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s files #74
테레사 콜먼. 그는 제약사의 프로바이오틱스 상품 개발자였다. 회사에서 각광 받는 개발자였다. 현장 개발직 중 가장 높은 연봉을 받았던 그는 “조만간 경쟁사로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스카우트 될 것”이란 소문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는 개발자 커리어를 그만 두었다. 그는 동종 업계로 이직하는 대신 대학 연구원으로 들어갔다. 연봉이 십분의 일 토막 났지만 그는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았다. 그는 엔지니어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고액 연봉에는 대가가 따랐다. 고용주의 요구에 맞춰 줘야 했다. 테레사는 자유를 원했다. 자신이 원하는 걸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하고 싶었다. 

테레사의 행복한 대학 연구원 커리어는 오래 가지 않았다. 대학으로 이직한 지 4개월만에 역병이 발발했다. 정부에선 가장 유능한 생물학자들을 모집했다. 그중엔 테레사도 있었다. 인류 멸종을 막기 위해 정부에서 급조한 질병 대응 연구소는 테레사가 꿈꿨던 환경이었다. 규제와 인습에서 벗어난, 가장 뛰어난 과학자들과 자웅을 겨루는 최고의 연구 환경이었다. 

테레사는 연구소에서 가장 의욕 넘치는 연구원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대다수의 연구원들은 일상을 박탈 당한 가축과 다름 없는 심정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오랜 전문적 경험으로, 지금의 질병이 절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가와 민족의 부름을 거역할 수 없었다. 이들 대부분은 혹시라도 가능할지 모를 치료제 개발에 기여하기 위해 우격다짐 고통을 감내하고 연구소에 들어왔으나 테레사는 달랐다. 그는 국가의 부름을 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이를 자아 실현의 일생일대 기회로 여겼다.

테레사는 눈코뜰새 없이 바쁜 연구소 생활 중 사적 기록을 남겼다. 혹시라도 자신이 이곳에서 변을 당할 경우 그동안 있었던 일을 가족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자신이 이곳에서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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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기를 발견하신 분은 부디 카디프 시 켄트 스트리트 XXX가에 하워드/산드라 콜먼에게 전달 부탁드립니다. 제 부모님이세요. 제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실 거에요. 감사합니다. 

.............인류 과학의 최종 종착지는 머나먼 우주의 골디락스 존Goldilocks zone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지구는 수명을 다할 것이고, 인류는 또 다른 지구를 찾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우리는 이제서야 깨닫는다. 종의 운명은 개체의 의지대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금의 사태를 보며 깨닫는다. 인류 과학의 최종 종착지는 머나먼 우주 미지의 영역이 아닌 인간 자신이었다. 인간은 멸종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탐구해야 한다. 

.............연구소 건물을 군대에서 지었다고 들었다. 국가는 전시 체제로 전환되었고, 모든 계획은 죽느냐 사느냐 군사 작전과 동일하게 진행 중이다. 이 엄청난 건물을 짓는데 고작 6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급조된 건물이 이렇게 완벽에 가깝게 지어졌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는다. 인간의 능력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우리는 여기 들어오기 전부터 정부의 요청에 따라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나는 원래 곰팡이의 감염 경로를 파악하는 연구를 맡았다. 의미없는 연구였다. 감염 경로를 파악한다고 감염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이걸 인공적인 병원체 감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인공적인 방식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곰팡이의 감염 방식은 100% 자연적인 것이다. 누군가 이걸 인공적으로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감염 방식은 100% 자연적인 것이며, 인공적 방법으로 막기 어렵다. 

.............곰팡이는 꽃을 감염시키고, 꽃은 인간을 감염시킨다. 꽃가루는 대기를 감염시키고 인간은 땅을 감염시킨다. 곰팡이의 기원과 상관없이, 이 기이한 번식 사이클에 인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자연 생태계의 순환이다. 우리의 임무는 이 생태 순환을 막는 것이다. 대자연의 거대한 패턴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정부는 2가지 연구 시설을 운영 중이다. 1) 이끼 피부를 연구하기 위한 시설. 2) 증상발현자를 연구하기 위한 시설. 1번은 증상을 늦추거나 멈추게 하기 위한 시설, 2번은 증상을 완화하거나 치료하기 위한 시설이다. 나는 원래 1번 시설에 배정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프로젝트 진행 결과 2번 시설이 내게 더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2번 시설에는 밖에서 데려 온 증상발현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통제가 불가능했다. 아무리 강한 신경안정제를 맞아도 폭력성이 죽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개체의 유전적 특징과 습성을 파악하는 일은 중요하다. 오늘 처음 본, 아무 정보도 없는 개체를 이해하고 통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1번 시설에서 이송된 이들을 선호한다. 이끼 피부일 때부터 관찰돼 온 이들은 행동 하나하나 의미를 갖는다. 증상발현 후 무엇이 변이되는지, 각각의 변이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스토리를 만든다. 

.............곰팡이가 인간의 뇌를 어디까지 먹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기술적으로 말하면 “전두엽 거의 대부분”이지만, 기능적으로 말하면 “자의식을 담당하는 부분까지”다. 곰팡이는 인간의 자의식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뇌세포를 먹는다. 정말로 뇌를 다 먹는 것은 아니다. 생명 유지에 필요한 부분은 먹지 않고 보호한다. 곰팡이의 관점에서 인간의 기억, 사고, 자의식은 생명 유지에 필요치 않은 것으로 분류된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뇌는 곤충의 뇌와 비슷한 수준으로 최소화 된다. 

.............우리에겐 자의식이 뇌의 존재 의미다. 자의식이 있는 건 뇌가 존재하는 것이고, 자의식이 없는 건 뇌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여긴다. “뇌 = 자의식생성기”라는 인식은 뇌의 본질을 호도한다. 뇌는 자의식을 위한 장치가 아닌 동물을 정의하는 장치다. 뇌는 동물이 기고 걷고 달리기 위해, 하늘을 날고, 과일을 따 먹고, 사냥하고, 구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동물은 자신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기에 동물이고, 뇌는 이를 가능케 하는 장치다. 뇌는 동물의 움직임을 정교화 하기 위해 의지를 강화시켰고 이것이 자의식으로 발달한 것이다. 이끼 피부의 변이는 지금까지의 동물 진화 방향을 반대로 바꾼다. 이끼 피부는 변이하면서 자의식을 잃고 운동 능력이 강화된다. 뇌의 원초적 목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동물들이 수영을 배우지 않아도 수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개도, 고양이도, 말도, 돼지도, 물에 빠지면 수영을 한다. 한번도 물에 빠져 본 적 없어도 동물들은 대부분 물에 빠지면 본능적으로 헤엄을 쳐 살아 남는다. 하지만 인간은 아니다. 인간은 물에 빠지면, 수영을 배우지 않은 경우, 대부분 익사한다. 자의식 때문이다. 물에 빠져 죽을까 두려운, 수영을 배우지 않았으니 수영을 할 수 없다는, 인간 특유의 자의식 때문에 다른 동물들처럼 헤엄치지 못하고 익사하는 것이다. 인간의 두뇌는 지구상 그 어떤 동물들보다 정교하게 발달됐지만, 자의식이 족쇄로 작용한다. 정교하게 발달된 두뇌는 뛰어난 운동 능력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인간의 자의식은 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지구상 어떤 동물들보다 신체/운동 능력이 뒤떨어진 것이다. 증상발현자들의 “초인적” 운동 능력은 인간의 원래 자연 능력이었을 것이다. 지금껏 자의식이 속박한 잠재적 능력이, 자의식의 소멸과 함께, 폭발한 것이다. 근력과 지구력 뿐 아니라, 수영 격투 사냥 착지 던지기 등 극한의 정교함을 요하는 움직임도 증상발현자가 기존 인간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마이클은 1번 시설에서 2번 시설로 자원한 연구원이다. 그는 피부과 전문의였다. 1번 시설에서 온 몸이 지의류로 뒤덮인 감염자를 돌보고 있었던 마이클은 감염자에게 증상이 발생하자 그와 함께 2번 시설로 옮겼다. 그는 피부 지의류가 병이 아닌 자연 공생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병든 것은 추한 것. 건강한 것은 아름다운 것. 병이란 추해지는 것을 의미하며, 건강이란 아름다워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그는 피부 지의류의 아름다움에 대해 역설했다. 이건 건강한 것이라고. 몸을 퇴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피부 지의류의 면적이나 양태, 존속 기간 등은 뇌의 변이와 연관이 없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증명했다. 비록 곰팡이 감염에 의해 발생한 것이지만 피부 지의류 자체는 병리적 현상이 아님을 강조했다. 

.............마이클은 피부 지의류를 자연계의 가장 극적인 공생이라고 했다. 그는 가히 캐풀릿과 몬태규 집안의 결합이라 할만하다며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혼에 비유했다. 그는 인간 피부를 로미오, 인간 피부에 공생한 지의류를 줄리엣이라고 불렀다. 아직 피부 지의류에 붙여진 학명은 없었기에 마이클은 자기 멋대로 “줄리엣A16” 같은 이름을 붙여 불렀다. 

.............생각해보니 곰팡이가 발견된지 1년이 넘었음에도 아직 학명이 정해지지 않았다. 학명을 짓는 사람이 곰팡이의 존재를 공인하기 싫은 것이다. 이 곰팡이가 앞으로 계속 인간과 “공생”하게 될 것이란 사실을 부인하고 싶은 것이다. 공식 명칭이 없으니 사람들은 이 곰팡이를 각자 부르고 싶은대로 부른다. 마이클은 “중매쟁이”라고 부른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결혼하게 해줬으니 중매쟁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2번 시설로 배치받는 걸 꺼리는 이유는 대변 냄새 때문이다. 증상이 발현되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1번 시설에서 대소변 냄새를 풍기는 감염자는 즉시 2번 시설로 보내진다. 대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소에선 칼로리 공급 방식을 다양하게 바꿔 보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진 못했다. 대변의 냄새는 미생물 대사작용의 결과다. 대장에 서식하는 미생물에 의해 발생하는 냄새이기에 거기 사는 미생물 분포를 바꿔야 한다. 

.............정부에서 증상발현자를 한눈에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을 보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아마도 군인과 경찰이 버섯뇌를 총으로 제압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일 것이다. 회의에서 내가 그런 건 없다고 설명하자 연구소장은 격렬히 비난을 퍼부었다. 이곳이 누구 돈으로 운영되고 있는 줄 아느냐고, 이런 식으로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당신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식으로 나오면 그 사람들이 가만 있을 줄 아느냐고 최소한의 성의 표시라도 하라고. 우리는 연구소장이 말하는 최소한의 성의 표시가 실제론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무차별적 살상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우리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응대할 수 밖에 없다. 과학자의 입장은 필드에서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 입장과 다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이제서야 우리가 하는 일이 과학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처음부터 생존을 위한 아귀다툼이었다. 

.............서로 다른 증상발현자가 동일한 행태를 보이는 경우는 없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언어 의사 소통이 불가능하다, 콜레스테롤에 탐닉한다, 이런 공통된 증상 외에는 유사점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들을 일반인의 관점에서 뭉뚱그려 분류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사회적 행태에 따라 카테고리를 나누어야 한다. 
1) 무차별 공격형 
증상발현자 2명 중 1명은 무조건적 폭력성을 드러냄. 아무 이유 조건 없이 랜덤하게 사람을 해치고 기물을 파괴하는 등 예측할 수 없는 폭력을 반복함. 뇌가 망가진 매독 환자와 비슷하나 특이점은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차분한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살인적/파괴적 행동이 발생하기 때문에 예측이 어려우며, 폭력적 행동이 한번 시작되면 물리적으로 제압되거나 체력이 고갈될 때까지 계속되는 경향. 
2) 조건부 공격형
증상발현자 4명 중 1명은 조건에 따른 폭력성을 보임. 신체 자극, 배고픔, 특정 대상, 특정 행위, 특정 단어, 소리, 빛, 색깔, 냄새, 날씨 등 폭력성의 조건은 예측 불가 다양하지만 조건은 비교적 일관되게 유지됨. 일종의 공포증에서 비롯된 증상으로 이해되지만 이 유형 역시 감정이 드러나지 않으며 두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음. 
3) 비공격형
증상발현자의 10%는 폭력성을 보이지 않음. 주로 여자와 노인에 많이 나타나는 유형이나 남자들 중에도 나타남.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가만히 정면을 바라보는 것이 특징이며 배가 고플 때도, 칼로리를 섭취할 때도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음. 하지만 이 유형 중 일부가 전혀 예상치 못한 조건에서 폭력성을 드러냈다는 보고가 있는 것으로 보아 “조건부 공격형의 온화 버전”으로 이해하는 것이 안전. 
4) 장난형 
증상발현자의 상당수는 폭력성 대신 (혹은 폭력성과 함께) 유희 추구 성향을 보임. 대상을 해치거나 파괴하는 대신 괴롭히기 장난치기 행동을 반복하는 경향. 일종의 스토킹과 유사한 행태로 이해되며, 아직 보고된 바 없지만, 특정 조건에 따라 폭력성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음. 
5) 발작형 
증상발현자의 5%는 틱 혹은 근육 경련과 유사한 발작적 행동을 반복함. 급작스럽게 몸을 휘두르거나, 진동 기기처럼 몸을 떨거나, 인간이 낼 수 없는 소리를 내기도 함. 뇌의 갑작스러운 퇴화로 발생한 신경 장애로 이해되며, 다른 폭력적 증상과 함께 드러나는 경우도 있음. 
6) 자학형 
증상발현자의 1% 미만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 폭력성을 드러냄.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더 이상 기능하지 못 할 때까지, 자기 파괴적 행동을 반복함. 퇴화된 뇌에서 허위로 생성된 가려움증에 의해 뼈가 드러날 때까지 살을 긁고 파헤치는 사례가 대표적. 

.............우리는 이 곰팡이를 “한해살이annuals”라고 부른다. 일년을 주기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곰팡이는 꽃식물의 뿌리에서 일년을 살다 개화하면 꽃가루와 함께 포자를 퍼뜨린다. 포자는 인간의 폐 속에 들어와 일년을 살다 인간 피부를 장악하고 지의류를 키운다. 피부에 지의류가 자랐다는 사실은 곰팡이가 폐 속에 정착한지 일년이 지났다는 의미다. 곰팡이가 뇌를 먹기 시작하는 것은 따로 정해진 시기가 없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3년 뒤일 수 있지만 역시 평균 1년이 걸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곰팡이의 “한해살이” 주기는 숙주의 면역 체계에 “적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추정된다. 한해살이 곰팡이는 숙주의 몸에 외부 침입자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생 협력자로 자리 매김한다. 다른 유해 미생물들처럼 숙주의 자원을 빼앗지도, 숙주의 삶을 방해하지도 않은 채 일년 동안 조용히 숙주와 교신한다: 나는 너를 해치러 온 게 아니야 너와 친구가 되고 싶은 것 뿐이야. 다른 유해 미생물들이 당장의 생존욕을 채우기 위해 면역 체계와 전쟁을 벌이는 동안, 한해살이 곰팡이는 봄여름가을겨울 일년의 세월을 기다리며 평화롭게 숙주와 한 몸이 된다. 

.............우리가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증상별현자의 몸에 다른 미생물을 이식하는 것이었다. 미생물의 가장 큰 천적은 다른 경쟁 미생물이다. 미생물을 활동을 둔화시키는 것 역시 다른 경쟁 미생물이다. 처음엔 한해살이에 직접 대응하는 미생물을 연구했지만 이제는 우회로를 찾는다. 장내 미생물 분포를 바꿔 공격성이 줄어든 것은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 사례였다. 하지만 이는 연구실 내에서만 기대할 수 있는 적용법이다.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자연 발생 가능한 요법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다. 

.............장내 미생물 연구의 사실상 가장 큰 성과라면 증상발현자의 대변 냄새를 줄인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의도로 개발을 했던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것저것 다 시도하다 우연히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효과는 뚜렷하다. 연구소에서 개발한 프로바이오틱스 식이 요법을 따르면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바뀌고 냄새가 나지 않는 대변을 보게 된다. 

.............마이클은 내가 만든 프로바이오틱스 때문에 피부 지의류가 병들었다고 푸념한다. 증상발현자들에게 대변 냄새가 나지 않은 뒤로 피부 지의류가 시들고 있다는 것이다. 마이클은 지의류가 죽었으니 책임지라고 하지만 나도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애당초 피부에 어떻게 지의류가 자라게 됐는지를 모르니 왜 죽는 것인지도 모르는 게 당연하다. 마이클은 자신의 본분을 잊고 있는 것 같다. 그는 한해살이의 감염 경로를 막기 위해 고용된 사람인데 원예사처럼 굴고 있다. 

.............1번 시설에서 이송된 마리라는 이름의 환자는 임신 상태였다. 그에겐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직원들 사이의 의사소통 문제로 2번 시설로 끌려 왔다. 우리 측에서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샘플이 필요했기에 마리를 다시 돌려 보내진 않았다. 하지만 마리는 몹시 우울해했다. 그는 1번 시설에 친구들이 있으니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이곳은 병원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마리는 이곳에 남아야 한다. 

.............나와 에마가 돌아가며 마리를 돌보고 있다. 마리는 사람을 좋아했다. 우리와 금방 친해져 환자 방이 아닌 직원 숙소에서 잠을 자고 있다. 마리는 어째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걸까. 그는 피부 지의류 초기 환자다. 지의류가 발생한지 3년이 다 돼 가고 있다. 하지만 그의 뇌엔 퇴행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혹시 임신이 변수인 걸까. 임신과 증상발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시간은 없고 샘플은 많기에 우리는 “한번에 하나씩” 실험을 진행하지 않는다. 되도록 많은 요법을 한꺼번에 시도해서 효과가 나타나면 거기 적용된 요법들을 나눠 다른 샘플에 적용하는 주먹구구 연구를 진행 중이다. 재미있는 건 이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한번에 하나씩으로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다양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사회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했던 조셉은 증상발현 후 더 반사회적 폭력성을 보였으나 장내 미생물 분포가 바뀐 뒤 가수가 되었다. 그의 예측 불허의 폭력성은 즉흥적 예술성으로 바뀌었다. 자다 깨서 오페라 가수처럼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사람들의 수면을 방해하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목소리는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 살인을 면하게 된 것만으로 충분히 진일보한 성과다. 

.............폭력과 예술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프로바이오틱스 요법이 적용된 증상발현자들은 예술창작에 눈 뜨는 것으로 보인다. 필립은 카레이서였다. 증상 발현 후 살인을 저지르고 이곳 시설로 들어 왔다. 폭력성이 너무 강해서 일주일 동안 사지를 묶어 놓은 채 시술을 해야 했다. 그가 관심을 보인 건 타악기였다. 드럼과 팀파니와 마림바를 일주일 동안 잠도 안 자고 두드리더니 어느날 악기들을 뜯고 부수고 구부려서 신기한 형태의 조각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이 조각들을 재조합해서 제멋대로 형태의 타악기로 만들고 하루종일 두드렸다. 

.............여우갓버섯 곰팡이leucoagaricus fungus의 일종은 개미와의 공생으로 생태계 지배적 위치에 올랐다. 이 곰팡이는 개미굴에 증식하며 개미들이 먹을 버섯을 제공하고 개미들은 곰팡이의 의도에 길들여진다. 곰팡이는 개미에게 화학 물질을 분비해 자신에게 필요한 먹이(나뭇잎)을 수확하도록 유도한다. 처음에 사람들은 개미들이 곰팡이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 것”이라고 인식했으나 실제론 곰팡이가 개미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곰팡이는 개미 군집의 생태를 장악하고 이들의 여왕마저 자신을 위한 노예 생산자로 만든다. 

.............한해살이가 인간 몸에서 이끼를 키우는 것도 어쩌면 공생을 위한 시도가 아닐까. 인간 몸에 먹이를 공급하기 위한 자선 행위 아닐까. 그들이 인간의 몸에서 해로운 물질을 퇴치하는 것도 공생을 위한 발판일 것이다. 인간의 신체를 지켜줌으로서 신뢰를 얻는 것이다. 그런 뒤에 신체의 일부를 내주게 하는 것이다: 이것 봐 이건 너한테 꼭 필요하지 않거든 이게 없으면 더 행복하거든. 한해살이는 뇌에 뿌리를 뻗는다. 그리고 뇌 세포를 섭취한다. 더 많은 뇌 세포를 수확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콜레스테롤 섭취를 유도한다.

.............1번 시설에서 이송된 제프리는 아직 10대 소년이다. 그가 수용돼 있던 1번 시설은 직원들 중 증상발현자들이 다수 나와 운영이 불가능해졌다. 제프리는 그곳에 남은 직원과 생활하다 우리 시설 경비대에 의해 잡혀 왔다. 대부분의 남성 증상발현자들이 무차별적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과 달리 제프리의 폭력성은 대단히 선별적/제한적이다. 처음 보면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정상인처럼 보인다. 직원들은 그를 “까마귀”라고 불렀다. 머리 색이 까마귀처럼 까만데다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다 보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마이클이 중요한 발견을 했다. 죽어가는 지의류를 되살리기 위해 고민하던 마이클은 인간의 피부가 “토양화”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의류가 죽어간 이유는 토양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며, 피부를 토양화 한 곰팡이의 영향력이 약화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피부를 뒤덮은 곰팡이의 존재는 여전하지만 곰팡이는 더 이상 지의류에 양분을 공급하지 않고 있었다. 지의류의 존재는 곰팡이가 인간 신체를 완전히 장악했다는 증거였다. 곰팡이의 뜻에 따라 인간의 몸을 바꿀 수 있다는 얘기였다. 중요한 건 한해살이는 몸과 합의되지 않은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이클이 말했다: 한해살이가 우리 몸한테 그런 것 같아 우리 뇌는 버리자고 뇌는 필요 없으니까 버리자고. 공격도, 탈취도, 착취도 아닌, 합의였다. 한해살이는 인간의 몸과 합의 하에 뇌를 섭취한 것이었다. 뇌가 녹아 없어지는데 몸 어디에서도 경고가 울리지 않은 건 그 때문이었다. 마이클은 말했다: 한해살이는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리지도 않고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지도 않는다고. 피부에 지의류를 키우자고 한 것도 신체와의 합의 때문이었고 더 이상 지의류를 키우지 않기로 한 것도 신체와의 합의 때문이었다. 마이클은 한해살이의 결정은 뒤바꿀 수 있다고 했다. 체내 미생물 분포가 달라지자 지의류에 대한 합의를 바꾼 것처럼 뇌에 대한 합의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의류에 대한 합의가 바뀐 원인을 찾아야 했다. 마이클은 진짜 원예사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연구실에 흙과 바위와 나무를 들여 놓고 지의류의 생태를 연구 중이다. “인간 피부의 토양화”를 연구하기 위해 실제 자연의 토양에 여러 조건을 대입하고 있다.  

.............문득 아일랜드에서 개발된 라나-아이먼 농법과 한해살이가 비슷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해를 기다려야 한다는 점. 서로 다른 종과 결합을 한다는 점. 그 결합이 인간의 결혼과 흡사하다는 점. 이렇게 극적으로 닮아 보이는 모티브가 또 있을까. 이렇게 짧은 시간 내 생태계 질서를 뒤엎고 종의 운명을 뒤바꾼 사례가 있었을까. 

.............아일랜드는 어떻게 된 걸까. 거긴 정말 아무도 감염되지 않은 걸까. 라나-아이먼의 가설은 기정 사실화 되었다. 라나-아이먼 농법을 유지한 곳의 감염률은 0%에 가까웠다. 이이제이, 곰팡이는 곰팡이로 퇴치한다. 하지만 그건 감염 전 이야기였다. 이미 감염이 된 상태에서는 라나-아이먼의 항생제도 듣지 않았다. 라나-아이먼의 가설은 라나-아이먼 곰팡이가 번성하는 지역에선 곰팡이가 다른 생명체와 공생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라나-아이먼 농법이 도입된 지역 근처에만 살아도 곰팡이 감염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라나-아이먼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경우 여지없이 감염되며, 일단 감염되면 병의 진행을 막을 방법이 없다. 뒤늦게 너도나도 라나-아이먼 농법을 재도입했지만, 1) 라나-아이먼 농법은 정착에만 1년이 소요되며, 2) 꽃가루를 한번이라도 흡입한, 곰팡이에 이미 감염된 사람들에겐 소용이 없다. 

.............브로디 버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떤 이들은 그를 궁극의 아일랜드 독립 투사라고 부른다. 아일랜드 천년의 꿈을 현실화 한 영웅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런 생명체를 만든 것 같진 않다. 여기엔 어떤 정치적 입장도, 대의명분도, 요구 조건도 없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꽃가루가 날렸고 기억이 사라졌다” 그게 전부였다. 우리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가치 평가하지 않는다. 그건 과학자가 할 행동이 아니다. 

.............1번 시설에 증상발현자가 속출한 것과 달리 이곳엔 증상이 느리게 나타나고 있다. 나도, 마이클도, 에마도 이끼 피부가 나타나지 않았다. 감염 검사를 해보면 모두가 감염 상태인 건 분명하다.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다른 방식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 한해살이 감염자 모두가 100% 이끼 피부를 갖게 된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알 수 없는 조건에 의해, 이곳의 폐쇄적 특수 환경에 의해 증상이 다른 패턴으로 진행되는 것일 수 있다. 

.............우리는 지금껏 동물의 뇌가 문제 해결을 위해 진화한 신체 기관으로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곳 증상발현자들의 행태를 보면 그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닫게 한다. 알리시아는 1번 시설에서 가장 온순한 환자 중 하나였다. 그는 화를 낸 적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증상이 발현된 후 가장 골치 아픈 트러블메이커가 되었다. 갑자기 발작 증상을 일으키거나 죽은 척을 해서 관리자가 문을 열게 하고는 그 틈을 타 밖으로 탈출하거나 관리자의 키를 훔치는 행동을 반복했다. 우리는 곤충들도 식물들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속임수를 쓴다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자연은 문제 해결에 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살기 위한 욕구가 전부다. 생존욕은 복잡한 문제 해결을 위한 최고의 열쇠다. 

.............문제는 증상발현자들의 문제 해결 방식이 “사회화” 돼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협력한다. 만나서 친분을 쌓고 의견을 교환해서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냄새만으로, 눈치와 직감만으로 협력을 한다. 이들은 각자의 방에서 우리의 위치를 공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방에 누가 들어갔고, 어느 방에 누가 나왔는지 파악해 관리자와 경호원에게 속임수를 쓰는 것 같다. “저 개체와 이 개체는 서로 모르니까, 서로 격리돼 있으니까 함께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당연한 믿음 때문에 실험체들에게 매번 골탕을 먹는다. 

.............마이클은 자신의 몸에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샘플들도 모자라서, 다른 시설의 수백명의 샘플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아니면 단순히 성격이 급했기 때문이었는지, 그는 자신의 몸에 직접 화학물질과 미생물을 투입하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더 이상 똥냄새도 방귀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그는 지금 요법을 계속 적용하면 시체도 썩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연구소의 동물 실험 샘플이 동이 나자 포획 장치를 만들어 밖에서 동물을 잡아 오고 있다. 나는 마이클이 점점 미쳐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 중이다. 그는 성공한 피부과 의사였다. 그는 런던에 자기 병원을 갖고 있었고, 창업을 준비 중이었다. 그는 무슨 사업을 하려고 했을까. 뭐든지 한가지에 꽂히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은 분명 사업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선 자기 파괴적 결과를 부르고 있다. 나는 마이클이 자가 생체 실험을 그만 두도록 설득 중이다. 

.............경비대원 중 이탈자가 나왔다. 이들이 증상발현자들에게 두려움을 느낀 건 꽤 오래 전 일이었다. 최근 증상발현자 중 하나가 경비대의 헬멧을 벗기고 귀를 뜯어 먹은 일이 있었다. 헬멧에 스트랩이 걸려 있었는데도 그걸 풀고 공격한 것이었다. 증상발현자들을 제압하러 들어가서 자신들이 제압당하는 일이 늘고 있다. 인형처럼 얌전히 있던 증상발현자들이 갑자기 귀신처럼 다가와 살을 물어 뜯는다. 경비대는 헬멧에 이중 스트랩을 달았지만 이것으로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었다. 장애물을 만들어 놓으면 저들은 어떤 식으로든 장애물을 뛰어 넘는다. 그것도 굉장히 짧은 시간 내. 

.............증상발현자의 폭력성을 억제할 것으로 기대했던 미생물 요법은 실패로 돌아갔다. 초기에만 효과가 있었을 뿐 이제는 더 과격한 양상을 띠고 있다. 경비대의 숫자가 줄고 있다. 애초에 사설 경비 업체와 계약을 맺은 것이 문제였을까. 이들에겐 사명 의식이 없다. 언제든 돈을 더 주는 곳으로 이직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가장 좋지 않은 건 경비대 중에서도 증상발현자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체감하면서 이탈자 수는 갈수록 늘고 있다. 이제는 샘플을 연구실로 데려 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마리와 제프리는 같은 시설 출신이다. 서로 아는 사이라는 사실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마리 아이의 아버지가 제프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오늘 처음 알았다. 마리는 경비가 허술해진 틈을 타 몰래 제프리를 만나고 있었다. 제프리의 방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나란히 잠 자고 있는 걸 다른 연구원이 발견하고 내게 보고했다. 마리는 출산을 코 앞에 두고 있다. 제프리는 알고 있는 것일까? 마리가 자신의 아이일 수 있다는 걸? 

.............한달 넘게 연구 회의가 열리지 않고 있다. 연구소장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은 것이 십년 전 일 같다. 연구소장은 아직 여기 있는 것일까? 이곳은 이제 정부의 관리를 받지 않는 것일까? 각자 일에 바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부모님과 친구들은 아직 일상을 유지 중이다. 가난한 사람들 사는 곳부터 무너졌다. 팬데믹 상황이 되자 사회 계급 차이가 더 극명해졌다. 세상이 뒤집혀도 사회 계급은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계급이란 인위적인 게 아니라 자연 발생적이었던 것일까. 

.............마이클과 나는 한해살이와의 합의를 바꾸는 법을 연구 중이다. 
1) 뇌 대신 피하지방을 먹는 것이 낫다는 합의. 
이미 다른 연구소에서도 꾸준히 시도해 온 것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선 곰팡이가 뇌 조직을 먹지 못하도록 뇌 조직에 화학성분을 주입했다는 점이었다. 합의가 아닌 강제였던 것이 문제였을까. 시도는 처참한 실패로 끝나 버렸다. 피험자는 뇌에 발생한 합병증으로 더 심각한 폭력성을 보였으며, 곰팡이는 피험자의 폐를 공격해 피험자가 질식사 하게 만들었다. 합의란 물길을 바꾸는 것이다. 지금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분화하는 것이다. 뇌가 아닌 피하 지방을 양분으로 삼는 것이 곰팡이와 신체 양측에 모두 이익이라는 사실을 주지시켜야 한다. 곰팡이가 피하 지방을 먹기 시작했을 때 신체가 더 건강해진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2) 테스토스테론과 아드레날린 호르몬 분비를 중단하는 것이 이롭다는 합의.
증상발현자들은 테스토스테론과 아드레날린 호르몬이 정상인보다 평균 50% 이상 늘어난다. 이것이 폭력성의 강도를 배가시킨다. 우리는 호르몬의 분비가 늘어났을 때 신체에 불리한 조건, 고통이 가해지는 조건을 연구 중이다.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는 관계다. 그렇기에 어느 한쪽이 고통 받으면 다른 한쪽이 현재 패턴을 중단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뇌가 죽으면서 신체 기능도 같이 죽는 경우도 있다. 임상시험의 부작용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의도된 작용이다. 치료제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락사 약 개발로 전환하는 것도 애당초 이 연구소의 목적이었다. 한해살이가 뇌의 나머지 부분, 생명 유지 장치까지 먹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원래 곰팡이의 목적이었다. 이 곰팡이를 처음 개발한 브로디 버크의 의도였다. 연구소의 대부분의 직원들이 안락사 기술이 개발되면 동참하겠다고 했다. 버섯뇌가 되느니 안락사를 선택하겠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막상 정말 그렇게 죽게 된다면 선뜻 죽음을 선택할 이들은 얼마나 될까. 

.............경비대장 브랜든은 신사였다. 그는 경비대 임무를 경비에 국한하지 않았다. 그는 남자 중의 남자였다. 50kg이 넘는 글리세린 통을 가볍게 들어 옮겼을 때 여직원들이 환호하며 박수 친 적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도망가도 브랜든은 남을 것이라 믿었지만 아니었다. 브랜든은 도망갔다. 귀뜸 한번, 메모 한장 남기지 않고, 몰래 칼 같이 도망 가 버렸다. 그를 따라 다른 모든 경비대원들도 사라진 것으로 보아 브랜든은 한참 전에 다른 사람들과 작당한 것으로 보인다. 경비대에 남은 사람은 다니엘 한명이었다. 다니엘은 경비대에서 제일 작고 왜소한 남자였다. 그는 숫기도 없고 목소리도 작았다. 도망간다면 아마 저 사람이 제일 먼저 도망가겠지 생각했는데 반대였다. 우리는 증상발현자에 대해 잘 모르는만큼 남자에게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것 같다. 

.............경비가 사라졌다는 걸 증상발현자들이 알아챈 것이 분명하다. 센 놈들이 떠나고 약한 놈들만 남았다는 걸 모를 리 없다. 증상발현자들은 기회를 엿보고 있다. 곧 이곳 시설이 무력화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마이클은 다니엘과 함께 피험자를 데려 오고 있다. 다니엘이 마이클과 다른 연구소 직원들에게 방호복 입는 법과 무기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다니엘은 왜 아직 여기 남아 있는 걸까. 자기 말로는 달리 갈 데가 없기 때문이라지만 사실 갈 곳은 얼마든지 있다. 그는 여기 있는 것이 싫지 않은 것이다. 여기 연구소 사람들이 마음에 든 것일까. 아니면 증상발현자들에게 매력을 느낀 것일까? 마이클처럼? 

.............피험자를 데려 오는 것이 힘들어져 연구 진척이 더디다. 경비가 사라진 뒤로 일을 그만두는 연구원과 직원들도 늘었다. 이제 겨우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좌절감이 크다. 세상의 존망이 여기 걸려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좌절감이 더 큰 것 같다. 마이클은 그런 게 없는 것 같다. 일을 재미로 하는 것 같다. 그는 이끼 피부도, 한해살이도, 증상발현자도 싫어하지 않았다. 그러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았느냐는 질문에 마이클은 자기 원래 꿈이 좋아하는 일 하다 죽는 거라고 했다. 

.............실험실에 리차드는 100kg가 넘는 뚱보였다. “뇌 대신 피하지방” 실험을 위한 최적의 피험자였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그는 피하지방도 잃고 뇌의 나머지 부분도 잃었다. 실험실에 주입한 기체였을까, 식이 요법이었을까, 심증은 있다. 최소 4명의 실험체가 더 필요하다. 4명만 더 실험해 보면 뇌 대신 피하지방 실험에 성공할 수도 있다. 최소한 안락사 실험은 성공 가능성이 확실해 보인다. 여세를 몰아 호르몬 분비도 중단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마이클은 이끼 피부가 발생하지 않는 법을 발견한 것 같다. 그는 이끼 피부 피험자들의 피부 생태와 자신의 피부 생태가 어떻게 다른지 알았다고 했다. 피부를 장악하지 못한 곰팡이는 뇌를 먹지 않는 것일까? 뇌가 아닌 피하지방에 균사를 뻗게 할 수 있을까? 인생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모든 것이 무너져 가는 지금 우리 연구는 희망이 커져 가고 있다. 

.............다니엘이 죽었다. 클라라를 피험자로 데려 오다 살해됐다. 클라라는 우리가 지목한 다음 피험자였다. 100kg짜리 거구였다. 마이클이 같이 간다는 걸 다니엘이 말렸다. 마이클 몸이 몹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자기 혼자 할 수 있다고 했다. 여느 때와 같이 손수레를 끌고 마취총을 들고 나갔다. 그리고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다니엘은 질식사했다. 클라라는 마취총에 면성이 있었다. 마취총을 그동안 두어번 맞았을까. 정상적인 경우였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한해살이에 감염된 몸에는 예상치 못한 해독 기능이 있는 것 같다. 마취된 줄 알았던 클라라는 결박을 시도하는 다니엘을 바닥에 눕히고 깔고 앉았다. 완전무장한 남자를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만들어 죽일 줄은 몰랐다. 다니엘의 시신을 그냥 두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우리는 목숨 걸고 그의 시신을 회수했다. 테이저 건으로 실신한 클라라를 가져오고 싶은 욕심이 굴뚝 같았지만 너무 무리였다. 우리는 다니엘을 화장하고 장례도 치러줬다. 그는 무연고자였다. 가족도 지인도 없었다. 우리가 다니엘의 유일한 가족이었을까. 그는 이곳에서 일하면서 행복했을까. 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곳엔 이제 연구원들만 남았다. 나와 마이클, 에마, 그리고 레이첼. 모두 4명이다. 마이클을 제외한 남자들이 먼저 도망가고 여자들만 남았다. 마리가 도망간 직원들을 대신해 증상발현자들을 관리하고 있다. 피험자가 피험자들을 관리하는 기막힌 상황이다. 마리도 피험자이긴 하지만 임신 중이라 주기적으로 검진만 받고 있다. 마리는 아이를 낳으면 실험에 참가한다고 했다. 대체 마리는 아이를 언제 낳는 것일까. 예상 출산일이 벌써 한달이나 지났다. 마리에게 이제 위험하니 증상발현자들에게 가지 말라고 했지만 마리가 우리 말을 들을 리 없다. 혹시 제프리를 풀어 주는 건 아닐까. 우리 허락 없이는 잠금 시설을 열 수 없다. 하지만 마리는 제프리를 풀어 주고 싶은 것이 분명하다. 

.............마이클이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무슨 병에 걸린 걸까. 테레사 네가 제일 잘 알 거 아니야 마이클이 웃으며 질타했다. 하지만 마이클 몸에 무엇이 투여됐는지 아는 사람이 마이클 뿐이다. 왜 몸이 이렇게 됐는지 마이클이 모르면 누구도 알 수 없다. 마이클은 자기가 추해졌다며 웃었다. 아름다운 걸 연구하는 사람이 병에 걸려 추해졌다고, 아름다운 게 좋아서 연구를 시작했는데 그걸 중단시키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기가 막혀 웃었다. 마이클의 병은 역설적으로 그의 몸이 곰팡이에 장악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한해살이가 신체를 장악하면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 마이클의 몸은 명백히 한해살이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의 연구는 인과관계를 알 수 없는 성공을 거둔 셈이다. 하지만 어떻게 한 걸까. 마이클은 자기도 모른다고 한다. 앞으로 일년 더 연구를 하면 알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 살아 있을 지 모르겠다고 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클라라 대신 데려온 에드는 실험체로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밖에 가족이 있었고 시설에서 가장 얌전한 증상발현자 중 하나였다. 지금껏 실험체는 증상이 과도한 호전적인 개체 순으로 골랐으나 이제는 반대가 되었다. 제일 안전할 것 같은 양순한 개체들만 골라 실험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실험체는 무한 공급된다는 확신이 우리를 궁지에 몰아 넣었다. 실험체는 더 이상 공급되지 않았고 실험의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이제는 실험체가 20명도 남지 않았다. 

.............피하지방 합의는 연구소 상황이 정상화 될 때까지 중단하기로 했다. 한명의 실험체도 아쉬운 상황에서, 일년 이상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실험은 현실적으로 진행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증상발현자의 폭력성을 감퇴시키는 쪽에 집중하고 있다.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이 분비될 때마다 두통이 유발되는 조건, 아드레날린 호르몬이 분비될 때마다 심혈관 통증이 유발되는 조건, 다양한 조건을 시도 중이다. 에드는 실험을 무사히 견딜 수 있을까. 혼자서 4명 분 실험을 감내할 수 있을까. 

.............제프리를 실험체로 쓰자는 말을 마리가 들은 것 같다. 우리가 여기에 있는 한 실험체를 쓰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지금 남은 증상발현자 중 가장 얌전한 제프리가 최선의 선택이다. 하지만 마리가 여기 있는 한 그건 안 될 일이다. 마리는 절대로 제프리가 실험체로 쓰이는 걸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어떤 화학물질도, 어떤 미생물도, 한해살이와 공생 중인 몸에는 듣지 않는다. 어떤 변화, 어떤 변수도 허용되지 않는다. 에드는 죽지 않았다. 대신 폭력성이 강화되었다. 한해살이는 인간을 새로운 개체로 바꾸고 거기에 항상성을 부여했다. 이 항상성은 강철보다 강해서 어떤 속임수도 우회로도 통하지 않는다. 

.............한해살이가 인간 몸의 외부 침입자를 제압하는 것처럼, 인간 몸의 면역 체계도 한해살이를 공격하는 침입자를 제압한다.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는 완벽한 방어 체계를 형성한다. 이 점이 한해살이를 제어하는데 가장 큰 난관이다. 어느 한쪽을 죽이려면 다른 한쪽도 같이 죽어야 한다. 생물학적으로 둘은 이종 샴쌍둥이인 셈이다. 어떻게 이런 완벽한 공생 관계를 만든 걸까. 브로디 버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마이클에게 물었다. 혹시 한해살이에게 뇌를 맡기는 게 나을 거란 생각은 안 해봤는지. 마이클은 웃었다. 그는 웃는 것도 힘들어 했다.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힘들어 했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는 나무처럼 바짝 말랐다. 음식물 섭취를 하지 못해 혈관을 통해 양분을 주입받고 있다. 그는 고통 받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에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을 갖고 있다. 그는 팔에 링거를 꽂은 채 예전과 똑같이 일에 매달리고 있다. 그의 호기심은 신체 장애조차 초월하고 있다. 

.............마리는 제프리를 풀어 주었다. 마리는 우리는 믿지 못한 것이다. 솔직히 우리도 우리는 믿지 못하고 있다. 아무것도 뜻대로 되지 않으니 우리도 이제 어떤 선택을 내릴 지 알 수 없다. 지금 보니 마리가 증상발현자들 문을 열어주는 건 이미 오래 전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껏 참은 거였다. 우리들과의 관계 때문에. 

.............제프리는 시설을 장악했다. 제프리는 마리를 이용했다. 마리의 이용해 증상발현자들의 방문을 하나씩 열고 살인극을 벌였다. 제프리는 덩치가 크지 않았지만 빠른 신체 스피드로 다른 개체들을 쉽게 제압했다. 브랜든이 했던 말이 뒤늦게 생각났다. 증상발현자들 중에는 총알을 피하는 놈들이 있다고. 움직이는 물체에 초인적 반응 속도를 보이는 놈들이라고. 제프리가 그런 부류인 것 같다고. 마리는 제프리가 사이코패스 킬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제프리에 의해 풀려난 증상발현자들이 밤마다 울부짖는다. 사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부짖는다고 해야겠다. 에마와 레이첼은 연구소를 떠났다. 다행히 차가 있었다. 증상발현자들의 공격에 버틸 수 있는, 공식적으로 만들어진 탈출용 차량이었다. 에마와 레이첼은 나와 마이클도 같이 가자고 했다. 하지만 어디로? 나는 부모님에게 돌아갈 수 없다. 나는 병에 걸렸다. 내 직감으로 이 병은 전염성이며, 에마와 레이첼도 현재 잠복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에마와 레이첼에게 곧장 병원으로 가서 검진을 받으라고 했다. 한해살이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 다른 병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으니 반드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혹시 병원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내가 준 약들 중 증상에 맞는 걸 써보라고 했다. 끝까지 남아 준 동료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이었다. 그동안 이곳에서 개발된 모든 것들 전부 에마와 레이첼의 차에 실어 보냈다. 어쩌면 우리가 개발한 약 중에 그들에게 맞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어쩌면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제프리가 사람을 사냥하는 걸 보았다. 3층에서 다이빙 해 상대의 목을 발로 차서 죽였다.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 채는 것 같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질서를 확립하기 위함일까. 이곳을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기 위함일까. 서너명의 증상발현자들이 협동으로 사냥하는 것도 봤다. 마치 사자 무리처럼 두세 명이 사냥감의 퇴로를 막고 한 명이 사냥감의 숨통을 끊었다. 제프리는 이걸 3층 난간에 앉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뇌를 잃어도 DNA에 새겨진 자연 본능은 남는다. 증상발현자들은 뇌가 없어도 사냥을 한다. 이들은 다른 증상발현자와 접촉하면 서열을 구분하고 협동을 시작한다. 이들이 저지르는 살인은, 한명일 때는 싸이코패스 잔혹 범죄지만, 두명 이상일 때는 전형적인 사냥 패턴을 보인다. 증상발현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집단 의식은 문명의 잔재가 아니었다. 인간이란 종이 태생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란 사실을 증명하는 현상이다. 

.............증상발현자들은 군집이 되었다. 감금 상태에서 서로 눈치로 정보를 교환하던 이들이 이제 서로의 수족처럼 움직인다. 이들은 수십개의 팔다리가 달린 괴물, 수십개의 손가락이 달린 손이다. 뇌를 대신한 곰팡이는 개체의 자율성이 아닌 집단의 효율성을 지원한다. 증상발현자는 개인이 아닌 군집으로 진화하고 있다. 

.............진화의 기억은 뇌가 아닌 척추 신경에 의해 재생되는 것일까. 예술 본능도 뇌가 아닌 척추 신경 진화의 결과였던 걸까. 

.............증상발현자들은 문명과 야생의 구분자다. 문명을 건설한 뇌 vs 종의 생존을 유지한 본능, 두 세계의 증언자다. 이들은 수렵과 채집 본능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이 불을 사용할 줄 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충격이었다. 불을 이용하는 것도 진화 기억의 일부라는 생각해본 사람이 있을까. 인간이 불을 이용하는 것은 새가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자연 본능인 것일까. 

.............나는 증상발현자들을 “농사를 짓지 못하는 종족 no farming species”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증상발현자들은 수만년전 빙하기 시대의 본능까지만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도구를 이용하고, 불을 쬐고, 옷을 입고, 비바람을 피할 환경을 찾는 등 추위에 대응하는 능력이 있다. 다른 개체와의 협력을 통해 체온을 유지하고 외적을 방어하며 식량을 확보하는 본능도 보인다. 거기까지다. 이들에게 그 이후 진화의 기억은 삭제돼 있다. 씨를 뿌리고, 작물을 기르고, 가축을 기르고, 세월을 인내하고, 수확을 한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농사를 짓지 못하는 무농사족. 이것이 그들의 인류학적 정체성이다. 

.............증상발현자들의 가장 놀라운 점은 행동 패턴이 인간 종의 울타리에서 벗어난다는 점이다. 이언은 건설 노동자였다. 그는 이끼 피부가 나타나자 (치료를 받기 위해) 자진해서 시설에 들어왔다. 그는 탐조bird watching를 취미로 삼았던 조류 매니아였는데, 증상이 나타난 뒤로 조류와 같은 행동 패턴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음식을 입으로 쪼아 먹었으며 굉장히 복잡한 새 울음소리를 완벽하게 따라 했다. 가장 놀라웠던 건, 걸음을 사람처럼 걷는 게 아니라 새처럼 걸었는데, 인간에겐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묘기에 가까운 스텝을 밟았다는 것. 마이클은 “붉은머리 마나킨Red-capped Manakin”이라고 했다. 탐조인들에게 유명한 새로 아마 TV에서 본 걸 흉내낸 것이라고. 인간의 신체 구조상 불가능해 보이는 그런 동작들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단지 몇 년전에 보았던 기억만으로 그런 복잡한 스텝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건 어떻게 가능한 걸까? 나는 이곳에 미생물을 연구하러 왔는데 이제는 제인 구달이 된 기분이다. 

.............뇌가 소실되면서 인간은 종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라는 종의 특징을 유지하기보다 다른 종의 특성을 채택하는 범생태적 진화의 모습을 보인다. 혹시 뇌의 역할이 그런 것이었을까? 진화적 관점에서, 인간 종의 특성을 유지하는 울타리 역할을 했던 것일까? 한해살이는 인간의 뇌를 지워 버리고 가이아gaia를 채워 넣은 것일까. 

.............마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리는 제프리를 풀어주고 우리와 인연을 끊어 버렸다. CCTV에 가끔씩 보이는 것으로 보아 마리는 그들과 함께 먹고 자는 것 같다. 제프리의 보호를 받으며 무사히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마리에게 유감이 없다. 오히려 다행이다. 마리 덕에 저들의 습성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마이클은 자신의 마지막 실험을 했다. 그는 내가 말릴 것이 귀찮았는지 내가 자는 사이 몰래 경비 구역을 넘어 증상발현자들 구역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식량과 일용품을 챙기고 증상발현자들을 하나씩 관찰하며 사진도 찍었다. 심지어 그 곳에서 잠깐 잠도 잤다. 그는 제프리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마이클은 흥분한 상태였다. 자신의 실험이 이제야 성공을 거두었다고 좋아했다. 저들이 자신을 공격하지도 잡아 먹지도 않은 것엔 이유가 있다고 했다. 자신의 “썩지 않는 몸”에 거부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했다. 이것으로 가설이 증명된 것이라고 했다. 무슨 가설? 그가 말한 썩지 않는 몸은 뭘 말하는 걸까? 마이클은 갑자기 뭔가를 잊고 왔다면서 급하게 다시 증상발현자 구역으로 넘어갔다. 링거 없이 이렇게 오래 돌아다녀도 되냐고 소리 질렀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이클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마이클의 시신을 수습해야 하지만 몸을 움직이기 버겁다. 마이클의 시신은 썩지도 먹히지도 않는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지금 당장 처리할 필요 없다는 나태함 때문일까.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았다. 화장실에서 속을 게웠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마이클은 저쪽 구역에서 많은 걸 싸왔다. 화장지와 물티슈와 육포, 그리고 커피 원두. 마이클은 커피 원두를 가지러 간 거였다. 지금 커피를 내려 마이클에게 가져 갈까. 마지막으로 그렇게 커피가 먹고 싶었다니 차게 식은 입이라도 커피를 뿌려주면 좋아할까. 

.............“썩지 않는 몸은 먹지 않는다”는 마이클의 가설이 뭔지 알 것 같다. 나는 지금 곡스힐로 가야 한다. 그곳에 마이클이 말한 샘플이 있다. 천천히 운전해도 1시간 반이면 도착할 것이다. 곡스힐과 연락이 끊긴 지 한달이 넘었다.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는다. 휴대폰도 되지 않는다. 직접 가는 수 밖에 없다. 생체인증만 되면 출입이 가능할 것이다. 그동안 달라진 것이 없다면. 

작품 등록일 : 2026-04-18

▶ Brody’s files #75

▶ Brody’s files #73

나 또 악몽 꿈
제프리를 내가 피할 수가 없었어
복숭아   
마이클ㅠㅠ테레사ㅜㅠ
  
진미오징어22
피하지방세포보다 근육 세포 먹이는 게 더 빨랐을 듯
마이클이 이거 했다가 말라죽은 건가
e   
그와중에도 곰팡이에게 뇌세포 대신 피하지방세포를 먹는게 훨씬 이득이라고, 그게 모두에게 윈윈이라고 설득(?) 하는게 겁나 어려운 일이라는것 만큼은 분명해보임

살을 뺀다는게 이토록 힘들다는거지
진미오징어   
증상발현자들이 군집으로 진화한게 놀랍다
그것도 딱 농경직전까지만 진화했다는게

과학자들이 좀 더 오래 살 수 있었다면,
그리고 더 많은 개체들이 파괴되지 않고
오랫동안 연구될 수 있었다면,
수렵채집 그 이후의 진화도 기록될 수 있었겠지
어쩌면 제프리 집단과 제프리 외의 집단이 전쟁을 벌였을수도

무서우면서도 무지막지하게 끌린다
진미오징어   
흠 거기서 이런 일들이 있었구나.
과학자의 마음으로 사는 건 생존에 도움이 되는듯
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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