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s files #79
엄마는 미국 소설을 좋아했다. 엄마는 영국 작가들을 싫어했다. 영국 작가들은 하나같이 쪼다 아니면 정신병자라고 했다. 엄마는 남자다운 걸 좋아했다. 엄마는 미국 소설이 더 남자답다고, 대장부의 호연기지가 있다고 좋아했다. 엄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소설을 추천했다. 영화보다 책으로 읽는 게 훨씬 재미있다고 했다. 

준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다섯번쯤 읽었다. 거기 나오는 대사를 대부분 외웠다.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아틀란타 포위전이었다. 아틀란타를 포위한 북부군의 포격이 쏟아지던 중 멜라니가 아이를 낳는 장면이었다. 산통에 시달리는 멜라니를 살리기 위해 쏟아지는 포탄 사이로 의사를 찾아 헤매는 스칼렛이 한탄했다. 

여자는 왜 임신을 하는 걸까. 

준은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언젠가부터 몸에서 나는 냄새가 달라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설마 임신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 준은 모리스와의 마지막 성관계를 기억했다. 그때 분명 모리스는 콘돔을 끼고 있었다. 모리스는 콘돔을 낀 채 사정했다. 하지만 모리스가 금세 다시 발기하는 걸 보고 준은 콘돔을 벗겼다. 그리고 다시 삽입했다. 그때 기억이 되살아 났다. 왜 그랬을까. 준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무 생각없이 자기도 모르게 그런 짓을 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물며 전시 상황에 이런 일이라니. 하지만 준은 낙태를 생각할 수 없었다. ‘지워 버릴까’ 하는 찰나의 생각만으로 준의 몸은 격심한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이건 준의 본능이 선택한 일이었다.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 한 짓이었다. 준은 몸은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길을 택했고 이제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준은 모리스에게 연락하고 싶었다. 모리스가 보고 싶었다. 모리스의 병원에서 가져와야 할 것이 있었다. 준의 머리 속에는 이미 치료제가 만들어져 있었다. 준은 머리 속의 이론을 현실화 해야 했다. 치료제를 만드려면 재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모리스는 지금 군인들의 추적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에게 오는 모든 연락을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 준은 재료를 직접 조달해야 했다. 준은 제임스도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쯤 모리스도 감염됐을 것이다. 이미 이끼 피부가 나타났을지 모른다. 맥기 아저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조안 할머니의 생사 여부도 알 수 없다. 집은 군인들이 점거하고 있을 것이다. 계엄은 좋지 않은 것이다. 설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사정이 절박해도 친절이나 배려는 없는 것이다. 

준은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했다. 알고 싶으면 직접 가서 확인해야 하고, 얻고 싶으면 직접 가서 가져 와야 했다. 준이 찾은 곳은 연구소였다. 전국에 석상병을 연구하는 연구소는 8곳이었다. 가장 규모가 큰 곳은 곡스힐이었다. 석상병에 관한 가장 진일보한 지식을 보유한 곳, 가장 최근까지 연구 성과를 내놓은 곳이다. 그곳에 가면 치료제 제조를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곳에서 모든 가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곡스힐까지는 차로 가도 3시간 넘게 걸린다. 말로 달리면 6시간 넘게 걸릴 것이다. 도로는 전면 통제되고 있을 것이다. 도로가 아닌 곳으로 달리면 12시간쯤 걸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 방법은 그것 뿐이다. 돌아올 때면 상황이 달라져 있길 바랄 뿐이다. 

린다가 12시간 장기 여행을 버틸 수 있을까. 린다는 관상용 말이다. 한번도 거친 임무를 수행해 보지 못했다. 린다의 어미 벳시는 강하게 길러졌지만 린다는 귀한 집 딸처럼 길러졌다. 도이는 은퇴한 경주마였다. 기량 하락으로 은퇴했지만 아직도 현역 경주마 수준의 근육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준의 본능은 도이가 아닌 린다를 원했다. 준의 직감은 명백히 도이가 아닌 린다가 적임자라고 말하고 있었다. 

준은 제임스와 트리시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잘 하면 그곳에서 치료제를 만들어 올 수 있을 거라고. 내일 새벽에 출발해 내일 모레 저녁까지 돌아오겠다고. 

너희들이 자는 동안 나는 가고 없을 거야. 내일 모레 돌아온다고 했지만 하루 정도 늦을 수 있어. 

준은 자기 전 짐을 챙겼다. 짐은 간소했다. 식량, 지도, 그리고 무기. 준은 오래 전 생각을 떠올렸다. 인간과 기계는 뭐가 다를까. 연료를 채우고 목적을 수행하고 퇴역한다. 우리는 인간적 삶을 추구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계적 인생을 살다 죽는다. 모리스가 말한 굴레의 삶이란 그런 것이었으리라. 모리스는 자신의 기계적 삶에 일말의 유감도 없었다. 아버지도 그랬다. 아버지도 기계와 같은 삶을 살았고, 딸에게도 엄마에게도 누구에게도 인간의 마음을 준 적이 없었다. 

돌이켜 보니, 그게 꼭 나쁜 것이었을까. 지금 이런 상황에서, 자기 연민이 없는 것보다 바람직한 것이 또 있을까. 매사 걱정도, 두려움도, 아무 생각도 없이, 기계처럼 시동을 걸고 목적을 수행하는 것처럼 편리한 게 또 있을까. 

준이 잠에서 깬 건 새벽 4시였다.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 기억하기 싫은 꿈이었다. 어떤 이들은 그런 꿈에 의미를 부여하겠지만 준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준에겐 그게 더 자연스러웠다. 꿈도 미신도 불길함도 준에겐 자기 연민 가득한 이들의 자기 학대 행위에 불과했다. 밖은 아직 밤이었다. 지금 출발하면 아무리 늦어도 해가 떠 있는 동안엔 도착할 것이다. 

밖으로 나온 준은 린다의 냄새를 확인했다. 린다는 건강했다. 집에 있을 때보다 활기 넘치는 것 같았다. 린다가 석양을 향해 달리고 싶다고 생각한 게 어쩌면 착각이 아니었을지 몰랐다. 어쩌면 린다는 정말로 집 뒷마당에 갇혀 사는 게 싫었는지 몰랐다. 

떠나기 전 린다와 도이를 배불리 먹였다. 준은 린다가 좋아하는 사탕무를 먹였다. 돌아와서 하나 더 줄게. 준은 린다에게 약속했다. 도이를 안아주고 작별 인사 하는데 린다는 도이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둘은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다. 린다는 준과 함께 떠나는 게 좋은 것이다. 도이와 더 이상 함께 있지 않아도 되는 게 좋은 것 같았다. 어쩌면 린다는 관상용 말이 적성에 맞지 않았는지 몰랐다. 린다는 임무 수행에 적합한 말일지 모른다. 매일 정해진 루틴에 따라 주어진 목적을 이행하며 사는 걸 좋아하는 걸지 몰랐다.

말에 안장을 올리고 짐을 챙겼다. 집에 문이 열리고 트리시가 졸린 눈으로 비척대며 나왔다. 준이 트리시에게 아침 인사를 했다. 

왜 안 자고 나왔어. 

언니 배웅해 주려고. 

증상이 발현되고 3일이 지났지만 트리시는 아직 증세가 재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없는 동안 증상이 나타나면 어쩌지. 제임스는 트리시를 감당할 수 있을까. 제임스에겐 메모를 남겨 놓았다. 트리시의 증상에 대해서, 그리고 증상이 재발할 경우 대처법에 대해서. 하지만 그건 이론일 뿐이다. 실제 상황에선 전혀 쓸모 없는 조언일지 몰랐다. 

트리시가 말했다. 

언니… 나 사실은… 꿈을 꾼 거 같은데… 

무슨 꿈? 

개가 돼서 언니를 무는 꿈. 


이상한 꿈도 다 있다고 생각했는데… 언니 손을 보고 그게 꿈이 아닌 걸 알았어. 그거 내가 준 컨실러잖아. 상처 가린 거잖아. 


근데 언니를 해치려고 문 게 아니야. 언니가 너무 좋아서 문 거야. 꿈에서 정말 그랬어. 언니가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세게 물었어. 

준은 트리시가 귀여웠다. 굳이 그 말을 하기 위해 트리시는 지금 이 시간에 일어난 거였다. 쓸데없는 말이었지만 다정한 말이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말, 기분이 좋아지는 말. 준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제임스가 물릴 일은 없겠네. 

트리시가 웃었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은 트리시를 안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트리시를 꽉 껴안았다.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트리시도 알아 들었을 것이다. 무슨 뜻인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해했을 것이다. 트리시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사랑해. 꼭 무사히 돌아와야 해 알았지? 

사랑은 맹목적이다. 아버지는 사랑을 하지 않았지만 사랑을 이해했을 것이다. 우리가 왜 사랑을 하게 되는지, 우리가 기계와 어떻게 다른지, 혹은 어떻게 같은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단지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아버지는 어쩌면 과학을 사랑했던 건지 몰랐다. 준이 트리시를 사랑하는 것처럼, 트리시를 위해 맹목적인 선택을 한 것처럼, 아버지도 그랬던 것일지 몰랐다. 

준은 린다 위에 올라 타고 트리시와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냄새를 확인했다. 무기물이 어디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무기물은 군인, 경찰, 드론, 군용차, 살상무기 등을 뭉뚱그려 부르는 명칭이다. 준 혼자 머리 속에서 붙인 이름이었다. 바람이 많이 불면 무기물의 위치 파악이 어렵다. 하지만 오늘은 바람이 잔잔하다. 

등 뒤로 해가 떠올랐다. 그림자를 밟으며 빠르게 앞으로 달린다. 린다는 기분이 좋다. 경쾌하게 달리며 푸르륵 푸르륵 연신 준을 돌아 본다. 너도 기분 좋지 않느냐고 묻는다. 준은 피곤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어제 하루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하루 더 쉬고 나올걸 그랬나. 하지만 마음이 급했다. 언제 다시 침입을 받을지 몰랐다. 게다가 무엇보다 곡스힐의 상황이 궁금했다. 곡스힐 연구소에는 베넷 교수의 친구가 있었다. 곡스힐엔 원래 베넷 교수가 가게 돼 있었다. 하지만 베넷 교수에게 이끼 피부가 발견된 덕에 그의 친구가 대신 끌려 갔다. 베넷 교수가 곡스힐에서 마지막으로 전해 들은 소식은 곰팡이에 감염되지 않는 샘플을 확보했다는 것이었다. 

그게 무엇이건 상관없다. 곡스힐에는 분명 뭔가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아직 연구원들이 있을까. 설마 폐쇄된 건 아니겠지. 무기물이 점거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기물의 냄새가 났다. 북쪽으로 약 3km 거리? 준은 냄새로 거리를 측정하는 법을 익혀야 했다. 지금껏 냄새의 화학 형질만 분석하느라 냄새의 물리 형질에 대해선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버지는 알 수 있었겠지. 지금 이 냄새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어떤 환경 어떤 상태에 있는 것인지. 후각이 시각보다 유리하다. 시각은 한번에 하나씩만 감지할 수 있지만 후각은 한번에 모든 걸 감지할 수 있다. 냄새의 물리 형질에 익숙해지면 준은 저들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의외로 경계가 삼엄하지 않았다. 계엄군은 느슨하게 흩어져 있었으며, 주변을 크게 경계하는 것 같지 않았다. 군인들은 억지로 끌려와 망을 보는 것 같았다. 자기들이 뭘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민간인 집에 처들어 와 사람들을 잡아간 군인들은 알고 있었을까 자신들 하는 짓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고 있었을까. 

예상과 달리 계엄망을 피해 가는 건 쉬웠다. 말이 달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 도로 곳곳에 사고 차량이 방치돼 있었다. 자전거 도로에도 산책로에도 다수의 시체와 장애물들이 즐비했다. 준은 린다가 달릴 수 있는 막히지 않은 평탄한 길을 찾기 위해 자주 헤매야 했다. 

길에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유색 인종들이었다. 그들은 말을 타고 달리는 준을 보고 신기해 했다. 일부는 멀리서 인사를 했고, 일부는 따라 와 말을 걸려고 했다. 옷을 벗고 다니는 증상발현자를 여럿 보았지만 금방 사라져 버렸다. 그 중 하나는 네 발로 달리고 있었다. 야생 원숭이처럼 네 발로 달리는 증상발현자는 배가 고픈 것 같았다. 침을 많이 흘리고 있었다. 준과 린다를 발견한 순간, 사람이라고 믿기 힘든 속도로 쫓아왔다. 준은 상체를 기울였다. 다리를 모으고 고삐를 쥐었다. 린다는 0.1초만에 반응했다. 준의 마음을 읽은 듯 땅을 박차고 질주했다. 경주마처럼 전력으로 달렸다. 증상발현자와의 거리가 까마득히 멀어졌다. 

우리 착한 린다. 똑똑하고 착한 말. 

준은 린다를 안아 주었다. 진작에 밖에 데려 나올 걸 그랬다. 이렇게 눈치 빠른 말이었다니. 이렇게 달리는 걸 좋아하는 말이었다니. 

해가 많이 기울었다. 얕은 언덕 아래 드넓은 녹초지가 보인다. 저 앞이 곡스힐이다. 정말 딱 12시간 정도 걸렸다. 린다를 어떻게 해야 할까. 연구소 건물 앞까지 데려 가는 건 위험하겠지. 누가 있을지 모르는데. 하지만 여기 묶어 놓을 수도 없지 않은가. 여기 가만 서서 내일까지 기다릴 수도 없다. 린다를 타고 여기까지 올 생각만 하고 막상 도착하면 어떻게 할 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맥기 아저씨에게 물어 보고 올걸. 아 맥기 아저씨도 없구나. 

뒤에서 누군가 준을 부른다.  

이봐, 젊은이! 

밀집 모자를 쓴 노인이었다. 말을 타고 있었다. 미국 남부 사투리를 구사하는 흑인 혼혈이었다. 흑인 특유의 체취가 강렬했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어째서 감지하지 못했을까? 뭔가에 집중하면 후각은 무력화 되는 것일까? 

노인이 묻는다. 

여긴 무슨 일로 왔어? 

곡스힐에 가려고요. 

노인은 말없이 준을 바라 보았다. 준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저 혹시 말을 맡길 곳이… 

노인이 준의 말을 끊고 말했다. 

우린 곡스힐에 가지 않아. 

예?

노인은 대답 대신 질문을 했다. 

곡스힐에는 뭣 때매 가려는 거지? 

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네도 순례자인가? 

순례자요? 

구원을 얻으려 곡스힐에 오는 사람들이 있지. 구원의 약이 있다고, 그걸 갖겠다는 거야. 

눈이 번쩍 뜨였다. 치료제를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표정을 보니 내 말이 맞구만. 내 말을 듣게 젊은이, 곡스힐에 가면 살아 돌아오지 못해. 

노인은 대답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공통의 목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다. 노인이 정식으로 자기 소개를 한다. 

내 이름은 브래드. 브래드 보브런. 자네는? 

준 리즈입니다. 

난 여기서 목장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어. 지금은 관리할 목장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어쨌든 여기서 가축들을 돌볼 사람은 나 하나 남았지.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곡스힐에 가는 건 포기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라고. 

준은 아무 말 없이 노인을 바라 보았다. 노인과 준은 한동안 말이 아닌 시선으로 생각을 주고 받았다. 준이 먼저 말을 꺼냈다. 

곡스힐에 무슨 일이 있었죠? 

연구소가 있었지. 재난이 발생했어. 

무슨 재난이요? 

거기서 발생한 재난으로 사람들이 모두 죽거나 도망가고 주님의 자식들만 남았어. 

주님의 자식이라니 무슨 말이지. 노인은 아리송한 표현을 즐겨 썼다. 미국 흑인들의 어법일까? 

미국에서 오셨어요? 

내슈빌에서 왔지. 거기서도 말을 길렀는데 여기서도… 

혹시 제 말을 맡아 주시지 않을래요? 

브래드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이봐, 젊은이. 얼마 전에 군대가 왔었어. 여기서 사람이 너무 많이 죽는다고, 저 연구소에 뭔가 있다고, 군인들이 와서 독가스인지 최루가스인지 흰개미 박멸하듯 건물 전체를 “정화”하고 들어갔어 그리고 아무도 살아 나오지 못했어. 그게 처음이 아니야. 한달 전에도 같은 시도를 하고 똑같이 몰살 당했어. 그런데 저길 자네 혼자 들어가겠다고? 

브래드는 준의 얼굴을 보았다. 준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그의 머리 속에는 곡스힐 연구소에 들어갈 생각 밖에 없었다. 준의 혼은 이미 연구소 안에 들어가 있었다. 브래드는 이 여자 아이가 무지한 충동 때문에 이러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브래드는 이 여자 아이가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으며, 정신병이나 자살 욕구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브래드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자네 말 이름이 뭐지? 

린다요. 

린다는 내게 맡아 주겠어. 그리고 혹시 자네가 돌아오지 못할 경우 린다를 어디 돌려줘야 하는지 알려줘. 

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준의 얼굴은 암묵적 의사 표현을 하고 있었다. 나는 살아 돌아올 것이니 그런 건 알 필요 없다고. 브래드는 다시 웃었다. 

있잖아 젊은이, 우리 만난 지 이제 3분쯤 된 것 같은데 나는 벌써 자네가 마음에 들어. 

브래드는 말에서 내려서 가방을 뒤졌다. 십자가 모양의 나무 조각을 꺼냈다. 강렬한 향을 뿜는 나무였다. 

행운의 부적이야. 주님의 자식들의 공격을 막아 주지, 아마도. 

준은 말에서 내려 브래드의 십자가를 받았다. 향나무Chinese juniper였다. 얼마 전까지 곰팡이 감염을 막아 준다고 인기를 끌었던 나무들 중 하나였다. 

감사합니다. 

준은 린다의 고삐를 브래드에게 넘겼다. 브래드는 언덕 아래 목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굉장히 큰 목장이었다. 개방된 공간엔 아무것도 없었다. 가축들은 모두 실내 공간에 있을 것이다. 밖에선 증상발현자들의 쉬운 먹이감이 되기 때문이다.  

린다와 나는 저기 있을 거야. 친구들이 많지만 자네가 돌아올 때까진 격리해 놓을 거야. 걱정하지 말라고. 말은 아마 내가 자네보다 잘 알 테니까. 

준은 린다를 껴안고 작별 인사를 했다. 준은 브래드와 악수했다. 브래드에게 준의 체취를 남기기 위함이었다. 린다는 브래드를 따라 갈 것이다. 

브래드는 준에게 연구소 진입을 위한 브리핑을 해주었다. 

연구소의 정문은 실험체, 감염자들 출입문이야. 그쪽으로 들어가면 안 돼. 연구소 후문으로 들어가야 해. 거기가 연구소로 바로 이어져 있어. 혹시 호기심이 생기더라도 마을로 들어가선 안 돼. 거기 생존자가 있더라도, 누가 살려 달라고 요청해도, 절대로 마을로 들어가선 안 돼. 곡스힐에서 생존하는 유일한 방법은 곡스힐에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 하는 것 뿐이야. 

작품 등록일 : 2026-04-23
최종 수정일 : 2026-04-23

▶ Brody’s files #80

▶ Brody’s files #78

나는 살아 돌아올 것이니,
그런 건 알 필요없다.
진미오징어   
하 임신이라니
복숭아   
바이오 하자드 느낌도 좀 난다.
버터   
찡하다ㅠㅠ
  
재밌어 ^~^ 자랑하나 : 나 바람과함께사라지다 초판 있다~
슬리피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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