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s files #50
오라일리 교수는 붓글씨 클래스를 다닌다. 감정 기복을 다스리는 효과가 있다는데 정말 그런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마음의 평온. Zen moment라고 하죠. 그걸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서예랍니다. 

오라일리 교수는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동양 역사와 문화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불교와 도예와 서예와 무예가 모두 하나의 원리라고 했다. 생각 중단. 생각을 중단하는 순간 마음이 평온해지고 몸이 자유로워진다고 했다. 시야가 넓어지고, 만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며, 손놀림이 능숙해진다고. 동양은 생각을 멈추고 가볍게 하기 위한 철학과 학문을 발전시킨 반면, 서양은 생각을 깊고 무겁게 하기 위한 철학과 학문을 발전시켰다고 했다. 

…붓글씨의 선에 모든 게 드러납니다. 붓을 쥔 사람 머리 속에 어떤 생각이 있었는지, 생각과 감정을 얼마나 떨쳐 냈는지. 

오라일리 교수가 감정을 다스려야 하는 이유는 아들 때문이다. 아들 키우기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처음엔 애가 눈코입이랑 손가락 열개만 달렸으면 감사하다고 생각했는데, 낳고 보니 생각이 바뀌는 겁니다. 왜 쟤는 저렇게 까다로운 거야, 좀 유순하면 안 되는 거야. 인간 마음이 간사하기 짝이 없습니다. 

정성주의 파일에 대한 조사 결과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인류 종족의 위기를 염려해야 할 엄숙한 자리였지만 오라일리 교수는 마음이 가벼워 보였다. 본인은 동양 철학의 영향이라고 주장했지만 오라일리라는 사람의 원래 기질이 그런 것 같았다. 

오늘 모인 곳은 국방부의 기밀 회의실이었다. 놀랍게도 아일랜드 정부는 정성주의 파일을 “국방”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지난번 본 정보부의 그렉 웰런 외에 보건부, 국방부, 외교부 관련자들이 나와 있었다. 거물급 인사들이 참석한 회의였다. 외부에 고지된 공식적인 회의 안건은 “군사 지역 내 민간인 복지를 위한 토양 관리”였다. 회의 기록은 남기지 않았고, 어떤 문서도 공유되지 않았다. 회의에서 오간 모든 이야기는 참석자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야 했다. 

오라일리 교수는 브로디의 대리인이었다. 그는 일주일 전 브로디로부터 정성주의 파일에 대한 내용을 공유 받았다. 브로디는 프레젼테이션 능력이 없으니 오라일리 교수가 그 내용을 먼저 이해한 뒤에 정부 관계자들 앞에서 대신 전달하는 거였다. 오라일리 교수는 달변이었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쾌활했지만, 이날은 이상하게 말이 자주 끊기고 더듬기도 했다. 

…정성주의 파일은… 일종의 역사서입니다. 모든 이야기가 기원에서 시작을 하죠. 지금까지 이런 일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 - 그런 내용입니다. 

…인간의 역사서는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행위에 대한 기록인데, 정성주의 역사서는 서로 다른 생물종들이 서로에게 저지른 행위에 대한 기록입니다. 

…거기 보면 중국에 사는 도룡뇽 얘기가 나와요. 피부 조직을 괴사시키는 치명적인 곰팡이에 대응하기 위해 도룡뇽은 피부에서 항생물질을 만들죠. 곰팡이와 도룡뇽은 수만년 동안 군비 경쟁을 벌입니다. 곰팡이가 항생물질에 저항력을 가지면, 도룡뇽은 더 강한 항생물질로 맞서는 방향으로 진화했죠. 이 군비 경쟁의 균형이 깨진 계기가 딱정벌레였습니다. 도룡뇽이 잡아 먹는 특정 종의 딱정벌레가 곰팡이에 감염돼 있었거든요. 이 곰팡이가 도룡뇽 체내로 침투해 도룡뇽의 항생물질 합성을 방해합니다. 방어선이 무너진 거죠. 그리고 도룡뇽은 곰팡이에 의해 멸종됩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딱정벌레에 기생한 그 곰팡이가 도룡뇽을 멸종시킨 곰팜이의 “형제”였다는 겁니다. 도룡뇽의 항생 물질에 번번히 패퇴하던 곰팡이가 우회로를 찾은 거에요. 도룡뇽이 먹는 먹이를 감염시키기 위해, 종이 분화한 거죠. 

…수많은 진화적 우연의 하나였지만, 정성주는 이걸 필연으로 해석합니다. 곰팡이의 절박함이 만들어낸 필연. 정성주는 이걸… 인간의 의지대로 통제하는 방법을 알아 내죠. 

…도룡뇽에게 일어난 일이, 그러니까, 인간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가정한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그게 어떻게 가능할지, 그 단계와, 방법을 기록한 거에요. 인간의 몸이 지금껏 방어해 온 치명적 미생물들 중, 어떤 것이, 동일한 방식으로 인간 면역 체계를 허물고 종 전체를 멸종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는지. 그러니까 사실은 역사서가 아니라… 

예언서군요. 

요한 묵시록 같은. 

…그렇죠. 그런데 그 예언이 어떻게 현실화 될 수 있는지 기록했다는 게 다른 예언서들과 다른 점이죠. 

정성주는 그럼 미친 과학자인 건가요? 왜 그런 연구를 한 거죠? 중국 정부의 감시 하에 연구를 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지금 저희가 알아낸 내용은 암호화 된 것들입니다. 중국 정부와 공유되지 않은 것들입니다. 정성주는 처음부터 어디에도 소속돼 있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스스로 “학문의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 사회적 소속과 안정을 포기했죠. 그가 만든 암호도 그런 필요에 의해 개발된 것이고요. 

어쨌든 정말로 인류 멸종을 기대하고 그런 연구를 하진 않았을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정성주의 연구 기록은, 다른 예언서들과 비슷한 의도를 갖고 있습니다. 경각심 고취,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 회개… (웃음) 아니 대비하란 거죠. 이렇게 인류를 멸종시킬 수 있다고 방법을 알려준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어떻게 대처하라는 의도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오라일리 교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백인에게만 감염되는 질병. 그걸 알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인종은 생물학적으로 같은 종입니다. 서로… 임신이 가능하죠. 사고방식도, 행동패턴도, 생존방식도, 모두 동일합니다. 피부와 머리, 눈동자의 색만 다른 거에요. 그런데, 정성주는 그런 생각을 한 거에요. 포식자의 입장에서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포식자는 냄새와 맛으로 먹이감을 판단하는데, 인종은… 냄새와 맛이 다르다는 거죠. 

…거꾸로 생각하면, 인종마다 포식… 식이습관이 다르거든요. 서양인들은 우유를 먹는데, 동양인들은 원래 안 먹었죠. 동양인들은 해초를 먹는데, 서양인들은 해초를 먹지 않습니다.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에 먹는 것이 다르고, 먹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냄새와 맛이 달라지고, 아주 작은 차이지만, 기이하게도, 대자연의 입장에선 작은 차이가 아닌 거죠. 서로 다른 생물종이 서로를 포식하는 대자연의 생태계에선 인종 간 차이가 엄중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호랑이, 사자, 늑대가 인종을 가려 잡아 먹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바이러스, 박테리아, 곰팡이는 얘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호랑이, 사자, 늑대는 포식 대상의 사소한 유전적 차이에 생존이 결정되지 않지만, 바이러스, 박테리아, 곰팡이는 결정 되거든요. 감염 대상의 별 것 아닌 유전적 차이에 생존의 결과가 달라지는… 정성주는 이 점에 주목했죠. 

오라일리 교수는 이후 약 2시간 동안, 브로디의 도움을 받아 가며, 정성주가 개발한 인종적 차이에 따른 미생물 감염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놀라운 사실은 실제 “임상 시험”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정성주는 중국인들과,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보이는 백인 피실험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종류의 감염을 시도했다. 감염에 사용된 병원체는 사소한 피부염을 일으키는 것이 전부였지만, 중요한 건, 질환의 독성이 아닌, 감염의 방식과 감염 성공률이었다. 

정성주의 가설은 성공적으로 증명되었다. 같은 방식, 같은 원리로 정성주는 수십 개의 감염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오라일리 교수와 브로디는 이 수십 개의 시나리오의 대응법을 설명했다. 모든 시나리오엔 대처법이 있었다. 정성주는 분명 어느 집단의 멸종도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설명을 거의 다 마칠 때쯤 보건부의 해스턴이 질문을 했다. 

그런데 왜 하필 백인종이었을까요? 어째서 흑인이나 황인종에는 감염 실험을 하지 않은 걸까요?

오라일리 교수는 브로디를 바라 봤다. 대신 답변 하시라는 제스처였다. 하지만 브로디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정성주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걸 꺼렸다. 아무리 심정적으로 관계 없는 사이라지만 혈육이라는 관계는 부인할 수 없었다. 브로디는 그 혈육이라는 관계가 불편한 것이었다. 오라일리 교수가 하는 수 없이 대신 대답했다. 

…정성주가 백인종에 적대감을 갖고 있진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지 않았을까요? 죽은 아내도 백인이었고 딸도 절반 백인이니까. 정성주는 아마 냄새로 힌트를 얻었을 겁니다. 백인이 이런 식의 미생물 공격에 더 취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냄새로 알았겠죠. 해커가 해킹에 취약한 웹사이트를 알아내는 것처럼, 정성주도 그렇게 접근했을 겁니다. 화이트 해커처럼, 특정 인종의 생물학적 취약점을 발견하고 그걸 보안하는 방법을 찾았을 겁니다. 

오라일리 교수 다시 브로디를 보았지만 브로디는 여전히 발언할 생각이 없었다. 오라일리 교수는 하는 수 없이 대신 말을 이었다. 

…정성주는, 쉽게 말해, 늘 그랬던대로, 호기심을 느낀 겁니다. 이런 것도 되지 않을까? 한번 해보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해본 겁니다.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 버크 씨 말로는 “절박에 달한 호기심”이라고 하더군요. 그게 정성주를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과학자인 동시에 가장 유능한 구원자로 만든 거라고. 

작품 등록일 : 2026-04-02

▶ Brody’s files #51

▶ Brody’s files #49

이 미친 호기심은 과연 인류를 멸종에서 구원할 것인가! 곰팡이가 형제 어쌔신을 적에게 보냈다니 진짜 미쳤음
진미오징어   
와.............................................진짜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음
진미오징어   
살인, 초월적 예술, 진실의 순간, 단순함, 머리비움 - 이런것은 통하는걸까? 절박한 감정, 간절한 호기심은 어느 스펙트럼에 놓일까
슬리피캣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빨리 완결을 보고싶다 이걸 다 읽으면 소장이 이야기하는 것들이 지그소 퍼즐처럼 맞춰져서 큰 그림으로 보일 것 같음
슬리피캣   
헐.... 절박
슬리피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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