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s files #81
너 꼭 모리스 같다 얘. 

엄마는 잃어버린 지그소 퍼즐을 찾아낸 준을 보고 말했다. 엄마는 그만 찾으라고 새 것 사준다고 했지만 준은 몇 시간 동안 우직하게 찾고 또 찾았다. 모리스가 누구야 준이 묻자 엄마가 말했다. 

있어. 내가 아는 어떤 바보 같은 남자. 

엄마가 준에게 모리스에 대해 언급한 건 두 번이었다. 한번은 지그소 퍼즐을 찾았을 때, 다른 한번은 엄마가 통화 중 가족 인적 사항을 말 할 때였다: “예, 모리스, 친오빠입니다.” 그때 준은 모리스라는 이름의 남자가 엄마의 형제라는 사실을 알았다. 준은 엄마가 외동인 줄 알았다. 형제가 있었다면 당연히 자신에게 이야기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모에 대해선 할 이야기가 없었더라도 형제는 할 이야기가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모리스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건 혹시 모리스가 너무 보고 싶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모리스가 보고 싶은 걸 참기 위해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을까. 

준은 눈을 떴다. 곡스힐 와서 두번째 정신을 잃었다. 이번엔 잠이 든 것이었다. 이마에서 피가 나고 있었지만 이것 때문에 정신을 잃은 건 아니었다. 방금 전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다. 여기서 죽는구나 싶은 순간 누군가 구해준 거였다. 이제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에 뇌가 멈췄던 것이다. 탈진 상태에 이른 거였다. 

눈을 뜬 이곳은 연구실이 아니었다. 집이었다. 불 꺼진 폐가였다. 창문은 닫혀 있었지만 바닥이 차가웠다. 그나마 카페트가 깔려 있어 다행이었다. 여긴 마을인가? 브래드는 마을 쪽으로 절대 가지 말라고 했는데. 감염자의 냄새는 없었다. 하지만 시체 냄새가 있었다. 이곳엔 많은 시체가 있었다. 

준은 손전등을 켜고 주변을 둘러 보았다. 부엌에 남자의 시체가 있었다. 시체는 부패가 많이 진행되었다. 최소 3개월 전 사망한 시체다. 목이 절반 넘게 뜯겨져 있었다. 목뼈가 없었다. 목에 남은 가느다란 근육 조직에 머리가 간신히 붙어 있었다. 작은 방 입구엔 남자 아이 시체가 있었다. 역시 목이 뜯겨 있었다. 목이 앞쪽으로 완전히 접혀져 머리가 가슴에 붙어 있었다. 곡스힐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붉은 수염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그는 준을 여기에 내려 놓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왜 그런 행동을 한 걸까? 증상발현자는 동정심도 이타심도 갖지 못한다. 기사도 정신도, 정의감도, 생명의 소중함도 알지 못한다. 혹시 소유욕이었을까? 준에 대한 충동적 욕구가 폭발한 것일까? 하지만 사적 욕구 때문이었다면 이미 그 욕구를 드러냈을 것이다. 준은 그의 사적 욕구에 당하지도 않았고, 그런 의도를 감지하지도 못했다. 

생각은 생존의 적이다. 생각을 중단하고 지금 기회를 이용해야 한다. 어쨌거나 연구소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했으니 이제 마을을 빠져 나가기만 하면 된다. 연구소는 폐쇄돼 있지만 마을은 개방돼 있다. 마음만 먹으면, 빨리 달릴 수만 있다면, 금방 빠져나갈 수 있다. 

새벽 3시였다. 곡스힐에 온 지 10시간이 넘었다. 잘 하면 예정 시간대로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의외로 목표 달성이 순조로웠다. 어깨가 부서지고 옆구리에 구멍이 뚫리고 몇 번 죽을 뻔 했던 것만 빼면. 

준은 살아 있는 생명의 냄새를 맡았다. 거미, 바퀴벌레, 귀뚜라미, 설치류, 그 밖에 어둡고 축축한 곳에 사는 생물들, 이 집 어딘가 박쥐도 살고 있었다. 평화로워 보이는 자연에 평화는 없다. 어디서 들이닥칠지 모르는 포식자와 심신을 옥 죄는 굶주림... 준은 아버지에게서 그렇게 배웠다. 삶에 안식은 없다고. 인간이 자연의 삶을 동경하는 까닭은 무지와 위선 때문이라고. 야생의 지옥에서 해방된 인간들은 그들의 특권 가득한 삶에서조차 안식을 얻지 못하고 자연을 동경한다고. 

연구소의 감염자 무리는 사냥 중일 것이다. 슈퍼오거니즘 조직의 질서에 역행하는 개체는 살해된다. 집요하고 가혹하게 처벌된다. 붉은 수염은 어쩌면 죽었을지 모른다. 그건 준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중요한 건 이들이 누굴 사냥할 것인가 이다. 이들은 곡스힐의 생존자를 원치 않을지 모른다. 자신들 영역에 침범한 인간 개체를 살려 보내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을지 모른다. 준은 감염자들의 냄새를 찾아야 한다. 감염자 무리가 존재하지 않는 방향으로 마을을 빠져 나가야 한다. 준은 지도를 보고 최단 거리를 찾았다. 최단 거리로 단숨에 달리고 싶지만 신중해야 한다.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살아 나가는 것이 최우선이다. 

준은 브래드가 준 향나무 목걸이가 생각났다. 목에 걸고 있으라고 준 것인데 지금껏 가방 주머니에 처박아 두고 있었다. 지금부터라도 목에 걸고 있어야겠다. 정말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섰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드문드문 놓인 건조물과 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규칙적으로 불고 있었다. 감염자들의 냄새가 유령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반복했다. 후각 정보는 공기 흐름에 영향을 받는다. 한뼘 거리도 인지하기 어려운 어둠 속에서 감염자들의 냄새가 정면과 뒷면에서 간헐적으로 날아 들었다. 

인구 2천명에 불과했던 곡스힐은 허허벌판 위에 드문드문 흩어진 건조물이 전부인 마을이다. 연구소에선 어떻게든 부대끼며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있게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긴 그럴 수 없다.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불안감 속에, 후각과 청각에만 의존해 길을 찾아야 한다. 손전등은 쓸모 없다. 빛이 닿아서 반사되는 물체가 있어야 앞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텅빈 공간에 손전등은 적에 발각될 빌미가 될 뿐이다. 

준은 집 문 앞을 나서지 못한 채 5분 넘게 망설였다. 기댈 감각이 사라지니 생각이 많아진다. 생각을 할수록 바보가 된다. 겁쟁이가 된다. 여기 계속 서 있을 수는 없다. 감각에 기대지 않기로 했다. 무작정 첫발을 떼기로 했다. 그 순간 낯선 소리가 들렸다. 

딱딱 딱따다다다다다. 

차가운 금속음이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저건 인간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다. 하지만 소리가 크고 강하다. 최소한 인간과 유사한 크기의 생명체여야 가능한 소리다. 

츳츠 츳즈즈즈즈즈. 

살을 파고 드는 고주파음이 얼굴 가까이 들렸다. 준은 소스라치게 놀라 펄쩍 뛰어 올랐다. 순간 5시 방향에서 날아온 무언가가 준의 몸을 덮쳤다. 퍽 소리와 함께 땅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준은 바닥에 깔려 있었다. 사람처럼 생긴 하얀색 생명체가 준 위에 올라 타고 무릎으로 준의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사람처럼 생긴 생명체는 흰색이었다. 온 몸이 지저분한 흰색으로 덮여 있었다. 털도 머리카락도 없다. 벌거벗은 몸이 더러운 흰색으로 덕지덕지 뒤덮여 있었다. 저건 각질이다. 피부에 각질이 형성된 것이다. 혹시 이끼 피부의 변이일까? 그런데 왜 눈알도 흰색일까? 준은 숨을 쉴 수 없었다. 가슴이 세게 짓눌려 냄새를 맡기 어려웠다. 이 놈의 정체는 대체 뭘까? 왜 손을 저렇게 사마귀처럼 치켜들고 있는거지? 

준은 연구소 지하실에서 옆구리를 공격했던 감염자가 떠올랐다. 그 놈도 손을 저렇게 치켜 들었던 것 같다. 준은 본능적으로 팔로 목을 가렸다. 사마귀 인간의 손이 준의 팔 속 깊이 파고 들었다. 칼에 찔린 것 같았다. 아주 굵고 날카로운 칼이 팔을 파고 든 것 같았다. 다른 칼이 준의 머리 쪽에 내리 꽂혔다. 팔꿈치로 방어하자 또 다른 칼이 날아 들었다. 이건 손이 아니었다. 이건 정말 칼이었다. 각질이 무기화 된 것이다. 준은 칼을 맨 살로 막고 있었다. 팔이 피로 흥건했다. 팔꿈치를 방패 삼아 들어오는 칼날을 처내고 있지만 팔꿈치도 살로 된 부위다. 팔꿈치로 막을 때마다 살이 찢어지고 혈관이 터져 나간다. 선제 공격을 할 수 없을까 생각하는 순간 쿵 소리와 함께 몸을 짓누르고 있던 사마귀 인간이 떨어져 나갔다. 

사마귀 인간이 공중에 떠 있었다. 믿기 힘들 정도로 크고 굵은 손이 사마귀의 목을 틀어 쥐고 있었다. 붉은 수염이었다. 사마귀는 필사적으로 버둥대며 붉은 수염의 팔에 칼날 손을 찔러 넣었다. 붉은 수염의 팔에서 피가 쏟아졌다. 하지만 붉은 수염은 수천 톤짜리 공사장 기계처럼, 아무 미동 없이, 강철 폐기물을 절단하듯 사마귀의 목을 부러뜨렸다. 꽈드드득 뼈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마귀 목이 종이처럼 접히고 버둥대던 몸이 축 늘어졌다. 

츳츠즈즈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벽 뒤에서, 지붕 위에서, 텅빈 거리에서 동족들이 나타났다. 모두 하얀 각질 피부였지만 각기 모양도 움직임도 달랐다. 어떤 개체는 배에, 어떤 개체는 척추에, 어떤 개체는 어깨에, 어떤 개체는 무릎에 각질이 자랐다. 방패, 칼날, 가시, 철퇴 같은 모양으로, 각질은 신체 부위에 따라 각각 다른 모양으로 비대화 돼 있었다. 이들은 모두 감염자들이다. 같은 곰팡이에 감염됐지만 감염의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이것도 실험의 결과일까? 군집의 벽을 나누기 위한 시도였을까? 누구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을까? 증상발현자들이었을까? 아니면 마을 사람들이었을까? 

뒤쪽에 있던 개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에 뿔이 나 있었다. 머리에 뿔처럼 각질이 치솟아 있었고 턱 전체가 수염으로 뒤덮인 것처럼 각질화 돼 있었다. 이 놈이 알파인가. 흰뿔수염을 중심으로 개체들이 모여 들었다. 성직자들 같았다. 어둠 속에 흰 옷을 입은, 나병으로 몸이 뒤틀린 된 성직자들. 브래드의 말이 생각났다. 주님의 자식들. 왜 주님의 자식들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어째서 마을로 가지 말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붉은 수염 손에 죽은 줄 알았던 사마귀 인간은 살아 있었다. 사마귀 인간은 이대로 죽을 생각이 없었다. 손이 움찔움찔 움직이더니 자신의 머리를 뽑아 버리려는 붉은 수염의 손에 또 다시 칼날 손을 찔러 넣었다. 

붉은 수염은 그대로 흰뿔수염에게 달려 들었다. 투우장 황소처럼 거칠게 돌진해 성직자들을 쓰러 뜨렸다. 팔에 끈덕지게 매달린 사마귀 인간의 목을 쥐고 무기처럼 휘둘렀다. 성직자들의 도열이 무너졌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질펀한 피 냄새가 밤 하늘을 가득 메웠다. 

준은 나침반을 확인했다. 최단 거리를 찾았다. 사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다리를 다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팔이 너무 아파 눈물이 났지만 다리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다리 근육에 힘을 주고 움직임에 리듬을 실었다. 마을 경계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길어야 2km? 3km? 거리 따위 계산할 여유가 없다. 원을 그리지 않도록 지형과 나침반을 확인하며 달릴 뿐이다. 마을 경계를 벗어나면 더 이상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개체는 군집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곰팡이로 하나된 군집은 같은 군집으로 행동할 때만 생존을 보장 받는다. 설마 군집 전체가 움직이진 않겠지. 아무것도 아닌 여자 하나 잡으려 그 많은 놈들이 다 쫓아 오진 않겠지. 

전방에서 감염자의 냄새가 났다. 절망감과 두려움에 힘이 풀렸다. 팔 부상이 심하다. 더 이상 감염자와 맞설 수 없다. 준은 숨을 곳을 찾았다. 가장 가까운, 가장 큰 건물을 향해 달렸다. 무슨 건물인지, 건물 안에 뭐가 있는지 확인할 새도 없었다. 무작정 안으로 뛰쳐 들어간 뒤 재빨리 문을 닫았다. 건물 안의 냄새를 확인했다. 사람이 있었다. 두 명의 남자였다. 순례자들일까? 하지만 어째서 마을에 있는 거지? 

냄새로 짐작컨데 도움이 될 종류의 인간들이 아니다. 어차피 누구든 상관없다. 지금 준을 도울 사람은 준 자신 뿐이다. 저 사람들 방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제야 여기가 교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높은 천장, 스테인드 글라스, 오르간과 십자가. 벽이 온통 흰색이었다. 준은 흰색 공포증을 느꼈다. 혹시 성직자가 숨어 있는 게 아닌가 불안해서 몇번이고 다시 냄새를 맡았다. 이제 몸을 방어할 수도, 상대를 제압할 수도 없다. 팔이 망가진 지금 공격 방어에 쓸 수 있는 부위는 무릎과 머리, 그리고 이빨 뿐이다. 지금 보니 인간보다 약하게 만들어진 동물도 없다. 세상 그 어떤 동물보다 쉽게 사냥 당하게 만들어졌다. 

준은 예배당 의자에 앉아 지혈제를 꺼냈다. 이제 거의 다 썼다. 설마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릴 줄은 몰랐다. 너무 자신만만 했던 걸까. 냄새를 맡을 수 있으니 어떤 위험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걸까. 

웃옷을 벗은 채 지혈제를 바르고 붕대를 감는데 캣콜링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어이 아가씨! 여까지 어떻게 왔어? 

교회 2층 난간에 2명의 남자가 싱글벙글 재밌다는 표정으로 준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예상대로였다. 이곳에 숨어 든 남자들은 순례자가 아니었다. 세기말 스릴을 즐기는 동영상 제작자들일 것이다. 남자 중 한명이 동영상 촬영 기기를 꺼냈다. 준은 재빨리 옷을 입었다. 

주님의 자식들에게 심하게 당한 모양이야. 안심하라고 여긴 안전하니까. 

촬영 기기를 들고 있는 다른 남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뻥치고 있네 병신 새끼가. 

응 사실은 여기도 안전하지 않아, 근데 우리가 안전한 곳을 발견했거든. 주님의 병신 새끼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니까 이리 와서 쉬었다 가. 

밖에는 아직 감염자가 있을 것이다. 교회 문에는 잠금 장치가 없다. 언제든 문을 열고 들어 올 수 있다. 그러면 저 놈들이 말하는 안전한 곳에 숨을 수 밖에 없는 걸까? 저 놈들의 목적은 뻔하다. 스릴 섹스. 저들이 이런 곳에서 여자를 강간하는 건 이런 상황에 누릴 수 있는 흔치 않은 특권일 것이다. 

준은 잠시 생각했다. 저 놈들에게 강간당하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감염자에게 잡아 먹히는 게 나을까. 

아가씨도 알겠지만 저 새끼들 엄청 센 놈들이거든. 총에 맞아도 안 죽고 칼에 맞아도 안 죽고, 다른 놈들은 내장을 먹는데 저 새끼들은 뼈를 먹어. 이빨이 씨발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해서 사람 뼈를 과자처럼 씹어 먹어. 저 새끼들한테 잡히면 뼈를 못 추리는 거야. 

아이폰만 갖고 장례 치러야 되는 거지. 

둘은 안 웃기는 농담을 하며 낄낄대고 웃었다. 카메라를 든 놈은 아랍계, 다른 한 놈은 백인이었다. 둘 다 감염 상태였다. 이끼 피부를 하고 있었다. 생에 미련이 없는 놈들이다. 어차피 자신들도 어차피 저렇게 될 거 그 전에 즐기자는 밑바닥 인생들이었다. 

준은 말 많은 백인이 거슬렸다. 웃기려는 것인지 관심을 끌려는 것인지 문장 사이 마다 발음을 길게 빼고 있었다. 짜증을 넘어 화가 났다. 준은 원래 사람 인상을 판단하지 않았다. 어떻게 생겼든, 말투가 어떻든, 어떤 꼴로 살든, 내 알 바 아니라는 게 원래 준의 방식이었다. 트리시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트리시와 함께 살며 트리시의 취향을 갖게 된 것이다. 

준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저 놈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여동생이랑 헤어졌는데, 같이 가줄래요? 

둘은 서로 마주 봤다. 횡재했다는 표정. 저들은 준을 이미 손에 넣은 먹이감으로 여기고 있었다. 여동생이 있다는 말은 그들에게 먹이감이 하나 더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여동생이 어디 있는데? 

마을 어귀에서 헤어졌어요. 

어딘지 알아? 

지도 있어요. 

준은 지도를 흔들어 보였다. 둘은 자기들끼리 들리는 목소리로 논의 중이었다. 그들은 준의 여동생이 준보다 예쁠까 안 예쁠까 상상 속에서 저울질 했다. 그들은 준의 여동생이 준보다 한참 못하더라도 여전히 자신들 처지엔 평생 다시 얻기 힘든 황송한 기회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무엇보다 두명이서 한명을 강간하는 것보다는 두명이서 두명을 강간하는 것이 쾌락의 강도가 클 것이 분명했다. 

그럼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가자고. 지금 4시니까 3시간만 있으면 해가 뜬다고. 

그럼 저 먼저 갈게요. 

준은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밑바닥 인생 듀오는 아오 씨발 궁시렁 대며 따라 내려 왔다. 

잠깐 기다려 같이 가자고. 

준은 듀오의 말을 무시하고 교회 문을 열었다. 지금 이 근처에는 감염자가 없다. 일단 밖으로 나가야 안전하다. 교회 안에서 저들을 상대했다간 어떻게 당할 지 모른다. 밖에 나가면 저들은 번식이 아닌 생존에 집중할 것이다. 준을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일단 살아 나가는데 집중할 것이다. 

감염자의 위치를 파악하면 생존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 감염자가 나타나는 순간 저들을 방패로 삼을 수 있다. 사냥 당할 위기에 사냥꾼에게 먹이감을 던져 주는 것보다 효과적인 탈출법은 없다. 

촬영 장비를 든 놈이 전등으로 주변을 확인한다. 다른 놈이 준에게 자기 소개를 한다. 

나는 호보야, 저 새끼는 해리시고. 

준은 호보의 말을 무시하고 지도와 나침반을 보며 길을 찾았다. 

너 이름은 뭐야? 

잭이요. 

잭? 

예. 

그건 남자 이름이잖아! 

부모님이 밖에서 강간 당하지 말라고 그렇게 지었어요. 

호보와 해리시는 준이 생각과 달리 만만한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어쩌면 이들은 아까 몸에 붕대를 감는 준을 보고 과도한 성적 판타지에 빠진 걸지 몰랐다. 그때 너무 흥분해서 자신들도 모르게 준의 꼬임에 넘어간 것일지 몰랐다. 

그럼 여동생 이름은? 

준은 감염자의 냄새를 맡았다. 3시 방향이다. 감염자를 등지고 걸어야 한다. 그래야 저들을 방패 삼을 수 있다. 준은 진로를 9시 방향으로 틀었다. 

데이빗이요. 

데이빗? 

뒤에서 흐억 숨 멎는 소리가 들린다. 준은 100m 달리기 출발음을 들은 것처럼 전력질주 했다. 뒤에서 절규에 가까운 욕이 터져 나왔다. 내 알 바 아니다. 준은 뒤돌아 보지 않고 달렸다. 다음 엄폐물을 찾아야 한다. 개활지를 달리면 손 쉬운 사냥감이 된다. 감염자들은 인간보다 2배 빠르고 지구력은 10배 강하다. 감염자들은 동물보다 기계에 가깝다. 더 이상 태울 연료가 없을 때까지, 작동 불능 상태가 될 때까지 광란의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준은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어두컴컴한 건물 안으로 전속력 뛰어 들어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기관지에서 피가 흐르는 것 같다. 입에서 구리 쇠 맛이 느껴졌다. 준은 침을 뱉지 않고 삼켰다. 피도 영양분이야. 엄마와 같이 영국에 왔다면 좋았을텐데. 어디서 뭘 하든 죽이 잘 맞았을텐데. 어떤 위험도 함께 헤쳐 나가며 서로 기특해 했을텐데. 

오래된 기름 냄새가 났다. 연마된 강철과 산업용 기름 냄새. 여기는 군사 시설이었다. 버려진 군사 시설에는 트럭과 장갑차가 있었다. 냄새로 짐작컨데 마지막으로 시동을 걸었던 것이 최소 20년 전이다. 여기서 잠깐 쉬다 다시 뛰어야 한다. 혈당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몸에 마지막 연료를 채운 지 12시간쯤 된 것 같았다. 준은 가방에서 환자식을 꺼냈다.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준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 놈이다. 고기 옷 알파. 손에서 환자식을 떨어뜨렸다. 바닥에 떨어진 환자식을 보고 준은 극심한 허기를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 식욕이 여전한 걸 보니 아직 죽을 때가 아닌 것이다. 떨어뜨린 환자식을 챙겼다. 저 놈이 내 냄새를 찾기 전에 내가 저 놈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아뿔사. 고기 옷은 혼자 온 게 아니었다. 최소 예닐곱의 동료들과 함께 왔다. 이들이 군집 단위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들은 전형적인 집단 사냥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건물 퇴로마다 감염자들이 자리 잡았고 고기 옷과 두 마리의 감염자가 건물 위에서 사냥감을 찾고 있었다. 

굳이 이래야 되나. 뭐 먹을 게 있다고 나 하나에 집착하는 건가. 소용없는 하소연이다. 피해의식에 빠질수록, 겁 먹고 당황할수록, 약자를 자처할수록, 쉽게 사냥 당한다. 생각은 죽음으로 가는 함정이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궁극의 생존 무기다. 

준은 트럭 앞에 숨었다. 여기 있으면 대여섯이 한꺼번에 달려 들어도 쉽게 잡히지 않는다. 완전히 포위되더라도 도망칠 구석이 있다. 살려는 의지만 있다면 반드시 뚫고 나갈 수 있다.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아주 가까이 들렸다. 고기 옷이 트럭 짐칸 위에 있다. 고기 옷은 준의 위치를 알고 있다. 쿵쿵 대며 거침없이 준이 있는 트럭 앞으로 걸어 온다. 침착하게 기다려야 한다. 상대의 액션을 보고 반응해야 한다. 그래야 빈틈을 노릴 수 있다. 겁을 먹고 움직이는 순간 목숨을 잃는다. 

다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트럭 짐칸에 감염자 하나가 더 떨어졌다. 준은 눈이 커졌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붉은 수염이다. 준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트럭 밑으로 뛰었다. 트럭 위에서 육중한 금속음이 들렸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 금속이 살을 파고 드는 소리가 들렸다. 준은 건물을 나와 정신없이 달렸다. 어디로 가는지는 상관없었다. 일단 몸을 숨길 엄폐물을 찾아야 했다. 달리는 게 너무 느렸다. 몸이 한계에 이른 것일까. 아무리 빨리 달리려 해도 속도가 나지 않았다. 다리가 진흙 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몸이 밑으로 가라 앉는 것 같았다. 이러면 잡힐 지 몰라. 몸이 마음을 따라 주지 않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절망감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뒤에서 뭔가 바람처럼 달려왔다. 준은 뒤에 쫓아온 것이 군집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이탈자였다. 군집에서 이탈한 돌연변이. 이상패턴. 독립분열. 붉은수염. 
 
붉은 수염은 준의 목덜미 옷자락을 물었다. 아기 사자의 목덜미를 물고 달리는 어미 사자처럼 붉은 수염은 눈 앞에 보이는 건물을 향해 달렸다. 교회였다. 돌고 돌아 다시 교회로 돌아온 거였다. 붉은 수염은 교회 2층으로 가볍게 뛰어 올랐다. 교회 2층 코너에 있는 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철문이 달린 방이었다. 준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철문을 닫았다. 문에 잠금 장치가 있었다. 

어스름한 조명이 비치는 밀폐 공간이었다. 기도실일까? 이런 곳이 있었다니. 여기가 아까 호보가 말한 안전한 곳일까? 

준은 문가에 시체가 있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호보였다. 피를 많이 흘린 채 죽어 있었다. 목에 손을 대고 있었다. 목을 뜯긴 거였다. 목을 뜯긴 뒤 살기 위해 이곳까지 기어 온 거였다. 성직자에게 당한 것이겠지. 

붉은 수염이 벽에 기댄 채 쿵하고 털썩 주저 앉는다. 그의 몸은 사람이었으면 이미 여러 번 죽었을 치명상으로 가득했다. 뼈가 하얗게 드러난 깊은 상처들, 그의 목에도 서너 군데 물어 뜯긴 자국이 있었다. 준은 자신이 여태 죽지 않은 것이 운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브래드가 준 향나무 목걸이 때문이었다. 향나무 냄새 때문에 성직자들이 목을 물어 뜯지 못한 것이었다. 치명적 일격을 가할 수 없어서 바닥에 눕히고 공격했던 거였다. 

기이하게도 붉은 수염의 상처에선 출혈이 멈춰 있었다. 그의 상처에 말라 붙은 피는 소나무 송진처럼 번들번들 투명하게 굳어 있었다. 감염자들의 혈청은 인간의 것과 다른 것 같았다. 감염자들의 혈청은 인간의 것보다 효과적인 것 같았다.  

붉은 머리는, 불과 몇 분만에, 몰라 볼 정도로 바짝 야위어 있었다. 감염자는 몸의 연료를 한꺼번에 태울 수 있다. 신체 기관이 망가질 때까지 몸을 극한의 상태로 혹사시킬 수 있다. 하지만 붉은 수염은 이제 더 이상 태울 연료가 남지 않았다. 

준은 가방에서 환자식을 꺼냈다. 지혈제는 달랑 하나 갖고 온 주제에 환자식은 7개나 챙겨 왔다. 이렇게 먹을 것에 진심이었다니. 준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고열량식이라 하루에 한두개만 먹어도 되는데 혹시 몰라서 작정하고 많이 싸 온 거였다. 

준은 환자식을 들고 붉은 수염 옆으로 가서 앉았다. 준은 환자식 두개를 뜯어 하나는 자신이 먹고 하나는 붉은 수염에게 주었다. 붉은 수염은 환자식을 플라스틱 팩째 씹어 삼켰다. 환자식이 담긴 팩은 생분해 성분이다. 위액으로도 분해되니 별 탈 없을 것이다. 준은 환자식 5개를 더 뜯어 붉은 수염에게 주었다. 말에게 여물 먹이듯 붉은 수염을 먹였다. 집에 온 것 같았다. 말 대신 감염자가 있는 것만 달랐다. 

준은 붉은 수염의 손을 잡았다. 손이 난로처럼 뜨거웠다. 몸이 화력발전소 같았다. 화력 발전소처럼 에너지를 생산해 몸을 회복하고 있었다. 

무슨 사연이었을까. 대체 무엇 때문에 준을 도운 것일까. 군집에서 이탈하면 안 된다는 본능이 있었을 것이다. 군집에서 이탈하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대체 무슨 심정으로 생존 본능을 거스른 것일까. 

붉은 수염의 몸이 따뜻해서 좋았다. 준은 붉은 수염의 몸에 기댔다. 긴장이 풀리고 졸음이 쏟아졌다. 

눈을 떴다. 몇 시간이나 잔 걸까. 방에 창문이 없어 밖의 시간을 확인할 수 없다. 붉은 수염은 없었다. 하지만 철문은 잠겨 있었다. 붉은 수염은 어디로 나간 걸까? 이번엔 꿈을 꾸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이 났다. 잠 들기 전 붉은 수염의 손이 준의 배 위에 포개져 있었다. 배가 너무 따뜻해서 잠 든 거였다. 잘 자라고 엄마가 이불을 덮어 준 것처럼. 준은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임신 중이란 사실을. 

임신 때문이었을까. 붉은 수염은 임신한 여자를 보호하고 싶었던 걸까. 근거없는 해석이었지만 준의 입장에선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혹시 가족이 있었던 걸까. 신혼이었을까. 아내가 임신했을 때였을까. 그때 증상이 나타났던 걸까. 

감상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다. 준은 일어나서 철문을 열었다. 감염자의 냄새를 맡았다. 창문을 열었다. 해가 뜨고 있었다. 마을 경계선이 보인다. 교회 가까운 곳에 철조망이 있었다. 저게 경계선이다. 저곳을 넘어가면 저들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근거없는 직감이었지만 다른 선택이 없다. 어쨌거나 교회에서 이렇게 가까웠다니. 밤에는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까지가 마을인지도 몰랐고 철조망이 있단 사실도 몰랐다. 

철조망까지 가는 중에 쉬어갈 곳은 없다. 건물도, 엄폐물도 없다. 직선거리로 내달려 철조망을 넘어야 한다. 날아갈 수 있으면 좋을텐데. 준은 잠시 철조망까지 날아 가는 법을 궁리했다. 마음이 급했다. 어제의 투지는 모두 소진된 것 같았다.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욕구만 남았다. 

준은 호보의 베낭을 뒤졌다. 이들은 철조망을 넘어 왔을 것이다. 이들이 연구소를 지나 왔을 리는 없다. 그곳은 아무도 살아서 통과하지 못한다. 준은 호보의 베낭에서 절단기를 찾았다. 이걸로 철조망을 끊고 들어왔을 것이다. 절단기를 드는 순간 팔꿈치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이걸 들고 뛸 수는 없다. 가방에 넣고 철조망까지 달려야 한다. 

준은 1층으로 내려가 다시 한번 냄새를 맡았다. 아무도 없었다. 성직자들은 밤에만 활동하는 것일까? 그건 알 수 없다. 그걸 알면 뭐하겠는가. 죽거나 살거나 이제 갈 길은 정해졌다. 나침반도 지도도 필요없다. 해 뜨는 방향으로 최대한 빨리 직선으로 달려 철조망을 끊고 마을을 벗어날 것이다. 전력으로 달리면 3분 거리다. 3분만 참으면 모든 게 끝난다. 

.............나는 화살. 자멸하는 이슬. 아침의 용광로 속으로.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되어야 한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 달릴 것이다. 준은 망설임 없이 뛰었다. 철조망을 향해, 일출을 향해 달렸다. 화살이 된 것처럼, 말이 된 것처럼, 달리고 또 달렸다. 

멀리서 진동이 느껴졌다. 준은 후각을 억제하고 있었다. 아무 냄새도 맡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정신을 잃을 순 없었다. 이를 악물었다. 진동이 다가오는 쪽으로 몸을 돌려 세우고 팔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처음 연구실 입구에서 준에게 돌격했던 그 놈이다. 같은 냄새였다, 아드레날린, 테스토스테론, 급격히 연소된 탄수화물 - 열차의 냄새. 

쿵하는 소리가 충격파를 일으켰다. 열차가 탈선해 멀리 나뒹굴었다. 열차보다 더 강한, 붉은 색의 무언가가 열차를 들이받았다. 무슨 생각을 하기도 전에,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붉은 수염은 준을 가슴에 안았다. 그리고 철조망을 향해 뛰었다. 준은 뭔가 말을 하고 싶었다. 그가 알아 듣지 못할 걸 알면서도 준은 붉은 수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 순간 붉은 수염은 준의 멱살을 잡았다. 준을 철조망 위로 던져 올렸다.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새가 된 것처럼, 준은 하늘 높이 날아 올랐다. 준은 철조망 너머 풀밭 위에 떨어졌다. 혼란스러웠다. 왜 같이 철조망을 넘지 않은 거지? 준은 붉은 수염에게 달려갔다. 

붉은 수염은 철조망 너머에서 준을 바라 보고 있었다. 준은 붉은 수염의 눈에서 감정을 읽었다. 감정을 생성할 세포가 남아 있지 않은 그의 뇌에 마지막 반짝이는 감정을 보았다. 그의 눈엔 그리움이 있었다. 지키지 못한 인연, 해소되지 못한 연민, 처절히 엉긴 슬픔, 인간 수컷에 부여된 지독한 부양의 굴레. 

붉은 수염은 뒤돌아 갔다. 그를 향해 돌진하는 적대적 무리를 향해 포효하며 맞부딪쳤다. 그가 배신한, 한때 운명 공동체였던 이들을 향해 성난 팔을 휘둘렀다.  

준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달렸다. 준은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가 했던 말을 되뇌였다. 

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준은 그제서야 아버지가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양밍 아저씨가 죽었을 때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그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양밍 아저씨는 아버지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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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엔 비가 내렸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예상보다 빨리 치료제를 구했고, 브래드도 치료제를 만드는데 적극적이었다. 다수의 치료제 샘플을 가져 온 덕에 브래드에게도 치료제를 줄 수 있었다. 그에겐 치료제가 필요 없었지만 치료제가 필요한 지인이 있었다. 

브래드는 치료제가 실존한다는 말에, 그게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감격한 듯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준은 브래드에게 향나무 목걸이를 돌려주며 말했다. 곡스힐 근처를 지날 때면 반드시 이걸 목에 걸고 있어야 한다고. 

돌아가는 길엔 군대도 검문도 없었다. 말이 다닐 수 있는 길도 쉽게 찾았다. 갈 때는 12시간이 걸렸지만 돌아가는 길은 8시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준은 트리시를 생각했다. 약속을 지키게 돼 다행이었다. 무사히 돌아온 준을 보며 기뻐할 트리시를 떠올렸다. 트리시는 만신창이 몸이 된 준을 병원에 데려간다고 호들갑 떨 것이다. 하지만 이제 병원은 없다. 영국엔 이제 병원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모리스는 어디에 있을까. 준은 집에 도착하는 대로, 몸이 낫는대로, 모리스를 찾을 것이다. 모리스의 병원으로 가 그의 행적을 쫓을 것이다. 

준은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모리스가 보고 싶었다. 붉은 수염 생각이 났다. 모리스는 준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혹시 모리스의 영혼이 붉은 수염의 몸에 전이됐던 건 아니었을까. 

린다가 준을 돌아 보았다. 준이 우는 걸 보고 걱정하는 것 같았다. 린다는 발걸음을 경쾌하게 디뎠다. 준을 달래주기 위해 리듬을 타며 유쾌하게 걸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사이로 린다의 발굽이 따닥따닥 타악기처럼 노래했다. 

작품 등록일 : 2026-04-25

▶ Brody’s files #82

▶ Brody’s files #80

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이렇게 세게 와 박히다니ㅠㅠ

종을 초월한 이타적 유전자인가
아니면 정말 모리스인가ㅠㅠ
진미오징어   
하 너무 재밌어
  
모리스 어디있냐
남자란 뭘까
슬프다

하 붉은 수염…
복숭아   
붉은수염 ㅠㅠㅠㅠㅠㅠㅠㅠ
슬리피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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