원 시절 보육사가 남긴 빵을 훔쳐 먹다가 몹시 얻어 맞은 뒤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법을 익혔다.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상대방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 얼굴에 스치는 근육의 움직임과 손가락의 의미없는 동작으로 그 사람이 곧 어떤 행동을 취할지 알 수 있었다. 고아원 보육사가 자신의 뺨을 후려치기 전에 왼쪽 눈 밑에 주름이 인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로 그는 인간의 행동이 얼마나 많은 예비 신호와 연결돼 있는지 배우기 시작했다.
주먹을 쥘 때, 손바닥을 휘두를 때, 왼쪽으로 눈을 돌릴 때, 오른쪽으로 걸음을 옮길 때, 서두를 때, 느긋할 때, 왼쪽 무릎 관절염이 도질 때, 그때마다 대런은 어깨의 움직임, 척추의 기울기, 근육의 수축, 피부의 진동을 보았다. 수년 간의 관찰을 통해 그 중 어느 것이 특정 개체의 버릇인지, 어느 것이 종 전체의 일반적 패턴인지 익혔다.
6살 때 고아원을 나온 대런은 12살까지 소매치기로 먹고 살았다. 그는 사람의 걸음걸이나 서 있는 자세로 빈틈을 파악해 지갑을 털었다. 적성에 잘 맞는 사업이었으나 자신의 존재가 동종 업계에 알려지자 미련없이 그만두었다. 그는 애당초 소매치기가 평생 직업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대런은 이후 유통업자가 되었다. 뒷골목 유통업. 불법 약물과 총포류가 주요 품목인 이 사업은 무역항과 도심 슬럼가를 오가는 고된 직종이었다. 사망률과 검거율이 워낙 높아 누구도 1년 이상 살아남지 못한다는 이 사업을 그는 10년 가까이 운영하며 단 한번의 전과 기록도 세우지 않았다. 그가 경찰에 붙들린 것은 22살 때 딱 한번이었는데 그가 부주의했기 때문이 아니라 경찰이 그를 다른 절도범으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대런을 조사했던 더블린 캐슬녹 경찰서의 존 리스 경위는 그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대런 월시. 사지가 둥글둥글한 도롱뇽 같은 체형. 왜가리를 연상시키는 텅 빈 감정 없는 눈동자. 용의자와 다른 인물이지만 전형적인 범죄자의 프로필. 체포 당시 억울하거나 놀란 표정이 아니라 기회를 훔치려는 의도 역력. 경찰서에 들어서자마자 건물 구조를 샅샅이 훑고 경찰의 표정과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는 모습. 은행을 털기 위해 사전 방문한 강도 같은 모습.
대런은 캘러핸 경감의 장기 미제 사건의 주인공 중 한명이었다. 3년 전 세인트 조지의 폐건물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이었다. 건설사의 파산으로 개발이 중단된 상가 3층에 2구의 시체가 있었다. 한명은 요가 자세로 누운 채 얼굴이 반파돼 있었고, 다른 한명은 무릎을 꿇고 배를 움켜 쥔 채 죽어 있었다.
경찰은 사건 현장을 방문한 제3의 인물이 있음을 알았다. 이곳에 버려진 샷건은 부품을 모아 조립한 사제 총기였다. 사망한 두 사람 모두 이 총기와 관련이 없었으며 누구의 지문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총기를 가져온 제3의 인물이 있었고, 두 사람보다 먼저 이 자리에 와 있었다고 추정했다.
브로디는 현장에서 발견된 샷건에서 그을음 냄새를 맡았다. 탄소는 연소되는 방식에 따라 수천가지 다른 냄새를 풍긴다. 사제 총기의 기능상 문제였을까? 총기의 문제가 아닌 탄약의 문제였을 것이다. 탄약에 습기가 있었을 것이다. 비를 맞은 것 같진 않았다. 탄약은 차가운 곳에 있었을 것이다. 온도 차에 의한 결로 현상이었을 것이다. 그게 탄약을 불완전 연소케 한 냄새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브로디는 범인이 무기를 냉동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냉동 창고에무기를 숨겨 놓고 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썼기 때문에 총이 비정상 격발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인근 냉동 창고에 범인의 비밀 창고가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경찰은 잠복 근무 끝에 세인트막스 근방 냉동 창고에 출입하는 대런을 발견했다.
이후 한달 동안 경찰과 대런은 지루한 숨바꼭질 추격전을 벌였다. 대런은 경찰의 추격을 뿌리치며 자신이 그동안 사회에 남긴 흔적을 하나씩 지웠다.
대런은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지금껏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인생을 살았다. 그는 고아원에서 5번이나 입양이 거절된 뒤로 소속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그는 친어머니의 행방을 알았지만 찾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가 잉여의 삶을 생산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남이 만들어 준 삶은 살지 않기로 했다.
대런의 신출귀몰한 행적에 경찰은 속수무책이었다. 그와 거래했던 마약상과 무기상들을 조사했으나 이들은 모두 대런을 서로 다른 인물로 기억하고 있었다. 대런은 친구도, 동업자도, 부하도, 단골도 두지 않았다. 신분을 밝혀야 할 때마다 지인 혹은 동업자로 위장했다. 그에게 사회적 신분은 사회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한 위장이었고, 이에 근거해 수사하는 경찰은 매번 낭패를 보았다.
대런의 흔적들이 거의 다 사라져 갈 때 쯤, 브로디는 대런이 씹는 물질의 정체를 알아냈다. 카트Khat. 서남 아시아에서 재배되는 각성 식물. 유럽 거의 모든 지역에서 향정신성 물질로 지정된 카트는 아일랜드에선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거래되고 있었다. 각성 효과는 물론 허기로 인한 체력 저하도 막아주는 카트는 대런처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장시간 잠행해야 하는 범죄자를 위한 최상의 식물이었다.
핀그라스 가 공중 화장실의 카트 은닉 장소에 경찰이 나타났을 때 대런은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앞서 경찰에게 급습당한 창고와 이곳은 지난 10년간 한번도 다른 이의 눈에 띈 적이 없었다. 두번이나 자신의 행적이 발각됐다는 것은 더 이상 현재의 삶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대런은 불법 총기류와 마약 소지죄로 기소됐다. 대런이 더블린 경시청에 잡혀와 심문 받을 때 브로디는 대런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브로디는 대런에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브로디는 대런을 바라 보며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체내 구성 물질을 훑었다. 브로디는 대런이 누군가에게 도움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거 없는 직감이었지만, 브로디는 대런이 도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런은 자신이 어떻게 붙잡혔는지 알고 있었다. 대런은 브로디가 자신을 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에 대해 알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알고도 말 하지 않는 자는 권위를 갖는다. 대런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런은 마약 소지 및 운반죄로 징역 9개월을 선고 받았다. 브로디는 감옥에 가는 대런에게, 자신의 명함과 함께, 책을 하나 주었다. "동물은 왜 식물로 진화하지 못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9개월 뒤. 대런의 만기 출소 당일, 대런은 버크 오거닉스의 본사로 향했다. 그는 자신이 앞으로 생존할 방법은 이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여전히 소속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하지만 살고 싶었다. 다른 이의 명령에 의해 사는 삶이라 하더라도 배고플 때 밥을 먹고 졸릴 때 잠을 자고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다면 그는 그렇게 살고 싶었다. 비록 가끔 이것이 원하던 삶이 아니란 생각이 들더라도, 착한 여자를 만나, 휴일에 가끔 공원에 누워, 함께 도시락을 먹을 수 있다면, 그는 그렇게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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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왜 식물로 진화하지 못하는가"
이 도발적 제목의 책은 아일랜드의 생물학자 콤 메이시의 1988년 저서였다. 메이시는 원래 곤충학자였으나 1980년대 중반 아프리카 남단의 핀보스 초목지 생태 연구원으로 활동한 뒤 식물의 매력에 푹 빠져 여러 권의 식물학 저서를 출간한 식물학자로 이름을 알렸다. 메이시는 학계의 이단으로 불릴 정도로 급진적 내용의 논문과 저서를 다수 냈는데 "동물은 왜 식물로 진화하지 못하는가" 책은 그 중 하나였다. 이 책에서 메이시는 식물의 삶의 방식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피력하는데 300 페이지 이상을 할애했다.
.............식물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생존률이다. 동물은 종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끔찍할 정도로 많은 수의 개체를 희생시킨다. 훔볼트 오징어의 경우 한번에 100만개에 달하는 새끼(수정란)를 '방출'하는데 이 중에 성체가 되는 것은 100마리도 되지 않는다. 바다 거북은 번식기에 한마리의 암컷이 500개에 달하는 알을 낳는데 이 중에 살아서 바다에 도착하는 수는 10마리 남짓이며 이 중 성체가 되는 것은 굉장히 운이 좋아야 1마리다.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새끼를 낳으면 포식자들은 먹기 위해 죽이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놀기 위해 죽이며, 워낙 많은 수가 쏟아져 나오다 보니 일부는 불구로 태어나 쓰레기처럼 썩기도 한다.
.............인간 역시 농경 사회가 시작된 후 18세기까지 평균 수명이 30세에 불과했으며, 6세 이하 유아 사망률은 거의 항상 40% 이상을 기록했다. 워낙에 많은 수가 죽다 보니 유럽은 19세기까지도 도심에 거대한 구덩이를 파고 당일 죽은 시체들을 한꺼번에 묻어 버리는 장례 문화를 유지했다. 유럽에서 자신만의 묘지를 갖는 것은 최상류층에서나 누릴 수 있던 호사였으며, 모차르트처럼 명망 있는 중산층조차 이름 없는 구덩이에 쓰레기처럼 매립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절대다수의 식물은 종의 생존을 위해 개체를 희생시키지 않는다. 식물은 자신에게 맞는 환경이 아니면 번식하지 않으며, 번식을 해 씨앗을 뿌리더라도 싹을 틔우지 않는다. 이른바 "출생 선택권"을 가진 식물들은 동물처럼 의미없는 떼죽음을 당하지 않는다... 식물이 떼죽음을 당하는 때는 산불과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 뿐인데,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의 식물들은 뿌리 몸통을 만들어 놓거나 불에 의해 씨앗을 방출하는 기능을 만들어 예기치 못한 재난 뒤에도 의연하게 생명을 이어 간다.
.............'생존의 질'로 보더라도 동물은 식물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참혹하다. 자연계 동물의 절대다수는 사는 것이 지옥이며 고문이다. 자신의 선택과 상관없이 '강제로' 세상에 태어난 동물들은 죽음으로 영원한 안식을 얻기까지 굶주림, 질병, 중독, 기생충, 극단적 기후, 포식자의 위협, 동족 간의 경쟁 갈등, 이지메에 시달려야 한다... 아프리카에 사는 야생 수컷 침팬지는 암컷으로부터 새끼를 빼앗아 머리를 깨 죽이는 잔인한 습성을 갖고 있는데 이는 "생존 스트레스"의 단면으로 해석된다. 새끼가 자라 가까운 장래에 자신과 먹이(혹은 암컷)을 두고 경쟁할 것을 생각한다면 생존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동족 살해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이런 동족 살해 습성은 설치류에서부터 돌고래까지 거의 모든 야생 포유 동물들에게서 발견되는데, 자원이 풍족한 시기에도 발생하지만, 먹이 부족에 시달리는 빈곤의 시기엔 수많은 새끼들이 성체에 잡아먹히는 동종 간 대살육의 참극이 벌어진다.
.............인간이라고 생존 스트레스의 무게가 덜 한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 암모니아 화학 비료에 의한 농업 혁명이 일어난지 70여년이 지났음에도 세계 인구의 태반은 아직도 영양실조 상태이며 이중 또 절반은 기아에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상하수도 보급률은 1980년 기준 20%를 조금 넘겼을 뿐, 절대다수의 세계 인구는 아직도 상상하기 어려운 더러운 환경에서 각종 전염병에 시달리다 생명을 잃고 있다. 화학 비료와 상하수도의 개념조차 없었던 전근대 시대에는 전세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수천년 동안 상위 0.1%의 지배자에게 수탈을 당하는 "노예 생활"을 해야 했다. 이들은 먹고 살기 위해 평생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농사를 지었는데 수확된 작물의 대부분을 지배 계층에게 빼앗기고 지속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려야 했다. 이들은 농사를 짓느라 눈코 뜰 새 없는 중에도 야생에서 따로 식량을 구해 와야 했으며, 이 때문에 영양 과잉으로 일반인보다 2배 더 육중한 체격을 유지했던 지배 계급에 감히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식물은 생존 스트레스가 닥칠 경우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생장 활동을 멈추거나, 신체의 일부를 포기하거나, "자살"을 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다. 환경의 변화로 땅의 성분이 바뀔 경우, 기후 변화로 강수량이 급격히 달라질 경우, 감당하지 못할 새로운 종류의 곰팡이나 병충해가 발생할 경우, 식물은 각자의 선택에 따라 과감하게 생명을 포기해 고통의 기간을 완전하게 단축시킨다.
.............아직도 사람들은 동물이 식물에서 진화한, 식물보다 우수한 고등 생명체로 알고 있는데 이는 가장 멍청하고 무식한 착각이다. 지구상 최초의 생명체는 다른 유기물을 "잡아 먹는" 동물 세포였으며, 그 뒤로 5억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광합성으로 양분을 생산하는 식물 세포가 탄생했다. 동물과 식물은 서로 완전히 다른 진화의 과정을 거쳤으며, 식물은 언제나 동물 진화의 무모한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오늘날 지구의 주류 생명체인 속씨 식물은 중생대 중엽인 1억 2천만년 전에서야 처음 등장했으며, 오늘날과 비슷한 형태의 꽃식물은 신생대 중엽인 6천만년 전에서야 지구에 처음 등장했다.
.............동물의 끝없이 비극적인 삶의 방식을 개선시키기 위해 우리는 식물의 삶을 답습해야 한다. 식물의 "출생 선택권"이 실제 가장 필요한 기능인데 이는 동물의 생식 구조상 불가능하다. 현재 동물계 비극의 핵심 원인은 양육이 불가능한 빈곤한 환경에서, 종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더 많은 잉여 자손을 생산한다는 점이다… 빈곤한 환경이 닥칠 경우 성적 능력을 감퇴시키는 장치가 필요하다. 우리 인류는, 과학의 힘을 빌어, 빈곤에 의해 더 많은 개체를 생산하는 야생의 욕구를 억제하는 물질을 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