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넷 교수의 면역학 마지막 시간은 진화에 관한 이야기였다.
…면역학을 공부하면 인간 종의 면역 체계가 다른 동물과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됩니다. 흔히 하는 착각이 인간의 면역력이 다른 동물들보다 떨어진다는 것인데 실은 그 반대입니다. 바퀴벌레나 박쥐 같은 케이스를 제외한다면, 인간의 면역 체계는 비슷한 조건의 다른 동물보다 더 잘 발달돼 있습니다. 정교하다기보다, 강력하죠.
베넷 교수는 인간과 다른 영장류의 면역 시스템 차이를 여러 실험 결과를 통해 보여 주었다. 인간 종은 다른 영장류에 비해 미생물 침입시 동원되는 백혈구의 수가 훨씬 많으며, 반응 속도도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빨랐다. 인간은 면역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동원된 유전자 수도 다른 종에 비해 월등히 많으며, 면역 체계를 돌리는데 사용하는 에너지 소모률도 월등히 높았다.
…쉽게 말해, 인간의 면역 체계는 초고성능 화력 부대입니다. 적이 체내에 살짝 발을 들여도 압도적인 화력으로 초전박살 내는 고성능 군사 시스템 같습니다. 첫 시간에 이야기한 데이비스 상병이 그런 예였죠. 건강하다면, 건강한 몸과 정신 상태를 유지한다면, 처음부터 병에 걸릴 틈을 주지 않는. 그게 인간 면역 시스템의 기본 전략입니다.
…면역 시스템은 화력이 강할수록 정교함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입니다. 침입자처럼 보이면 일단 죽이고 보는 그런 물불 안 가리는 패턴이, 다른 한편으론, 건강한 몸을 망가뜨리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자가 면역 질환이죠.
베넷 교수는 자가 면역 질환의 종류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간에겐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자가 면역 질환이 있다. 면역력이 결핍돼서 발생하는 자가 면역 질환도 있지만 실제론 면역력이 과도하게 작동해 건강한 몸을 파괴하는 과유불급의 경우가 더 많았다. 류마티스 관절염, 1형 당뇨, 크론병, 건선, 아토피성 피부염, 백반증, 다발경화증 같은 흔히 들어본 종류 외에도 평생 못 들어볼 희귀한 종류도 많았다.
…자기 면역 질환은 많은 경우 피부에 증상이 나타납니다. 병원체가 가장 많이 침투하는 곳이니 그쪽에 오인 사격을 하는 거죠. 스티븐 존슨 증후군이 가장 무서운 질환인데, 감기약을 먹고 피부가 순식간에 괴사해 사망에 이르기도 합니다. 심지어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어떤 감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저절로 질환이 발생해서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뇌에 오인 사격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판다스 증후군은 최근 밝혀진 특이 질환인데 연쇄상구균 감염을 빌미로 면역 체계가 뇌세포를 파괴합니다. 얌전했던 아이가 갑자기 자살 충동을 보이고, 욕을 하고, 사람을 위협하고, 침대 위에 대소변을 보기도 합니다. 과거엔 꼼짝없이 “아이에게 악령이 씌였다”고 믿었죠. 악령을 쫓아 내겠다고 퇴마 의식을 시행하다 아이가 죽는 일도 있었죠. 판다스 증후군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가 “엑소시스트”였죠. 영화는 세계적 히트를 기록했지만 사람들은 그게 자가 면역 질환 증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악령에 씌여서 그런 것인 줄 알고 있죠.
학생들은 일제히 휴대폰으로 영화 “엑소시스트”를 검색해 보았다. “엑소시스트”라는 영화에 대해 처음 들어 본 것 같았다. 베넷 교수 세대에선 안 본 사람이 간첩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유명한 영화였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베넷 교수는 잠시 당황했지만 화제를 바꿔 이야기를 계속했다.
…면역 체계는 그 종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 알려주는 단서를 제공합니다. 인간의 면역 체계를 보고 있으면 우리 조상이 그리 청결한 삶을 살아온 게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베넷 교수는 유인원 Apes의 시조부터 인간까지 진화 과정을 보여주었다. 채식 위주였던 유인원의 조상은 인간과 침팬지로 종이 분화되면서 육식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면역 체계도 그에 따라 진화했다.
…나무 위에서 채식을 했던 때와 완전히 달라집니다. 땅에서 육식을 하게 되면서 더 많은 미생물과 접촉하고, 사냥을 하면서 더 많은 상처를 입고, 더 많은 병원체에 감염 됩니다. 육식을 하는 과정에서도, 육식을 하고 난 후에도, 인간은 더 많은 병원체와 사투를 벌여야 했죠. 수렵 채집에서 농경 정착 사회로 전환된 뒤에도 위생 환경은 나아지진 않았습니다. 밀집 생활을 하게 되면서 되려 더 감염에 취약한 환경에서 살게 됐죠.
베넷 교수는 고대 이집트, 로마, 중세 유럽, 그리고 19세기 영국 런던 서민들 삶을 묘사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시궁쥐와 바퀴벌레 서식지가 더 깨끗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끔찍한 광경들이 이어졌다. 전염병은 당연한 결과였다. 저렇게 1만년을 살았는데 멸종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정착이 시작된 후, 상하수도가 개발되기 전까지, 인류는 한번도 청결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정착은 누구애게나 긍정적이지만, 위생의 관점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생명은 필연적으로 노폐물을 생산합니다. 살아도, 죽어도, 생명은 노폐물을 만들 수 밖에 없는데 정착을 하면 노폐물이 쌓이고 병원체가 창궐합니다. 인간이 저런 환경에서도 멸종하지 않고 지금껏 살아 남은 건 순전히 인간의 강력한 면역력 때문이었습니다.
…현실은, 인류의 수명을 연장시킨 건 의술이 아니라 상하수도의 개발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수명과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높여준 건 의학이 아니었습니다. 청결한 환경, 지속적인 영양 공급, 그리고 건강한 생활 습관이 인간의 수명과 삶의 질을 높여주는 가장 확실한 요인입니다. 인간의 면역 체계는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질문이 있는데요.
누군가 발언했다. 올리 홈즈, 신입생 견학 시간에 인공지능 휠체어 판매 가격을 물어본 학생이었다.
인간은 왜 땅으로 내려왔을까요? 왜 더 많은 병원체가 득실대는, 더 위험한 세상으로 내려온 걸까요?
올리 홈즈는 면역학 개론과 관계가 없는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도 방금 베넷 교수의 말이 면역학 개론의 맺음말이라는 사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궁금했다. 왜 인간은 더 큰 고통을 쫓아 진화한 걸까? 어째서 육식을 하게 된 걸까?
베넷 교수는 한동안 말 없이 올리를 바라 보았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생각이 머리 속에 떠오른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보다 먼저 종으로 분화한 오랑우탄과 고릴라는 채식으로 진화했죠. 우리와 침팬지는 육식을 선택했고요. 결과적으로 인간과 침팬지가 더 번성했으니 그 선택이 옳았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정당화 할 수 있겠죠. 근데 왜 그랬느냐, 이렇게 물으면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뇌를 더 발달시키기 위해서? 잡아 먹히는 것보다 잡아 먹는 게 더 좋으니까? 오랑우탄과 고릴라는 채식을 선택해서 불행해졌을까요? 이들이 불행해진 이유는 인간들 때문입니다. 인간이 아니었다면 이들은 멸종 위기에 몰리지 않았습니다.
…과학자들 중에도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초월적 존재가 인간을 선택했다는 믿음. 그렇지 않고는 이런 진화가 가능하지 못했다는 주장. 저는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 그런 과학자들 볼 때마다 화가 났는데, 나이 들고 보니 그 사람들 입장도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까.
…저도 한때 세상이 논리와 원리, 설명 가능한 작용 반작용으로 움직인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잘 모를 때였죠. 그때는 세상 모든 것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에는 논리적 이유가 있다, 그게 과학이다, 그렇게 믿었죠.
…인간이 지금의 상태로 진화한 것도 납득할만한 원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왜 하필 인간만 이렇게 진화했을까, 왜 사냥을 하게 된 걸까, 무엇 때문에 불을 사용하게 된 걸까, 무엇이 계기였을까.
…진화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 같다고 배웠죠. 물은 흐르면서 방향이 바뀌고, 갈라지고, 합쳐지고, 가늘어지다 멈추기도 하지만 더 크게 흐르기도 한다고. 물길이 바뀌는데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원인이 있는 법이라고. 자연 환경의 변화, 다른 종과의 교류, 공생, 천적의 출현, 기생, 질병, 감염, 그런 것이 원인이라고. 그런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진화에는 설명할 수 없는 원인이 더 많더란 거죠. 진화에도, 종의 분화엔 어떤 원인이나 정당성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간 종을 통해 깨닫습니다.
종의 확고한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가 아닐까요? 전 그렇게 배웠는데요.
올리 홈즈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베넷 교수는 이번에도 역시 그 말을 할 줄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베넷 교수는 기다렸다는 듯 질문에 대한 답을 쏟아냈다.
…예, 그게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그런 고정관념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어 합니다. 세상 모든 것엔 의미가 있다는 생각, 모든 것엔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 지금껏 몰랐던 건, 종의 확고한 생존과 번영조차 그런 고정관념 중 하나였다는 겁니다. 진화의 물길은 그런 대의명분 없이 흘렀습니다. 막연하게 흐르고 흐르다 보니 그렇게 된 거에요. 결과가 그렇게 된 것이지 실제 어떤 계획이나 대의를 품고 흐른 경우는 없습니다. 진화의 물길에선 어떤 종도 특별할 수 없으며, 어떤 종도 우월할 수 없으며, 어떤 종의 변이와 분화도 대의명분를 따르지 않습니다.
베넷 교수는 아까 보여준 상하수도 이전 인간 도시의 처참한 삶을 다시 보여주었다. 문명을 유지 보수 발전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간 개체가 희생됐는지 설명했다. 야생 자연에선 일어날 수 없는 집단 아사, 대량 학살, 전쟁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류 종의 생존과 번영 역시, 사실은, 계획이나 대의가 아닌, 무작위적 희생에 의해 가능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모두 거창한 대의명분의 깃발 아래 치뤄진 희생이었지만 그 중 실제 이뤄진 건 없었다. 그저 더 많은 무참한 희생을 위한 거짓말, 거대한 사기극이었다.
…우리 인간의 역사에는 제가 모르는 논리적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제가 역사학자가 아니라서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한, 자연의 역사에는 논리적 이유가 없습니다. 돌연변이의 탄생과 종의 분화는 물과 공기와 전자의 흐름… 날씨와 다르지 않습니다. 자고 일어나 보면 비가 내리고 있고, 구름이 걷혀 있고, 햇살이 내리 쬐다 비바람이 쏟아지고, 그러다 보니 계곡이 파이고, 산이 솟아 있고… 그렇게 토스카나 평원과 알프스 산맥과 요세미티 국립 공원이 만들어졌죠.
베넷 교수는 자연의 모든 현상이, 심지어 물과 공기와 암석에 의한 무기물의 현상조차도 모두 같은 흐름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우리가 자연의 절경을 보고 감동 받는 것과 공작새의 깃털을 보고 감탄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수억년 날씨에 의해 만들어진 절경과, 수억년 진화에 의해 만들어진 공작새 깃털은 모두 같은 자연의 흐름의 결과라는 사실을 역설했다.
…그러고 보면… 진화의 섭리란 것이 사랑에 빠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진화를 일으키는 최소 단위”라고 이야기합니다. 진화의 모든 것이, 생명 역사의 모든 것이, 사랑과 동일한 메커니즘이라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은가요? 논리도 이유도 없잖아요. 어떤 계획도 명분도 예측도 없이, 소나기 오듯 퍼부었다 안개처럼 사라지잖아요? 누구도 사랑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사랑의 기대와 희망을 이야기 하지만 그대로 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진화도 그렇습니다.
베넷 교수의 마지막 강의는 종료 시간을 20분이나 넘기며 계속되었다. 학생들은 아무도 강의 시간이 초과됐음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모두가 숨 죽이고 베넷 교수의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주은은 소름 끼치는 기시감을 느꼈다. 베넷 교수의 지금 말은 아버지가 했던 말과 동일하다. 베넷 교수는 아버지와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베넷 교수는 아버지와 같은 사고 방식과 철학을 가진 사람이다. 두 사람은 외모와 삶의 방식만 달랐지 학문적 관점에선 동일한 인간이었다.
엄마는 어째서 베넷 교수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어쨰서 베넷 교수를 버리고 그와 동일한 영혼을 가진 지구 반대편 동양인을 선택한 것일까? 이게 베넷 교수가 말한 사랑이란 것일까? 생명 진화의 불확실성의 또 다른 예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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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지역 내 민간인 복지를 위한 토양 관리” 회의는 아직 중요 안건이 남았다. 외교 문제였다. 사람들이 궁금한 건 영국의 입장이었다. 아일랜드와 영국은 의도치 않게 정성주의 파일을 두고 경쟁이 붙었다. 애당초 그럴 생각도 의도도 없었지만, 영국은 제약사들에 의해, 아일랜드는 브로디에 의해 정성주의 파일과 이해 관계가 얽혔다. 농업 패권 국가에서 바이오 산업 패권국으로. 아일랜드의 야망은 몇 년 사이 빠르게 진화했다.
어차피… 농업 혁신이 바이오 기술에 기반한 것이지 않습니까? 제약 산업으로 도약할 충분한 역량이 쌓인 것 같은데요.
제약업이 만만한 사업이 아닙니다. 신약 개발에 들어가는 돈과 시간을 감당할 기업이 없어요.
하지만 국가 지원을…
국가 주도 사업이 성공한 예는 없습니다. 국가가 산업을 일으키는 최선의 방법은 방해하지 않는 겁니다. 최대한 하고 싶은 걸 하게 내버려두는 겁니다. 아일랜드가 여기까지 온 것도 그런 신념 때문이었어요.
우리가 할 일이 그거란 거잖아요. 방해하지 않는 거. 보호해주는 거.
영국으로부터 보호가 필요한 시점이죠.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기술적 이점을 영국에 빼앗길 수 있는 건가요?
영국은 제악, 의학, 바이오 기술이 우리보다 수십년은 앞서 있습니다. 정성주 파일까지 손에 넣으면 난공불락의 위치를 점하게 되죠. 모처럼 잡은 기회인데 그렇게 놓아 둘 순 없습니다.
사람들은 정성주의 딸 이야기를 했다. 그가 영국 정부와 어디까지 이야기가 진전됐을지 궁금해했다. 그가 아버지가 남긴 모든 걸, 아무 대가 없이, 정부 측에 순순히 넘겨줄만큼 양순한 인물일지에 대해 이야기가 오고 갔다. 브로디가 그 여자를 만나 보는 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배다른 남매니까, 아버지가 죽었으니까, 아버지가 남긴 유산에 대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명분이 있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브로디는 정성주 딸의 존재를 신경 써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인생과는 상관 없는 존재였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있었다. 정성주의 파일을 해독하면서, 이 내용을 그 딸이란 여자가 다 이해했다면, 그건 인류에게 독일까 득일까? 혹시, 그 여자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과 동일한 능력을 가진 다른 사람이, 정성주의 파일을 해독했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진보일까 퇴보일까.
사람들이 원하는 최선의 결과는 영국과 “선의의 경쟁자”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결과물이 너무 파괴적이다. 세상이 뒤바뀌는 것이다. 누군가 죽거나 도태되는 것이다. 이런 걸 눈 앞에 두고 선의의 경쟁이 가능할까. 정성주는 왜 이렇게 극단적인 연구를 한 걸까. 과학의 극단적 가능성들을 하나하나 즐겨 본 걸까. 유희라고 생각한 걸까.
사람들은 정성주 파일의 또 다른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중국이었다. 중국 정부가 과연 정성주 파일의 존재를 몰랐겠느냐는 거였다.
중국 정부가 정성주에 대해 몰랐던 건 없을 겁니다. 공식적인 파견 연구원들 외에도, 공안, 경호원, 그리고 프락치도 심어 놓았으니까요. 대체로 중국 정부는 “알면서도 모른 척” 정책을 고수했습니다. 연구에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해주기 위함이었겠죠. 저희 측 연락책에 따르면 가끔 경고성 조치가 취해졌다고 합니다. 연구실이 강제 폐쇄된다거나, 특정 직원이 체포-구금되거나. 다 알고 있다는 거죠. 다 알고 있는데 그냥 보고 있는 거다. 허튼 짓 하지 마라.
중요한 건 정성주가 중국 정부와 타협 했다는 겁니다. 중국 정부에서 원하는 걸 대체로 별다른 저항없이 줬어요. 공생 관계였죠 - 개미와 진딧물 같은. 우리의 문제는, 정성주가 지금까지 중국 정부에 뭘 줬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인종 차별적 감염이 가능하다는 걸, 그걸 이용한 생물학 무기 개발이 가능하다는 걸 중국 정부가 알았다 해도, 그걸 어떻게 하는지는 정성주가 알려줘야 알 수 있거든요.
진짜 극비 사항은 그거였을 겁니다. 중국 정부가 정성주로부터 뭘 얻었는지. 그걸로 뭘 할 수 있는지. 혹시나 만에 하나, 프락치에 의해 암호화 된 내용까지 넘어갔을지, 그랬다면 그 내용을, 정성주의 혈육 없이 풀어 볼 수 있었을지.
전부터 의문이었던 건… 유럽 제약사들은 왜 부른 걸까요? 중국은 분명 연구 결과를 독점하고 싶었을텐데, 왜 연구 결과를 공개하고 외국 업체들과 계약할 것처럼 했던 거죠?
연구 결과를 공식화 하기 위함 아니었을까요? 공식적으로 산업화 해서 외화 벌이를 하겠다는 계산이지 않았을까요? 어쨌거나 큰 돈이 되는 기술이잖아요.
누가 봐도 보여주면 안 될 거 같은 위험한 기술인데 어째서 공개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불길한 느낌인데…
그 부분은 저희 쪽에서 추정하고 있는 원인이 있습니다.
그렉 웰런의 말투가 무거웠다. 그가 이 회의에서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다. 그는 그제야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부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정성주 연구소에서 정신 지배와 관련된 연구 결과가 유출된 일이 있었습니다. 배신자가 있었어요. 그 배신자가 연구 결과를 외부인에게 팔았습니다.
그럼… 정성주와 중국 정부에서 선수를 친 건가요? 유출된 기술을 사장시키려고?
저희는 그렇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럼 혹시, 그… 필립 거먼 사건과도 관련이 있는 건지요?
월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측에서 필립 거먼과 관련된 여러 정황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모든 것이 그 배신자라는 사람에게서 시작된 일이었고, 그 사람이 로리 맥닐리와 거래를 했다는 사실도 알아 냈습니다. 로리 맥닐리는 정성주의 파일에 관심이 있었고, 정보를 얻기 위해 중국에서 꽤 오래 동안 활동을 해왔습니다.
웰런은 숨을 크게 한번 내쉬었다. 감정을 다스리는 것 같았다. 그는 회의실 사람들을 하나씩 바라보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로리 맥닐리는, 지금까지 기소된 건 외에도, 너무 오랜 세월 통제불능 무법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로리 맥닐리는 우리 입장에서 가장 해로운 배신자이자, 가장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문제입니다. 로리 맥닐리가 영국에서 소환되는대로 조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