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s files #56
에드나는 세계최고 생명공학자잖아. 

에드나의 직장 동료들은 에드나를 그렇게 불렀다. “세계최고.” 에드나는 최근 미국의 유명 제약 회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지금 연봉의 2배 가량 되는 급여 조건에 개인 주택도 제공받기로 했지만 에드나는 거절했다. 이사 가기 귀찮다는 이유였다. 에드나가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다는 점도 거절 이유였다. 돈이 더 필요하지 않은데 굳이 다른 나라의 새로운 곳에 가서 적응해야 하는 선택을 하란 것이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동료들은 그 제의를 거절한 에드나가 이해되지 않았다. 

에드나는 원래 부자니까 돈은 관심 없다고 해도, 누구나 출세 욕구는 있지 않아? 인정 받고 싶은 욕구 같은 거 있지 않아? 

에드나는 그런 게 없었다. 출세 하고 싶다거나 인정 받고 싶다는 생각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에드나는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게 좋았다. 그게 전부였다. 누군가는 과학을 호기심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에드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과학을 호기심 충족을 위한 지적 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에드나에게 과학은 장애물 넘기에 더 가까웠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것. 안 보이는 길을 찾는 것. 없는 길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게 에드나의 과학이었다.  

에드나는 문제 해결사였다. 집에 배관이 막히거나, 바퀴벌레가 출몰하거나, 회사에 조명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전부 스스로 해결했다. 해결해줄 사람이 바로 옆에 있어도 에드나는 자기가 직접 해결했다. 아버지가 에드나를 어릴 때부터 그렇게 길렀다. 아버지는 에드나가 6살 때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한다”는 원칙을 주지시켰다. 어린이의 물리적 힘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경우만 제외하고 아버지는 에드나가 모든 걸 혼자 해결하도록 가르쳤다. 

에드나의 아버지도 그렇게 살았다.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한다”는 철학으로 70년을 살았다. 병원을 가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내 몸에 발생한 문제는 내 책임이지 다른 놈 책임이 아니다 - 병원에 가는 것은 내 문제를 병원에 책임 전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여겼다. 

아버지는 제약 회사 스카우트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기뻐했을까 비웃었을까. 에드나는 아버지에게 물어 보고 싶었다. “아버지가 미국 같이 갈 수 있으면 갈게요” 라고.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죽었다. 전립선 암 따위 웃기는 병이라며, 그런 유치한 병에 골골대고 있으면 남자가 아니라며, 등산을 갔다 산 정상에서 쓰러져 죽었다. 사람들 말로는 죽은 아버지의 표정이 밝았다고 했다. 경치 좋은 곳에서 죽어 기분이 좋았던 게 아니겠느냐고 사람들이 말했다. 

아버지는 반골이었지만, 부전여전, 친구가 많았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주말 박람회장처럼 북적였다. 에드나의 친구들, 어린 시절 한 동네 살았던 친구들부터 직장 동료들까지 빠짐없이 다 왔더랬다. 한명만 빼고. 에드나의 절친이었던 스테피였다. 스테피는 에드나를 의대에 진학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내가 의대를 가니까 에드나 너도 의대를 가야 한다고 끌고 갔던 그 친구였다. 하지만 둘은 의대에 와서 사이가 틀어졌다. 에드나를 자신과 동급으로 여겼던 스테피는, 실전에서 보니, 자신이 에드나의 절반도 안 되는 능력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테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디서든 자기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친구가 자기보다 몇 배 더 우월했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꼈다. 스테피는 자기도 모르게 에드나를 적대했다. 비극은 그러면서 에드나를 좋아했다는 점이었다. 스테피는 에드나가 너무 좋은데, 그러면서 동시에 또 너무 미웠다. 

에드나는 스테피가 부담스러웠다. 자연스럽게 연락을 기피했다. 생각해 보면 지금껏 항상 먼저 연락을 했던 쪽은 스테피였지 자기가 먼저 연락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스테피는 더 이상 에드나의 친구가 아니었다. 스테피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몰라도 에드나는 스테피를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스테피는 자기 자랑할 일이 있을 때만 연락하는 성가신 잡상인 같은 존재였다. 스테피가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가 자기 미국 제약 회사로 스카우트 됐다고 자랑했을 때였다. 에드나가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바로 그 제약사였다. 에드나가 제약사의 제의를 거절한 이유 중 하나였다. 거기 스테피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에드나는 본능적 불쾌감을 느꼈다. 그때 스테피는 에드나에게 전화해서 자기가 유명한 회사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자랑했다. 그러면서 에드나에게 그랬다. 아직도 그 구멍가게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냐고. 에드나는 참을만큼 참았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스테피의 전화를 받아주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했다. 앞으로 자랑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한테 전화하는 것이 좋겠다고. 너 추한 모습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고. 

“에드나는 세계최고 생명공학자.” 이 말은 에드나가 제약 회사에 가지 않을 것이란 말을 들은 동료가 한 말이었다. 굳이 그 회사 가지 않더라도 에드나는 어디서든 세계 최고로 인정 받을 것이란 뜻이었다. 하지만 동료들은 에드나에게 이직을 권했다. 회사를 둘러싼 흉흉한 소문 때문이었다. 회사의 매출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다른 회사에 인수될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직원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어떤 직원은 말했다. 버크 오거닉스는 침몰하는 배라고. 능력있는 사람들부터 배를 갈아타게 될 거라고. 

에드나는 세상을 잘 몰랐다. 에드나는 뉴스를 보지 않았다. TV도 보지 않았고 휴대폰은 전화 받을 때만 썼다. 에드나는 지금 아일랜드 대통령을 10년 전 사람으로 알고 있었고, 그가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 데뷔한 연예인은,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라도, 전혀 알지 못했다. 버크 오거닉스가 망할 수도 있다는 말은 에드나에겐 황당한 말이었다. 회사를 음해하려는 자들이 퍼뜨린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에드나는 경제도 모르고 경영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이 회사에 대해 자신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 회사가 갖고 있는 진짜 가능성을 자신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에드나에게 버크 오거닉스는 월급받는 직장이 아니었다. 세상의 미래였다. 세상의 미래를 결정지을 과학 기술이 산더미처럼 축적된 곳이었다. 라나-아이먼 농법은 맛보기였다. 버크 오거닉스의 가장 낮은 등급, 기초 수준의 연구 결과였다. 그것 말고 수백 수천가지의 기술들이 더 있었다. 겨우 농작물 소출을 높이고 마는 게 아닌, 물질의 성질을 바꾸고, 인간의 운명을 바꿀 기술들. 

에드나는 생각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 원자력 기술을 발견한 과학자가 있었다면 지금 자신과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지금 다니는 직장이 흥할지 망할지, 어디서 연봉을 더 주는지, 어느 회사가 휴가를 더 많이 주는지, 이런 걸 따질 수 있을까? 내일 당장 세상이 어떻게 뒤집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돈 몇 푼에, 다니는 직장의 간판 크기에 알량한 우월감을 느낄 수 있을까? 

에드나의 별명은 “꽃순이flower girl”었다. 그의 연구실에는 신기한 꽃들이 많았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에드나가 새로 만든 종들이었다. 여직원들은 에드나 연구실에 자주 놀러 온다. 사진을 찍고 방명록을 작성한다. 회사의 규정 상 사진 같은 거 찍으면 안 되는데 에드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극비리에 개발 중인 꽃 사진을 찍어가도 허허실실 웃으며 받아준다. 꽃을 연구하던 에드나가 머리 속도 꽃밭이 되었다고 사람들이 재미있어 했다. 

에드나는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집에서 꽃을 기른 적도, 방에 꽃을 꽂아 둔 적도 없었다. 에드나는 꽃의 기능에 관심이 있었다. 꽃이 동물의 후각을 자극해 불가능 한 일을 가능케 하는 것에 주목했다. 

“꽃은 동물을 조종해 환경을 지배한다.” 꽃이 처음 지구에 출현한 뒤로, 6천만년 동안, 이 법칙은 변하지 않았다. 이 법칙에 의해 꽃 식물은 기적적으로 빠르게 번성했고, 지구 육지 거의 모든 곳을 뒤덮으며 지배종의 위치에 올랐다. 

“꽃은 동물을 조종해 환경을 지배한다.” 에드나는 이 법칙의 무한한 가능성에 전율했다. 곤충도, 조류도, 포유류도, 그리고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꽃이 사라지면 모두가 죽는다. 꽃은, 지난 6천만년 동안, 땅 위 모든 생명체들이 자신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꽃이 없으면 모두가 죽는다는 원칙 아래, 꽃은 모든 육지 생물들을 철저하게 자신에게 종속시켰다. 

에드나에게 꽃은 새로운 원자력 기술이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원자력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가 된 기분. 에드나는 불가능을 가능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에드나는 회사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소인배들의 세속적 미래에 관심이 없었다. 에드나는 브로디의 입장을 이해했다. 에드나는 브로디의 생각, 사고 방식, 삶의 방식에 동화돼 있었다. 에드나는 자신도 꽃을 연구하며 사람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돈이나 간판이 아닌, 생명의 본질에 심취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에드나는 분명, 30-40년의 세월이 아닌, 6천만년 생태계의 역사를 보고 있었다. 

에드나는 에린이 생각났다. 꽃을 사랑했던 소녀. ‘에린이 살아 있는 동안 더 친하게 지낼 걸’ 생각했다. 에린의 몸에 기생한 곰팡이는 흙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꽃에서 온 것이었다. 꽃가루에 기생하던 곰팡이가 에린의 호흡기를 통해 에린의 몸에 정착한 것이었다. 에린의 사후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 사실을 에린이 알았다면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기뻐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꽃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생각하면, 시적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작품 등록일 : 202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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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린 -> 에드나. 곰팡이만 감염안됬다뿐이지. 꽃을 향한 의지는 이어지네. 방법은 다르지만.
버터   
버크 오거닉스 절대 지켜ㅠ
  
투명하고 정교하게 기술된 과학책인데 동화같이 예뻐
슬리피캣   
ㅠㅠㅠㅠ 머양 꽃을 사랑했던 소녀에게, 꽃에서온 곰팡이가 들어와 하나가 된거자나 엉엉
슬리피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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