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우리와 함께 일했던 놈이야. 장원보. 몰라? 너를 이렇게 만들었어. 너는 무슨 조건에서 발동되지?
장원보는 영양사였다. 그의 원래 꿈은 의사였다. 하지만 그는 의대에 진학할 정도의 학업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의 집도 의대 학비를 지원해 줄 여유가 없었다. 영양학은 차선이었다. 사회적 관점에선 의대와 천지차이였지만, 의대에 진학한 같은 반 친구에게 격심한 열등감도 느꼈지만, 장원보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주어진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의학이나 영양학이나 인간의 건강을 위한 학문인 건 매한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했다. 그곳 사내 식당에서 일했다. 직원들과 밥을 먹던 중에 그가 영양학을 전공했다는 말을 들은 누군가 물었다.
근데 왜 사람들은 탄 음식을 좋아하는 거죠? 왜 음식이 타는 냄새에 매력을 느끼는 거죠? 몸에 나쁘지 않나요?
장원보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남들보다 유능한 영양사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론 아주 간단한 것도 몰랐다. 그는 창피했다. 지금 보니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 같았다. 겁쟁이 낙오자 무능력자. 그는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남이 주는 먹이만 받아 먹고 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장원보가 정성주 병원에 자원 봉사자가 된 건 우연한 일이었다. 식자재 검사를 위해 청두를 방문한 장원보는 녹색 유니폼을 입은 수십명의 사람들이 엄청난 양의 연근을 사가는 걸 보았다. 대체 무슨 연근을 저렇게 많이 사가는 걸까? 상인들에게 물어 봤더니 여기 처음 오셨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곳 사는 사람들에겐 익숙한 광경이라고 했다. 약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인근 병원에서 신약 개발에 성공할 때마다 신약의 재료가 되는 자재를 저렇게 대량으로 구매해 간다고. 신약 개발이 성공할 때마다 청두 상인들은 노다지를 보게 된다고.
장원보는 병원을 방문해 보고 싶었다. 병원이란 곳이 어째서 약을 직접 만드는지, 어째서 제약 원료를 시장에서 재래식으로 구입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장원보는 녹색 유니폼 직원들을 따라가 보았다. 병원은 ㅁ모양의 성이었다. 녹색 십자 문양과 응급차들이 아니었다면 청나라 시대 박물관인 줄 알았을 것이다. 모두가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약재를 운반하고, 식자재를 정리하고, 환자를 옮기고, 사람들 줄을 세우고, 상담을 받고…
눈이 파란 여자 아이가 눈에 띄었다. 이제 겨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뭐하는 여자 아이일까? 누군가 장원보에게 말을 걸었다. 자원 봉사 하러 오셨느냐고. 그게 뭐냐고 물기도 전에 그 사람은 장원보를 끌고 자원 봉사 입회 원서 쓰는 곳으로 데려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에 홀린 듯 입회 원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는 병원의 무보수 후불제 자원 봉사원이 되었다.
병원의 자원 봉사원은 대부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그만 둔다. 일이 힘들어서 그먄 두는 경우보다는 일을 못해서 그만 두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꼼꼼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죽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느리고 엉성하게 한다. 일을 오래 하지 못하고 쫓겨 난다. 장원보는 그런 점에서 정성주의 병원에 최적화된 직원이었다. 그는 실수하는 법이 없었다. 뛰어난 인재는 아니었지만 집요한 데가 있었다. 한번 손에 들어온 일을 대충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처리한 후에 다른 사람의 일도 맡아서 했다.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실수도 그가 대신 고쳐 주었다.
병원은 직원들의 업무 능력에 따라 일하는 장소가 달랐다. 업무력이 떨어지는 직원들은 화장실, 창고, 물류 관리소에서 일했고, 업무력이 뛰어난 직원들은 연구소에서 일했다. 장원보는 병원에서 일한지 6개월만에 연구소로 이동했다. 연구실을 청소하고 실험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영양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알리면 보다 중요한 일을 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 병원에서는 누구도 출신 배경을 묻지 않았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선 틈만 나면 누구의 출신 성분과 대학과 과거 경력을 따지고 들었다. 이런 거 하지 말라고 혁명이 있었던 게 아니었나. 이 병원에선 모두가 평등했다. 모두가 사람의 됨됨이만으로 평가 받았다. 장원보는 자신의 전공이 무엇이었는지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모두 같은 선에서 같은 기준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이곳보다 마오의 이상에 더 가까운 곳은 없을 것 같았다.
병원 연구소에는 특이한 연구실이 많았다. 뇌, 중추 신경, 피부, 소화기 같은 흔한 주제의 연구실도 있었지만, 구강, 배꼽, 겨드랑이, 사타구니 같은 목적을 알기 힘든 간판이 붙은 연구실이 더 많았다. 그 중 가장 눈에 띄었던 건 똥 연구실이었다. “인간은 살아서 똥을 남긴다”는 문구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크게 붙어 있는 똥 연구실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똥이 보관돼 있었다. 장내 미생물을 연구하고 배양하는, 거기서 개발한 미생물을 치료제로 쓰기 위한 곳이었다. 똥 연구실에서 개발된 미생물로 기적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만성 통증과 정신병, 심지어 원인을 알 수 없는 장애를 고친 사례들도 있었다. 이곳 똥을 이식받아 “장님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직립보행을 하게 됐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서양 종교에 대한 일종의 조롱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장원보는 오래지 않아 그게 조롱도 농담도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사람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회의와 냉소에 빠지는 법이다. 이곳은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가능한 곳이었다.
이 병원에서 사람들은 병명에 맞춘 약을 타먹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맞춘 약을 타먹었다. 이곳에 온 환자들은 “당신은 무슨 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 대다수는 약도 치료도 받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하면 된다”거나 “어떻게 살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 결과는 동일했다. 병이 낫는 것이었다.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거였다.
장원보는 이곳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곳에서 자신이 직접 연구를 주도하고 싶었다. 되고 싶었던 의사는 되지 못했지만 어쩌면 이게 더 의미있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병원에서 고치지 못하는 병을, 이곳에선 고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우월한 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 의대 간다더니 영양사가 됐냐고 비웃던 친척들 코를 납작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장원보는 자진해서 실험체가 되었다. 연구실에서 행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임상 시험의 피험자로 참여했다. 너무 자주, 연달아 참여하는 바람에 연구원들로부터 참여를 거부 당하기도 했다. 두드러기, 복통, 빈혈, 구토 등 부작용이 발생했지만, 장원보는 그것조차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장원보가 가장 좋아했던 실험은 “두뇌 회로 개선 실험”이었다. 특정 미생물에 몸을 감염시킨 뒤 두뇌의 활동 패턴이 달라지는 걸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장원보는 이 실험에 일년 넘게 참여했다.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기체를 들이키며 두뇌 상태 변화를 측정했다. 실험이 실패해 극심한 부작용만 겪을 때도 많았지만, 실험이 성공해 변화가 느껴질 때도 있었다. 평소 절대 먹지 못했던 매운 고추에 미칠듯한 식욕을 느끼기도 했고, 의자에 앉을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벌떡벌떡 일어나는 발작 증세를 겪기도 했고, 물 속에 5분 넘게 있어도 숨이 급하지 않은 극적인 평온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장원보는 마술쇼라고 생각햇다. 마술쇼는 눈속임이지만, 이곳 실험은 현실이었다. 장원보는 영화나 소설 속에서 보던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생물 처방으로 인간의 모든 것이 뒤바뀌는 것이었다. 생각도, 취향도, 버릇도, 능력도.
장원보는 자신을 일개 실험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스스로 자신의 몸에 과학 실험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험체보다 실험의 결과를 더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점차 연구원들의 신뢰를 얻었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신입 자원 봉사자에서, 연구실에 없어선 안 될 중요 인물로 자리 잡았다. 장원보는 더 이상 일개 피실험체가 아니었다. 그는 연구원들과 실험의 주제와 방식을 함께 결정하는, 박사 학위 소지 연구원들과 동등한 위치까지 올랐다.
장원보는 병원에서 유명해졌다. 인간 모르모트. 누구보다 용감하고 성실한 모르모트. 사람들은 장원보가 버젓한 대학을 나온 영양학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런 사람이 이런 식으로 몸을 함부로 굴리면 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식당에서 장원보에게 물었다. 피실험자는 그만 하고 여기 식당에서 전공을 살려 볼 생각은 안 해 보았느냐고. 장원보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평범한 삶을 거부했다. 그는 스스로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장원보가 이곳에서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남자를 보게 된 것은 연구소에 들어오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선생님”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60대 남자였다. 하지만 그는 특별했다. 모두가 그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가 지나가면 자동으로 사람들이 멀찍이 길을 비키고 고개를 숙였다. 그에게 용건이 있는 사람은 그의 앞에서 90도 각도로 인사를 한 뒤에 용건을 말했고, 그에게 요청이나 감사의 의도를 가진 사람은 그 앞에서 큰 절을 올리고 무릎을 꿇은 채 말을 시작했다. 이곳의 “선생님”은 신과 같은 위상을 갖고 있었다. 장님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직립보행을 했다는 말, 이곳에선 기적이 아닌 현실이었다. 서양인들이 주장하는 신은 글 속에만 존재했지만, 이 사람들이 믿는 신은 현실에 존재했다.
“선생님”은 병원장이었다. 이 병원을 설립한, 병원의 모든 것을 소유한 주인이었다. 그의 이름은 정성주였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다. 그는 “선생님”으로 불렸다. 그는 직접 환자를 진찰했다. 그의 진찰을 받기 위해선, 급한 경우가 아니면, 몇 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는 환자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환자에게 뭘 묻지도, 상태를 특정하지도 않았다. 그는 묻지 않아도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그에겐 청진기도, 혈압계도, 채혈 샘플도 필요 없었다. 그런 것 없어도, 환자 몸에 손끝 하나 대지 않아도, 모든 걸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는 환자를 살필 때 환자 귀에 손을 대고 딱딱 손가락을 튕기는 버릇이 있었다. 그가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유일한 제스처였다. 장원보는 그게 멋있어 보였다. 자기도 모르게 그걸 따라 하면서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에 빠졌다.
장원보가 연구실에서 연구원들과 다음 실험 일정을 협의하고 퇴근할 때였다. 연구소에서 나오던 장원보는 “선생님”과 마주쳤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러듯 허리를 깊이 숙여 경의를 표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형언할 수 없는 싸늘함이 느껴졌다. 선생님의 눈이 장원보에 꽂혀 있었다. 경멸이었다. 노골적 경멸을 표하고 있었다. 밥상 위에 해충이 올라온 걸 본 것 같은 표정. 자기 손으로 차마 잡아 죽이지 못해 유감인 표정.
장원보는 그의 적대적 태도에 충격을 받았다. 내가 뭘 잘못한 것인가? 장원보는 밤새도록 자기 검열을 했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실수한 것이 무엇이 있었던가 밤새 복기해 보았다.
다음날 장원보는 연구소에서 퇴출되었다. 그는 연구소 출입증을 빼앗겼고 더 이상 실험체로도 연구소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이제 물류 창고에서 일해야 했다. 이곳에서 계속 일할 의사가 있다면.
장원보는 고민했다. 물류 창고에서 열심히 일하면 다시 바닥에서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인가? 이곳에 대한 충심을 증명한다면 다시 연구소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장원보는 이유가 있어서 쫓겨난 것이 아니었다. 이곳 주인의 마음에 들지 않아 쫓겨난 것이다. 사람이 좋고 싫은데 이유가 있을 리 없었다. 그는 미련없이 그만 두기로 했다. 하지만 미련이 진하게 남았다. 그는 이곳에 자신의 몸뚱이를 바쳤다. 피도 뽑고 똥도 뽑고 주사 바늘에 약물, 전기 자극까지, 일년 넘게 실험체로 살며 연구소에 피와 살을 바쳤다. 그냥 나갈 수 없었다. 그는 대가를 받기로 했다. 돈은 필요 없었다. 돈은 장사꾼들의 몫이다. 장원보는 스스로를 과학자라고 생각했다. 몸뚱이를 희생한 대가로 의사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진짜 과학자의 반열에 올랐다고 믿었다.
그는 신씨에게 이야기했다. 신씨는 연구소 주임이었다. 장원보는 신씨의 충직한 연구 보조원이자 실험쥐였다. 그와 오래 함께 실험을 진행해 왔다. 그는 마지막으로 신씨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고 했다. 자신은 이곳을 미련없이 그만 둘 것이라고. 하지만 자기가 참여했던 실험 결과 기록은 갖고 가게 해달라고. 아무것도 없이 이곳에서 쫓겨나는 건 부당하지 않느냐고.
신씨는 장원보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신슈안. 나이 서른 명문대 출신 박사 학위 연구원이었다. 그는 정성주를 존경했지만 장원보에게 동정심을 느꼈다. 신슈안은 퇴근 시간 후 몰래 장원보를 연구실로 들여 그의 실험 결과 파일을 복사해 주었다.
하지만 장원보는 일상적 타협으로 안분지족 하는 유형이 아니었다. 그에겐 계획이 있었다. 평범한 소시민들은 이해하지 못할 원대한, 그리고 급진적인 계획이 있었다. 파일이 복사되는 순간, 장원보는 물류 창고에서 훔쳐 온 망치로 신슈안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리고 연구소의 상당량의 연구 결과를 복사해 도망쳤다.
신슈안은 그 사건이 있기 전날 정성주로부터 직접 공지를 들었다. 장원보를 절대로 연구소에 들이지 말라고. 신슈안은 정성주의 말을 어긴 것이었다. 그는 정성주가 왜 장원보를 내쫓았는지, 장원보에게 머리를 얻어 맞은 뒤에야 깨달았다. 장원보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정성주는 알고 있었다. 자기 같은 아둔한 범인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인간의 본질을 정성주는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선생님이 예측한 인간의 앞날은 결코 틀리는 법이 없다”고. 신슈안은 이 말을 가볍게 받아 들인 것이었다.
신슈안은 망치로 얻어 맞고 두개골 골절상을 입은 것도 모자라 연구소에서도 쫓겨났다. 그는 한때 정성주의 총애 받는 연구원이었지만, 연구소의 규정은 엄격했고 정성주는 동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신슈안은 연구소에서 쫓겨난 뒤 유명 바이오 테크 기업으로 이직했지만 여전히 정성주를 그리워 했다. 그는 평생 다시 정성주의 연구소에 발을 들일 수 없다는 사실에 고통받았다. 그는 주기적으로 정성주와 연구소 동료들에게 감사와 사죄의 편지를 보냈고, 정성주가 죽었을 때 그의 장례식에서 누구보다 슬피 울었다.
신슈안의 무분별한 이타주의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이 예상할 수 있는 건 하나 뿐이었다. 이것이 세상에 그리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진 않을 것이란 예상이었다.
장원보가 어떻게 공안을 피해 도망 쳤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처음 어느 지역에 정착을 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만 그가 연구소에서 해고된 뒤 겨우 이틀만에 그 모든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가 그 계획을 매우 성공적으로 이행했다는 사실도.
연구소에서 장원보의 이름이 다시 언급된 것은 다웨이 사건 때였다. 다웨이는 신용 불량자였다. 사채 빚을 갚기 위해 금은방을 털려다 장원보의 꼬임에 넘어갔다. 임상 시험에 참가하시면 빚을 갚을 수 있다고. 다웨이는 그리고 2년 동안 실종되었다.
정성주는 다웨이가 어떤 방식으로 정신지배를 당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정성주는 장원보가 생각보다 짧은 시간만에 인간 행동 지배 원리를 터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웨이 말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장원보의 임상 시험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장원보의 실험은 개인적 일탈 행위가 아니었다. 수익을 노린 비즈니스였다.
장원보의 두번째 실험체가 연구소에 몰래 숨어 들어왔을 때는 모두가 경악했다. 다웨이는 해프닝이었다. 단순히 사람을 공격하고 도망가는 짐승의 행동 패턴만 수행 가능한, 실패한 실험 결과였다. 하지만 두번째는 달랐다. 스스로 판단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연쇄적 행동들을 차근차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정성주는 자신의 손등에 박힌, 다웨이가 찔러 넣은 연필 흑연 자국을 보며 생각했다. 장원보는 정성주가 환자 귀에 손가락 튕기는 버릇을 발동 조건으로 심었다. 그는 분명 정성주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 정성주는 이것이 자신의 업보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굳이 장원보가 아니었더라도 이런 일은 언젠가 일어났을 것이다. 정성주는 어쩌면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는지 몰랐다. 이런 일이 있어도, 어떤 일이 발생해도 상관없다는 무의식적 이기주의로 여기까지 온 것일지 몰랐다.
정성주는 자신의 연구 결과가 세상에 미칠 영향에 대해 생각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