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s files #49
버크 오거닉스에는 전시관이 있었다. 5층짜리 빌딩에 만들어진 이 전시관에는 버크 오거닉스에서 개발한 식물 종들이 전시돼 있었다. 원래 미래 식량을 개발하기 위한 새로운 작물을 전시하는 곳이었는데 개발된 식물 종이 다양해지면서 식용 작물이 아닌 식물들도 함께 전시한 것이다. 이곳 전시관 식물들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종으로 공식 이름 없이 임시 별칭만 붙어 있었다. 

식용 식물관.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식물들. 뿌리, 잎, 줄기, 열매 등 식용할 수 있는 부위와, 그램 당 칼로리, 영양성분이 표시돼 있음. 가장 인기 있는 종은 “허니플라워”라고 불리는 바나나 모양의 꽃을 피우는 식물. 만개시 꿀처럼 보이는 다량의 찐득찐득한 액체를 흘림. 개체에 따라,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맛과 향. 

약용 식물관. 
의학적으로 활용 가능한 식물들. 미생물의 활동을 억제하거나 독을 중화하는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 전시. 가장 인기 있는 종은 “데몬슬레이어”라고 불리는 모기 퇴치 식물. 밤에 덩어리로 뭉친 하얀 꽃들 개화. 이 꽃 덩어리에 모기들이 몰려 들고, 꽃가루 독에 의해 모기 제거. 조건이 맞으면 일년 내내 수시 개화. 

산업 식물관. 
산업 재료로 활용 가능한 식물들. 접착, 탄성, 절연, 방수, 방화, 방제 등의 특성을 가진 종들 전시. 가장 인기 있는 종은 “쿠션”이라고 불리는 덩굴 식물. 단단한 셀룰로오스 표피가 아닌 솜처럼 푹신푹신한 재질로 몸을 보호함. 부러지지도, 끊어지지도, 찢어지지도, 불에 타지도 않으면서 어떤 환경에서도 무한에 가까운 부드러움 유지. 

생활 식물관. 
세정, 청결, 방향, 건강, 미용 등 일상 생활에 편의를 제공하는 식물들. 가장 인기 있는 종은 “쿨그린”이라는 연꽃과 식물. 강한 자외선을 받으면 잎 표면을 보호하는 젤이 강력한 증산 작용. 자외선 차단과 냉각 효과 동시 제공. 

관상 식물관. 
원예를 위한 관상 식물들. 꽃이 예쁘거나, 잎이 아름다운, 혹은 수형이 아름다운 식물들 전시. 가장 인기 있는 식물은 “나이트블라썸”. 벚나무를 닮은 이 식물은 열대 바다를 연상시키는 에메랄드빛 잎이 특징. 벚꽃을 닮은 은은한 향의 꽃을 피우며 밤에는 줄기에서 새하얀 빛을 내뿜음. 

“나이트블라썸”은 이곳에 최근 들어온 식물이다. 에린의 몸에 나무를 심은지 1년이 지났다. 나무는 에린의 곰팡이와 공생 관계를 맺었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종으로 자랐다. 에린의 나무는 에린 가족의 동의를 얻어 최근 이곳 전시관으로 옮겨졌고, “나이트블라썸”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나이트블라썸은 관광 명물이 되었다. 나무가 밤에 뿜는 황홀한 빛을 보기 위해 야간 개장 때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수천명의 관람객이 보고 갔지만 아무도 이 나무의 기원을 알지 못했다. 나무의 발광 에너지가 에린의 몸에 기생했던 곰팡이의 작품이란 사실도, 나무의 뿌리에 에린이 묻혀 있다는 사실도, 나무 밑둥에 에린 킨젤라의 이름과, 그의 생몰 연도, 그리고 “꽃을 사랑했던 소녀의 기억”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에이바는 나이트블라썸 앞에 서 있었다. 

어떻게 나무가… 색이 이렇죠? 

눈 앞에 바다가 펼쳐진 것 같다. 햇빛에 따라 색이 바뀌어 어떨 때는 오로라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 회사 정말… 대단한 거 같아. 

에이바는 이곳에 올 때마다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이 전시관은 외부인들을 위한 게 아니라 직원들을 위한 곳인 것 같다고 했다. 에이바는 이곳이 세계 최고의 마술쇼장이라고 했다. 세상에 없던 걸 만들어 낸, 브로디 외엔 누구도 할 수 없는 마술쇼. 

에이바는 여기 전시된 식물들이 기존에 존재했던 식물들의 변종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것도 완전히 새로울 순 없다. 이곳의 신종 식물들은 기존 식물들의 유전적 특성을 합치거나 강화한 것들이다. 자연은 흐르는 물길이다. 인간은 원래 흐르던 물길을 이어 붙이거나 갈라 놓는 것 뿐이다. 사람들은 밤에 광채를 뿜는 식물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런 건 영화나 게임 속에서나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구상엔 이미 여러 곰팡이와 식물종이 야광 유전자를 진화시켜 왔다. 

하지만 이렇게 예쁘진 않을 거 아니에요. 자연 상태 그대로 둔다고 이렇게 될 순 없지 않을까요?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게 알 수 없는 일인지도 사실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브로디는 종의 분화에 대해 생각했다. 자연 그대로 두면 수십만년이 걸릴 종의 분화를 이곳에선 문명의 도구를 이용해 몇 개월만에 가능케 한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도 놀랍도록 빠른 종의 분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종은 끊임없이 분화한다. 종은 대체 왜 분화되는 것일까? 

.............번식과 종 사이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은 유희라는 생명의 본질에 의해 정당화 된다.

브로디는 어릴 때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던 일이 생각났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며 생각했다. 무리와 다른 생김새의 개체는 필연적으로 왕따를 당하는 것일까? 서로 다른 종으로 여겨지기 때문일까? 나는 저들과 다른 종일까? 

지금 생각해 보면 왕따는 수많은 종의 분화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왕따 행위는 개체의 이질성에서 비롯된다. 이질적인 개체는 왕따에 의해 무리에서 이탈하고, 다른 터전에서 인생을 꾸린다. 무리와 다른 환경에 적응하고, 다른 영양원을 섭취하고, 다른 개체와 짝짓기를 한다. 종이 분화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왕따는 차별도 미움도 두려움도 아니었다. 재미였다. 그 개체를 왕따 시키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어서 그런 거였다. 혹시, 그게 종 분화의 본질일까? 자연은 정말 재미로, 유희라는 목적으로, 번식의 효율을 희생시키면서, 종을 분화하는 것일까? 생명은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말, 그게 모든 것의 원인일까? 

아버지는 브로디를 입양했을 때 브로디를 이질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브로디를 동일한 무리로 여겼다. 브로디는 분화하지 않았다. 그는 아일랜드 인으로 자랐다. 그는 생물학적 부모를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고, 모국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았다. 브로디는, 자신을 무리의 일원으로 받아준 부모와, 마을 사람들, 그리고 자신을 도와준 수많은 아일랜드 인들에 의해 동일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과 동일한 소속감을 뼈 속 깊이 새겼다. 

에이바는 브로디의 아버지를 처음 만난 날 가죽 장갑을 선물했다. 직접 만든 장갑이었다. 어머니가 집에서 가죽 공예를 한다고, 자기도 배웠다고 만든 것이다. 잘 만든 장갑이었다. 아버지는 에이바를 마음에 들어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브로디는 알 수 있었다. 농부의 이심전심. 농토의 전우는 서로의 견해를 공유하지 않는다. 브로디는 아버지가 기뻐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건 아버지에게 삶의 새로운 보람일 것이다. 아버지가 브로디를 입양한 궁극의 목적은 어쩌면 이런 것이었을지 모른다. 아버지는 이런 미래를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자기도 모르게 이런 미래를 희구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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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시는 주은의 방 앞에서 망설였다. 원래 노크 하지 않고 그냥 들어갔지만 이제는 노크를 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트리시는 주은과 사이가 어색해지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그냥 평소대로 문 벌컥 열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자기도 모르게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언니 뭐해? 

학교 숙제. 

바빠? 

아니야, 안 바빠. 

트리시는 뭔가 말을 꺼내려다 풋하고 웃는다. 웃음이 터져 나와 낄낄대고 웃는다. 

언니도 어이없지. 나도 그래. 언니는 내가 한심하겠지만 사실은 나도 그래. 

주은도 웃는다. 하지만 주은은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없었던 일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트리시는 그걸 언급하기 위해 온 게 아니었다. 

제임스랑 얘기했어. 언니에 대해. 

트리시는 주은이 진짜로 중국에서 온 스파이가 아닐까 걱정됐다고 했다. 제임스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자꾸 하느냐며 어처구니 없어 했지만 트리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나는 언니가 어떤 사람인지 걱정하는 게 아니라, 혹시 우리집에 색안경 낀 사람들이 처들어 와서 언니를 잡아갈까 봐 걱정인 거야. 

주은은 웃음을 참고 있었다. 트리시는 지금 웃기려고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았다. 진심으로 걱정돼서 하는 말 같았다. 

언니가 설사 만에 하나, 진짜 오백만분의 일 확률로, 중국 스파이가 맞다고 해도, 나는 계속 언니 편일 거야. 언니는 우리 가족이잖아. 

주은은 트리시의 말이 괜히 한 말이 아니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트리시는 정말로 주은을 아껴서 하는 말이었다. 지금의 행복한 관계에 돌발 변수가 생기는 게 두려운 것이었다. 

근데 언니 혹시…

응. 

색안경 낀 사람들 처들어 오면 그 사람들도 때려 눕히는 건 아니겠지? 

주은이 참았던 웃음을 터뜨린다. 트리시도 같이 웃는다. 주은은 한참 웃다가 그 사람들이 너한테 못된 짓을 하면 그러겠다고 말했다. 트리시는 고개를 끄덕인다. 주은에게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방에서 나갔다. 

웃고 끝난 대화였지만, 주은의 마음 속엔 불안이 남았다. “색안경 낀 사람들”은 실제 존재하는 변수다. 그들은 주은을 감시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들은 주은이 갖고 있는 것을 들여다 볼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어떤 핑계를 만들어서든. 아버지의 파일은 숨겨야 한다. 암호화 된 것만으로는 안전하지 않다. 

주은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아버지의 파일, 그냥 지워 버릴까. 트리시의 말이 머리 속에 맴돈다. 

…나는 언니 편일 거야, 언니는 우리 가족이잖아. 

가족보다 소중한 게 있을까? 아버지의 파일은 분명 인류 종족의 미래에 소중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겐 아니다. 다음 세대 인간들에게는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지금 당장 우리 가족에겐 그렇지 않다. 

하지만 아버지의 파일은, 버리기엔 너무 많고 무겁다. 거기에 뭐가 있는지 아는 주은에겐, 어쩌면, 세상 하나를 지워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모리스를 찾아 온 사람들이 말한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만한 것들만 지워 버리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아버지의 연구는 모든 것이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어느 한 부분을 지운다고 그 부분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파일은 논문도 아니고 보고서도 아니고 설명문도 아니다. 또 다른 세상의 생태계다. 

아버지는 주은이 자신의 운명을 이어 받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주은은 과학자도 의사도 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주은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런 말을 남긴 걸까? 아버지는 뭘 본 걸까? 주은의 미래에서 무엇을 본 걸까? 

작품 등록일 : 2026-04-02

▶ Brody’s files #50

▶ Brody’s files #48

유희...갑자기 내 존재의 유희는 무엇일까 생각해보게되는
  
과연..........!
주은의 선택은!!!!!!!!!!!!
(두근두근두근두근)
진미오징어   
유희가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면
자연이 유희로 번식의 효율을 상쇄하는 이유가 있네
슬리피캣   
트리시가 주은을 움직이게 하네
노크전 트리시의 문 앞에서의 잠시있던 망설임이 인상깊다ㅋㅋ
내편으로 된 만든 가족과 피로이어진 아버지의 유산.. 과연 주은은 아버지의 운명을 이어받을까
슬리피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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