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s files #42
에린은 무척 말라 있었다. 몸에 핏기가 사라지고 피부가 누런색과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바짝 마른 피부 조직은 나무 껍질처럼 쭈글쭈글 했다. 에린은 자기가 벌써 나무가 돼 버렸다고 웃었다. 아직도 웃을 기운이 남아 있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에린의 몸에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안락사 날이었다. 공식적으로는 에린에게 마지막 치료제를 투여하는 날이지만, 실제로는 안락사였다. 브로디는 에드나와 함께 있었다. 에드나는 브로디와 함께 에린을 위한 마지막 치료제 - 안락사 약물을 개발했다. 브로디는 이 약물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저 필요해서 개발한 것 뿐이었다. 에린에게 가장 절실한, 지금 당장 필요한 약이었다. 

에드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에린에게 투여하는 약은 일반적인 안락사 약이 아니었다. 인류 구원의 약이었다. 인간이 가장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 세상 모두가 꿈 꾸는 안락사 약이었다. 부작용도 없었다. 다양한 종류의 동물에게 시험해 보았다. 쥐, 닭, 비둘기, 개, 고양이, 돼지, 사슴, 원숭이… 단 한 건의 이상 증세도 없었다. 투여 3일만에 세로토닌과 옥시토신 수치가 완만히 상승하며 스트레스 반응이 급격히 줄어 들었다. 투여 5일 후엔 모든 종류의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이 사라지고 오직 행복감만 남았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격언의 궁극의 단계. 뇌 세포가 소멸되면서, 기억이 사라지고, 인지력이 사라지고, 어머니 배 속 태아의 상태로 돌아간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눈도 귀도 입도 없이 자궁 속을 떠다니는, 생에 대한 무지한 희망으로 가득한 상태로 죽는다. 그러고 보니 치매 환자들 중에도 이런 경우가 있다고 들은 것 같다. 극악의 희귀한 확률로, 너무나 운 좋게 행복한 죽음을 맞는 경우. 브로디는 어떻게 한 걸까? 어떻게 뇌의 고통을 느끼는 부위부터 소멸시킨 걸까? 어떻게 우연이 아닌, 계획에 의해, 생명의 퇴화 과정을 통제한 걸까? 에드나는 의사였지만 평생을 공학도로 살았다. 공학도의 사고로는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수없이 많은 시나리오를 상정해 봐도, 도저히 현실화 불가능한 현실이었다. 

에드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걸 일회용으로 쓰고 버리겠다니. 에드나는 브로디에게 간곡히 말했다. 이건 인류를 위한 약이라고. 이걸로 노벨 평화상을 받을 수도 있다고. 어쩌면 노벨 평화상과 의학상을 동시에 수상할 수도 있다고. 지난 수십억년 동안 동물들을 끔찍히 괴롭혀 온 운명적 고통에서 해방시킬 구원이라고. 하지만 브로디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당연히, 노벨상에도 관심이 없었고, 인류 고통 해방에도 관심 없었다. 브로디는 지금 에린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왜 상업화를 생각하지 않느냐는 말에 브로디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생명은 앞날을 예측할 수 없어. 

브로디는 이 안락사 요법이 실험실 밖에서 사용될 경우 예상치 못한 결과를 빚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경우 어떤 참사가 발생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게 과연 참사일까. 어차피 죽기로 한 사람들인데. 고통을 견딜 수 없어 죽기로 한 사람들인데. 에드나의 아버지는 전립선 암을 앓고 있었다. 병원 치료를 거부한지 몇 년이나 됐으니 암이 다른 부위에 전이됐을 것이다. “저희 부모님에게만 쓰면 안 될까요” 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브로디의 말투와 표정엔 협상의 여지가 없었다. 

에린은 이미 한달 전 자신에게 투여될 약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 약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브로디였지만, 약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에드나였다. 에린과 에드나는 원래 말을 섞지 않던 사이였지만 에린이 회사 연구실에 입원한 뒤로 친구가 되었다. 에드나는 지금은 자기가 에린의 남편보다 에린과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 인생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가자며 에드나는 자신이 아끼는 술을 에린과 나눠 마셨다. 에린의 몸은 알코올을 섭취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지만 대신 한 방울의 술로도 엄청난 취기를 느꼈다. 한 방울의 술에 시름을 잊고, 두 방울의 술에 골아 떨어진다 - 평생 술을 마시지 못했던 에린은 아이러니 하게도 죽을 때가 되어 술을 즐겼다. 에드나와 함께 만취 상태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서로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털어 놓기도 했다. 에드나는 에린의 마지막 나날에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에린은 에드나의 말을 쉽게 이해했다. 자신의 몸에 기생한 곰팡이는 제거할 방법이 없으며, 설사 그런 방법이 있다고 해도 곰팡이 없이 생존할 가능성은 없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에린은 자신이 천수를 누릴 가능성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에린에게 남은 선택은 편히 죽는 것 뿐이었다. 에드나는 정성주의 파일에서 어떻게 안락사 방법을 찾았는지 이야기 해주었다. 에드나는 30년 전 어느 중국 여자 몸에 기생한 곰팡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에린이 말했다. 

그러니까 바보가 되는 거지. 곰팡이가 뇌 세포를 먹어서. 

응 바보가 되는 거야. 

에린은 큭하고 웃었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에린은 자신이 죽는 과정을 이해했다. 약물이 투여되면 에린의 뇌 세포는 약 한달의 기간에 걸쳐 사멸될 것이며, 이 한달 동안, 가장 먼저 운동 기능, 그 다음은 기억력, 그 다음엔 인지력 순으로 잃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처음 일주일 뒤 걷기, 서 있기, 손으로 물건 쥐기 등의 거의 모든 운동 능력이 상실될 것이며, 2주 뒤에는 말하는 능력도 잃게 될 것이다. 3주 뒤에는 거의 모든 기억을 잃을 것이며,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4주 뒤에는 모든 감각 기능이 정지 되고, 무아지경 속에 빠진 채, 생명 유지 기능이 멈출 것이다. 호흡과 심장 박동이 일주일 동안 천천히 느려지다 멈출 것이다. 이 과정에 고통은 느끼지 못할 것이며, 가벼운 발열 증상 외에 다른 증세는 없을 것이다. 

에린에게 이제 남은 선택은 2가지였다. 하나는 그대로 죽어 땅에 묻히는 것, 다른 하나는 나무가 되는 것. 에린의 곰팡이는 숙주와 함께 소멸될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에너지 원을 찾을 수도 있다. 곰팡이는 식물을 어디서도 자라게 한다. 곰팡이는 식물을 통해 양분을 얻고, 식물은 곰팡이를 통해 영토를 확장한다. 정성주는 인공적으로 불가능한 자연의 선택을 현실화 했다. 어느 과학자의 말이 생각났다. 자신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앉은 난쟁이였다고. 정성주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앉은 브로디는 운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필연이었을까. 상상하지 못했던 이 모든 결과는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이었을까. 그 과학자가 만유인력을 발견한 것처럼, 수많은 필연의 갈래가 모여 새로운 길이 만들어진 걸까. 

에린은 처음부터 마음을 정했다. 그는 나무가 되기로 했다. 기꺼이 나무를 위한 흙이 되기로 했다. 아무 의미없는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는 대신, 생명의 연속성을 갖기로 했다. 

제 곰팡이는 수호천사였어요. 지금 걔들이 제 몸에서 양분을 취하는 건 당연한 대가라고 생각해요. 제가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된 것도, 결혼을 하고 무이를 낳은 것도, 모두 얘들 덕분이에요. 얘들이 아니었으면 전 고통 뿐인 인생을 살다 죽었겠죠. 저는 얘들이 제 몸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지금껏 저와 함께 살았고, 저와 생사고락을 함께 했어요. 얘들이 계속 살기를 바라요. 나중에 얘들에게 학명을 붙인다면 제 이름을 붙여주세요. 

에린은 왜 갑자기 곰팡이가 공생 관계를 깬 것인지 굳이 알려 하지 않았다. 에린은 스스로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의 삶의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아이를 낳은 후의 삶의 태도가 바뀐 것이 공생을 깨뜨린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몸이 살기 위해 곰팡이를 선택해놓고, 이제 와서, 아이를 낳은 뒤에, 이기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곰팡이를 불러 들인 몸이, 지금껏 살기 위해 곰팡이를 이용한 주제에, 살만해지니 쫓아 내려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에린이 가고 난 뒤에도, 다시 이런 케이스가 발생한다고 해도, 그래도 역시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에린은 어떤 나무가 될 것인지 선택하지 않았다. 모든 건 브로디의 판단에 맡긴다고 했다. 

약물을 주입할 때가 됐다. 에드나는 에린의 목에 바늘을 꽂았다. 목 정맥은 에린의 체내 유일하게 접근 가능한, 마지막 살아 남은 핏줄이었다. 에린의 생애 마지막 주사였다. 손등에, 손목에, 허벅지에, 척추에, 평생에 걸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주었던 주사. 이젠 마지막이다. 

약물이 주입되고 에린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얼굴엔 어떤 미련도 회한도 없었다. 그에겐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에린은 모든 걸 다 버리고 떠나는 것 같았다. 희망도 절망도 쾌락도 고통도, 그리고 자기 자신도. 에린은 브로디에게 물었다. 

정성주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브로디는 생각했다. 정성주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떤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 존재를 부정했다. 그가 범죄를 저지른 것도, 반인륜적 선택을 한 것도, 자신의 존재를 부정했기 때문이었다. 자기 자신은 존재하지 않고 가설의 증명이라는 목적만 존재했기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선 이타적인 사람이었다. 과학을 위해, 진리 탐구를 위해 제 자신을 버린. 지금껏 정보부와 언론이 발설한 정성주에 관한 허무맹랑한 가설들은 모두 사실이었다. 정성주는 인종에 따라 발병률이 달라지는 감염원을 만드는데 성공했으며 그 감염원이 번성하는 방법도 알아냈다. 하지만 정성주는 연구 결과를 제 자신과 함께 어둠 속에 묻어 버렸다. 그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지만 이타적으로 죽었다. 그는 범죄자였지만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분명 많은 걸 이룬 사람이었다. 브로디는 에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훌륭한 과학자였어. 

에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린은 브로디를 믿었다. 브로디를 믿는 것처럼, 에드나는 정성주도 믿었다. 에린에게 브로디는 부모님과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이 어릴 때 아픈 자신을 키워준 것처럼, 이제는 브로디가 아픈 자신을 마지막에 함께 해준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복받은 인생이었다. 고통 많은 인생이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한번도 태어난 게 후회스럽지 않았다는 게, 한번도 살아 있는게 슬프거나 저주스럽지 않았다는 게 얼마나 복된 일인지 에린은 깊이 깨달았다. 무이는 엄마가 없어도 잘 살 것이다. 엄마의 분신이 되어 당당히 새 삶을 살 것이다. 그렇게 서로의 삶을 이어주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진 운명이었다. 

약물 주입이 끝났다. 이제 에린의 상태는 그의 뇌파 그래프를 통해 브로디와, 에드나와, 그의 가족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에린의 감정과, 욕구와, 세상을 향한 모든 심적 반응은 연구 데이터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몸의 곰팡이는, 에린의 모든 걸 소모하고 다른 에너지원을 찾을 것이다. 에린의 곰팡이는, 에린의 분신이 되어, 새로운 생명 안에서 살 것이다. 

약물은 신경 안정제와 함께 투여 되었다. 에린은 깊은 잠에 빠졌다. 브로디와 에드나는 에린이 잠든 연구실 문을 조용히 닫고 퇴근을 준비했다. 

에드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의 연구 결과는 극비에 붙여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브로디는 모든 내용을 에드나에게 공유했다. 정성주의 파일을 해석해서 에드나에게 건네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브로디가 새로 발견한 연구 기록도 에드나에 모두 일일이 알려주었다. 에드나 자신이었다면 이런 건 자기 부모에게도 알려주지 않았을 것이다. 소중한 지적 재산이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의 목적과 다르게 남용될 수도 있다. 정당한 권리가 훼손되는 것이다. 에드나는 브로디가 왜 이런 위험을 고려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했다. 

사장님. 

응. 

왜 이걸 저와 공유하신 거죠? 

뭘? 

에린에 관한 것들이요. 곰팡이랑 약물이랑… 공생에 관한 모든 것들이요. 

…같이 일하니까. 

이건 사장님 연구 결과잖아요. 제가 이걸 외부에 들고 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제가 이걸 다른 사람한테 팔 수도 있잖아요? 

아마 아닐걸. 

“아마 아닐걸.” 브로디의 말은 추측이나 예상이 아니었다. 현재 완료였다. 사실 진술이었다. 마치, 미래를 보고 온 사람처럼, 인간 운명을 꿰뚫고 있는 사람처럼, 마치 “오늘 날씨 맑았잖아” 라고 말하는 것처럼, 브로디의 말에는 분자 단위의 의심도 없었다. 에드나는 브로디를 한참 바라 보았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범상치 않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껏 알던 것과 달랐다. 얼마나 많은 걸 알아야 이런 확신을 할 수 있을까. 어떤 데이터를 쌓아야 이런 단계에 이를 수 있을까. 브로디는 정성주의 파일에서 무엇을 본 걸까. 

작품 등록일 : 2026-03-28

▶ Brody’s files #43

▶ Brody’s files #41

잘자 에린
  
고통으로 가득차 있었지만
단 한번도 살아있다는게 저주스럽거나 슬프지 않았던 삶은
참으로 복받은 것이다

에린의 유전자는 무이를 통해 전해지고
같이 살았던 곰팡이들 역시 사멸되지 않고
또 어디론가 그들만의 삶을 찾아
떠날지니

먼지였어도 하나도 이상할게 없었던 외로운 삶이
이토록 담담하게
품었던 빛을 다시 세상에 전해주고
더이상 고통받지 않는 곳으로 떠날 수 있다면

그건
슬픈 것이 아닌 것이다
진미오징어   
에린 ㅡ.ㅜ

자식의 성장을 볼 수 없는게 아쉬울뿐
그 생명이 아들 또 그 자식에게 이어져
에린이 바라던 나무처럼 삶이 이어지기를
Kelly   
아름답다

언젠가 소장이 동화를 쓰려고 퇴사할때 마음 따뜻한 회사 동료가 진짜 진심으로 걱정해줬다고 했는 데

그 동료한테 이 42편 보여주고 싶다. 이렇게 아름다운 동화를 그 사람이 썼다고
복숭아   
에린의 죽음은 담담했구나. 나도 그랬으면
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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