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s files #76
준은 정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정원에는 익숙한 노란 꽃들이 피어 있었다. 하워드 아저씨는 저 노란 꽃은 잡초라고 했다. 잡초는 곰팡이 꽃을 피운다고 했다. 잡초가 곰팡이에 감염되면 곰팡이가 만든 노란 공갈꽃을 피우고 벌이 날아오면 꽃가루 대신 곰팡이 포자를 퍼뜨린다고 했다. 

준은 꽃에서 곰팡이의 냄새를 맡았다. 곰팡이가 피운 꽃이지만 병든 것 같지 않았다. 꽃은 곰팡이의 숙주가 되었지만 건강했다. 번성하고 있었다. 어쩌면 꽃에게 곰팡이는 병이 아닐지 몰랐다. 꽃은 어쩌면 곰팡이가 공갈 꽃을 피우는 걸 허락했을지 몰랐다. 

브로디 버크는 곰팡이와 숙주의 관계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관계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어떻게 발전했는지, 어떤 결과를 낳을지, 냄새의 직감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지구상 존재하는 수백만 종 곰팡이들의 차이점이 아닌 수천만 년 공유해 온 공통점을 이해했을 것이다. 이들이 다른 생명체 몸에 적응하고, 정착하고, 번성하는 원리를 이해했을 것이다. 브로디 버크가 이해한 것은 이종 간 대립이 아닌 타협이었을 것이다. 

준은 얼 빠진 사람처럼 정원에 혼자 앉아 있었다. 준의 손에는 피에 젖은 붕대가 감겨 있었다. 준은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 한 시간 전 트리시가 준의 손을 물었다. 준과 사업 이야기를 하던 트리시는 갑자기 졸음이 쏟아진다면서 자러 가겠다고 하고는 준의 손을 물었다. 트리시의 송곳니가 준의 손 뼈까지 파고 들었다. 준은 비명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다른 손으로 입을 막았다. 피가 흘렀지만 준은 트리시를 물리치지 않았다. 준의 손에서 입을 땐 트리시의 입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트리시는 준을 한참 노려 보다 쓰러져 잠이 들었다. 

준은 상처를 봉합하고 트리시의 입에 묻은 피를 닦았다. 트리시는 지금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트리시의 증상은 당분간 모른 척 해야 할 것이다. 모리스는 알게 되더라도 트리시 본인은 몰라야 한다. 

준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트리시에게 반드시 낫게 해준다고 호언장담 한 것이 거짓말이 되어 버렸다. 트리시의 이끼 피부가 4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치졸한 변명이었다. 4개월이면 죽어 가는 암 환자 100명도 살릴 수 있는 시간이다. 아버지 병원에서는 그랬다. 

…나는 증상이 나타나도 비슷하지 않을까? 어차피 바보니까 지금이나 그때나 달라질 게 없을 거 아냐! 

트리시는 자신의 미래를 비관하지 않았다. 트리시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다.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트리시는 줄기차게 신제품을 출시했다. 제품 브랜딩을 위한 사진을 찾았다고 했다. 어느 무명 사진 작가의, 대체 무슨 물체인지 알 수 없는, 자연물인지, 외계물인지 모를 의문의 사진을 제품 패키징에 썼다. 그게 인기를 끌었다. 뭔지 몰라서, 신기하다고 입소문이 났다. 의문의 사진의 정체는 사람의 신체였다. 어느 신체 부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이 무명 사진 작가의 사진들이 스킨 케어 제품에 브랜딩 되면서 트리시의 회사는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내가 언니 호강 시켜준다고 했지. 

트리시는 준에게 명품 가방을 선물하며 활짝 웃었다. 트리시는 희열을 느꼈다. 언니와 약속을 지킨 자신을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준은 트리시의 선물을 받고 생각했다. 나도 이렇게 기뻐할 수 있을까. 트리시에게 치료제를 만들어 주고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준은 고통받고 있었다. 트리시가 준의 손을 물고 난 뒤 피묻은 얼굴로 준을 노려 본 것이 원망의 뜻처럼 느껴졌다. 

트리시가 외출을 하지 않게 된 건 2주 전부터였다. 차를 몰고 다녀도, 몸에 방어구를 두르고 다녀도 목숨을 보장 받지 못할 정도로 위험해졌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포탄 없는 전쟁터가 돼 가고 있었다. 상점 주인이, 상점 손님이, 직장 동료가, 평생 관계를 맺어온 친구와 이웃이, 언제 귀를 물어 뜯을지, 언제 바지를 내리고 강간을 시도할지 알 수 없었다. 서로의 서로에 대한 두려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야 하는 인간 사회에서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자 일상은 유지되기 힘들었다. 

트리시는 최근까지 위험을 감수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언제 터질 지 예측할 수 없는 지뢰밭을 쏘다니며 사업을 번창시켰다. 그러다 2주 전 지뢰가 터졌다. 집으로 돌아오다 버섯뇌의 습격을 받은 것이었다. 귀가 시간이 늦는 트리시가 걱정돼 마중 나와 있던 제임스와 준이 아니었다면 트리시는 죽었을 지 몰랐다. 트리시는 자신이 위험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제임스가 버섯뇌를 가로 막는 사이 번개 같은 동작으로 버섯뇌의 사지를 부러뜨린 준을 보고 감탄한 게 전부였다. 언니는 대체 그런 건 어디서 배웠어?

그 뒤로 트리시는 밖에 나가지 못했다. 조안 할머니도 외출을 중단했다. 트리시가 더 이상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다른 식구들과 함께 감시했다. 그게 원인이었을까.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 갇혀 있게 된 것이 증상 발현을 촉진한 원인이었을까. 

“한번 증상이 시작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주장은 입증되지 않은 가설이다. 준은 낙관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트리시가 그랬듯, 준도 그러기로 했다. 생명은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지 않는다. 아버지도 그랬을 것이다. 증상을 돌이킬 수 없다는 주장은 가설로도 쓸 수 없는 엉터리 헛소리라고. 

이런 데서 청승 떨고 있을 수 없었다. 준은 집으로 돌아갔다. 잠든 트리시의 상태를 살핀 뒤 손에 감은 붕대를 풀었다. 아버지가 만든 지혈제는 아무리 큰 출혈도 막을 수 있다. 이런 상처 정도는 금방 복구 가능하다. 준은 트리시가 준 컨실러로 상처를 가렸다. 아무 일 없었던 것이다. 치료제는 만들어질 것이다. 트리시는 아무 일 없었던 때로 돌아갈 것이다.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던 일상, 언제나 똑같이 예측 가능했던 하루하루,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그때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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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먼은 독실한 교인이었다. 그는 그의 교회에서 가장 많은 돈을 기부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교회 기부금으로 새 삶을 찾은 이들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는다. 감사의 편지에는 대부분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저도 이 다음에 꼭 선생님처럼 훌륭한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돈이 많은 수컷은 명예를 찾기 마련이지. 그 돈이 더러울수록 더 그런 법이지.

나이먼의 정체를 아는 소수의 사람들은 뒤에서 이렇게 빈정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먼이 무슨 일을 해서 부자가 되었는지 몰랐다. 그를 그나마 가까이 알게 된 사람들은 그가 해외 건설업으로 큰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 정도만 알았다. 나이먼이 건설업으로 돈을 버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가 노예 비즈니스로 부자가 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이먼의 노예 비즈니스는 뿌리 깊은 가업였다. 고조부가 노예 무역으로 가문을 일으킨 뒤 정재계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위에 올랐다. 공개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나이먼 가문은 지금도 노예 비즈니스로 돈을 벌고 있었다. 건설업의 핵심은 노동력이고, 이 노동력을 공급받는 최선의 수단은 노예제였다. 노예 산업은 21세기에도 횡행했다. 노예가 없으면 경제 발전도 없다, 맨주먹으로 국부를 창출해야 하는 국가 입장에선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건설업의 특성상 재해가 잦았다. 현장 노동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죽어 나갔지만 나이먼의 사업체에선 단 한건의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산업재해 희생자들에게 보상을 해주는 것보다는 정부 관계자들에게 뇌물을 먹이는 편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었다. 죽은 가장의 시신을 수습하러 온 가족들의 비참한 행렬이 계속됐지만 나이먼의 회사에서는 위로금은 커녕 교통비조차 지불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이먼의 회사가 매년 교회에 천문학적 돈을 헌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다행이었다. 

현장에선 같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는 감정적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나이먼은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선 그런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유색 인종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이먼은 자신의 노예 비즈니스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백인 우월주의자였다. 인종이란 생물종을 나누기 위한 구분자이며, 이 구분자는 백인들 사이에서도 적용 가능하다고 믿는, 엄격하고 세심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곰팡이 역병이 발발하고 세상이 혼란해지자 그는 역병이 열등한 백인들을 솎아 내기 위한 자연의 큰 뜻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신과 자신의 아내, 3명의 자식이 모두 증상을 보이자 나이먼은 말을 바꿨다. 이건 음모라고. 백인종의 세상에 불온한 감정을 품은 유색 인종의 획책이라고. 

나이먼은 음모론의 나팔수가 되었다. 그는 사적인 영향력을 이용해 지금의 역병이 중국의 연구소에서 인위적으로 개발됐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조했고, 이를 이용해 언론과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급증하는 증상발현자에, 무너지는 사회 시스템에, 기득권 심리에 균열이 생겼다. 그들이 한세기 동안 유지해 온 낙관적 세계관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웠다. 전쟁이나 자연재해, 경제적 몰락과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들에게 뇌의 존재는 곧 사회 신분이었다. 뇌의 존재 가치는 사회 신분에 따라 다르게 매겨지는 법이었고, 뇌가 사라지는 건 그들의 사회적 지위가 사라짐을 의미했다. 

공포는 조급증을 불렀다. 조급증은 감정적 선택을 부추겼다. 그들은 과학적 원인 대신 희생양을 찾기 시작했다. 음모론이 주류의 의견이 되었고, 점차 충동적이고 과격한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나이먼은 전쟁을 원했다. 그는 지금 당장 계엄령을 선포하고 유색 인종들을 잡아 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중국에 선전포고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당장 치료제를 내놓지 않으면 우리가 중국에 처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나이먼의 비현실적 주장이 일시적 감정의 문제가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나이먼은 두 번 중 한 번 꼴로 중국을 “소비에트 연방”이라고 불렀다. 처음엔 일종의 조크인 줄 알았으나 이번엔 인도와 아일랜드를 구분하지 못하는 걸 보고 이것이 증상발현의 초기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나이먼의 큰 아들이 그의 조모를 살해하고 시설에 감금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나이먼이 이성적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이먼은 파문되었다. 기존의 사회적 관계에서 퇴출 되었고 수백년 동안 유지해 온 사회 지위를 잃었다. 나이먼은 반강제적으로 정치 로비스트를 그만두고 가정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그는 궤념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에겐 신과 가족, 교회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교인으로 살기로 했다. 가족과 교인들을 위해 자신의 남은 생을 바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었다. 나이먼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는 큰 아들의 상태가 많이 진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만간 새로운 치료제가 임상시험에 들어갈 것이란 소식도 들었다. 그의 후원으로 대학을 졸업한 프란시스가 암호화 화폐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는 감사 편지도 받았다. 그는 모처럼, 최근 일년만에 처음으로,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 신은 우리 문명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신을 위해 세워진 우리의 천년 왕국은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나이먼은 교회에 모인 자신의 동족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둘러 보았다. 우리 모두가 새로운 희망이다. 우리 모두 서로의 양심이 돼 모두의 삶을 한결같이 지켜줄 것이다. 나이먼은 아내의 손을 잡고 힘차게 성가를 불렀다. 신과 그의 어린 양들을 위한 무한한 영광을 노래했다. 

그가 견딜 수 없는 졸음에 빠져든 건 그때였다. 참을 수 없는 공복을 느낀 것도 그때였다. 나이먼은 이후 기억을 잃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그 때의 끔찍한 비극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 

나이먼은 유산을 남겼다. 나이먼이 남긴 유산은 불안의 씨앗이었다. 앙상한 가지에서 5월의 장미가 만개하듯, “다 죽기 전 뭐라도 해봐야 한다”는 정서가 기득권에 만연했다. 마침내, 무언가에 떠밀리듯, 쌓이고 쌓인 불안과 분노와 공포가 폭발했다. 영국은 계엄령을 선포했다. 영국은 누가 누구의 적인지 모르는, 피아 구분이 불가능한 내전 상태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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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버는 비관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세계 멸망을 믿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자신이 감염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이 감염되지 않는 극소수의 백인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엠버의 사업은 “다 쓰고 죽자”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화려한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엠버의 여행 상품은 역병이 발생한 이후 큰 인기를 끌었다. 앰버는 일개 사업자에 불과했지만 외교 역량을 발휘했다. 영국인들의 일본 입국이 불가능해진 뒤에도 엠버는 다양한 방법으로 고객들을 일본으로 보냈다. 앰버는 전화와 이메일을 붙들고 일본인들과 협상을 벌였다. 24시간 일할 수 있는 일본인 직원을 채용해서 전화와 이메일 공세를 쏟아 부었다. 처음에 딱 잘라 거절하던 동양인들은 앰버가 주렁주렁 붙인 조건에 생각을 달리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될 수 있지 않을까? 예외적으로?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아무도 다치지 않을테니까? 그랬다. 돈을 더 쓸수록, 안전을 위한 더 많은 조건을 부여할수록, 협상은 타결에 가까워졌다. 

앰버의 지인들은 앰버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제 코가 석자인데. 나 같으면 그 일본 여행 내가 갔을텐데. 사람들은 엠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세기말적 공포를 다스리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지금이 정녕 자아 실현을 할 때인가? 정말 그렇게 타인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줄 때인가? 대부분의 재난 영화에서 사람들은 최후의 순간을 가족과 함께 하지 않던가? 

앰버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잊은 것이었다. 앰버는 자신이 원래 학생이었다는 사실도 잊었다. 학교 수업이 파행으로 치닫자 다른 몰두할 것을 찾은 것이었다. 

앰버가 학교를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한 건 레머 교수가 수업 중 똥을 쌌을 때였다. 레머 교수는 자신의 업에 누구보다 헌신적이었다. 다른 교수들이 줄줄이 휴직하는 중 마지막까지 홀로 수업에 열정을 보였다. 레머 교수는 NK세포를 이용한 암 치료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암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첨단 기술들이 체내 정착한 침입자들을 제거하는데 활용될 수 있단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 몸에 곰팡이도…” 레머 교수는 여기까지 말하다 멍하니 천장의 조명을 바라 보았다. “저 사람 어디 이상한데” 학생들이 술렁이는 순간 똥 싸는 소리가 들렸다. 

수술 실습을 받던 와이엇이 실습 조교였던 케이티의 뺨을 물어 뜯은 것도 같은 날이었다. 와이엇은 발기해 있었다. 케이티를 강간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증상이 점진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어느 순간 갑자기, 지진이나 화산 폭발처럼 나타난다는 게 무서웠다. 어떤 예비 신호도 엿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어쩌면 앰버는 현실 도피를 하고 싶었는지 몰랐다. 일에 매달리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는지 몰랐다. 앰버의 현실 도피가 중단된 건 그의 부모님의 감염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부모님은 미국에 있었다. 사업차 미국에 들렀다 나라가 혼란해지자 거기 더 머물기로 했던 것이다. 부모님이 몰랐던 건 미국도 안전지대가 아니었단 사실이었다. 부모님 모두 이끼 피부가 나타난 지 오래였다. 앰버의 아버지는 급격한 치매 증상을 보이며 병원에 입원했고, 어머니도 언어 능력이 퇴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전해 들었다. 

앰버가 자신의 이끼 피부를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그는 두피에도 이끼 피부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분명 그런 얘기를 들었지만 앰버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앰버는 부모님의 증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공포감을 느꼈다. 자신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에 더 이상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엠버는 친구들을 찾았다. 평소 재미없다고 무시했던, 착하고 사려깊은 친구들. 그들은 앰버에게 말했다. 우린 지금 난생 처음 돈이 전부가 아닌 세상을 살고 있다고. 

그랬다. 우린 지금껏 돈으로 인생을 선택할 수 있었다. 돈으로 고통을 최소화 하고 행복을 최대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게 불가능했다. 

앰버의 고객들 중에는 “안락사 패키지”를 문의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죽으러 가는 여행 - 조력 사망 상품을 원했다. 다른 여행사에서는 그런 상품을 팔고 있다며 앰버에게도 그런 상품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앰버는 어이가 없었다. 고통없이 죽으려면 그냥 지금 이대로 석상병에 걸려 죽는 것이 최선이다. 돈을 써서 죽으나 그냥 이대로 죽으나, 하루 2만 파운드 짜리 병실에서 죽으나 길바닥 시궁창에서 죽으나, 모두 똑같이 죽는다. 뇌가 사라진 채, 자신이 누군지 기억하지 못한 채, 걱정도, 스트레스도, 고통도 없이, 모두 똑같이 바지에 똥오줌을 지리며 죽는다. 고객들이 앰버에게 요청한 것은 아무 의미없는 돈지랄이었다. 그저, 아무 의미없이, 돈이라도 쓰고 죽는 게 마음 편할까 싶은, 가진 돈을 전부 털어 버리고 나면 남보다 특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무의미한 착각, 최후의 몸부림이었다. 

엠버는 절감했다. 이 병은 가진 자들에게 더 고통스러운 병이라는 사실을. 자신들이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이, 지난 수백년 간 가문의 조상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모든 것이, 지금껏 빈둥빈둥 땅 파먹고 살아온 게으름뱅이 거지들과 똑같은 꼴로 굴러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앰버는 두려움에 짓눌렸다. 조급해졌다. 의심과 피해망상, 증오의 굴레에 빠져 들었다. 

앰버는 감정적 선택을 쫓았다. 그가 평소 혐오했던 무지성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사고 방식, 음모론에 빠져 들었다. 엠버는 석상병이 중국에서 유래됐다는 음모론을 믿기 시작했다. 엠버는 중국에서 온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앰버의 무의식은 음모론이 사실이 아니란 사실을 직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포에 질린 그의 뇌는 그에게 접촉한 군 정보부 인사에게 알고 있는 모든 걸 털어 놓았다. 

작품 등록일 : 2026-04-20

▶ Brody’s files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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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어 아수라장ㅋㅋㅋㅋ
  
재밌어 ㅎㅎ
슬리피캣   
천재다
커피   
견딜 수 없는 졸음이 이렇게 무섭게 느껴진건 처음

어디까지 확장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공포소설
진미오징어   
순서 바꿔서 읽으니까 더 좋아

시각이 오감으로 확장되는 기분
진미오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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