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야 밀러는 태국 음식점을 운영하는 40대 여성이었다. 그는 원래 요식업에 뜻이 없었다. 그는 패션 디자이너 지망생이었다. 대학에 진학해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집에 돈이 없었다. 몸도 좋지 않았다. 알러지와 천식, 척추 통증으로 항상 입에 약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열심히 살았다. 그는 동남아 음식을 좋아했다. 동남아 음식을 잘하는 식당이 많지 않았기에 자신이 직접 식당을 차리기로 했다. 그는 동남아 음식을 배우기 위해 처음엔 요리 학원을 다니다 그만 두고 인터넷을 뒤져 가며 자신이 직접 배웠다. 처음 연 식당은 망했지만 그때 만난 남자와 결혼했다. 아이 둘을 낳고 재도전, 이번엔 망하지 않았다. 그의 식당은 입소문이 났다. 단골들이 생겼다. 그의 식당은 오픈 시간 때마다 손님들이 줄을 섰고, 멀리서 찾아 오는 손님들도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아 자주 식당 문을 닫아야 했지만 손님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프레야의 건강을 걱정해 주었다. 식당 오래 하셔야 한다고 영양제를 선물하는 손님도 있었다. 프레야의 건강이 좋아진 건 비가 몹시 내린 다음 날이었다. 힘든 일과를 마치고, 우산도 없이 오는 비를 전부 맞은 채 집에 돌아와 누웠다. 그대로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었다. 저녁을 먹지 않았던 것 같았다. 배가 너무 고파 집 냉장고에 음식을 다 먹었는데 그래도 여전히 배가 고파 식당으로 다시 가서 식당 냉장고에 음식도 다 먹었다. 그래도 배가 고파서 잠에서 깼다. 프레야는 이상하게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기침도, 허리 통증도 사라진 프레야는 아침 일찍 식당 문을 열었다. 그리고 늦게까지 일했다. 수십년을 괴롭혀 온 병에서 해방됐다는 기쁨에 프레야는 평소 하고 싶었던 취미 생활도 즐겼다. 그는 새벽에 달리기를 하고, 주말에는 댄스 학원을 다녔다. 다시 젊어진 것 같았다. 젊을 시절 병마에 시달렸던 것에 대한 회한이었을까. 프레야는 아무리 무리해도 지치는 것 같지 않았다. 모든 것에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지금의 삶이 영원할 수 없다는 불길한 느낌이 든 것은 댄스 학원을 3개월 추가 등록한 뒤였다. 일취월장 하는 것 같았던 댄스 실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프레야는 반복해서 스텝이 엉켰다. 그리고 이것이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식당에서 자꾸 식기를 놓치는 실수를 반복했다. 한번은 손님 옷에 음식을 쏟아 세탁비를 물어 주기도 했다. 남편이 퇴근 후 식당 일을 도왔지만 프레야는 기본적인 일조차 버거웠다. 단골 손님은 줄어 들었고, 프레야는 생업을 포기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슬프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의욕적이었다. 식당은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하지만 아침 달리기와 댄스 학원은 그대로 나갔다. 퇴행 증세가 분명해졌지만 프레야는 부끄러워 하지도, 좌절감 느끼지도 않았다. 그냥 매일 바보처럼 달리기와 댄스를 즐겼다. 사람들은 프레야의 말투가 이상해졌다고 수근댔다. 그러고 보니 표정도 이상해졌다고 혹시 뒤늦은 자폐증이 아닌지 의심했다. 그러다 다리가 부러졌다. 아침에 달리기를 하다 공사 중인 둔턱을 피하지 못하고 넘어졌다. 부러진 다리를 끌고 그대로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선 프레야가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부러진 뼈가 피부를 찢어 피가 흐르는 데도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 의사는 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추이를 지켜 보자고 했지만 프레야는 집에 가길 고집했다. 그는 병원에서 이상한 실험을 하고 이상한 약을 투입한 뒤에 돈을 청구할 것이라는 피해망상에 빠졌다. 프레야는 집에서 깁스를 하고 누워 있는 동안 꿈을 자주 꾸었다. 꿈을 꿀 때마다 배가 고팠다. 잠이 들 때마다 기묘한 식욕에 시달렸다. 프레야는 지금껏 한번도 이런 식욕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마치 열병처럼, 간절하게, 미칠 듯 갈구해 온 욕구. 이게 아니면 죽을 것만 같은, 평생 너무나 갖고 싶었던 것을, 움켜쥐고, 다급하게, 포장을 뜯는 느낌. 이래야 심장이 뛰고, 피가 돌고,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 원초적 생존의 느낌. 프레야의 욕구는 현실이 아닌 환각이었다. 아무리 채워도 충족될 수 없는 미지의 환각 증세였다. 그는 동남아 음식을 좋아하는 두 자녀의 엄마였을 뿐이다. 프레야는 자신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잠시 배가 고팠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프레야 밀러의 비극은 영국 전역을 충격에 몰아 넣었다. 프레야 밀러의 허벅지 안쪽에 지의류가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은 영국인들을 더 큰 충격으로 몰아 넣었다. 이미 이끼 피부 보유자의 수가 최소 200만명으로 추산되는 시점에서 이는 국가 재앙의 전조였다.
엘리야 실버혼의 소문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프레야 밀러의 비극을 통해 확인 되었다. 엘리야 실버혼은 운수업 재벌이었다. 그는 은퇴 뒤 스스로를 “가정주부”라고 칭했다. 그는 사교 모임도 취미 생활도 자제한 채, 3명의 손주를 돌보는 일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는 나이 70을 넘은 인자한, 그리고 평범한 할아버지였다. 그에겐 폐병도, 관절염도, 치매 증상도 없었다. 그는 나이 들수록 더 정정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가정주부가 된 뒤로 회춘한 것 같다며 동년배들에게 육아를 권했다. 육아는 늙은이가 젊어지기 위한 최선의 취미활동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비극이 닥쳤다. 그의 3명의 손주가 실종되었다는 뉴스가 났을 때, 일각에선 그의 손주들이 살해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 뒤에 뒤따라온 소문은 그의 손주들이 누군가에게 잡아 먹혔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소문은 다양한 소식통을 통해 지속적으로 언급되었고 마침내 프레야 밀러의 뉴스와 함께 재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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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아 헐리는 초록색 눈을 갖고 있었다. 최근 눈알에 자란 지의류는 조슈아의 세상을 온통 초록색으로 물들였다. 그는 초록색만 보이는 장님이 돼 있었다.
그는 전재산을 털어 이끼 피부 치료에 투자했다. 제약사 하나를 새로 지은 셈이었다. 수천명의 이끼 피부 “환자” 샘플들을 수집해 치료법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있다. 돈을 많이 들일수록, 더 빨리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도록, 치료약은커녕, 이것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인간 몸에 어떤 결과를 낳는지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건 인간 문명의 영역에 한정된 말이었다.
이것이 곰팡이 감염의 결과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필요한 건 곰팡이를 제거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항생제도, 방사선도, 발열도, 저온 요법도, 다른 어떤 물리 화학 요법도 듣지 않았다. 곰팡이는 인간의 몸과 합체돼 있었다. 인간의 몸과 합심해 모든 외부 간섭을 방어하고 있었다.
문제는 곰팡이가 인간의 뇌를 먹는다는 점이었다. 문제는 그것 하나 뿐이었다. 곰팡이는 몸에 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 병을 일으키지도, 환각을 일으키지도, 특정 행동을 유발하지도 않았다. 뇌가 사라진다는 것, 오직 그 뿐이었다. 인간의 몸을 지켜주는 대가로 인간의 뇌를 가져 가는 등가 교환일까. 곰팡이가 정확히 언제부터 뇌를 먹기 시작하는지, 뇌를 먹기 시작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사람마다 천차만별 다르다는 것 뿐이었다.
곰팡이가 뇌에 침투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퇴행이 시작되면 곰팡이의 숙주는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된다.
조슈아는 뉴스를 보지 않았다. 그는 TV 뉴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시끄럽기 때문이었다. 그는 보좌관을 통해 세상 소식을 전해 들었다. 보좌관은 이끼 피부에 관한 뉴스는 일부러 제외했다. 반드시 알아야만 할 뉴스였지만 보좌관은 눈알 가득 지의류가 자란 조슈아에게 그런 끔찍한 소식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보좌관은 이번주까지만 일을 할 생각이었다. 더 이상 조슈아 밑에서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고 더 이상 정상적인 사회 활동이 불가능했다. 그는 정신 장애인이기도 했다. 그의 정신 문제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걸 본 게 한두번이 아니다. 심지어 손님이 와 있는 자리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 적도 있었다. 그는 정신과 약 복용량을 2배 늘렸지만 상태는 개선되지 않았다.
사회 불안은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경단을 조직해 이끼 피부를 색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경단 중에도 이끼 피부가 있었다. 처음부터 이끼 피부인 걸 감추고 자경단에 가입한 사람도 있었고, 자경단에 가입한 후에 이끼 피부가 된 사람들도 있었다. 자경단은 대부분 “내부 갈등”에 의해 와해되었다.
이끼 피부가 어떤 “차별적 기준”에 의해 발발한다는 음모론도 아주 빨리 붕괴됐다. 음모론자들은 오래지 않아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이끼 피부가 되는 꼴을 보고 자멸의 길을 걸었다. 이미 체감상 3명 중 한명은 이끼 피부를 갖고 있었고 이 비율은 급증하고 있었다. 현재 추세로면 머지 않아 영국 국민 거의 대부분이 이끼 피부를 갖게 될 가능성도 있었다.
조슈아는 직감적으로 이것이 본인이 자초한 사태라는 사실을 알았다. 애당초 무리수를 두는 것이 아니었다. 흘러가는대로 두는 것이 최선이었다. 너무 의욕이 앞선 탓이었다. 너무 불안감에 휘둘린 탓이었다.
버크 오거닉스를 인수한 것은 절대로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다. 그때가 가장 적절한 시기였다. 그때 하지 않았으면 지금 천추의 한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버크 오거닉스에는 조슈아가 원했던 것이 없었다. 매트레야가 분명히 있다고 했던 인간-미생물 공생 연구도, 정신 지배 연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브로디 버크의 개인 파일에 있었다.
조슈아는 현실을 부정했다. 이건 내가 자초한 결과가 아니다. 라나-아이먼의 후유증이다. 조슈아는 스스로를 세뇌했다. 세상에 그렇게 알리기로 했다. 그는 보좌관에게 이 모든 것이 라나-아이먼 농법 때문이라는 허위 사실을 보도 자료로 뿌리게 했다.
하지만 조슈아도 알고 있었다. 보도 자료가 효과 없을 것이란 사실을. 바로 옆에 아일랜드는 사정이 달랐기 때문이다. 아일랜드는 라나-아이먼 농법을 쓰고 있었다. 거의 모든 국토에서 라나-아이먼 농법으로 작물을 키우고 있었다. 아일랜드에선 이끼 피부 발생률이 2% 미만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라나-아이먼 농법이 영국에서 뿌리 뽑힌 지 3년째다. 라나-아이먼 농법이 적용된 토지는 불태워졌고, 어떤 관련 미생물도 살아 남지 못했다. 그 후 재앙이 시작된 거였다. 조슈아는 이 사실을 덮기 위해 자신이 퍼뜨린 음모론을 재탕하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정치인의 숙명이라고 여겼다. 오류를 저지르는 것은 정치인의 숙명이며, 살아남기 위해선 뒤돌아 보지 않아야 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수 밖에 없었다.
조슈아는 또 다른 음모론을 기획 중이었다. 중국 음모론이었다. 중국에서 서구 문명을 말살하기 위해 만든 생물학 무기라는 것이었다. 중국 음모론은 정보부와 이미 오랜 교감이 있었다. 이들은 몇 년 전부터 중국의 생물학 무기가 영국으로 넘어 왔다는 사실을 의심하고 있었다. 충분한 근거는 마련돼 있으니 적절한 시기에 퍼뜨리기만 하면 된다. 음모론은 내용보다 타이밍이다.
조슈아는 반전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는 매트레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베텔게우스의 검은 쌍둥이 별이 마침내 지구와 일직선 상에 놓였다고. 반전의 때가 왔다고 했다. 조슈아는 예언자가 될 것이라고. 음유시인이 돼 영국 전역에 우주의 미래를 예언하게 될 것이라고. 영국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매트레야의 예언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매트레야는 한때 팜플러스라고 불렸던 회사, SN이데아의 CEO가 되었다. 어떻게 이사회의 승인을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모든 것이 그의 예언대로 돼 가고 있다. 하지만 매트레야는 어째서 버크 오거닉스가 아닌 SN이데아를 선택한 것일까? 어째서 로리 맥닐리를 배신한 걸까?
로리 맥닐리는 아일랜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억세게 운 좋은 인간이다. 지금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이 불과 몇 달 차이 운으로 재앙을 피해 갔다니. 거기서 평생 감옥에서 썩는다 해도 이곳에서 세계 종말의 불안에 떠는 것보다는 백배 나을 것이다.
모든 것이 조슈아의 계획과 반대였다. 생체 실험과 생물학 무기 개발 주동자로 브로디 버크를 고발했지만 아일랜드 정부의 비협조로 수사는 지지부진 끝나 버렸다. 되려 아일랜드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의 주동자로 로리 맥닐리가 지목돼 영국 정부는 꼼짝없이 로리 맥닐리를 아일랜드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로리 맥닐리는 처음부터 썩은 동앗줄이었다. 저주의 씨앗이었다.
조슈아는 분명 처음엔 그 계획에 반대했다고 생각했다. 모든 건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폭력을 써선 안 된다고, 그게 자신의 명백한 입장이었다고 생각했다. 조슈아는 꼬임에 넘어간 것이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이미 사람들이 희생됐다고, 이대로 두면 지금껏 투자한 모든 것이 물거품 돼 버린다고, 그런 논리에 설득돼 원래 의도와 다른 선택을 한 것이었다.
혹시 역사책에 이렇게 기록되는 건 아닐까: “역사의 아이러니, 테러 수호자로 뜬 정치인이 본인이 주도한 테러로 몰락.”
조슈아는 다시 손발이 떨렸다. 입에서 저절로 헛소리가 나왔다. 그는 다시 약을 먹었다. 복용한지 1시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또 먹었다. 감정 기복이 극심하다. 예언자가 될 것이라는 점괘는 메트레야의 혹시 조롱이 아닐까. 조슈아가 장님 음유시인이 돼 넝마를 입고 지팡이를 부여 잡고 진흙밭을 뒹구는 꼴을 상상하며 매트레야는 허리가 부러져라 웃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처음부터 그 점쟁이에게 놀아났던 건 아닐까. 자신의 예언을 현실화 하기 위해 접근했던 건 아닐까. 조슈아는 아직도 매트레야의 그 징그러운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고기를 손에 넣은 포식자의 표정. 이제 널 먹겠다는 주체할 수 없는 탐욕의 미소.
조슈아는 소리 질렀다. 아무도 없는 서재에 조슈아의 괴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왜 그러는 거야? 왜? 왜? 왜? 내가 얼굴을 박살냈어야 하는데! 지금 당장! 응? 얼굴을 박살내고 눈깔하고 혀를 뽑아 버려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