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s files #75
브로디 버크. 그는 입양아였다. 그의 아버지는 임신한 아내를 버렸고, 어머니는 출산 중 죽었다. 그는 아일랜드로 입양돼 브로디라는 이름을 얻고 농부가 되었다. 그는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그는 의학도, 생물학도, 식물학도 배우지 않았다. 모든 걸 타고난 후각과 실전 경험을 통해 체득했다. 학문을 배우지 않은 것이, 인간이 아닌 땅을 선택한 것이, 그를 전례없이 독특한 과학자로 만들었다. 

준은 브로디 버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오래 전부터 그를 인터뷰 해 온 데렉 존스 기자로부터였다. 존스 기자는 준에 대해서도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진작에 준을 방문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그만 두고 나서야, 개인적인 자격으로 준을 만나게 됐다고 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기자님 TV에서 뵌 적 있어요. 뉴스에서. 

예, 마지막에는 방송국에서 일했죠. 

브로디 버크는 지금 그럼 뭘 하고 있나요? 

아일랜드 던아니에서 범죄 피해자들을 위한 마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준은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뭘 먼저 물어 봐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몇 주 전 존스 기자는 준에게 만나자고 연락했다. 브로디 버크에 대해 알려 드리겠다고 했다. 신 내림 같은 타이밍이었다. 지금 이 세상에서 브로디 버크에 대해 가장 궁금한 사람은 준이었다. 곰팡이에 대해 알수록 더 궁금해지는 건 이 곰팡이를 만든 사람이었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온 것인지, 어떤 지식과 배경으로 이걸 가능케 만든 것인지, 몸살이 날 정도로 궁금했다. 

존스 기자는 브로디 버크가 정성주의 파일을 입수해 안락사 기술을 연구한 것이 화근이었다고 했다. 원래는 말기암 환자들을 평온히, 천천히 죽음에 이르게 하는 기술이었다고. 여기서 “죽음”을 빼버린 것이 지금의 결과라고 했다. 

정작 준보다는 존스 기자가 궁금한 게 더 많았다. 준이 궁금한 건 과학이었지만 존스 기자가 궁금한 것은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금껏 수집한 정보들의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아버지 정성주의 과거, 중국에서의 행적, 어머니 캐런의 이야기, 준과 있었던 일들… 준은 존스 기자가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있었는지 놀라웠다. 존스 기자는 아버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았다. 그는 엄마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어떻게 아버지와 연을 맺은 것인지, 왜 어떻게 죽은 것인지 궁금해 했다. 

모리스는 기자를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지만 준은 존스 기자에 거부감이 없었다. 냄새로 사람을 판단하는 여러 장점 중 하나였다. 편견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의심 대신 당연한 확신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다. 준은 존스 기자의 질문에 성실히 답해주었다. 준은 엄마에 대해 알리고 싶었다. 엄마의 이름을 세상에 남기고 싶었다. 

존스 기자는 감염자였다. 준은 직감적으로 그의 일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존스 기자는 혹시나 준에게 치료책이 있는지 궁금해서 온 것이다. 원래는 브로디 버크를 찾아가려 했겠지만, 현재 영국인이 아일랜드에 입국할 수 있는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꼭 그런 목적으로 찾아 온 것은 아닙니다. 

준에게 치료책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존스 기자는 실망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꼭 그런 목적으로 찾아 온 것은 아니”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분명 다른 목적이 있었다. 그는 정성주와, 브로디 버크와, 준 리즈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준 리즈의 이야기에서 끝날 예정이라고 했다. 준 리즈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책의 마무리를 짓고 싶어서 찾아 온 것이라고 했다. 

우리들 중 몇이나 살아남을지는 몰라도 중요한 기록이 될 겁니다. 세상에서는 진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겠죠. 어쩌면 영국이 남긴 최후의 출판물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존스 기자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존스 기자는 모든 건 호기심에서 시작된 일이었다고 했다. 자신이 기자가 된 것도, 브로디 버크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준을 찾아 지금 이 자리에 오게 된 것도 모두 호기심의 결과라고 했다. 존스 기자는 브로디 버크의 연락처와 주소를 준에게 건넸다. 

두 사람이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서로가 서로의 냄새를 맡는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존스 기자는 오래 전부터 둘의 만남을 기대했던 것 같았다. 이제는 자신이 살아 생전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는 사실이 아쉬운 것 같았다. 존스 기자는 자신이 지금껏 쓴 책의 원고를 준에게 건넸다. 읽어 보시고 혹시 불만스러운 점이나 이견이 있으시면 알려달라고, 그리고 이 책이 무사히 출판되기를 기원해 달라고 했다. 

존스 기자는 아버지의 이름은 익명 처리하겠다고 했다. 어차피 이름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무명의 야인이었다. 굳이 알 필요 없는, 기억하거나 기념할 필요 없는 사람이어야 했다. 

존스 기자는 지금 이 일이 영국인들의 책임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는 로리 맥닐리라는 사람의 이야기와 조슈아 헐리라는 정치인의 이야기,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린 영국 정부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존스 기자는 영국 정부의 자멸적 몰상식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준에게 알려주었다. 

영국 정부는 조만간 리즈 씨의 소지품에 관심을 보일 겁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래도 여전히 강제적으로 뭔가를 얻으려 할 겁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쥐어짜려고 할 겁니다. 그것 말고는 달리 할 게 없으니까. 

======================

언론에서는 “석상병 stone face disease”라고 불렀다. 증상이 발현되면 얼굴이 석상(돌조각)처럼 무표정이 된다고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에 따라 병을 일으키는 곰팡이는 “돌 곰팡이stone fungus”로 불렸다.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었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느날부터 모두가 별다른 의문도 이견도 없이 그냥 그렇게 불렀다. 

치료제 출시 소식이 톱 뉴스로 보도됐다. 돌 곰팡이가 혈액 내 콜레스테롤 성분을 섭취하도록 유도하는 약이었다. 신체의 다른 곳에서 콜레스테롤을 섭취하게 함으로서 뇌를 보호하는 원리였다. 임상시험 결과 30명의 시험군 중 21명에게서 효과가 나타났으며, 이들은 증상이 발현되고 6개월이 지나도 퇴행 증세를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임상 시험 결과에 대한 수많은 의문에도, 수많은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치료약은 폭발적으로 팔렸다. 그리고 부작용이 터졌다. 약은 뇌의 퇴행을 막지 못했다. 대신 가속화 시켰다. 증상 발현 후 자의식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약 3개월이 걸리던 것이 치료약을 복용하면 3일로 줄어 들었다. 

아무도 이런 정반대의 결과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아무리 회의적인 사람들도 최소한 더 나빠지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약 출시 며칠만에 생지옥이 펼쳐졌고, 소비자들을 상대로 생체 실험을 했다는 비난과 항의가 쏟아졌지만 피해자들이 법적 구제를 받을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치료제 설명서에 “퇴행이 빠르게 진행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경고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약사는 약의 부작용을 알고도 판매를 강행한 것이었다. 

약의 개발사 베이노스는 영국의 화학 기업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제약사들을 인수하고 다양한 신약을 출시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베이노스가 인수한 기업들 중 가장 유명한 회사는 아일랜드의 버크 오거닉스였다. 제약사는 아니었지만 십여년 간 제약 원료를 공급해 온 제약 원자재 기업이었다. 베이노스는 “버크 오거닉스가 곰팡이 팬데믹의 원인 제공자”라는 의혹을 마케팅 모티브로 삼았다. “병을 만든 회사와 연관있는 회사에서 만든 약”이라는 암묵적 확신으로 약을 팔았다. 

여러 제약사에서 치료제 개발에 사활을 걸었지만 실제 효과가 있는 경우는 없었다. “급한 분만 쓰시라”는 핑계로 판매가 강행되었지만 치명적인 부작용을 겪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희망과 기대로 가득했던 치료제 개발 시장은 절망과 배신, 울분의 장으로 바뀌었다. 곰팡이와 인체의 철통 같은 공생 관계를 깨뜨리긴 불가능 하다는 회의론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듣는 약이 없자 민간에서 개발된 “야매 치료제”가 기세를 올렸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약용 버섯 시장은 “곰팡이를 퇴치하는 곰팡이”라는 타이틀로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다. 영세 업체들이었기에 임상 시험이 가능할 리 없었다. 이들은 동물의 왕국 다큐멘터리에 나온 단편적 생물 지식을 효능의 근거로 삼았다. 다큐멘터리 영상을 조악하게 편집해 “여기 곰팡이가 이렇게 죽었다 - 우리가 이렇게 하는데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식이었다. 

라나-아이먼 농법이 뒤늦게 재도입되었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주택에서도, 아파트에서도, 흙을 뿌리고 식물을 키우고 곰팡이를 키웠다. 하지만 아무도, 어디에서도, 라나-아이먼이 곰팡이 감염을 막아준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나-아이먼의 원리도, 공식도 알지 못했다. 그저 인터넷에 떠도는 엉터리 정보에 의존할 뿐이었다. 

아일랜드의 실상은 아무도 확인해주지 않았다. 정말로 감염자 수가 통제되고 있는 것인지, 그게 정말 라나-아이먼 농법 때문인지,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아일랜드 측에서는 아일랜드인과 영국인들의 면역 체계 사이엔 차이점이 없다, 단지 곰팡이가 영국인들의 몸에서 더 빠르게 번성하고 있다는 뻔한 사실만 재차 확인해 주었다. 

라나-아이먼 농법에 기대를 건 사람들이 갖가지 “원예 처방”을 내놓았다. 집에 특정 식물을 키우면 증상이 중단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가장 인기 있는 건 동백나무camellia japonica였다. 동백나무의 잎과 꽃에 항곰팡이 성분이 있다는 사실, 중국 일본 한국에서 동백나무를 가로수로 심는다는 사실, 그 때문에 그들이 곰팡이에 감염되지 않는다는 낭설 등이 합쳐져 동백나무에 대한 주술적 믿음이 확산되었다. 영국인들은 너도 나도 앞 다투어 동백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영국에서 구입 가능한 동백나무의 수는 한정돼 있었고 그나마도 금방 동이 나 대부분은 씨를 심고 싹이 트길 기다려야 했다. 석상병으로 가족을 잃은 리디아는 17살이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애써 웃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동백나무 씨앗을 구해 오셨어요. 이제 씨를 심었으니 앞으로 7개월을 기다려야 해요. 저는 이게 엄마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증상이 발현되기 전에 싹을 틔운다면 희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체를 알 수 없는 제약사, 재활 병원이 난립했다. 베텔게이아라는 병원은 팬데믹 이전에 인가 받은 병원이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업종을 전환, 증상발현자들을 “수거”하는 서비스 업을 시작했다. 대외적으론 “증상발현자들에게 신약을 투여해 정상으로 돌려 놓겠다”는 명분이었지만 그들을 데려가 뭘하는지, 어떤 일을 벌이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증상발현자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누구의 관리도, 통제도, 감시도 받지 않았다. 그들을 “수거”하는 업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베텔게이아가 “수거 서비스”를 개시한 지 몇 달만에 흉흉한 소문이 쏟아져 나왔다. 증상발현자들에게 생체 실험을 한다, 생체 무기로 만든다, 쾌락의 도구로 이용한다, 애완 동물로 팔아 먹는다 등, 확인되지 않은, 하지만 충분히 의심 가능한 낭설이 만연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염세주의자들의 엔터테인먼트 쇼였다. 스스로를 “냉소주의자skeptic”라고 부르는 자들이 세기말적 자해 서커스 쇼를 기획했다. “고통의 기간을 단축하자”는 슬로건 아래 베이노스 사의 “두뇌 파괴 촉진제”를 대량으로 입수, “두뇌 파괴 관종쇼”를 시작했다. 이들이 어떻게 판매 중지된 약을 그렇게 많이 쌓아 둔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은 이끼 피부 지원자들을 모아 3명씩 짝을 이루고 “두뇌 파괴 촉진제”를 먹은 뒤 결과를 실시간 중계했다. 최소한의 인간 존엄마저 짓밟은 행위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 동영상 채널은 세계적 인기를 얻었다. . 

쇼 참가자 3명 중 2명이 폭력성을 보였다. 3명 모두 폭력성을 보일 때도 있었다. 이들이 데려온 가족, 친구, 반려 동물들이 증상발현 후 방송 카메라 앞에서 무참히 살해되는 일이 반복됐다. 이들 방을 관리하던 쇼 기획자 중 한명이 살해 당하기도 했으며, 이들 중 몇 명은 스튜디오에서 탈출해 행방이 묘연해졌고, 어떤 한명은 손톱으로 자신의 뼈가 드러날 때까지 자해를 해 방송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폭력성을 보이든, 자해를 하든, 이들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동물을 죽여도, 사람을 죽여도, 온 몸에 피가 철철 흘러도, 더 이상 평온할 수 없는 무표정을 유지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뇌가 사라지는 것이 심장이나 허파가 사라지는 것 같은 “확실한 죽음”을 부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두뇌 파괴쇼 참가자들은 고통 받는 사람들이었다. 불치병, 장애, 경제적 몰락, 사회적 스트레스, 정신 문제 등으로 삶의 의욕을 잃은 이들이었다. 이들에게 두뇌 소멸은 구원이었다. 뇌가 사라지면서 고통 가득했던 표정이 온화해졌다. 불안했던 자세와 움직임이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지옥와 같았던 그들의 세상은 뇌의 소멸과 함께 평화로운 진공의 세상으로 변했다. 

40대 참가자 레나는 이 쇼에 참가한 이들 중 가장 목적과 의도가 분명한 사람이었다. 영재 피아니스트였던 그는 사춘기와 함께 정신병이 발발, 그 후 30년 동안 정상적 생활이 불가능한 정신 장애인으로 살았다. 그는 첫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눈을 뜨면 보이는 게 무섭고 끔직하고 고통스러운 것들 뿐이라면, 30년 동안 눈만 뜨면 그런 걸 하루종일 계속 봐야 한다면, 당신들 대부분은 눈을 찌르고 장님이 되길 선택할 거에요. 전 피아노를 쳤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대회에 나가 우승했죠. 첫 월경 때였어요. 이유없이 어지럼증이 반복됐죠. 턱이 덜덜 떨리고 악보가 읽히지 않더니, 피아노 앞에 앉는 것도, 밖에 나가는 것도 어려워졌어요. 병원에선 공황장애라는데, 내 공황장애는 약을 먹어도, 시간이 지나도 낫지 않았어요. TV를 봐도, 폰을 봐도, 피아노를 쳐도, 산책을 해도, 달리기를 해도, 친구를 만나도, 햄버거를 사러 나가도, 어지럽고 토할 거 같고 위장이 새까맣게 썩는 것 같았죠. 깨어있을 때도, 자고 있을 때도, 뭘 어떻게 해도, 숨이 안 쉬어지는 느낌… 머리 속에서 쳇바퀴가 돌아요. 끔찍한 생각, 최악의 생각, 하지 말아야 할 생각을 만들어 내는 쳇바퀴가 하루 24시간 돌아요. 제 왼쪽 눈이 반쯤 감긴 이유가 궁금하죠. 총을 쐈어요 머리에. 뇌를 없애버리고 싶어서. 이제 그만 고통받고 싶어서. 독약도 먹고 자해도 하고 그러다 총을 쏜 거죠. 나는 오래 전부터 이 저주받은 뇌를 없앨 방법을 연구해 왔어요. 마침내 그게 가능해진 거죠. 

약을 복용하고 이틀만에 레나는 급격한 퇴행 증세를 보였다. 레나는 침을 흘리고 있었다. 형편없이 뭉개지는 발음으로 카메라 앞에서 떠듬떠듬 자신의 상황을 증언했다. 

…난, 지금 같은 평온을… 고통 없는 시간을 가진 적 없어. 나는 평화를 얻었어. 이 병은 내게 구원… 축복이야. 병을 만들어준 이에 감사해. 그거 알아? 자유라는 거. 당신들 모르지 자유가 뭔지. 나는 병에 걸리고 알았어 자유가 뭔지. 자유는 신경 쓰지 않는 거야. 신경 쓰지 않는 거야 세상에 사람에 내게. 

이 무분별한 서커스는 역병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 동시에 기존의 편견을 뒤흔들었다. 이것이 정말 저주이고 재앙일까. 고통받는 사람들에겐 축복이자 구원이 아닐까. 시작하자마자 망할 것이라던 두뇌 파괴쇼는 흥했다. 지원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동시 시청자 수가 수천만에 달하는 지상 최대 리얼리티 쇼가 되었다. 

공식적으로 시장에서 철수한 베이노스의 “두뇌 파괴 촉진제”는 암시장에서 마약 같은 지위를 얻었다. 정신병 환자와 불치병 환자들에게만 인기 있는 약이 아니었다. 변태적 염세주의자들, 쾌락주의자들, 반사회적 범죄자들에게 이 약은 중독적 인기를 끌었다. “두뇌 파괴 촉진제”는 어떤 이들에겐 “궁극의 행복 촉진제”로 인식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다양한, 예상치 못한 용도로 각광 받았다. 

작품 등록일 : 2026-04-19

▶ Brody’s files #76

▶ Brody’s files #74

현실이었으면 석상병은 공식 이름 같은 거고
“잉글랜드병” “아일랜드병”으로나 안 불리면 다행일 듯ㅋㅋㅋㅋ

약 부작용 보니까 생각나네
코로나백신도 저랬는데
열 올라서 약간 멍청해지고 나서 오히려 효율이
오르고 약간 행복해짐
부작용 있는 건 맞는데 이름을 코로나 백신이 아니라 뇌 마비제나 뇌질환 치료제로 써야 할 거 같은 느낌이었음
백신은 급조된 거고 강제되지는 말았어야 하지만 인간 지능이 저주인 건 동의함
e   
난 겪어보지도 않았는데 레나의 마음을 알거 같네...
  

사업자번호: 783-81-00031

통신판매업신고번호: 2023-서울서초-0851

서울 서초구 청계산로 193 메트하임 512호

문의: idpaper.kr@gmail.com

도움말 페이지 | 개인정보취급방침 및 이용약관

(주) 이드페이퍼 | 대표자: 이종운 | 070-8648-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