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의 마을은 특수 목적으로 지어진 거주지였다. 80년대 버밍엄에서 경찰서장을 지낸 크리스토퍼 리드가 은퇴하며 범죄 피해자들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이곳에 터를 잡았다. 마을 주민 상당수가 흑인인 이유였다. 크리스토퍼 리드는 백인이었지만 이곳에 오게 된 범죄 피해자들은 가족에 의해 범죄 피해를 당한 흑인들이었다. 부모 형제 친척들로부터 범죄 피해를 당하고 갈 곳이 없어진 이들. 그들은 약자였다. 사회적 혹은 신체적 약자들. 범죄는 언제나 약자를 노리는 법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가족 밑에서 자랐다면 커서도 가족을 닮을 것이라고, 마을 전체가 범죄 소굴이 될 것이라고 염려했다. 하지만 리드는 그런 말을 믿지 않았다. 자기 하기 나름이라고, 어떻게 살아야한다고 가르쳐 주면 그렇게 살기 마련이라고 했다. 지난 40년 동안 이곳에서 쫓겨난 사람은 1명이었다. 쫓겨난 것도 아니었다. 제 자신의 행동이 창피하다고 사람들과 합의하고 제 발로 걸어 나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범죄자 틈에서 자라면 범죄자가 되고, 선량한 사람들 틈에서 자라면 선량한 사람이 된다고 했다. 그게 리드의 믿음이었다.
거스 역시 이곳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입양된 아이였다. 그의 부모가 범죄 피해로 사망한 뒤 이곳으로 입양되었다. 그의 입양 부모는 백인이었다. 그들 역시 범죄로 삶의 터전을 잃고 이곳에서 새 삶을 찾은 이들이었다. 거스가 백인에게 우호적인 이유였다. 리드와 거스의 양부모, 그리고 해리스와 페리 가족들. 거스가 아는 백인들은 모두 인종을 가리지 않고 인정을 베풀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여기에 없다.
거스의 마을은 자급자족을 지향했다. 수렵 채집 농업이 가능한 땅을 확보하고 주민들에게 땅을 관리하는 법을 교육시켰다. 지금처럼 물자의 안정적 공급이 불투명한 상황에서는 바람직한 방식이지만 외부 공격에 취약하다는 문제도 있었다. 벌써 3명이 버섯뇌의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고, 버섯뇌를 쫓던 자경단 3명이 몰살 당했다.
양을 치던 조셉은 처음엔 어떤 개구쟁이가 양에게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이는 정상이 아니었다. 울부짖으며 발작하는 양의 등에 탄 아이는 양의 항문에 손을 넣고 있었다. 조셉은 몽둥이를 들고 쫓아 갔다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쯤 됐으려나, 몸집이 작으니 몽둥이를 휘두르면 도망갈 것이라 생각했다고. 하지만 아이는 도망갈까 어쩔까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조셉에게 달려 들었다. 조셉은 약지와 새끼 손가락을 잃었다. 손으로 얼굴을 방어하지 않았으면 목을 뜯겼을 것이다.
산드라는 산에서 견과류를 채집하다 버섯뇌를 발견했다. 나무에 기댄 채 인형처럼 미동도 없이 산드라를 노려 보고 있었다. 겉보기엔 정상인과 다를 게 없었다. 눈이 새빨갛게 충혈된 것만 빼곤. 산드라가 겁을 먹고 등을 보이자 달려 들어 머리를 공격했다. 자경단이 발견하고 버섯뇌에 총을 쏘았을 때 산드라의 머리 가죽은 절반 이상 찢겨나간 상태였다.
패트릭은 개울가에서 개를 산책시키다 물 한가운데서 기포가 부글부글 올라오는 걸 발견했다. 뭔가 싶어 다가갔더니 사람이 물 아래 누워 있었다. 물 속에서, 옷을 모두 벗은 채,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깜짝 놀란 패트릭이 뒤로 넘어지자 벌거벗은 남자가 일어나 패트릭의 두 눈 깊숙히 엄지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패트릭의 충견 알마가 남자의 팔을 물어 뜯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패트릭은 목숨은 구했지만 두 눈을 잃었다. 알마도 잃었다.
패트릭의 절친이었던 마크와 레너드는 스콧과 민병대를 조직했다. 독일 세퍼드 알렉스를 데리고 버섯뇌 추적에 나섰다. 살아 돌아온 건 스콧 뿐이었다. 스콧은 코를 잃었다. 사타구니에서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다. 뜯겨진 코를 손에 쥐고 돌아왔지만 이빨에 씹혀져 복구가 불가능했다. 마을 의사 파텔이 최선을 다했지만 스콧은 결국 죽었다. 스콧은 치료를 받은 다음 날 배가 고프다며 닭 수프를 세 그릇이나 먹었다. 그걸 보고 이제 살았나 싶었는데 몇 시간 뒤 먹은 걸 다 토하고 죽었다.
거스는 이대로 있을 순 없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자주 공격을 당하는 건 어쩌다 우연히 타켓이 된 게 아니란 뜻이다. 버섯뇌가 근처 어딘가 상주하면서 이곳을 사냥터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버섯뇌의 근거지가 될만한 곳은 모두 털었다 – 혼캐슬 한 곳만 빼고. 브렛은 위험하니 절대로 가지 말라고 했지만 그곳을 털지 않고는 마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거스는 비가 내리는 날 혼캐슬을 습격하기로 했다. 브렛은 비가 억수로 내려야 버섯뇌를 사냥하기 좋다고 했다. 그들은 냄새로 인기척을 느낀다고 했다. 비가 많이 내리면 그들이 사람을 인지하기도, 추적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브렛으로부터 열화상 카메라를 받은 게 다행이었다. 건물 안에 몇 놈이 있는지 확인할 수만 있어도 죽을 확률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을에 남은 정예 인력은 지미와 제이콥 뿐이었다. 마크와 레너드와 스콧이 죽은 지금,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 장애인, 어린이, 노인들이다. 지금 쓸만한 남자 중 하나는 총을 쏘면 백발백중 하나도 안 맞는 수다쟁이고, 다른 하나는 총소리만 들려도 제일 먼저 숨는 겁쟁이다.
거스는 전략을 바꿔야 했다. 자기도 살고 지미와 제이콥도 살기 위해 다른 전략을 짜야 했다. 현대 군인은 버섯뇌 제압에 적합하지 않다. 버섯뇌는 총에 잘 맞지도 않을 뿐 아니라 총에 맞아도 공격해온다. 로마 시대 군인이 답이다. 창과 방패였다. 방패로 막고 창으로 찔러야 공격을 둔화시킬 수 있다. 지미와 제이콥에게 총을 쥐어주면 십중팔구 버섯뇌가 아닌 거스가 총에 맞는다. 지미와 제이콥이 앞에서 창과 방패로 버섯뇌의 붙잡아 두면 거스가 총으로 버섯뇌의 급소를 날려 버릴 수 있다.
거스는 지미와 제이콥에게 유서를 쓰게 했다. 지미는 부모가 없었고, 제이콥만 있었다. 둘 다 뭔 놈의 유서냐고 죽으면 그냥 죽지 뭐 하고 꺼려했지만 거스는 단호했다. 전쟁터에 나가는 거라고. 죽을 각오하고 나가는 거라고. 부모가 없으면 친구들, 이웃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기는 거라고 했다. 그래야 모두가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차를 타고 이동했다. 유서를 쓰고 난 뒤라 그런지 다들 숙연했다. 죽음에 진지해지면 어른스러워진다. 모든 것이 허무해진 느낌, 인생 다 산 느낌, 모든 것에 통달한 느낌.
지미가 물었다.
거스 너는 똥싸개 몇 마리나 죽였어?
지미는 버섯뇌를 똥싸개 혹은 포커페이스라고 불렀다. 그때 그때 기분 따라 명칭이 달랐다. 버섯뇌라고 부르진 않았다. 그건 재미없는 이름이라고 했다.
몰라.
여기 와선 한 마리도 못 죽였잖아.
뭔소리야, 지난번에 저격총으로 척추 날린 거 못 봤어? 딱 한방 쐈어. 근데 그걸로 반토막을 냈어.
제이콥은 지미의 멍청함에 화가 났다. 지미는 뭘 봐도 돌아서면 잊는다. 아니면 기억을 못하는 척 하거나. 친구들은 그를 붕어 대가리라고 놀렸다.
지미 너는 좋겠다. 버섯뇌 돼도 지금이랑 똑 같을 거 아냐.
제이콥이 비웃었다. 기저귀만 채우면 되겠네 거스가 따라서 빈정거렸다.
멍청한 놈들에겐 버섯뇌 몇 마리를 죽였는지가 중요할 지 모른다. 하지만 전세계 백인 숫자가 8억이다. 감염 가능성이 있는 다른 인종들까지 계산하면 최소 20억은 될 것이다. 20억을 다 죽이면 세상에 평화가 올까? 과연 곰팡이는 20억명까지만 감염시키고 사라질까? 정말 20억명까지만 해치우고 이제 그만해야겠다 하고 지구상에서 사라질까?
지미는 똥싸개들이 싸이코패스인지 물었다. 지미는 버섯뇌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다. 궁금한 게 많은 건 좋아하거나 무섭거나 둘 중 하나다. 지미는 버섯뇌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버섯뇌가 마을 사람들에게 한 짓은 일반적인 범죄자가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 아무리 사람이 미쳐도, 아무리 싸이코패스라도, 성기를 이빨로 물어 뜯진 않는다.
왜 그런 짓을 하는 걸까? 사냥도 강간도 절도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짓을 즐기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어떤 경우에도 무표정이었다. 사람을 공격하기 전에도, 공격한 후에도, 사람이 피 철철 흘리는 걸 보면서도, 변함없이 무표정이었다. 감정이 있어야 빈 틈이 생긴다. 심리전을 써먹을 수 있다. 감정이 없는 건 난공불락의 벽이다. 두려움이 없는 놈에게 효과적인 공격법은 완전한 파괴 뿐이다. 그런데 이놈들은 파괴하기도 쉽지 않다.
스콧은 한 명에게 당했다고 했다. 3명의 건장한 남자와 군용견이었던 독일 세퍼드를 죽인 버섯뇌는 혼자였다. 키가 180cm 정도 되는, 검은 머리 검은 눈의 백인이었다고.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빨랐고, 총을 꺼내 드는 순간, 순간 이동하듯 가까이 다가와 사람을 쓰러 뜨렸다고 했다.
스콧은 자지랑 불알도 잘린 건가.
지미가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언급하기도, 생각하기도 싫었다. 버섯뇌는 인간이 가장 두려워 하는 방식으로 인간을 공격하고 있었다. 인간이 가장 고통받을 곳을 지독하게 파고 들었다. 심리전을 하는 쪽은 그들이었다. 그들에겐 의도도 계획도 없었지만 그 어떤 군사 작전보다 무서운 심리 효과를 주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브렛의 말대로 굉장히 큰 시설이었다. 겉보기엔 아직 운영 중인 것 같았다. 병원이라곤 하지만 실은 수용소였다. 감염자들을 가둬 놓고 연구하는 시설이었다. 분명 감염자들을 통제하기 위한 경비 시설이 있었을텐데 어떻게 무너진걸까?
거스는 열화상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누군가, 뭔가 있었다. 한둘이 아니었다. 제이콥에게 메모하게 했다.
103 지점에 2마리, 209 지점에 2마리, 311 지점에 3마리. 총 7마리.
버섯뇌의 위치는 의미가 없다. 한 곳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건물 밖에 있는 한 저들은 우리가 접근한 걸 모를 것이다. 하지만 들어가는 순간 냄새가 날 것이다. 냄새를 감지하고 경보가 울린 것처럼 한꺼번에 달려들 것이다. 그 때를 노려야 한다.
우리 셋이 다 같이 들어간다. 지미 제이콥 너희 둘이 건물 로비 리셉션까지 들어갔다가 내 신호에 후퇴해. 공격을 받으면 방패로 방어하면서 후퇴해. 내가 뒤에서 총을 쏠 거니까.
지미는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휘파람 소리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봐선 크게 긴장하진 않은 것 같았다. 제이콥은 너무 겁을 먹었다. 자세를 낮추고 방패로 몸을 가리면 다칠 일 없다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안심하지 못했다. 어쨌든 들어간다. 내가 후퇴하라고 할 때까지 천천히 전진한다. 직선으로 들어갔다 직선으로 나오는 미션이다. 어린애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입구는 좁았다. 두 사람이 동시에 들어가기 어려웠다. 거스 같은 거구의 성인 남자 한명이면 꽉차는 정도. 거스가 먼저 들어갔다. 입구는 이중으로 보호돼 있었다. 첫번째 입구를 열고 들어가면 두번째 입구가 있었다. 동물 병원 출입문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쉽게 한번에 나갈 수 없게 설계돼 있었다. 작전을 세우기 쉬운 구조다.
건물 안은 분명 오물 썩는 냄새로 진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그렇지 않았다. 똥오줌 냄새도, 시체 썩는 냄새도 없었다. 버섯뇌는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게 정상인과 버섯뇌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화장실을 쓰지 않는 놈들이 똥오줌을 따로 치울 리 없었다.
거스는 문득 생각하지 못한 변수를 떠올렸다. 혹시 정상인이 있는 게 아닐까?
브렛의 말만 듣고 건물 전체가 버섯뇌 소굴이라고 단정짓고 있었다. 원래 거스는 폭탄을 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버섯뇌를 한곳에 유인한 뒤에 폭탄을 터뜨려 몰살시키려고 했다. 아니면 건물 곳곳에 폭탄을 설치해서 건물 안 모든 존재를 제거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거스는 신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직접 와 보니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냄새도 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들어오자마자 달려들 것이라 예상했던 버섯뇌도 보이지 않았다. 거스는 확신했다. 이곳에 버섯뇌가 아닌 사람이 있다고.
이보시오! 여기 사람 없습니까?
거스가 큰 소리로 주위를 환기시켰다. 지미와 제이콥이 깜짝 놀라 돌아 본다. 너 뭐하는 거냐고 묻는다.
여기 사람이 있어.
지미와 제이콥이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지미가 거스의 목소리를 따라 흉내낸다. 이보시오! 여기 사람 없습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와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 걸까. 이 놈들 배가 부른 걸까. 원하는 게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걸까. 아니면 숨은 걸까.
직접 확인하는 수 밖에 없었다. 다시 열화상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103 121 지점에 아무도 없었다. 아까 밖에서는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다. 2층과 3층에도 아무도 없다. 어디로 간 걸까?
진짜 있는지 없는지 지미와 제이콥이 방을 하나하나 열어 본다. 방문 안에는 유리벽이 있었다. 감시 관찰을 위한 강화 유리벽이었다. 마이크와 스피커, 모니터와 카메라, 그리고 용도를 알 수 없는 도구와 기기들이 설치돼 있었다. 이곳은 병원이 아니었다. 수용 시설이었다. 치료를 위한 곳이 아니라 가둬 놓기 위한 곳이었다.
저기 시체가 있어.
침대 아래 누군가 죽어 있었다. 머리를 바닥에 박은 채 엎어진 시체였다. 새하얀 환자복을 입은 새까만 피부의 시체. 미라처럼 바짝 말라 있었다.
시체가 안 썩었어.
시체가 썩지 않았다. 멸균 시설인가? 아니다. 유리벽은 밀폐돼 있지 않았다. 아이템을 주고 받을 수 있게 구멍이 나 있었다. 시체를 방부 처리 한 걸까? 하지만 저렇게 아무렇게 나자빠져 죽은 시체를 방부 처리할 이유가 없다. 다른 방에도 시체가 있었다. 방 4개 중 하나 꼴로 시체가 있었다. 모두 썩지 않은 채 미라화 돼 있었다.
방마다 선반이 있었다. 선반 위에 놓인 물건들이 방마다 제각각이었다. 종이, 나무, 옷감… 인상적이었던 건 실의 방이었다. 방에 있던 누군가가 여러가지 색의 실을 엮어 방바닥 전체를 수놓았다. 인간이 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실이 자연적으로, 자연물을 따라, 저절로 엮인 것 같았다. 바람처럼, 파도처럼, 실이 이리저리 자유롭게 묶였다 흩어졌다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걸 버섯뇌가 한 거야? 지미가 감탄한다. 뭘 하려 했던 걸까. 이들을 감금한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살리거나 죽이거나. 살리기 위한 치료제를 개발 중이었을 수도 있고, 죽이기 위한 독을 개발 중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저건, 저렇게 뭔가 만들 게 하는 건 어떤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왜 저런 걸 하게 한 것일까?
물감이 있는 방도 있었다. 선반 위에 열댓개의 물감통이 어질러져 있었다. 방의 주인은 물감을 온 몸에 찍어 벽과 바닥에 마구 처발랐다. 액션 페인팅인가. 지미가 아는 척을 한다. 방바닥에 성기와 엉덩이 모양도 찍혀 있었다. 지미는 버섯뇌가 무섭기만 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지미는 버섯뇌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식당으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다 제이콥의 욕설이 터져 나왔다. 씨발 똥 밟았어. 누군가 최근에 싼 똥이다. 그런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분명 사람 똥인데 냄새가 나지 않았다. 지미와 제이콥 둘 다 아무 말 하지 않는다. 똥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실수겠지. 어쩌다 이런 똥을 싼 거겠지. 아니면 다른 동물의 똥이거나.
이 건물에서 똥냄새가 나지 않은 이유는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1) 똥을 치우는 사람이 있거나 2) 똥을 다른 곳에서 싸고 있거나. 둘 다 아니었다. 냄새가 나지 않는 똥을 싸기 때문이었다.
식당에 불이 난 흔적이 있었다. 불은 아마 천장 스프링클러에 의해 꺼졌을 것이다. 누군가 이곳을 불 태워 버리려고 한 걸까? 증거를 인멸하려고 한 것일까? 이곳을 불 태워 버리고 도망치려고?
식당 한 구석에 또 다른 시체가 있었다. 이번에도 썩지 않은 시체였다. 혹시 똥냄새가 나지 않는 것과 관련 있는 것일까. 시체가 썩지 않는 것과 똥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서로 연관된 게 아닐까.
이봐, 이 사람 버섯뇌가 아니야. 의사야.
그러고 보니 이 시체는 의사 옷을 입고 있었다. 제이콥이 시체의 가운에서 명찰을 꺼낸다. 마이클 쉬로. 피부학 연구원. 이 시설에서 일하는 직원이다. 근데 왜 여기 죽어 있는 걸까? 시체엔 외상이 없었다. 혹시 시체가 썩지 않는 것과 연관이 있을까? 이 사람들이 죽은 이유가 혹시 어떤 독극물 때문일까? 어떤 누군가의 실험의 결과일까? 하지만 왜 버섯뇌와 직원들이 같이 죽은 걸까?
그 사람 맞아? 다른 사람 것일 수도 있잖아. 지미가 명찰이 주머니에서 나온 것을 의아해한다.
명찰 사진이랑 시체 얼굴 골격을 보라고. 완전 같은 사람이야. 제이콥이 설명한다.
제이콥 선생님께서 법의학에도 조예가 깊으신 줄 미처 몰랐네. 지미가 빈정댄다.
이 시설에 뭔가 사고가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다수가 죽고, 나머지 사람들은 탈출했거나 여기 남아 은신하고 있는 것이다. 아까 열화상 카메라로 본 7명은 어디로 간 걸까? 그들은 사람일까 버섯뇌일까?
식당을 지나 경비 구역이 나왔다. 다수의 헬멧과 방호복이 있었다. 지금 거스 일행이 입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들이다. 제이콥은 새 헬멧과 방호복으로 갈아 입는데 지미는 갈아 입지 않는다.
전쟁 중에 옷 갈아 입으면 운 달아나.
거스와 제이콥이 혀를 끌끌 찬다. 무식한 놈이 물리 법칙이 아닌 미신을 믿는다. 거스는 나중에 다시 와서 이곳 장비들을 챙겨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라커 안에는 무기들도 있다. 이것으로 무장하면 마을은 전보다 훨씬 안전해질 것이다.
경비 구역을 지나 연구실이 나왔다. 시설은 크게 2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버섯뇌를 관찰하는 구역, 다른 하나는 연구 실험 및 개발을 위한 구역. 금속으로 만들어진 커다른 연구실 문에는 커다란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이곳 문은 항상 잠겨 있어야 함. 경고문이 무색하게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연구실은 어질러져 있었다. 누군가 급하게 들어 왔다가 급하게 빠져 나간 것 같았다.
제이콥이 또 다시 욕을 내뱉는다. 씨발 넘어질 뻔했어. 옆으로 몸을 돌려 누운 채 죽은 사람이었다.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여자였다. 죽은 지 오래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시체는 부패되지도 미라화 되지도 않았다. 테레사 콜먼. 미생물학 연구원. 가방이 열려 있었다. 알약, 헤어클립, 마스크, 그리고 필기구와 노트가 쏟아져 나와 있었다.
거스가 능숙한 솜씨로 죽은 여자의 얼굴과 몸을 헤드라이트로 비춰본다. 외상이 없다. 최소한 버섯뇌에게 죽은 것은 아니다. 아까 식당에서 본 의사와 같은 원인으로 죽은 걸까? 그는 자신의 책상 밑에서 죽었다. 테레사 콜먼의 이름이 붙은 책상에는 휴대폰과 노트북, 그리고 갖가지 전자 기기가 흩어져 있었다. 테레사는 가방을 들고 이곳을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휴대폰은 챙기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테레사의 책상에 인쇄된 뉴스 기사가 붙어 있었다. 아일랜드에 어떤 마을에 대한 기사였다. 경찰에서 일하던 사람이 만든 범죄 피해자들을 위한 마을. 마을을 만든 사람의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다. 자급자족을 지향하는 것도 그렇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마을 건립에 참여한 것도 그렇고, 거스의 마을과 여러모로 비슷했다. 테레사는 이 뉴스를 왜 인쇄해 붙인 것일까?
거스는 테레사의 가방을 챙겼다. 책상 위 휴대폰과 노트북, 그리고 뉴스 기사도 챙겼다. 거스는 직감적으로 이것이 중요한 단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의 버섯뇌에 대한 단서, 아니면 버섯뇌라는 생물에 대한 중요한 단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치료약이나 방어 물질 같은 건 없을까. 그동안 뭔가 개발된 게 있지 않을까. 여기저기 굴러 다니는 물건들을 챙기긴 했지만 중요한 건 없어 보였다. 누군가 여기 와서 중요한 걸 모두 챙겨 간 것 같았다. 다른 직원들도 다 같이 빠져 나갔을텐데 어째서 마이클과 테레사만 여기 죽어 있는 걸까?
연구실에서 나오려는 순간 지미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연구실 문 밖에 서 있었다. 웃고 있었다. 버섯뇌는 감정이 없다. 웃지 않는다. 하지만 저건 정상인의 웃음이 아니었다. 지미의 고막을 찌르는 비명 소리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거스 일행을 한명씩 웃는 얼굴로 바라 보고 있었다. 누구야! 누구야! 대답해! 지미는 창으로 상대를 위협하고 있었다.
저건 버섯뇌였다. 버섯뇌는 웃지 않는다는 편견은 깨졌다. 버섯뇌에 대한 정의는 없었다. 매번 볼 때마다 새로운 게 버섯뇌였다. 핸더슨 중대장도 말했다. 백만마리의 버섯뇌는 백만가지의 특성을 갖는다고. 저건 아마 일종의 에러일 것이다. 뇌가 없어지면서 신경을 잘못 건드렸을 것이다. 의도치 않게 저런 웃는 얼굴로 굳어졌을 것이다.
거스는 총을 꺼내 들었다. 버섯뇌의 목을 향해 총을 발사 하는 순간 버섯뇌는 사라졌다. 눈 앞에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스피드였다. 저렇게 빨리 움직이는 게 어떻게 가능하지?
이봐 거스, 너 혹시 총을 감정적으로 쏘는 건 아니지?
지미는 거스가 쏜 총알이 자기 고막을 스치고 지나갔다고, 하마터면 자기가 맞을 뻔 했다고 엄살을 떤다. 지미는 거스의 사격 실력을 본 적이 없다. 아니면 보고도 기억을 하지 못하거나. 거스의 사격 실력을 아는 사람은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거스는 총을 감정적으로 쏘지도 않고 아군이 맞을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다.
거스는 열화상 카메라를 켰다. 지미는 그것 좀 제발 계속 켜고 있으면 안 되냐고 하지만 이 카메라는 구식이라 배터리가 오래 가지 않는다. 꼭 필요할 때만 써야 한다. 카메라로 버섯뇌의 뒤를 쫓았다. 3층으로 올라갔다.
쫓아가는 게 의미 있을까? 우리가 잡기엔 너무 빠른데.
제이콥은 현실주의자다. 그만큼 냉소도 빠르다. 제이콥은 확실히 군인과 거리가 먼 캐릭터다. 이것저것 따지다 쉽게 물러 난다. 제이콥의 냉소주의를 뒤로 하고 거스는 버섯뇌를 쫓았다. 지미와 제이콥에게 반복해서 강조했다. 혹시라도 버섯뇌에게 물리면 절대로 머리를 공격하지 말라고. 무조건 목을 치라고.
3층에 올라오자 버섯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봐 우리가 못 잡는다니까 제이콥이 헉헉대며 얄미운 소리를 지껄였다. 순간 열화상 카메라가 뭔가를 잡았다. 다수의 인간형 생물들이었다. 건물 밖이었다. 건물 밖에 다른 건물이 또 있었다. 별관인가? 저긴 뭐하는 곳일까? 거스는 저격총을 꺼내 들었다.
별관은 직원 숙소였다. 창가에 침대와 책상이 놓여 있었다. 침대 위에 누군가 있었다. 여자였다. 아이를 품고 있었다. 여자는 아이를 품은 채 비 내리는 창 밖을 바라 보고 있었다. 사람인지 버섯뇌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여자의 뒤로, 침대 프레임 모서리에 어떤 남자가 지붕 위에 새처럼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기이한 풍경이다.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 같지만 정상적인 사람의 행동은 아닌.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어디부터가 비정상일까? 저들은 우리에게 위협일까 아닐까?
지미가 망원경을 꺼낸다. 그리고 말한다. 검은 머리 검은 눈이라고.
저 놈이야! 스콧을 죽인 놈이야!
검은 머리 검은 눈의 백인 남자는 수없이 많다. 저 놈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증거 없이 육감만으로 닥치는대로 죽이는 것이 우리의 임무일까? 전시 상황이니 아무나 죽여도 되는 걸까? 하지만 누가 정의한 전시 상황인가? 공식적으로 아무도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다. 아무도 버섯뇌를 정의 내리지도, 법적 권리와 한계도 설정하지 않았다. 거스는 군인은 살인자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죽여서 영웅이 되는 것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맹목적 살육은 그런 것과 거리가 멀었다.
저 놈이 그 놈이라는 증거는 없다는 거스의 말에 지미가 못마땅해한다.
거스, 나는 네가 군대를 갔다 온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로스쿨을 갔다 온 모양이야?
거스는 여자가 마음에 걸렸다. 여자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은 의심할 여지 없는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쭈그리고 앉았던 남자는 아이의 애비인 것 같았다. 증거는 없지만 자연의 직감은 있었다. 굳이 BBC 다큐멘터리 보지 않았어도 그 3명이 가족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지미는 거스에게 저격총을 달라고 한다. 네가 못하면 자기가 하겠다고 한다. 거스는 어처구니 없어 한다. 너 이 총 쏘지도 못한다고. 지미와 거스가 실랑이를 하는 사이 제이콥이 자신의 돌격 소총을 꺼낸다. 별관을 향해 총을 겨눈다.
제이콥! 그만 둬!
총이 발사된다. 총소리가 건물 전체를 뒤흔든다. 몇 초 뒤 지미의 비명 소리가 고막을 찢는다.
똥싸개!!!
거스가 재빨리 권총을 꺼내 천장에서 떨어진 버섯뇌를 향해 발사한다. 4발의 총알을 피한 버섯뇌는 자신에게 총을 겨눈 제이콥을 향해 달려든다. 버섯뇌는 제이콥의 머리 위로 날아 올라 익숙한 솜씨로 헬멧을 벗긴다.
거스의 나머지 3발의 총알이 버섯뇌의 관자놀이, 목, 어깨에 차례로 맞았다. 하지만 버섯뇌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스가 탄창을 갈아 끼우는 사이, 제이콥을 공격했다. 얼굴에 일격을 맞은 제이콥이 비틀대며 무의식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제이콥의 소총이 사방팔방 총알을 흩뿌렸다. 거스와 지미는 본능적으로 바닥에 엎드렸다.
버섯뇌는 사라지고 없었다. 어딘가 숨어서 거스 일행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목에 명중했다. 바닥에 피가 흥건했다. 피를 많이 흘리고 있을 것이다. 치료받지 않으면 금방 작동 불능 상태가 될 것이다.
쓰러진 제이콥은 바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상한 바람 소리였다. 기이하게 불길한 바람 소리였다.
오 안 돼 안 돼…
지미가 제이콥을 보고 울고 있었다. 바닥에 누운 채 허공을 바라보는 제이콥에겐 턱이 없었다. 찢겨진 살점 사이로 숨이 빠르게 들락날락 하고 있었다. 피가 울컥하고 쏟아졌다. 피가 제이콥의 목구멍으로 흘러 들었다. 바람 소리가 휘파람처럼 가늘어지더니 이내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