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s files #82
거스는 지미를 꼭 데려가야 하나 망설였다. 브렛의 민병대 기지에 가는데 지미를 데려 가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될 지 확신이 없었다. 혼캐슬에 다녀 온 뒤 지미는 세상 진리에 통달한 현자인 척 한다. 하지만 지미는 혼캐슬에 갔다 오기 전에도, 갔다 온 후에도 똑 같은 실수투성이 겁쟁이다. 이번 또 밖에 나갔다 지난번처럼 성급하게 총을 들고 설칠 경우 최악의 결과를 볼 수 있다. 

거스는 그것도 운명이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지미와 짝을 이룬 건 이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지금은 저래 보여도 어딘가엔 쓸모가 있을지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브렛의 기지에 가면 할 일이 많다. 인력이 한명 이상 필요하다. 

마을에서 철학자이자 명상가 행세를 하던 지미는 차에 시동이 걸리지 원래의 수다쟁이로 돌아왔다. 지미는 이동 중인 차 안에서 버섯뇌를 퇴치하기 위한 101가지 전략을 떠벌이더니 이제는 마을에 필요한 101가지 필수 자원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지미에 따르면 마을에 가장 필요한 자원은 여자였다. 

거스 넌 사이코패스만도 못한 인간이라 몰랐겠지만 우리 마을에는 가임기 여자가 없어. 임신해서 아이를 키울 여자가 없다고. 이대로면 우리 마을은 멸종이라고. 

지미는 하는 짓이 멍청하지만 실제 멍청한 놈은 아니다. 지미는 현실을 파악하고 있다. 거스의 마을은 생존하는 것만 문제가 아니었다. 번식하는 것도 문제였다.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지금 마을에는 그런 능력을 가진 여자가 없었다. 

거스는 문득 혼캐슬에서 본 여자가 생각났다. 아이를 낳은 그 여자. 아무리 생각해도 그 여자는 정상인이었다. 대체 무슨 사연일까? 어째서 버섯뇌 틈에서 아이를 낳은 걸까? 어째서 그들 사이에서 무사히 아이를 키우고 있는 걸까? 

브렛의 민병대 기지는 멀리서 눈에 띄었다. 요새화 된 마을이었다. 콘크리트 장벽이 세워진, 전문적으로 지어진 군사 기지이자 거주지였다. 이 사람들 아마추어가 아니다. 이 정도면 정규군과 공성전을 해도 쉽게 밀리지 않을 것 같다. 

생각해 보니 거스를 체포하러 왔던 군대는 여기도 왔을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군인들의 부당한 요구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곳 문을 열기 어렵다고 판단한 군인들은 이곳을 포기하고 거스의 마을로 왔던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국민을 지켜야 할 공권력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국민을 해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거스의 신분이 확인되자 문이 열렸다. 대형 트럭이 드나들 수 있는 굉장히 큰 문이었다. 검색대에는 지난번 브렛과 함께 봤던 민병대 핀스터가 있었다. 그는 검문을 하면서 형식적인 절차이니 기분 나빠 하지 말라고 했다. 브렛은 지금 버섯뇌 토벌 작전 때문에 자리를 비웠다고 했다. 

거스 일행을 맞이 한 사람은 켄이라는 일본계였다. 그도 경찰이었다. 브렛과 그의 동료들과 달리 켄은 중앙부서에서 일했다. 그는 현장 경험이 많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현장 업무에 열성적이었다. 켄은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이곳에 들어왔다. 이곳은 이제 민병대가 아닌 도시가 돼 가고 있다고 했다. 이곳에서 다시 문명을 건설하는 중이라고 했다. 

거스는 켄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다. 혼캐슬에 “검은 이끼”라는 알파가 군집을 이끌고 있다는 이야기, 군소대를 몰살시킨 이야기, 언제 다시 마을을 습격해 사람들을 몰살시킬지 모른다는 이야기 등, 켄은 거스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말에 공감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켄은 “검은 이끼”의 위험성에 대해 크게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말씀하신 “검은 이끼”는 우리가 “까마귀”라고 부르는 놈입니다. 최근 세력화 한 군집의 리더죠. 저희에게도 직접적 위협이긴 하지만 우리는 까마귀 군집의 위험성을 그렇게 높게 보고 있진 않습니다. 더 위험한 놈들이 있거든요. 

켄은 버섯뇌의 군집 특성에 대해 설명했다. 

같은 지역에 사는 버섯뇌는 같은 군집을 이룹니다. 곰팡이에 감염됐고, 증상이 발현됐다, 이때 특정 군집과 지근거리에 있다, 그러면 해당 군집의 일원이 됩니다. 군집의 일원이 된 버섯뇌는 군집의 명령을 따르게 됩니다. 해당 군집을 위해 사냥하고 파괴하고 그리고… 번식할 여자를 구하죠. 

지미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는 공포에 가까운 충격을 받고 있었다. 목숨을 빼앗기는 것도 모자라 여자도 빼앗긴다니. 

군집의 명령은 한 마리의 알파가 내립니다. 어느 군집이나 한 마리의 알파가 지배하죠. 혼캐슬에 까마귀가 알파인 것처럼, 곡스힐엔 “고기옷 meat jacket”이라 불리는 놈이 알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까마귀와 고기옷의 공통점은 연구소에서, 그러니까 인공적인 환경에서 결집된 군집의 알파라는 겁니다. 이들은, 아직은, 연구소의 자원을 이용해 생존을 도모하고 있기 때문에 외부에 심각한 위협인 상황은 아닙니다. 

거스가 마을에 어떤 피해 상황이 있는지 설명하려고 하자 켄이 다 알고 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저희도 최근 알게 된 사실인데, 군집 형성 초기에는 개인에 대한 통제가 느슨합니다. 개개인의 일탈이 잦죠. 그래서 원래 서식지에서 벗어나 활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 말씀하신대로, 무리를 몰고 와 군부대를 몰살시켰다면, 이는 군집 형성이 완료됐다는 뜻입니다. 까마귀가 군집에 완전한 지배력을 갖게 된 거죠. 이렇게 된 경우 일탈 행위가 줄어듭니다. 군집의 움직임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지는 거죠. 고기옷도 그렇고, 인공적 환경에서 발생한 군집들 대부분이 예측 가능한 활동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주변 피해가 한정적이죠. 

켄은 전문가였다. 거스가 간절히 원했던 버섯뇌에 관한 정보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까마귀가 예상보다 위험하지 않다니 일단은 안심이다. 하지만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은 걸까? 동료들의 희생 덕분일까? 

우리가 두려워 하는 건 예측이 불가능한 군집입니다. 노팅엄에서 결성된 군집은 정해진 서식지 없이 불특정하게 떠돌면서 많은 곳에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이 군집은 사람들 주거지만 파괴하는 게 아니라 다른 버섯뇌 군집들도 닥치는대로 파괴하고 있습니다.

토네이도처럼요? 

가만 듣고 있던 지미가 뜬금없는 코멘트를 했다. 

예, 토네이도처럼, 전혀 예상할 수 없을 때 나타나서 모든 걸 쑥대밭으로 만들고 가 버립니다. 일종의 자연재해인데… 집요하고 잔혹한 자연재해죠. 

노팅엄 버섯뇌는 또 뭐란 말인가. 우리 마을에서 가깝지 않은가. 우리 마을에도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 아닌가. 거스는 궁금해졌다. 

노팅엄 무리의 알파는 어떤 놈이죠? 

아이리스라고 불리는 놈입니다. 꽃 이름 iris로 들리는데, 꽃 이름이 아니라 눈이 없다고 eyeless입니다. 하지만 발음 편의상 지금은 그냥 아이리스라고 부르죠. 체육 교사로 일했던 사람이었는데 사고로 눈을 잃었습니다. 눈을 잃은 상태에서 증상이 발현됐는데, 눈이 없으니 위험하지 않겠지 생각했는데 그 반대였습니다. 눈이 없어서 더 위험해졌죠. 

켄은 아이리스 군집이 어떻게 자신들보다 몇배나 규모가 큰 군집들을 궤멸시켰는지 이야기했다.

다른 군집들은 대부분 필요에 의해 사냥을 하는데, 아이리스 군집은 취미 활동처럼 사냥을 합니다. 아무 이유도 계기도 없이 갑자기 사람 사는 지역에 처들어 오고, 멀리 떨어진, 자신들과 아무 상관없는 군집을 습격해 살육을 일삼습니다. 버밍엄에서 가장 강력한 알파였던 클리퍼 clipper를 죽인 것도 아이리스였습니다. 

켄은 클리퍼 무리에 대해 잠시 이야기했다. 원래 그곳 일대 지배자였다고. 모두가 두려워 했던,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던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아이리스가 간단히 제거해 버렸다고. 달이 뜨지 않은 칠흙같이 어두운 밤 아이리스는 열두 정예 인원만 데리고 버밍엄 박물관에 둥지를 튼 팔십에 가까운 클리퍼 무리를 학살했다. 그 일대 클리퍼의 존재는 사라지고 아이리스의 존재만 남았다. 켄은 버섯뇌 군집의 세력 싸움을 보면 영국 폭력 조직들의 역사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무기를 쓰지 않을 뿐, 모든 것이 인간 폭력 조직들의 행태와 동일하다고 말했다. 

경찰로 일 할 때, 폭력 조직 범죄는 문명 사회의 그림자라고 생각했죠. 문명이 발달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발생하는 인간 사이 이권 다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런 것과 상관 없는 것 같습니다. 인간들은 문명이 없어도, 뇌가 없어도, 자연적으로 군집을 이루고 위계 질서를 세우고 폭력을 휘두르는 종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켄은 다시 아이리스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켄과 그의 동료들에게 지금 당장 가장 절박한 위협은 아이리스였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군집을 이룬 버섯뇌는 집단 감각을 공유합니다. 자기로부터 수십미터 떨어진 군집 일원이 느낀 감각을 자기도 느끼는 거죠. 아이리스는 시각 능력이 없어도 다른 개체를 통해 주변 정보를 전달받습니다. 머리 위에 드론 수십 개를 띄워 놓고 다니는 것 같은 거죠. 동료들로부터 전달받은 정보를 갖고 아이리스는 목표에 돌진합니다. 눈에 보이는 게 없으니 누구보다 무모하고 누구보다 과감합니다. 중세시대 갑옷 기사 같은 역할이라고 할까요, 전장의 또라이.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적 진지에 돌진해 전열을 무너뜨리면 동료들이 달려와 살육을 시작하는… 

켄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거스는 계속 뭔가 말하려고 했다. 거스는 뭔가 알고 있었다. 켄의 말이 끊기길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그 아이리스… 이름이 니콜라스 아닙니까? 

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맞아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아시죠? 

니콜라스 위버. 군인이었습니다. 원래 체육 교사였는데 교사 연금보다 군인 연금이 더 많이 나온다고 군대에 들어왔다 폭발물 사고로 실명했죠. 제가 헌병일 때 사건을 맡아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거기까진 몰랐습니다. 

착한 친구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실명했는데도 세상 원망하지 않고 다른 직업을 찾아 보겠다면서 되려 동료들을 위로했죠. 

아… 

천사와 악마가 한 몸이었다니. 

지미가 혼잣말을 한다. 지미는 니콜라스 이야기에 시적 영감을 받았다. 인간일 때 누구보다 선량했던 사람이 뇌를 잃고 피에 굶주린 악귀가 되었다는 사실에 깊은 자극을 받은 것 같았다. 

지미가 문학적 감상에 빠진 사이 거스는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켄의 말대로라면 거스의 마을은 아이리스 클랜에게 밥상 위에 차려진 먹이와 같다. 까마귀 클랜이 무서워서 여기 온 것인데 여기서 알게 된 것은 그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는 사실이었다. 늑대 아가리를 피하려다 호랑이 아가리에 들어가게 된 잔혹한 현실. 저격총도, 지하 대피소도, 폭발물도, 전기 울타리도, 아무 짝에 소용 없다. 저들이 거스의 마을을 치겠다면 아무것도 예상 못하고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다. 아이리스 클랜이 처들어 오나 까마귀 클랜이 처들어 오나 결과는 똑같다. 잠깐, 잠깐. 그럼 두 클랜이 동시에 처들어 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거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켄에게 물었다. 

혹시 버섯뇌 군집을 이용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무슨 말이죠? 

버섯뇌를 버섯뇌로 막는 거요. 서로 싸우게 해서 퇴치하거나 세력을 약화시키는… 

켄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켄은 거스의 말을 백퍼센트 알아 들었다. 

(일본어로) 이이제이 毒を以て毒を制す. 

예?

동양에서 자주 쓰는 표현입니다. 오랑캐를 오랑캐로 무찌른다고. 

그게 가능할까요? 가능하면 좋겠는데. 

버섯뇌를 인간의 편에 서게 하다니. 켄은 거기까진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한참 궁리하다 말을 꺼냈다. 

승리한 버섯뇌 무리가 제3의 군집에 아량을 베푸는 경우는 없습니다. 한번 피를 본 무리는 더 잔혹해지죠. 더 광범위한 학살을 일삼습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어느 한쪽과 우호적 관계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이건 고양이 목에 방울 걸기보다 더 어려운 문제입니다. 

거스는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스는 까마귀와 안면이 있다. 총만 들지 않으면 까마귀는 우릴 공격할 의향이 없다. 무장하지 않고 그들을 찾아 가는 건 어떨까? 그들에게 상호 협력 관계를 이해시킬 순 없을까? 심지어 그쪽엔 정상인도 있지 않은가? 

켄은 거스에게 GPS 장비를 하나 건넸다. 

영국 전역에 버섯뇌 지도를 그리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패트리라는 사람인데, 원래 오지 여행자였죠. 

켄은 패트리에 대해 이야기 했다. 남미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을 걸어서 횡단한, 언론에도 등장한 적 있는 베테랑 여행가였다. 패트리는 자신이 어떤 병에도 걸리지 않는 체질을 타고 났다며, 돌곰팡이 역병이 발발한 뒤 버섯뇌 생태를 연구하겠다며 다수의 과학자, 탐험가들과 함께 영국 전역을 돌며 버섯뇌 관찰기를 기록했다. 패트리는 지금껏 버섯뇌의 종류와 행태, 그리고 군집의 분포도를 놀라울 정도로 자세히 기록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버섯뇌 오타쿠였다. 켄의 민병대가 갖고 있는 대부분의 버섯뇌에 관한 정보는 패트리가 공유해 준 것이었다. 영국 내 인터넷 통신이 불안정해지자 패트리는 동영상과 블로그 업로드를 중단하고 자신의 모바일 기기에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는 다수의 연구소, 공공기관, 자경단에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GPS 기기를 제공했다. 정보가 필요하면 자신을 찾아 오라는 것이었다. 

패트리는 지금 맨체스터에 있습니다. 거기 한달째 머물고 있죠. 

켄은 패트리가 멘체스터에서 보내온 사진들을 거스와 지미에게 보여주었다. 버섯뇌가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사진, 무리 지어 돌아다니는 사진, 사냥하는 사진, 싸우는 사진, 시체를 먹는 사진… 거스와 지미는 버섯뇌의 거주지 사진을 보고 크게 놀랐다. 혼캐슬에서 본 버섯뇌의 “작품”들이 맨체스터 거주지 곳곳에 구현돼 있었다. 이들은 나무 고철 유리 플라스틱 쓰레기 등을 이용해 설치 미술과 다름 없는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연구소에서처럼 재료가 주어지지 않은 탓에 대부분의 “작품”들이 원시적이고 투박했지만 대신 훨씬 크고 자유분방했다. 건물 전체를 미술 작품처럼 꾸며 놓은 경우도 있었고, 지하철 역 전체를 작품으로 만들어 놓은 경우도 있었다. 혼캐슬에서 본 것은 개인의 작품이었지만 여긴 군집의 작품이었다. 이들은 개체가 아닌 군집이었다. 사냥도, 번식도, 심지어 창작조차도, 군집 단위로 하고 있었다. 감탄을 연발하던 지미가 물었다.

패트리 이 사람 여행자 맞습니까? 완전히 종군 기자인데요? 

오지 여행을 할 때도 이런 다큐멘터리 같은 사진으로 큰 인기를 끌었죠. 

근데 이러고 다니는데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죠? 

패트리가 특이한 게, 버섯뇌의 공격을 받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증상이 나타나지도 않고, 공격을 받지도 않으니까, 연구 대상인데… 패트리도 자진해서 이곳저곳에 자신의 혈액 샘플 등을 제공했습니다. 자신에게 어떤 특이점이 있는지 자기도 알고 싶다고. 아직까진 밝혀진 게 없습니다. 본인이 말하기는 생물학적 이유가 아니라 마음가짐일 거라고 하더군요.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하면 된다고… 

지미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저는 패트리라는 사람 마음에 드는데, 직접 만나 본 적 있습니까? 

예, 그럼요. 패트리는 여기 자주 방문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와서 정보를 주고 저희는 물자를 제공합니다. 패트리가 필요한 물자가 있으면 저희가 구해다 놓습니다. 특이하게도 무기는 절대 가져 가지 않더군요. 패트리는 몸에 어떤 무기도 방어 장비도 걸치고 다니지 않습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일세. 

지미는 패트리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에게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켄은 거스에게 말했다. 

패트리는 버섯뇌 클랜과 전략적 관계를 맺는데 도움되는 정보를 갖고 있을 겁니다. 지금 당장 뾰족한 수는 없을지 몰라도 힌트를 줄 순 있을 겁니다. 현재 버섯뇌의 행태에 대해 패트리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전세계 다 뒤져 봐도 없을 겁니다. 패트리는 말씀하신 이이제이 전략에 분명 흥미가 있을 겁니다. 

지미의 호기심은 패트리에서 켄으로 옮겨졌다. 지미는 켄에게 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 

일본에서 오신 건가요? 

제 부모님이 일본에서 이민 오셨죠. 

일본으로 돌아갈 생각은 안 해본 건가요? 

켄은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가 당신들에게 아프리카로 돌아갈 생각해봤느냐고 묻는다면 그게 적절한 질문일까요? 

우리랑은 얘기가 다르죠. 우리는 돌아갈 나라가 없지만 일본은 있지 않습니까. 일본은 50년 전부터 영국보다 잘 살았다고요. 지금 돌아간다고 하면 일본에서 굳이 막을 이유도 없고요. 

돌아가는 건 없습니다. 저는 영국인이고, 영국이 제 조국입니다. 

어이가 없는 쪽은 지미였다. 영국이란 나라는 이미 소멸됐거나 소멸 직전이다. 대체 조국이란 무슨 뜻인가. 이런 상황에서 소속감이나 애국심이란 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켄은 지미의 표정을 보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했다. 켄은 자신의 입장이 허황된 것이 아니란 사실을 이해시키고 싶었다. 

이곳 장래가 불투명하다는 사실은 저도 동의합니다. 어쩌면 이대로 공멸해 버릴 지도 모르죠. 이미 다른 나라로 도망간 사람들도 있고요. 하지만 저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나라가 좋아서 머물기로 한 사람들. 나라의 기능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함께 살던 사람들도, 땅도 남아 있지 않습니까? 당신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저나 당신들이나 살아서 이 땅을 지키려는 거잖아요? 인간은 누구나 땅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를 선택한 게 아니라 땅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내가 선택한 땅이고 우리가 살기 위해 피땀 흘린 땅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쉽게 떠날 수 없습니다. 저도, 브렛도, 경찰로 일 할 때 사명감을 갖고 일했습니다. 이 땅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소명 의식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이라고 그런 게 사라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애국심 같은 허울 좋은 명분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등록일 : 2026-04-26

▶ Brody’s files #83

▶ Brody’s files #81

나라가 중요한게 아니야
땅(실체)이 중요한거지
거기서 누구랑 뭐하면서
피땀 흘려가며 살았는지
그게 제일 중요하지


설사 "이러다 다죽어" 되더라도
무모하리만치 위험한 가운데서도
발딛고 서 있는 삶의 터전을 지켜내고자 하는건
아무리 진화한다해도 버섯뇌 군집이 도달하기 어려운
인간만의 영역인거 같다

(하지만 모르지 또! 버섯뇌 집단이 어디까지 진화할지는)
진미오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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