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일리 교수와의 면담은 저녁 시간까지 이어졌다. 오라일리 교수는 오후 시간을 통째로 브로디를 위해 내주었다. 그는 인기 교수였다. 브로디와 면담 중에 오라일리 교수를 찾아온 학생들이 적어도 5명이었다. 학업에 용무가 있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선물이나 먹을 걸 전해주는 학생들도 있었다. 어떤 학생은 하트 스티커가 붙은 편지를 주고 갔는데, 오라일리는 편지를 들여다보지도 않고 책장 아무 곳에나 쑤셔 넣었다. 저 편지는 아마 평생 뜯어 보지 않으리라. 다섯번째 학생이 방문하고 난 뒤 오라일리 교수는 문에 "부재 중" 푯말을 걸고 문을 잠갔다.
…사실, 지금 할 얘기는 나중에 말씀 드리려고 한 건데…
오라일리 교수는 목소리를 낮췄다. 표정이 심각했다.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짓지 않는 편이다. 에린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을 때 이후 처음 본 표정이었다. 오라일리는 본론을 이야기했다. 정성주와 그의 파일에 관한 이야기였다.
…정성주는 죽기 전 중국 정부와 협상을 했습니다. 협상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중국 정부에서 정성주에게 요구 사항을 전달한 거죠. 인종에 관한 겁니다.
정성주는 중국 정부와 연구 결과를 공유하는 관계였다. 정성주의 자의에 의한 게 아니라 중국 정부의 의도였다. 그의 연구비와 연구 시설을 지원해주고, 거기서 발생하는 모든 범죄 행위를 눈감아 주는 대가로 연구소에 정부 인력을 심어둔 것이다. 정부 인력들은 정성주의 연구 결과를 정부 측과 공유했다. 정성주는 사실상 정부가 고용한 연구원들과 함께 일한 셈이었다.
…정성주가 발견한 것 중 하나가… 곰팡이에 취향이 있다는 거였습니다. 트러플 버섯 있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취향의 곰팡이거든요. 수백수천가지 조건이 다 충족하지 않으면 절대로 트러플을 만들지 않습니다. 아직도 우리 인간은 트러플이 어떤 조건에 의해 버섯을 만드는지 모릅니다. 양식이 불가능한 이유죠. 그렇게 비싼 가격에 팔리는데도 트러플 버섯은, 사기꾼 외에는, 누구도 양식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정성주는 여기에 호기심을 느껴요. 그렇다면 곰팡이는 개체의 차이에 의해 생존과 번성이 결정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곰팡이가 나무를 가려 번성한다면 사람도 가릴 수 있는 것 아닌가.
…지금껏 늘 그랬듯, 정성주는 자신의 가설을 현실화 합니다. 지금까지는 개체의 면역력에 의해 감염 여부가 결정됐지만, 정성주의 실험실에서는 면역력과 상관없이 그 사람의 체취에 의해, DNA의 차이에 의해 감염 여부가 결정됩니다. 지금까지는 개체의 면역력에 의해 감염원이 걸러지는 게 원칙이었는데, 정성주의 실험실에서는 감염원이 개체를 선택한 겁니다. 감염원이… 자기 입맛에 따라 먹이를 고르는 거죠.
…무슨 말이냐면… 인종에 따라 감염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특정 인종에만 기생하는 곰팡이. 그런 곰팡이가 있다는 정보를 공유 받은 중국 정부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발상을 하게 되죠. 생물학 무기를 만들어야겠다. 서방에 압도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핵무기보다 수천배 더 강력한,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생물학 무기를. 백인에게만 기생하는 곰팡이를. 백인에만 감염되는, 백인에게만 치명적인 곰팡이를.
미친 과학자가 권력을 만나면 어떤 비극이 발생하는가. 정성주는 그에 관한 가장 클래식한 사례였다. 브로디는 이게 실제로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꼈다. 같은 곰팡이가, 동일한 유콘 골드 감자인데, 아일랜드에서 수확한 감자에만 감염되고 프랑스에서 수확한 감자에는 감염되지 않는 걸 본 적이 있다. 브로디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동일한 품종의 감자였음에도, 단지 자란 지역이 달랐다는 이유로, 그 외 다른 변수가 없었음에도, 대체 무슨 이유로 감염 여부가 달라진 걸까. 지금껏 무의식적으로, 어렴풋이, 그게 어떻게 가능할 걸까, 그렇다면 혹시 그런 것도 가능한 걸까, 그렇게 막연히 상상한 것을 정성주는 현실화 한 것이다. 그 막연하고 터무니 없는 상상을, 통제된 환경에서, 자신의 의도와 계획에 따라, 실제 구현한 것이다.
…저희는 중국 정부가 그 기술을 손에 넣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조만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저희가 목숨 걸고 정성주 파일을 손에 넣은 겁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우리가, 우리 모두가 멸종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는 판단 하에.
…그래서, 버크 씨가 제일 먼저 해주셔야 하는 일은, 그 곰팡이의 존재 여부를 밝히는 일입니다. 그 곰팡이가 정말 실존하는 것인지, 그 곰팡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백신 같은 방어법은 있는 것인지, 치료는 가능한 것인지.
오라일리 교수의 구레나룻에 흰머리가 많이 나 있었다. 비교적 동안이었던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그는 결혼을 3번 했지만 자식은 하나였다. 40대 중반에 불임 클리닉에서 낳은 아들이었다. 자식을 그렇게 키우면 버릇 나빠진다고 모두가 조언했을 정도로 오라일리는 자식에 과도한 애착을 보였다. 오라일리는 자식이 태어난 뒤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자식이 없을 때의 세상과 있을 때의 세상은 서로 다른 법이라고. 지금껏 믿어 왔던 세상 논리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오라일리가 브로디에게 접근한 이유도 자식 때문이었을까. 아일랜드를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함이었을까. 세상을 좀 더 안전하게,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함이었을까.
4시간 동안 계속된 면담이 끝났다. 오라일리는 저녁 약속이 있었다. 학교에서 아들의 공연이 있다고 했다. 학교 오케스트라 공연인데 아들이 거기서 클라리넷을 연주한다고 했다. 자리를 정리하던 오라일리는 문득 뭔가 생각 났다는 듯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는 브로디를 잠시 바라보며 망설이다 말했다.
…사실은 정성주의 죽음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정성주는 정말 제약사에 의해 죽은 걸까요? 영국 스파이들에 의해 죽은 걸까요? 아니면 그의 연구 결과를 은폐하려는 중국 정부에 의해 죽은 건 아닐까요? 아니면, 혹시, 정말로 혹시… 정성주는 스스로 죽음을 맞은 게 아닐까요? 세계 멸망을 가져올 기술의 탄생을 막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죽음 뿐이란 생각을 한 건 아닐까요? 왜냐하면 딸을 사랑했을 테니까? 아무리 그런 사람이라도… 딸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모른척 할 순 없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