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s files #83
…정부는 갠지스 교도소 폭발 사건을 테러 행위로 규정하고 배후를 찾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갠지스 교도소 폭발 사건 사망자 수는 4명으로 늘어났으며, 중상자들이 있어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 사건으로 사망했던 것으로 알려진 로리 맥닐리는 행방이 묘연한 상태입니다. 일각에선 그가 이번 테러를 배후 조종했으며, 본인의 사망을 연출하기 위해 교도소 관계자를 매수했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갠지스 교도소는 석상병 유행 이후 아일랜드에 지어진 교도소였다. 왜 교도소 이름에 인도의 강 이름을 붙인 것이냐는 의문이 많았다. 갠지스라는 고유 명사에 다른 중의적 의미는 없었다. 원래 뜻 그대로 “인도인들은 갠지스 강에서 죄를 씻고 영혼을 정화한다”는 의미로 지은 것이었다. 아이러니는 갠지스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들은 교화의 가능성이 없는 범죄자들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연쇄 살인, 방화, 테러, 내란 등 30년 이상의 형이 확정된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이 갠지스 교도소 수감자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 중 가장 유명했던 이가 로리 맥닐리였다. 영국에서 압송된 로리 맥닐리는 기소 3개월만에 공무집행 방해, 살인 교사, 테러, 내란 획책 등의 혐의에 유죄가 확정, 종신형 선고를 받고 새롭게 문을 연 갠지스 교도소의 대표 수감자(poster boy)가 되었다. 

형 확정 후 아일랜드 정부는 로리 맥닐리의 범죄 행위를 낱낱이 공개했다. 지난 40년 동안 로리 맥닐리는 10건이 넘는 납치 살해, 15건의 살인 교사, 150건이 넘는 사기 협잡, 80건이 넘는 뇌물 수수 등의 범죄를 자행했으며, 최근 10년 사이 인간 정신을 지배하는 생체 기술을 이용, 공공기관 및 공무집행원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며 국가 전복을 모색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아일랜드 정부는 석상병이 로리 맥닐리에 의해 주도된 테러극이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공개했다. 그리고 정부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그에 관한 반박 불가한 증거들을 열거했다. 

- 영국 유통 기업 “세르게이디포 Sergey’s Depot”는 로리 맥닐리가 비밀리에 소유한 생체 실험 조직. (관련 서류 이미지) 
- “세르게이디포”는 유럽 해안 곳곳에 정박된 관광용 선박에서 불법 생체 실험 자행. 이 실험에 사용된 곰팡이가 석상병 곰팡이와 동일종. (관련 증거 이미지)
- 세르게이디포에서 사용된 곰팡이와 석상병 곰팡이는 같은 형질을 공유하는 형제. 둘 다 인간의 뇌를 에너지원으로 삼고 꽃가루를 통해 번식. 
- 세르게이디포 곰팡이는 생물학적 세뇌 도구로 이용 가능 - 인간의 자율 사고를 없애고 강제적으로 주입된 지령을 따르게 함. 테러와 살인 등 범죄적 목적의 생체 병기를 만들기 위해 개발된 미생물종. 
- 15건의 살인 교사 건에서 본 바와 같이 로리 맥닐리는 수십년 간 청부 살인 조직을 운영하며 초법적 테러 행위를 저질러 옴. 이 초법적 테러 행위를 보다 자유롭고 광범위하게 자행하기 위해 미생물 세뇌 기술에 투자. 
- 석상병 곰팡이는 세르게이디포 곰팡이의 “범용적” 변종. 세르게이디포 곰팡이는 인공적 환경에서만 배양-이식할 수 있으나, 석상병 곰팡이는 자연 환경에서 자생적으로 번식 가능. 
- 석상병 곰팡이는 로리 맥닐리의 야심을 이루기 위한 생물학 무기. 한 나라 전체 구성원의 기억과 자율 사고를 제거, 이들의 정신을 백지 상태로 만들어 특정 명령에 따르게 만들기 위함. 
- 로리 맥닐리와 그의 조력자들은 석상병 곰팡이가 1) 백인종에게 주로 감염된다는 사실, 2) 감염자들에게서 예측불허의 폭력성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임.
- 세르게이디포 소유 선박에서 석상병 곰팡이 프로토타입, 석상병 곰팡이에 감염된 인간을 조종할 수 있는 호르몬 물질 발견. (관련 증거 이미지.) 
- 로리 맥닐리의 목표는 영국 정복이었음. 20대 때 맥닐리 집안 사업에 처음 참여했을 때부터 그는 “영국 시장을 다 먹는 것이 목표”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옴. 로리 맥닐리는 다수의 가상의 영국인을 내세워 영국 부동산 및 물류/통신 사업체를 광범위하게 매입, 영국 내 실물 경제 지배력을 강화해 왔음. (관련 진술 및 증거 이미지) 
- 로리 맥닐리는 1980년대부터 영국 정재계에 막대한 로비 자금을 투자했으며, 영국 측의 환심을 사기 위해 IRA 조직원 정보를 밀고해 왔음. (관련 진술 및 증거 이미지) 
- 로리 맥닐리는 자신이 석상병 테러 계획을 은폐하기 위해 석상병 곰팡이가 브로디 버크의 버크 오거닉스에서 개발됐다는 허위 사실을 조작, 이를 영국 유력 정치인들에게 밀고함. (관련 진술 및 증거 이미지) 
- 로리 맥닐리는 자신의 석상병 테러 계획을 은폐하기 위해 다수의 살인 교사를 주도함. 세르게이디포 곰팡이의 원형을 개발한 중국의 과학자를 살해하고, 버크 오거닉스 재직자와 가족 다수를 살해한 것도 로리 맥닐리의 증거 은폐를 위한 계략이었음. 
* 여기 공개된 수사 결과는 아일랜드 정부와 영국 정부의 공동 수사 결과이며, 동일한 증거 자료와 수사 결과를 영국 정부에서도 확인 가능함. 

갠지스 교도소의 로리 맥닐리는 외부와 소통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다. 공무집행 방해 전력이 있는 인물이었기에 로리 맥닐리는 특별 관리 감독 하에 있었다. 교도소에 출입하는 모든 것을 정부 요원이 직접 모니터링 했으며, 교도소 내 시설을 직접 감시하는 CCTV를 따로 설치했다. 그런 상태에서 누가 어떻게 교도소 인사를 매수하고 폭탄 테러를 자행했는지, 알 수 없었다. 

모든 뜻밖의 사건이 그러하듯 로리 맥닐리의 탈옥에도 음모론이 횡행했다. 가장 큰 관심을 끈 음모론은 영국 정부의 계략이라는 음모론이었다. 사고를 위장해 로리 맥닐리를 중국으로 보냈다는 것이었다. 아일랜드 정부를 믿지 못한, 로리 맥닐리가 감옥에서 천수를 다하는 걸 두고 볼 수 없던 영국 정부가 중국에 로리 맥닐리를 팔아 넘겼다는 것이었다. 석상병으로 국가 존속이 힘들어진 영국의 마지막 보복이었다는 것이었다. 

현실성 없는 음모론이었음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다. 이들의 음모론을 뒷받침 하는 유일한 사실 근거는 중국에 로리 맥닐리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청두의 “사천건민의학과학원” 직원들이었다. 이곳 직원들은 수년 전 이곳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주범으로 로리 맥닐리를 지목하고 있었다. 지난 일년 간 이들은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 측에 로리 맥닐리의 신병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그가 중국 인민에게 죄를 지었으니 중국에서 처벌 받게 해달라는 요구였다. 

======================

…정부는 북아일랜드 일대를 공포로 몰아 넣었던 석상병 군집 “영장류the apes”가 궤멸됐다고 발표했습니다. 벨파스트 도심 감염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영장류”는 지난 1년 간 벨파스트 공항과 부두를 중심으로 살육 약탈 파괴 행위를 지속하며 북아일랜드 전역에 심대한 피해를 주었습니다. 이들을 타격하기 위해 지난 1년 간 2개 대대에 준하는 군병력이 투입됐으나 별다른 소득 없이 대치 상황이 지속돼 오다 최근 아일랜드 정부에서 조직한 특수 부대에 의해 제압되었습니다.

특수 부대가 없는 아일랜드에 처음 결성된 특수 부대가 있었다. “테러 진압 부대”라고만 알려진 이 특수 부대는 정신지배 실험체들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수년 전 정신지배 실험체들로 인한 피해가 통제불능으로 치닫자 이들의 행태를 연구하는 부서를 신설, 실험체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 연구 부서는 정신지배 실험체들의 약점을 “지나치게 예민한 감각”으로 파악했다. 대뇌 기능이 축소되면서 다른 신체 신경 조직이 과대화 되는 경향을 확인, 이를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방식이었다. 

“영장류”는 “실버”라는 알파를 중심으로 뭉친 군집이었다. “실버”는 항공사 엔지니어였다. 그의 증상이 발견된 건 그가 시운전 중이던 여객기 제트 엔진에 스패너를 던져 넣었을 때였다. “항공사 직원의 항공기 폭파 시도”라고 대서특필 된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실버는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실종되었고, 그 후 일년 뒤 자신의 버섯뇌 무리를 이끌고 돌아와 벨파스트 공항을 점거했다. 몸이 은빛 지의류로 뒤덮인 것이 특징인 실버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장류” 군집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 상당수가 “도구”에 의해 치명상을 입었다. “영장류”는 단순히 도구를 들고  휘두르는 게 아니었다. 이들은 물리 법칙을 이용했다. 물체 움직임의 정확한 타이밍을 읽었다. 어떻게 물체가 굴러가고 날아가고 착지할 것인지 정확히 예측하는 능력이 있었다. 

수십미터를 날아온 강철 파이프가 콘크리트 벽을 맞고 튕겨 사람 머리를 박살냈을 때 사람들은 순전히 “사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번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날아온 물체가 정확히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것을 보고 이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깨달았다. 귀신에 씌인 것 같았다. 물체들이 절로 움직이며 사람들을 살해하는 것 같았다. “영장류”를 진압하는 군인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도구가 날아와 사람을 죽일지, 무엇이 어떤 연쇄 반응을 일으켜 목숨을 위협할지 알 수 없었다. 

도구를 사용하는 “영장류”의 능력이 “실버”의 전생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테러 진압 부대”에게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그들은 과학자가 아닌 집행자였다. 풀고 이해하고 생산하는 직종이 아닌, 막고 때리고 파괴하는 직종이었다. 테러 진압 부대가 알아야 할 것은 증상발현자들 각자의 개성이 아닌 그들의 공통된 취약점이었다. 

테러 진압 부대는 증상발현자들이 특정 주파수 음향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테러 진압 부대는 음파 발생기를 주무기로 사용했다. 여기서 발생시킨 음파로 증상발현자들의 주의를 흐트러뜨렸다. 증상발현자들에겐 대뇌 학습 능력이 없었기에, 음파를 이용한 반사 신경 자극은 100% 예측 가능한 반응을 유도할 수 있었다. 

질서와 혼돈의 전쟁이었다. 예측 불가능한 대상에 맞대응 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에게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강제하는 것이었다. 공격과 방어에 매번 다른 타이밍, 다른 종류의 음파가 감염자들의 반사 신경을 자극했다. 예측 가능했던 이들이 예측 불가능해졌고, 예측 불가능했던 이들이 예측 가능해졌다. 혼돈은 질서에 의해 무너졌다. 

테러 진압 부대의 신무기에 “영장류”는 제압 당했다. 실버 포함 200이 넘는 증상발현자들을 제거하는 동안 진압 부대 손실은 6명 뿐이었다. 이날은 북아일랜드 해방의 날이었다. 영국의 천년 지배를 받아온 북아일랜드가 예상치 못한 시기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아일랜드에 통합되었다. 

아일랜드는 테러 진압 부대에 열광했다. 아일랜드 곳곳을 공포로 몰아 널었던 정신지배 실험체를 전멸시킨 것도, 이 실험체들을 생산하던 선박 기지를 파괴한 것도 이 테러 진압 부대였다. 혼란의 시기 사회 안정을 도모하던 군사 조직은 이제 “정복 전쟁”의 최전선에 섰다. 좁고 우울한 아일랜드의 고향 섬을 넘어 대륙 진출을 꿈꾸고 있었다. 

아일랜드의 수많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테러 진압 부대에 지원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테러 진압 부대원이 누구인지, 어떻게 선발되는지, 어디에서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테러 진압 부대에는 공식 명칭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들을 “킬러”, “해방군”, “구원자” 등으로 불렀으나, 부대원들은 스스로를 “브로나의 자식들 Sons of Brona”이라고 불렀다. 

======================

장진졔는 불교의 고통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불교에 선악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선악의 개념은 구름과 바람처럼 모호하지만 고통의 유무는 빛과 그림자처럼 명확하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그는 량이 씨가 병원을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깊은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그는 량이 씨의 말을 되새겼다. 분노하고 혐오해서 해결되는 일은 없다고. 왜 그런 일이 발생하는지 과학의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장진졔는 장원보의 연구소를 습격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가 장원보에게 느낀 것은 분노도 혐오도 아니었다. 그가 장원보에게 느낀 것은 측은지심이었다. 장원보는 공안 손에 붙잡히길 바랐을 것이다. 공안에게 잡혀 간다면 형식적인 법적 명분을 이행한 후 본인이 하고 싶었던 연구를 계속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산당에 적극 협조해 그들이 원하는 연구 결과를 제공한다면 과학자로서의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뜻대로 풀리지 않는 법. 장진졔와 그의 동료들은 장원보가 위험 인물이라고 판단했다. 그들은 원한이나 복수심이 아닌, 인민의 안전을 위해, 사회의 안정을 위해 장원보의 지위를 박탈하기로 했다. 

공식적으로 장원보는 실종 상태였다. 그는 처음부터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장진졔와 그의 동료들이 급습한 신장 어딘가의 정육점 건물에 장원보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가 어디로 갔는지, 어디에 있는지도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다만 그가 지금껏 어떤 종류의 정신지배 연구를 진행해왔으며, 그 연구가 어디에 적용돼 어떤 결과를 빚었는지, 그리고 그걸 누구에게 비밀리에 판매했는지만 알려진 것이었다. 

공안 입장에선 장원보의 존재 여부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학문적 업적”이 중요했다. 그의 학문적 업적이 어떤 기술적 혹은 경제적 결과를 낳았는지가 중요한 것이었다. 그들은 장원보가 살해되었을지 모른다는 유력한 정황 증거를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았다. 그들은 별다른 의심이나 거리낌 없이 장원보를 실종 처리해 버렸다. 

로리 맥닐리도 그랬다. 공안에게 로리 맥닐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혹은 존재할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로리 맥닐리의 입국에 대해 정보를 얻은 것은 아일랜드의 어느 종교인으로부터였다. 자신을 점성술사라고 소개한 아일랜드 인은 로리 맥닐리의 밀입국 정보를 중국 정부와 사천건민의학과학원 직원들에게 알렸다. 이 정보를 관심있게 받아 들인 쪽은 사천건민의학과학원 직원들이었지 공안 당국은 아니었다. 

장진졔는 로리 맥닐리가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장진졔는 맥닐리가 매수한 중국 사업체들과 이야기를 마친 상태였다. 그들은 맥닐리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나머지 돈을 받기로 돼 있었다. 장진졔는 그들에게 그것이 위험한 돈이라는 사실을, 그 돈을 지금 포기하는 것이 그들에게 전적으로 이익이라는 사실을 이해시켰다. 

장진졔는 맥닐리에 대해서도 같은 마음을 품기로 했다. 그를 벌하는 건 인민들이지 자신이 아니란 사실을 다시 한번 마음 속에 새겼다. 

맥닐리의 경호원들은 장원보의 실험체들과 같은 패턴을 보이고 있었다. 이들의 움직임을 처음 본 사람들은 당황하기 쉽지만 이들이 정상인들과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경호원들은 처음 보는 무기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건 눈속임일 뿐이었다. 무기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 인간의 몸에 의해, 인간의 의도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다. 경호원들은 인간의 뇌를 잃었지만 여전히 인간의 의도를 따르고 있었다. 이들은 자연물이 되는 법을 알지 못했다. 물처럼, 벼락처럼, 때리고 빠지고, 베고 흐르는 법을 알지 못했다. 

장진졔의 동료들은 경호원들을 앞세워 놓고 몰래 달아나려는 로리 맥닐리를 붙잡았다. 그들은 원래 장진졔를 도울 계획이었다. 경호원들을 붙잡아 결박하거나 필요하다면 죽일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은 달빛 아래 번득이는 칼의 움직임에서 형언하기 힘든 아름다움을 느꼈다. 저토록 간결하고 단호한 연속 동작을 또 본 적이 있을까. 그들이 장진졔에 대해 아는 건 뜬소문이 전한 이야기들 뿐이었다. 장진졔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알려준 것은 그의 말없는 움직임이었다. 겨우 몇분 가량의 굵고 강렬한 움직임에 장진졔를 둘러싼 무수한 말들은 삭제돼 버렸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들은 더 이상 장진졔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머리 속에 남은 것은 장진졔의 아름다운 춤선이 정의한 한 인간의 위엄이었다. 

장진졔는 동료들이 맥닐리에게 린치를 가하는 것을 만류했다. 우리는 이곳에 사적인 보복을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장진졔는 스스로 깨달았다. 왜 선생님이 복수를 금기시 했는지. 지금껏 그가 사랑했던 이들의 죽음을 통해, 사적 감정이 얼마나 무용한 것인지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청두에는 많은 시민들이 장진졔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입소문을 듣고 찾아 온 것이었다. 장진졔가 지난 밤 어디를 갔다 온 것인지, 무엇을 하고 왔는지, 자세한 건 알지 못했다. 시민들이 아는 것은 그들이 간절해 원해 왔던 것이 5년의 기다림 끝에 도착했단 사실 뿐이었다. 그들에게 계획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계획을 행할 절박한 욕구가 있었다. 

로리 맥닐리는 안식을 얻고자 했다. 아일랜드도, 영국도, 백인종도, 석상병도 없는, 지구 반대편의 오랑캐 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했다. 그는 새로운 인생을 위해 필요한 모든 걸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달러와 금, 그리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생물학적 기술 혁신들. 그는 이곳에 자리 잡은 뒤 가족과 친구들도 데려올 계획이었다. 이곳에서 맥닐리 가문의 새 출발을 도모할 계획이었다. 

맥닐리는 중국 밀항을 위해 승선한 상선에서 생각했다 - 과거는 따지지 않기로. 그는 감옥에 있는 동안 자신을 배신한 심복들에 대한 복수를 꿈꿨다. 하지만 그는 현실을 받아 들였다. 지금은 더 이상 자신의 뜻대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을 상황이 아니란 사실과 작금의 최우선 과제는 생존이란 사실을 받아 들였다. 

그는 지금껏 그랬듯, 긍정적 미래를 그렸다. 지난 60 평생 그래 왔듯, 자신이 그린 미래는 반드시 현실화 될 것이라 믿었다. 맥닐리는 자신의 긍정주의 세계관 사이사이 불현듯 치밀어 오르는 불길한 감정을 억눌렀다. 맥닐리는 이 불길함에 논리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주지시켰다. 존스턴의 땅을 시멘트로 덮어 버린 것도, 버크 오거닉스의 명줄을 끊으려 했던 것도, 모두 불가피한 사업적 선택이었다 – 맥닐리는 자기 확신의 화신이었다. 후회는 없다 - 모든 건 필연적 결과였으며, 중국에서의 새 출발도 필연적 결과일 것임을 몇번이고 재확신했다. 

로리 맥닐리가 중국에서 이룬 것은 새 출발이 아니었다. 그가 마주한 것은 그가 5년 전 고용했던 살인 청부업자의 최후였다. 그는 고통의 신을 죽인 대가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행크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그가 어떤 죽음을 맞았는지 아는 바 없었다. 로리 맥닐리가 살아 생전 가질 수 있었던 최후의, 가장 값진 배려는 자신이 어떻게 죽을 지 미리 알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작품 등록일 : 2026-04-27

▶ Brody’s files #84

▶ Brody’s files #82

자연물이 된다는건 어떤 경지일까.

물처럼 벼락처럼
때리고 빠지고
베고 흐르는걸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말같은건 아무 필요가 없을텐데
진미오징어   

사업자번호: 783-81-00031

통신판매업신고번호: 2023-서울서초-0851

서울 서초구 청계산로 193 메트하임 512호

문의: idpaper.kr@gmail.com

도움말 페이지 | 개인정보취급방침 및 이용약관

(주) 이드페이퍼 | 대표자: 이종운 | 070-8648-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