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s files #37
…나랑 마지막으로 달렸던 말이 스티브였어. 유명 경주마의 자식이었지. 

맥기는 술에 취해 있었다. 그는 술을 마시면 얼굴이 벌개지는 사람인데 워낙 얼굴이 검은빛이라 얼굴색이 더 검게 된 느낌이었다. 

바비큐 파티 날이었다. 리즈 집안의 모두가 모여 야외에서 고기를 굽는 날이었다. 주은은 그냥 식당에서 밥 먹을 것이지 왜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서양인들에겐 흔한 일이라고 했다.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친목을 도모하는 게 전통이라고. 이 날은 평소와 달리 남자들이 음식을 만들었다. 제임스가 고기를 준비하고 모리스와 맥기가 고기를 구웠다. 맥기는 “설마 여기 말고기는 없겠지” 라는 재미없는 농담을 했다. 

밥을 배불리 먹고 남은 석탄을 모아 불을 피웠다. 모두가 음료수 하나씩 들고 동그랗게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맥기가 말이 제일 많은 말을 했다. 아마도 평소 외로웠던 것 같았다. 

…스티브도 원래 경주마로 키우려고 했거든. 근데 재능이 없었어. 한번도 이기지 못하니까 마주가 얘를 다른 곳에 팔아 버린 거야. 그렇게 열번 넘게 버림 받다 결국 한국으로 가기로 된 거야. 한국으로 가는 건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얘기야. 거기는 웬만하면 안 보내거든. 

맥기는 주은의 눈치를 보았다. 맥기는 주은의 아버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맥기와 주은은 서로 친했다. 주은이 워낙 마구간을 자주 찾아 오니 둘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주은의 아버지가 중국인인 줄 알고 있었던 맥기는 그가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맥기가 한국에 대해 하는 것은 오래 전 친구의 아버지가 참전한 나라였다는 것과, 퇴역한 경주마를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돈벌이 하는 나라라는 사실 뿐이었다. 

…그때 내가 우연히 본 거야, 스티브라는 이름을. 나이가 많지 않은 은퇴 경주마들을 싸게 사서 재활시켜 보려고 했거든. 시장에 나온 퇴역 경주마 리스트를 보고 그 전설의 스티브가 아직 살아 있었나? 하고 호기심에서 찾아갔거야. 어떤 놈인지 모르고 갔는데, 마구간 놈들 중 한놈이 나한테 머리를 흔들고 입질을 하는 거야. 날 꼭 아는 것처럼 문짝을 쿵쿵 몸으로 밀더라고 자기랑 같이 가자고. 내가 다른 말한테 가니까 또 애타게 불러 큰소리로. 얘 뭔데 이러나 보니까 걔가 스티브였더라고. 인연이라고 생각했지. 전생이 혹시 이어져 있었던 겐가? 바로 이 놈을 사겠다고 하고 데려왔어. 

…나이가 6살이었으니까 사실 은퇴해도 이상할 게 없었는데, 나랑 있으니까 회춘하더라고. 도살장 행이었다 생환했다고 생각한 걸까? 밥도 잘 먹고 놀기도 잘 놀아. 그래서 내가 처음부터 다시 가르쳤어. 출발하는 법, 달리는 법, 에너지를 끌어 올리는 법… 꼭 처음 해보는 놈처럼, 아직 망아지 새끼인 것처럼 재미있어 하더라고. 

…확실히 재능 있는 말은 아니었어. 아버지로부터 아무것도 물려 받지 못했던 걸까. 경주마로서는 정말 평범한 놈이었어. 근력도, 유연성도, 승부욕도, 다른 말들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었어. 하지만 특이점이 하나 있었지. 성격이 긍정적이라는 거. 늦게 출발해도, 뒤처져도, 지고 들어와도, 사람들이 욕하거나 실망해도, 동요가 없었어. 매번 진다는 걸 알면서도 경기에 나갈 때마다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꼭 초등학교 운동회 나가는 것처럼 들떠서 나가곤 했지. 

…걔는 그게 재능이었던 거야. 달리는 걸 좋아했다는 게. 다른 말들이랑, 출발 소리에 맞춰서, 우르르 다 같이 달리는 게 좋았던 거야 걔는. 경마장에서 경마를 진심으로 즐기는 유일한 생명체였을까. 달리는 놈이 재미있으니까 타는 놈도 재미있더라고, 야 얘는 감이 좋은데? 잘 달릴 거 같은데? 어느날 예감이 맞은 거야. 꼴찌로 출발했다가, 중간쯤 돌았는데 갑자기 흥이 돋았는지 바람을 타더라고. 집중력이 극에 달하면 말이 숨소리가 달라지거든 산소를 들이 마시기 위해 숨을 쉬는게 아니라 바람을 타기 위해 숨을 쉬는 거야. 숨이, 흥분해서, 미쳐 날뛰면서, 리듬을 타는 거야. 숨이, 노래를 하는 것처럼, 춤을 추는 것처럼, 그렇게 되는 거야. 흥분이 격해지면서, 집중력이 극에 달하면서, 차분해지는 거지. 적막해지는 거야. 태풍의 눈처럼. 이때가 말이 우승하는 때야. 

…스티브가 처음 우승했을 때 배당이 어마어마 했지. 딱 한명 찍었더라고. 스티브를. 그 사람 결과를 보고 움직이질 못하더래. 아마 꿈 속에 있는 줄 알았겠지. 그게 시작이었어. 역전의 명수, 스티브의 전설의 시작. 

스티브는 언론에 여러 번 이름이 오를 내릴 정도로 유명한 말이 되었다. 총 29회의 대회에 나와 16번을 우승한, 맥기와 그의 투자자들에게 많은 돈을 벌어 준 효자 말이었다. “그 아버지에 그 자식.” 언론이 자주 쓴 표현이었다. 세상은 스티브가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 받은 게 아니라 좋은 주인을 만나 역전의 명수가 된 것이란 사실에 관심 가지려 하지 않았다. 

…내가 그 때 홀린 거야. 돈 독이 오른 거지. 자식처럼 키웠는데, 잘 안 되면 나랑 같이 은퇴해서 목장에서 같이 살지 그랬는데, 경기가 잘 풀리니까 얘를 돈 줄로 보기 시작한 거야. 황금알 낳는 거위로 여긴 거지. 

맥기는 스티브가 잦은 경주에 지쳐 있었다는 사실을 고의적으로 외면했다. 더 이상 스티브의 경기는 사적인 게임이 아니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돈이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의 운명이 오고 가는 비즈니스였다. 

…하루는 스티브가 경기 나가기 싫어하더라고. 한번도 그랬던 적이 없었던 놈이, 유독 그날 몸을 빼는 거야. 그제서야 알았지. 내가 얘를 혹사시켰구나, 그래서 오늘만 달리고 이제 한동안 쉬어야겠다, 알았으니까 오늘만 달리고 쉬자고 달래서 겨우 데리고 나왔는데… 바람을 타지 못하더라고. 몸이랑 마음이 같이 뛰지 못하고 몸만 내달리는 거야. 마음은 뒤쳐지는데 몸만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 달리기 싫은데, 너무 싫은데, 나 때문에 억지로 달린 거야. 호흡이 흐트러지고 숨이 거칠어지더라고. 아 얘 오늘 이상하다, 안 되겠다, 그 순간 그대로 둘이 같이 굴렀어. 공중으로 붕 떠서 날아 오른 거 같더니 땅에서 한참을 구른 거지. 엉덩이가 찌릿하고 어디 부러진 느낌이 들더라고. 근데 스티브가 일어나지 못하는 거야. 가슴이 철렁했지. 큰 일이다, 큰 일 났다, 수의사들이랑 인부들이 달려 오고, 스티브를 보더니 그러는 거야. 다리가 부러졌다고, 

…쓰러진 스티브가 날 보면서 그러더라고 “아빠 미안해” 말의 눈이… 그렇게 그렁그렁 감정 가득한 걸 본적이 없어. 아직도,

맥기는 말을 멈추고, 울분을 토하듯, 가슴을 치며 한탄했다. 

…아직도 그런 눈을 본적이 없어 사람이든 동물이든. 내가 그랬어, 수의사한테. 안락사는 내가 시키겠다고. 내 자식이니까 내가 보내주겠다고. 스티브는 자기가 죽는 줄 몰랐어. 그냥 넘어진 줄 알았겠지. 스티브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어. 늘 그랬듯 최선을 다해 달린 것 뿐인데, 그것 때문에 죽는다는 걸 몰랐지. 다들 그때 내가 골반이 부러져서 은퇴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때 죄를 지어서 그만 둔 거였어. 스티브가 나 때문에 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은퇴한 거야. 

트리시가 훌쩍이며 울었다. 제임스는 석탄을 뒤적이며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조안 할머니는 이 얘기를 여러 번 들은 것 같았다. 지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조안 할머니는 그냥 이야기가 재미없는 것일 수도 있었다. 조안 할머니는 자식 손자들과 성격이 많이 다른 것 같았다. 원래 성격 차이일까 오래 살았기 때문일까, 할머니는 쓸데없는데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맥기는 울고 있는 트리시를 보고는 주은에게 뭔가 말하려고 손을 들었다. 그러자 주은은 반사적으로 일어나 마구간으로 향했다. 맥기는 깜짝 놀랐다. 주은은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자기가 뭔가를 말하기 전에 이미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맥기는 몇 년 전 스티브를 닮은 말을 사온 적이 있었다. 주은에게 스티브 얘기를 하면서 이런 놈을 오랫동안 찾아 왔다고 말했다. 20년이 넘도록 하루도 스티브를 잊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스티브에 더 과몰입할수록 닮은 놈을 찾기가 더 힘들었다고 했다. 맥기는 20년만에 처음 스티브를 닮은 말을 봤을 때 놀랍지도 감격스럽지도 않았다고 했다. 맥기는 그저 운명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래 이 놈이야 하고 데려와서 스티븐슨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주은은 스티븐슨을 데리려 간 거였다. 트리시에게 스티븐슨을 보여주고 싶은 거였다. 맥기와 주은은 죽이 잘 맞았다. 주은은 맥기의 조수였다. 주은은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면 아침마다 마구간에 와서 말똥을 치우고 건초를 날랐다. 맥기가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주은은 어김없이 휴일마다 마구간 말똥을 치웠다. 아버지 병원에 있을 때도 매일 했던 일이다. 중증 장애, 치매 환자들의 똥에 비하면 말똥은 아름다운 유기물이었다. 주은은 말똥을 치우는 것이 행복했다. 지긋지긋한 인간 냄새보다 말 냄새가 좋았다.  

주은이 스티븐슨을 데려오자 맥기가 말했다. 

트리시, 쟤가 스티브야. 많이 닮았어. 외모도 성격도. 가서 인사해. 

트리시는 일어나 스티븐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스티븐슨은 착한 말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 거부감 보이지 않았다. 주은 때문이었다. 주은이 스티븐슨과 친했기에 스티븐슨도 트리시에 친근감을 보였다. 

제임스, 너도 가서 스티븐슨 구경해. 

맥기가 말했다. 제임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센티멘탈한 상황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도 좋아하지 않았다. 맥기가 웃으며 말했다. 

자식, 그래도 남자라고. 

제임스는 칭찬이라도 들은 것처럼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제임스는 남자다운 것에 관심이 많았다. 남자답다는 말이 그에겐 최고의 칭찬이었다. 어릴 때 모리스가 그렇게 키운 덕이었다. 모리스는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아들이 생기면 사나이가 해야 할 모든 걸 다 가르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육상, 수영, 권투, 낚시, 사냥, 암벽 등반까지 제임스는 아버지를 따라 온갖 액티비티를 섭렵했지만 승마만 따라 하지 못했다. 제임스는 말을 타고 달릴 때 고환에 치밀어 오는 그 거북한 느낌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익숙해지면 괜찮다고 하지만 제임스는 그걸 참을만큼 승마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집보다 승마를 배우기 좋은 환경이었음에도 제임스는 말을 타보지도, 말과 친해보지도 못했다. 

스티븐슨은 트리시 가까이 머리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트리시가 울음을 그치고 스티븐슨 머리에 뺨을 댔다. 따뜻하고 단단한 느낌. 말을 이렇게 가까이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감정이 진정된 것 같았다. 트리시는 스티븐슨의 고삐를 쥐고 있는 주은을 보았다. 두 마리의 서로 다른 생명이 서로 다른 표정으로 위로해주고 있었다. 따뜻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받은 인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좋은 집에 태어나 그동안 투정만 하고 산 것 같았다. 트리시는 주은에게 들릴 듯 말 듯 나지막히 말했다. 

고마워. 

작품 등록일 : 2026-03-25
최종 수정일 : 2026-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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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글이야
복숭아   
눈물이 멈추지가 않네
빌어먹을
진미오징어   
ㅠㅜ
  
스티브같은 사람을 오래 지켜보고 있는데
오래 지켜보니 알게되었다
슬리피캣   
서로 다른 생명체가 서로 다른 표정으로
위로해준다니 쨍하다
Ke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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