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당에서는 전략적 미래를 찾고 있어요. 누구도 감히 어쩌지 못할 막강한 힘을 가진 미래... 핵무기가 없어서 아쉬울 사람은 미국 러시아 대통령 밖에 없겠죠. 하지만 식량이 없으면 모두가 아쉽죠. 왜냐하면 죽으니까… 저희는 버크 오거닉스의 성과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미래가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죠. 전유럽을 지배할 미래.
소원을 빌어 봐, 램프의 요정이 소원을 들어 줄 테니. 오라일리 교수는 인구 500만의 소국, 아일랜드의 부흥을 꿈 꿨다. 하지만 이런 식의 부흥은 아니었다. 지난 2천년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주변국들의 몰락을 대가로 부흥하려던 건 아니었다. 오라일리는 자신의 소원이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이뤄진 것 아닌가 생각했다.
영국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곳곳에서 아노미 현상이 발생했다. 사회가 붕괴되고 있었다. 약탈, 살인, 강간 등의 범죄가 일상화 되었다. 처음에는 버섯뇌의 소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론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정상인들이 다수였다. 다수의 정상인들이 소수의 버섯뇌 사이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그렇게 보니 잘 구분되지 않았다. 뇌가 없는 인간과 뇌가 있는 인간, 뭐가 다른지 알 수 없다는 자조가 터져 나왔다.
곰팡이 감염자는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공식적으론 “감염자” 혹은 “증상발현자”였지만 사람들 사이에선 다른 별명으로 불렸다. 무뇌아 no brain, 골빈이 empty brain, 풍선머리 balloon head, 헐랭이 hollow, 침흘리개 drooler, 깨물이 biter, 침착이 calmer, 스톤 페이스 stone face, 대식가 glutton, 똥싸개 shitter 등. 가장 널리 애용된 별명은 “버섯뇌 mush brain”였다. 곰팡이는 뇌를 파먹고 남은 두개골에 균사를 채워 넣었다. 균사는 버섯이 아닌 곰팡이의 뿌리였지만 사람들은 편의상 버섯뇌라고 불렀다.
영국 정부는 처음엔 일시적 문제로 인식했다. 유행병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곰팡이의 번식원 - 꽃을 제거하면 문제가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정부의 대대적인 “방역” 작업으로 백합류 식물 전체가 멸종 위기에 몰린 적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영국 정부의 무지를 탓햇다. 애초에 꽃의 생리를 이해했어야 했다. 어째서 꽃이 곰팡이의 번식을 돕게 된 것인지, 어째서 곰팡이가 이 꽃을 번식의 도구로 이용하게 된 것인지 연구해야 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그럴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진화론을 탄생시키고 항생제를 발명한, 인류역사상 가장 진일보한 생물학 지식을 보유한 국가는 과학적 접근이 아닌 군사적 접근을 택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치료제, 억제제, 예방책이 급조되었지만 어느 것도 소용 없었다. 세상 모든 꽃을 멸종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횡행했다. 세상 모든 땅을 불태워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도 힘을 얻었다. 14세기 흑사병의 재림이었다. 감염원을 제거하겠다는 명분으로 유대인들을 불 태워 죽였던 상황이 엉뚱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영국은 이것이 영구적 자연 재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곰팡이는 멸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멸종되는 건 곰팡이가 아닌 자신들이라는 사실에 서서히 눈 뜨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업보라고 했다. 제국주의의 첨병으로, 전쟁, 학살, 분할, 노예제, 환경 파괴에 앞장 섰던 국가. 세계 각곳에 비극과 죽음의 씨앗을 뿌린 악의 제국. 영국은 이제 와 그 모든 악행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비웃었다.
오라일리는 그런 견해에 회의적이었다. 영국이 제국주의의 첨병이긴 했지만, 실제 세상에 끼친 악행은 다른 국가에 비해 반드시 더 하다고 보기 어려웠다. 게다가, 백년 전 일을 갖고 이제 와서 죄의 대가 운운하는 건 정상적인 사고 방식이라 볼 수 없었다. 그때의 일과 전혀 상관 없는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는데 그걸 업보라고 정당화 하는 건 최소한의 상식을 저버린 행위였다.
오라일리 교수는 미국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미국 언론은 아일랜드 인의 관점에서 영국 사태에 대한 견해를 묻기 위해 오래 전부터 오라일리 교수에게 구애를 해왔다.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영국이 아니었다만, 영국만 없었다면, 아일랜드는 더 잘 살 수 있었을까.
…역사를 선과 악의 구도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역사를 선과 악으로 구분하죠. 영국 제국주의 이전에도 세상은 살육과 범죄와 부조리가 지배해 왔고, 영국의 제국주의가 끝난 이후에도 살육과 범죄와 부조리가 지속됐습니다. 세상에 정말 선과 악이 존재한다면, 영국이 정말 세상의 악이라면, 영국에 식민 지배 당한 나라들은 선일까요?
…영국도 많은 실수를 범했습니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실수를 반복해 왔습니다. 더 넓은 세상에 진출해 있었던 까닭에 그것이 세상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업보라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영국은 죄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이들의 범죄적 행위에 재앙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버섯뇌 역병은 원래 안락사를 위해 개발된 기술입니다. 아일랜드의 어느 기업에서 개발한 고통없이 죽는 방법이었죠. 개발된 기술은 단 한명에게 사용되고 사장됐습니다. 에린 킨젤라. 체중이 급감하는 희귀병으로 더 이상 생존 가능성이 없었는데, 이 기술이 적용되고 1주 동안 천천히 뇌 세포가 사멸하면서 무한한 행복감에 빠진 채 사망했습니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행복하게 죽은 사람이었을 겁니다. 모두가 이 기술의 상용화를 바랐지만 회사는 기술의 위험성을 예견하고 봉인해 버렸습니다.
…이 기술을 무단으로 빼돌려 범죄적 용도로 활용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지금의 버섯뇌 역병을 일으킨 자들입니다. 이들은 이 기술을 이용해 생체 실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실험체들을 자신들의 특수 목적에 이용했습니다. 살인 방화 테러 같은 목적으로. 그리고 마침내, 고의였는지 실수였는지, 이걸 집단 감염병 형태로 세상에 퍼뜨린 것입니다.
오라일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찾아 보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말 뿐이었다. 온라인에서는 로리 맥닐리와 팜플러스가 이 역병의 주범이라는 주장이 횡행하고 있었다. 오라일리는 원래의 가설에 불을 붙인 것이었다. 영국 정부는 브로디 버크와 버크 오거닉스의 소행으로 의심하고 있으나 아일랜드 정부는 그들의 견해에 동조하지 않았다. 아일랜드 정부의 공식 입장은 1) 브로디 버크는 아니다 2) 로리 맥닐리는 조사 중이다, 2가지 뿐이었다. 어디에도 납득할만한 증거는 없었다. 추측과 음모론만 난무했다. 꽃이 피고 꽃가루가 날린 것 뿐이었다. 아무도 병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었다.
문제는 앞으로의 미래도 설명할 길이 없다는 점이었다. 죽음은 번식으로 만회된다. 하지만 변이는 그럴 수 없다. 원복 불가능한 변이는 종의 이탈, 분열을 의미한다. 어쩌면 이건 병이 아닌 진화일지 몰랐다.
감염은 국가를 가리지 않았다. 유럽 대륙을 가로 질러 그리스와 터키에서도 이끼 피부가 발견됐으며, 시베리아 대륙을 건너 캄차카 반도까지 도달하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북미에서도 감염자가 속출했으며,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도 감염자들이 다수 발생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영국의 몰락을 바다 건너 불구경으로 여겼던 이들은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세계 재앙의 전조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있었다.
오라일리는 이것이 혹시 인류에 대한 대한 대자연의 조롱이 아닐까 생각했다. 객관적 구분이 불가능한 민족이라는 기준으로, 사상과 이념이라는 기준으로, 지역 말투 행색의 기준으로, 서로를 차별하고 대립하고 피를 흘렸던 인류에 대한 대자연의 패러디가 아닌가 생각했다.
오라일리는 히틀러를 떠올렸다. 히틀러의 추종자들은 아직도 동유럽인, 슬라브족들을 자신들과 다른 종족으로 여기고 있었다. 자신들과 수천년 머리를 맞대고 살았던 폴란드 인들조차 다른 동물 취급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대자연의 회심의 카드일까 - 응 아니야 너희들 다 똑같이 생겼어 똑 같은 놈들이야 너희 중에 특별한 놈은 아무도 없어 -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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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는 인간이라는 단일종만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론 수십 가지 인간 종이 있었습니다. “호미닌 Hominins”이라고 불리는 인간 유사종들이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네안데르탈이고, 그 외에도 유골이 발견된 것만 20종이 더 있었습니다. 발견되지 않은 종까지 합하면 그보다 2배는 더 많았을 것인데, 어째서 그렇게 많은 종들 중 우리만 살아 남았는지 지금도 알 수 없는 미스터리입니다. 이들 대부분 동일한 사냥 방식으로 단백질을 취했고, 비슷한 도구를 사용했고, 불을 이용했으며, 비슷한 공동체 문화에, 비슷한 예술 활동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호모 사피엔스 한 종만 빼고 모두 멸종을 면치 못했죠.
제레미 테이시. 수학자였던 그는 천문학자로 전공을 바꾸고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출간, 인기 TV 과학쇼에도 출연하며 유명세를 얻었다. 그는 유명인이 되었지만 소탈한 삶을 살았다. 그는 휴대폰이 없었다. 그가 가진 전자 장비는 위성 통신이 가능한 노트북 1대 뿐이었다. 돈도 거의 쓰지 않았다. 시골에 오두막을 짓고 별을 보며 자급자족에 가까운 삶을 지향했다. 그를 섭외하기 위해선 최소 3일 전 이메일로 허락을 구해야 했다. 그래야 그의 최대 시속 90 km까지 운행 가능한 95년식 폭스바겐 SUV를 끌고 대륙을 횡단해 방송국까지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레미는 진보 좌파적 삶을 살았지만 채식주의를 지지하지도 않았고, 총기 소유를 반대하지도 않았다. 그는 정치적 입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과학자에게 정치적 입장이 있다면 그건 과학자가 종교를 믿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제레미는 이례적으로 방송 하루 전 섭외된 미국 라디오 방송국의 긴급 대담회에 참석했다. 그가 좋아하는 방송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지금의 사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짜 의문은, 그 오랜 세월, 인류가 어째서 다른 종으로 분화하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처음 등장한 것이 400만년 전이고, 그 뒤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수백 수천 종으로 분화했는데, 우리 호모 사피엔스만 분화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아프리카에서 걸어 나온 것이 200만년 전이고, 유럽과 아시아에 정착한 것이 대략 100만년 전의 일입니다. 기원전 1세기에 실크로드가 뚫리기 전까지 각 대륙에 정착한 인간들은 공적인 교류가 없었단 말이죠. 그러니까 최소 100만년의 세월 동안 호모 사피엔스는, 수천km의 거리로 격리돼 있었던 거에요. 서로가 존재하지도 모른 채 그렇게 100만 년을 살았던 거에요. 그런데 종은 분화되지 않았습니다. 각각의 인종으로만 나뉜 채, 200만년째 여전히 “같은 종”이라는 생물학적 울타리를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어요. 저는 그 점이 제일 놀라운 미스터리라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그렇게 말하더군요. 호모 사피엔스가 최종 진화형이라고. 그래서 더 이상 분화되지 않는 거라고. 인간은 신이 만든 가장 궁극의 생물종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진화는 허용될 수 없다고.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혹시, 이제는 때가 된 게 아닌가. 호모 사피엔스가 마침내, 200만년의 기다림 끝에, 다른 종으로 분화되는 때가 온 것은 아닌가.
…제 친구 중에 감옥에 갔다 온 친구가 있어요. 회사가 진 빚을 갚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다 횡령죄로 징역형을 받았죠. 빌린 돈 나몰라라 파산해 버린 놈들은 무죄 방면해주고 고지식하게 돈을 갚은 친구는 잡아 가둔 법이 이해 안 됐지만 아무튼, 이 친구가 징역형을 받고 일상이 불가능해진 거에요. 도살장에 끌려 가게 된 것처럼, 세상 종말이 온 것처럼, 밥도 안 먹고 말도 안 하고 아무것도 못하더라고요. 그때 그런 생각을 했죠. 개나 고양이였어도 저랬을까. 개나 고양이였다면 어땠을까. 개나 고양이였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갔다 왔겠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그냥 감옥에서 6개월 살다 왔겠죠. 여기서 사나 저기서 사나, 밥이랑 물만 주면 같으니까. 그 친구가 아무 생각하지 않았다면 개나 고양이처럼 아무렇지 않게 6개월 좀 불편하게 지내다 왔을텐데, 전혀 불필요한, 아무 의미없는 정신 고문을 하면서 고통 받았던 거죠.
…저는 항상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 인간은 너무 생각이 많은 것 아닌가. 너무 많은 걸 사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뇌가 인간 사는 방식을 지배하면서 우리는 아는 것이 사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여기게 됐습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같은 말을 지껄이면서, 우리는 짐승과 다르다고,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고,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무언가 해야 한다고, 무언가 되어야 한다고, 이걸 뭐라고 하나요? 자기 학대라고 합니다. 사는 것보다 아는 것이 중요한, 먹고 사는 것보다 자의식이 더 중요한, 인간 스스로 만든 고통의 삶이죠.
…지구 온난화를 예로 들어 봅시다. 우린 지구 온난화를 범죄라고 해석해요. 지구가 인간 때문에 병들었다, 인간들의 범죄 행위에 고통받는다. 우리 인간들 지구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걸 좋아하니까 진짜 지구의 관점에서 봅시다. 지구 온난화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는 현상입니다. 지구의 40억년 역사 관점에서 현재 지구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대단히 낮은 수준입니다. 그 많았던 대기 중 탄소가 땅 속에 파묻혔기 때문입니다. 그걸 인간이 다시 대기 중으로 돌려 보내고 있는 거에요. 지구 온난화는 인간의 관점에서 재앙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구의 관점에서 지구 온난화는, 재앙이 아니라, 물질의 순환입니다. 어느 한쪽에 과밀하게 들어찬 물질이 다른 쪽으로 빠져 나가는 거죠. 지금 이렇게 수천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다른 한쪽으로 물질이 과밀하게 들어차면 또 다시 물질의 순환이 발생합니다. 돌고 돌고 도는 겁니다. 지구는 40억년 동안 그렇게 운영돼 왔어요.
…같은 관점으로, 우리 인간의 뇌를 봅시다. 인간의 뇌처럼 많은 자원을 소모하는 장기가 있었던지요? 동물의 자원은 움직이기 위해 쓰입니다. 동물의 모든 장기는 더 효율적인 움직임을 위해 진화돼 왔어요. 뇌가 대표적이죠. 움직임을 정교화 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장 비싼, 고급화된 장기잖아요. 그런데, 인간의 뇌는 생각을 하는데 더 많은 자원을 쓰고 있어요. 움직이지 않고, 가만 앉아서 더 많은 생각을 하도록 진화된 거에요.
…가장 어처구니 없는 점은, 뇌의 불량률이 심각하게 높아졌다는 거에요. 자폐증, 인간에게만 만연된 장애입니다. 침팬지와 비교해도 인간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폐증 발생률이 높습니다. 우울증, 불안증, 강박증, 불면증, ADHD, 양극성장애, 조현병… 4명 중 1명은 한가지 이상의 정신질환에 시달리는데 이것이 정말 문명 발달의 부작용인지요? 혹시 인간의 뇌가 생물학적으로 너무 복잡하게 진화했기 때문 아닐지요?
…우리는 지능이 높을수록 자살률도 높다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뇌가 지나치게 복잡해지는 바람에 더 많은 변수를 계산하고 더 많은 걱정과 불안에 시달리게 됩니다. 정신적 고통, 자살 충동으로 이어집니다. 뇌가 없으면, 뇌가 과도하게 작동하지 않으면, 죽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뇌가, 불필요한 기능을, 과도하게 수행하는 거죠.
…대자연의 관점에서 인간의 뇌는 낭비입니다. 불합리한 자원의 낭비, 남용인 셈이죠. 인간의 관점에선 어떨지 몰라도, 대자연의 관점에서 인간의 뇌는 불필요하게 비대해진 장기입니다. 과도하게 비대해져 지나치게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죠.
…지금의 사태는, 어떻게 보면, 지구 온난화 같은 거에요. 인간의 관점에서나 재앙이지, 자연의 관점에선 자원의 순환이죠. 한쪽으로 과밀화 된 자원이 자연의 선택에 의해 평준화 되는 과정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백인에게만 감염이 발생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백인종의 인구 비율이 약 10%인데, 이들이 소유한 부의 비율은 60%에 육박합니다. 미국 한 나라만 놓고 보면 90%이고요. 과밀화 현상이죠. 이런 부의 편중을 정당화 할 수 있는 근거가 없거든요. 백인종은 타인종에 비해 지능이 높지도 않고, 체력과 지구력이 우수한 것도 아니고, 자원이 더 많은 땅을 차지한 것도 아니고, 수렵 채집 생산력이 더 우수한 것도 아닙니다. 어느 한쪽에 물질이 과밀하게 들어차면 물질의 순환이 발생한다고 했지요. 꼭 지금의 병원체가 아니더라도, 결국 언젠가는 일어날 일입니다. 백인종에 편중된 자원은 다른 쪽으로 빠져 나가게 돼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아니요, 저는 지금의 모든 사태가 어느 한 사람의 의도에 의해 발생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연의 물질 순환이, 진화의 방향이, 어느 한 사람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은 공상 과학 소설에서도 불가능한 설정이에요. 이런 진화의 방향이 나타났다는 건 자연의 힘이 오랫동안 쌓여 왔다는 걸 의미합니다. 아주 오랜 세월 자연의 힘이, 어떤 편중 현상에 의해, 억눌려 왔던 거에요. 우주의 빅뱅도, 초신성의 폭발도, 블랙홀의 탄생도, 모두 그렇습니다. 생명의 진화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세월 억눌려 온 에너지가, 욕구와 결핍과 절박함이, 종을 분화하게 만드는 거죠.
…예, 어떤 계기에 의해 그 길이 생길 수는 있습니다. 인공적 시도에 의해 진화의 길을 터줄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길이 계속 이어지려면, 진화의 결과로 나타나려면, 자연의 뜻에 합당해야 합니다. 인간은 자연의 길을 새로 만들 수 없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단지 그 시기를 늦추거나 앞당기는 것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