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s files #62
스테피 불룸은 자신의 얼굴에 생긴 녹색 얼룩을 보고 처음엔 죽을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병원을 5군데를 돌았지만 어디서도 왜 이런 게 생겼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스테피의 얼굴에 생긴 얼룩은 지의류였다. 이끼 식물처럼 생겼지만 식물에 속하지 않는, 식물의 조상 같은 고대 생물이라고 했다. 지의류는 원래 바위나 나무 위에 자라지 사람 몸에는 자라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 거라고 했다. 의사들은 왜 이것이 스테피의 몸 위에 자라게 됐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의사들은 죽을 병은 아니라며 스테피를 안심시켰지만 얼굴에 점점 늘어나는 지의류에 일상 생활이 어려웠다. 비누, 세제, 제균제, 제초제, 곰팡이 제거제도 소용 없었고, 면도기로 뜯어낼 때마다 살이 뜯기는 고통을 겪었다. 어찌저찌 간신히 제거해도 하루만 지나면 다시 똑같이 자라 있었다. 

스테피는 다니던 제과점 파트타임을 그만 두고 칩거에 들어갔다. 제과점 사장은 스테피를 안타까워했다. 스테피가 일을 잘했기 때문이었다. 친절하고 싹싹한 스테피 덕에 매장 손님이 늘었던터라 사장은 스테피를 설득했다. 자기가 보기엔 하나도 안 이상하다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 예뻐 보인다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절대로 농담이 아니라고. 

“그것 때문에 더 예뻐 보인다”는 사장의 견해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제과점에 다시 출근한 스테피는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처음엔 “제과점에 외계인이 있다”고 소문이 났지만 점차 견해가 바뀌었다. “얼굴에 숲이 있는 소녀가 있다”, “그렇게 아름다운 초록색은 처음 본다”, “대자연과 하나 된 느낌이다”, 지의류는 실제로 스테피와 어울렸다. 어떻게 보면 기이하지만, 어떻게 보면 새로운 패션을 위한 과감한 시도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얼굴이 그렇게 됐음에도 늘 밝고 친절한 태도 때문에 스테피 얼굴의 특이점은 또다른 매력으로 느껴졌다. 

스테피의 특이점은 입소문을 탔고 머지 않아 모델 에이전시에서 스테피를 찾았다. 에이전시는 다 똑같은 모델들이 식상했다고 했다. 새로운 모델이 필요했다고 했다. 1) 누가 봐도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2) 누가 봐도 절대 쉽게 잊을 수 없는 모델이 필요했다고 했다. 에이전시는 스테피를 영국에서 손꼽히는 패션 회사의 메인 모델로 데뷔시켰다. 

스테피는 런던 번화가 곳곳에 걸린 자신의 데님 패션 광고를 보고 울었다. 한때 얼굴이 이렇게 됐으니 여자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은 몰랐다. 스테피는 새로운 패션 아이콘이자, 새로운 “정치적 올바름”이 되었다. 스테피는 인종 평등 PC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차원의 사회적 윤리가 되었다. 차별 받지 않을 권리. 스테피는 뜻하지 않게 좌파 사회 운동가들의 정치적 심볼이 되었다. 

스테피가 모델로 활동하며 알게 된 것은 자신과 같은 사례가 또 있다는 사실이었다. 스테피는 세상에 처음 알려진 사례였을 뿐, 유일한 사례는 아니었다. 스테피의 뒤를 이어 같은 패션 브랜드 모델로 발탁된 새미는 눈알에 지의류가 자라고 있었다. 새미의 눈알에 자란 샛노란 지의류는 그를 스테피보다 한층 더 독창적인 패션 아이콘으로 만들어 주었다. 

스테피는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나 혼자 특별하다는 우월감에서,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열패감. 나 혼자였다는 고립감에서, 나 말고도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안도감. 

스테피는 그늘이 아닌 햇빛을 쫓기로 했다. 절망이 아닌 희망을, 비관이 아닌 긍정을 선택하기로 했다. 스테피는 자신과 같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과 연대했다. 이들과 “새로운 피부”라는 제목의 화보집을 내고 다시 한번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사회 운동가들이 조직한 정치 연결망에도 합류했다. 출신 배경, 사상, 이념 등을 초월해 모두 함께 사회적 지위를 방어하기로 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중요한 법이다. 선점형 사회 운동은 언제나 옳은 법이었다. 

패션 모델 스테피는 진보 세력의 아이콘이 되었다. 스테피는, 다른 이의 선택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새 운명을 개척했다. 스테피가 합류한 사회적 연대는 과학계 및 언론과의 협력을 통해 자신들의 사회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들은 광범위한 자체 리서치를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아냈다. 

1) 우리의 피부 상태는 전염되지 않음. 
2) 우리의 피부 상태는 해롭지 않음 – 다른 질환으로 발전하지 않음. 
3) 우리의 피부 상태는 이로움 - 원래 질환을 낫게 함. 
- 폐암 말기 환자, 이끼 피부 발생 후 3개월만에 증상 호전, 정상적인 생활 가능.
- 섭식 장애로 혼수 상태였던 환자, 이끼 피부 발생 후 1개월만에 정상적 식생활.
- 10년 HIV 보유자, 이끼 피부 발생 후 1개월만에 정상적 면역력 회복. 
4) 우리의 피부에 기생하는 지의류는 우리 몸과 공생하는 것. 
5) 우리의 피부에 기생하는 지의류는 인간의 외피 어디서나 자랄 수 있음. 두피, 발바닥, 겨드랑이, 사타구니는 물론 눈알과 혓바닥, 구강 및 호흡기에도 자람. 
6) 우리의 피부에 기생하는 지의류는 다양한 색과 형태를 띰. 암석처럼 단단하게 붙어 자라는 종류도 있고 풀잎처럼 길게 자라는 종류도 있음. 파란색, 흰색, 검은색, 색깔도 천차만별, 형광빛을 띠는 종류도 발견됨. 
7) 지의류는 이끼와 다른 생명체이지만, 시각적 유사성 때문에, 호칭의 편의상, “이끼 피부”로 부르기로 함. 
8) 이끼 피부 보유자의 수는 급증하고 있음. 가까운 장래에 인구 절반 이상이 이끼 피부를 갖게 될 수 있음. 
9)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끼 피부는 백인에게만 발생함. 

이끼 피부 사회 연대는 회원수가 급격히 늘었다. 반년만에 백만명을 돌파한 회원수는, 이후 다른 수백개의 그룹으로 뿔뿔히 흩어졌고, 일년 뒤 대부분 와해됐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들의 자체 조사에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피부 상태는 다른 질환으로 발전하지 않음” -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작품 등록일 : 2026-04-11

▶ Brody’s files #63

▶ Brody’s files #61

스테피가 그늘이 아닌 햇빛을 쫓기 시작했다는것에서 시작한 본인팔이 생각의 전환 그리고 연대가 얼마 안지나 갈갈이 찢어진게 재밌어 이제 몇 회 안남았다는게 아쉬워~
슬리피캣   
재미따 재밌다 재밌다 재밌어
  
헐...그럼 다른 질환으로 발전한다는거야??????

단 한순간도 기대를 저버린적이 없다
초흥미진진
진미오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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