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s files #63
준 리즈는 커피샵에서 커피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지난 평생 물 아니면 차만 마셔온 준에게 커피는 복통을 유발하는 독성 물질이었다. 차는 선하고 이로운 것, 커피는 악하고 해로운 것, 이런 이분법 편견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준은 동료 학생들의 조언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맛 없는 커피를 먹었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아니면 우유를 섞어 먹었거나. 

앰버는 커피도 못 마시는 미개인을 친구로 두고 있었다며 어이 없어 했다. 앰버는 여자는 취향이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그래야 싸구려 인생을 살지 않다고 했다. 앰버가 준에게 커피 취향을 심어 주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앰버 덕에 준이 커피를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커피가 독성 물질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준은 커피샵에서 15분째 커피를 기다리고 있다. 원래 이 시간에 손님이 많아 다른 때 오려고 했는데 지금 커피를 사지 않으면 하루 종일 커피를 먹을 수 없다는 올리의 고집 때문이었다. 올리 홈즈는 준의 남자 친구다. 캠퍼스 커플이다. 본과에 진학하며 사이가 가까워졌다. 준은 올리와 어떻게 사귀게 된 것인지 잘 기억 나지 않았다. 아마도 올리가 준에게 구애한 것 같은데 불필요한 정보라서 잊은 것 같았다. 중요한 건 누가 먼저 구애를 했는지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준이 올리를 허락했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준에게 구애하는 남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남들이 10대 때 겪는 2차 성징을 준은 20대에 겪었다. 준은 20대가 돼서야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 입고, 헤어스타일을 꾸몄다. 준은 성적 매력에 눈 떴다. 허리를 조이는 옷에, 가랑이 사이 달라 붙는 옷에 더 이상 거부감 느끼지 않았다. 장작처럼 말랐던 몸에 지방이 붙었고 몸매를 강조하는 옷을 입었다. 지금껏 태도와 자세로 관심 받았던 “비주류 매력녀”는 외모만으로도 관심 받는 “주류 매력녀”가 되었다. 

올리는 준이 왜 자신과 사귀기로 한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올리는 애당초 준 같은 인기녀와는 사귈 생각이 없었다. 그는 여자를 두고 남자끼리 경쟁하는 것처럼 병신 같은 짓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짓은 미개한 야생의 수컷들이나 하는 짓이다. 일부일처제가 법제화 돼 있는 인간 사회에서는 번식 경쟁을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올리는 그때 왜 영화표를 준에게 들이 밀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하필 그때 준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준에게 견딜 수 없이 끌렸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올리는 밑질 게 없었고 그냥 한번 물어나 보자고 물어 본 거였다. 뜻밖에 준이 그러자고 해서 그날 같이 영화를 본 거였다. 영화를 보고 커피를 먹고 싶다길래 커피를 사주었고, 커피를 먹고 집에 바라다 주겠다고 한 거였다. 준은 올리를 빤히 바라 보고 있었다. 아마도 올리는 그때 착각했던 것 같다. 준이 자기를 좋아하는 거라고. 올리는 자기도 모르게 준에게 말했다. 우리 사귈래.

사귀기로 했지만 아무 관계 아니라는 거 올리는 잘 알고 있었다. 사귀자는 말은 그저 말 뿐인 것이고, 앞으로의 관계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올리는 준을 볼 때마다 기대와 희망을 당연시 했다. 계단을 먼저 올라가는 준의 엉덩이를 보며 올리는 저 엉덩이를 자신이 합법적으로 소유했다는 착각에 빠졌다. 조만간 준에게 청혼할 것이고, 아이를 낳아 기를 것이고,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의 삶을 함께 지킬 것이다, 올리는 준을 볼 떄마다, 이러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런 급진적 망상에 중독적으로 빠져 들었다. 

올리는 어머니가 걱정이었다. 어머니는 ALS(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환자였다. 흔히 “루게릭 병”이라고 불리는, 운동 신경이 사멸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병이었다. 6년 전 어머니는 힘들게나마 걸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말을 하는 것도 힘들었다. 올리는 원래 프로그래머였다. 그는 어릴 때 프로그래밍 재능으로 이름을 날렸고, 대학에 가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병을 진단 받은 것을 보고 의학으로 전공을 변경했다. 올리에게 필요한 건 뇌파를 읽는 기기였다. 뇌의 신호를 읽고 말이나 움직임을 대신해주는 기계가 필요했다. 올리가 뇌신경학을 전공한 이유였다. 어머니가 더 약해지기 전에, 의사 소통 능력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올리는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주고 싶었다. 결혼하고 싶었다. 

올리는 준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준은 처음 올리를 만났을 때부터 그의 집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중환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처음 신입생 견학 때 로봇 휠체어에 대해 물어 본 것도, 지금 자신과 관계에 초조해 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는 사실 익히 알고 있었다. 

준은 올리가 효자일지 궁금했다. 조안 할머니는 효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했다. 혹시 나중에라도 남자가 효자인 것으로 밝혀지면 결혼을 물러야 한다고 했다. 냄새로 남자가 효자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는 없다. 냄새로 구분할 수 있는 건 1) 이 남자가 지금 내게 성적 관심이 있는지, 2) 이 남자가 지금 내게 안전한 남자인지 정도였다. 이 남자가 결혼해서 어떤 남편이 될 것인지는 아득하게 멀고 먼 추론의 영역이었다.  

준은 올리 때문에 커피를 기다리며 무의미한 시간을 탕진하고 있었지만 표정 변화가 없었다. 지루하거나, 초조하거나, 짜증 나거나, 준에겐 그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준은 언제나 기계 인간처럼 정자세로 정면만 바라 본다. 혹시 준의 머리를 열어 보면 인간의 뇌가 아닌 전자 회로가 있는 건 아닐까. 저렇게 비인간적인데, 어째서 이렇게 성적으로 끌리는 걸까. 저렇게 눈곱만한 애교도 없는데, 왜 남자들이 죽고 못 사는 걸까. 

준은 밥 먹을 때도 그랬다. 정자세로 앉아 한치 흐트러짐 없이 밥을 먹었다. 밥을 오래 먹었다. 한번 입에 들어간 음식물은 백번쯤 되새김질 되는 것 같았다. 올리는 밥을 빨리 먹었다. 올리가 밥을 다 먹고 나면 준은 반도 먹지 않았다. 올리는 멀뚱멀뚱 밥 먹는 걸 바라 보기 무안해서 밥을 하나 더 시켜 먹었다. 하지만 두번째 밥을 다 먹고 나도 준은 여전히 밥을 먹고 있었다. 

올리는 준에게 너 소랑 닮았다는 말 들어 본 적 없냐고 물었다. 올리는 소를 좋아했다. 이 다음에 은퇴하면 땅을 사서 소를 기를 생각이었다. 준은 소는 싫다고 했다. 말이 좋다고 했다. 준은 말을 탈 줄 알았다. 소는 탈 수 없어서 싫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준은 소고기도, 우유도 먹지 않았다. 준은 소라는 생물종을 싫어하는 것이 분명했다. 올리와 준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른 것 같았다. 

올리는 준이 이비인후과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올리는 준도 당연히 뇌신경학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평소 뇌에 관심이 많았으니까. 왜 하필 이비인후과일까? 개업할 생각인 걸까? 사귈수록, 관계가 오래될수록, 준이란 사람은 더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돼 갈수록, 올리는 그런 준에게 더 미칠듯한 매력을 느꼈다. 

밤 늦게 병원에서 일을 마치고 같이 나오는 길이었다. 준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올리에게 장난을 치며 웃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준의 어린 아이 같은 눈을 보고 올리는 또 다시 착각에 빠졌다. 그래서 물었다. 우리 혹시 섹스할 수 있을까. 준은 싫다고 했다. 그리고 한참 있다 말했다. “나중에.” 그러고 보니 올리는 준과 뽀뽀도 안 해 본 것 같다. 손은 잡고 다니지만 뽀뽀는 해보지 않은 관계였다. 우리는 사귀는 게 맞을까? 북적대는 커피샵에서 군말 없이 커피를 함께 기다려 주는 게 사귄다는 증거일까? 혹시 다시 물어 봐야 하는 건 아닐까? 우리 사귀는 게 맞는 것인지? 

올리는 준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올리는 준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으며, 언제든 자신을 떠나 버릴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올리는 자신의 불길한 직감이 확신에 가까워질수록 의연해지기로 했다. 올리는 준 같은 여자가 자신을 받아준 것만으로 충분히 자부심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 서로 아무 관계 아니지만, 올리는 준이 행복해지길 바랐다. 자기가 아니라도, 다른 남자를 만나 행복하다면 응원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커피가 나왔다. 20분 넘게 기다렸다. 준은 조용히 몸을 일으켜 커피를 받으러 간다. 너무 오래 기다렸다는 짜증도, 마침내 커피가 나왔다는 안도감도, 그 어떤 감정도 없는, 완벽하게 중립적 표정이었다. 

미안하다고 해야 할까. 나 때문에 너무 오래 시간을 탕진해서 유감이라고 해야 할까. 올리는 본능적으로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준과의 관계는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관계다. 우리 사귀는 사이인가 아닌가 그런 비굴한 피해의식으론 어떤 관계도 온전할 수 없다. 서로 미안할 것도, 두려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올리는 준의 자의식 없는 표정을 보며 감사함을 느꼈다. 서로에게 이런 한 줌의 미움도 원망도 없는 관계를 만들어 준 것에 경외심을 느꼈다. 

올리는 준이 자신과 함께 커피를 들고 커피샵을 나온 줄 알았다. 오늘 있을 현장 실습에 대해 물어 볼 것이 있었다. 하지만 준은 옆에 없었다. 그는 아직 커피샵에 있었다. 커피샵 TV 모니터 앞에 서 있었다. TV에서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데렉 존스, 파이낸셜 타임즈 기자) 
…영국은 다시 한번 자기들끼리 왕따가 되는 선택을 한 겁니다. 가장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그런 저열한 음모론을 믿고 인류에게 가장 유익한 미래 기술을 사장시켜 버렸다는 겁니다… 끔찍하게도, 그 음모론 때문에 이 시대 가장 전도유망한 기업가이자 과학자의 인생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브로디 버크는 미개한 음모론자들의 패악질에 모든 걸 잃었습니다. 가족, 업적, 사회적 명성, 지위… 이게 과연 개인의 비극일까요? 정말,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한 사고일까요? 저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류는 조만간 이 끔찍한 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작품 등록일 : 2026-04-12
최종 수정일 : 202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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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를 합법적으로 소유 ㅋㅋㅋㅋㅋㅋ 웃김
슬리피캣   
올리 안달복달 하다가 의연해지기로 하는 묘사가 리얼하네 겪어본적도 없지만ㅋㅋㅋㅋㅋ근데 브로디가 가족을 잃었다니 어떻게 된겁니까ㅠㅠㅠ
  
올리의 좋남 속마음 마인드도 좋고 조안할머니의 효자면 결혼은 물러야 한다는 조언도 현실적이다 ㅠ
슬리피캣   
ㅎㅎㅎ 정말 재밌어
슬리피캣   
그 끔찍한 일에 대한 댓가가

그럼..........!!!!!!

브로나인가!!!!!!!!!!!!!!!!!

복수의 화신 브로나!!!!!!!!!!!!!!!
진미오징어   
아아니!!!!!!!!

주은선생님의 월간이드 번외편 섹스미루기(그러면서 남자 미치게 만들기) 신나게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가!!!!!!!!!!!



아니죠?????????
브로디네 가족 어떻게 된 거 아니죠???!!!!!!!!
누가 가족을 건드려 이 미친놈들아!!!!!!!!!!!
진미오징어   
가족? 가족을 잃었다고???
복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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