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생각했다. 어릴 때 엄마 옆에서 읽은 책이다. 대여섯번은 읽은 것 같다. 주은은 자기가 히스클리프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히스클리프. 언쇼 집에서 “그것”이라고 불렸던 존재. 인간도 짐승도 아닌 “그것”이었던 존재.
엄마는 그 소설이 너무 병적이라고 싫어했다. 히스클리프를 정신병자라고 욕했다. 히스클리프는 미움에 예민했다. 사람들의 미움을 과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증오의 화신이 되었다. 증오의 힘으로 사람들을 파멸시키고 제 자신도 파멸했다. 엄마는 에밀리 브론테도 정신병자였을 거라고 욕했다. 정상적인 사람이 그런 집요하고 악독한 이야기를 쓸 리 없다고 했다. 엄마는 소설에 너무 감정이입 하는 경향이 있었다. 소설은 소설일 뿐인데.
엄마는 딸을 히스클리프와 다르게 키운 것 같다. 주은은 지금껏 누굴 미워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가끔 엄마가 미울 때가 있었지만 그건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피트도 미워서 죽인 게 아닌 것 같다. 주은은 의무감이었다고 생각했다. 피트의 문제는 감정적 문제와 상관없는 처리해야 할 공적인 비즈니스였다.
주은은 트리시가 괜히 자기 때문에 모리스에게 매 맞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영국에서도 자식들을 때리겠지? 아들딸 구분없이 잘못했으면 잘못한만큼 때리겠지? 주은은 트리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트리시는 주은이 싫었던 것 뿐이고 그건 누구나 그럴 수 있는 법이다. 사춘기 여자들은 누군가를 미워하며 자라기 마련이다.
주은은 또래 여자애들과 어울려 본 적이 없었다. 길거리에서 유행가를 따라 부르며 깔깔대는 여학생들을 보며 서글픔을 느낀 기억이 있다. 평범한 삶이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주은에게 트리시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지금껏 누리지 못한 자유로운 소녀의 삶. 주은은 트리시와 친해지고 싶었다. 지금까지 살아 보지 못했던 삶을 살아 보고 싶었다. 둘이 같이 유행가를 따라 부르고 영화관에도 가고 싶었다. 식당과 카페와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좋은 향이 나는 비누와 샴푸도 사고 싶었다.
트리시에게선 좋은 냄새가 났다. 로즈마리였을까 라벤더였을까. 트리시가 바른 피부 보호제에서 익숙한 식물의 냄새가 났다. 주은은 식물 이름에 익숙치 않았다. 밖에 나가면 언제나 제일 먼저 맡는 냄새가 식물 냄새였음에도 주은은 식물에 대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원예를 배우고 싶은 이유였다. 이제 동물 냄새에 대해선 그만 알고 싶었다. 감염된 피와 썩은 살, 지긋지긋한 아미노산과 암모니아의 냄새. 주은은 이제 식물의 냄새를 알고 싶었다. 한없이 단순한 유기 화합물 냄새. 명료하게 논리적인 냄새. 아름다운 냄새.
트리시의 취향의 냄새는 사람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주었다. 트리시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걸 잘 고르는 것 같았다. 트리시는 그런 직감이 잘 발달한 것 같았다. 나중에 친해지면 제품명을 물어봐야지. 아니 빌려 달라고 해야지. 우린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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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는 애들을 너무 오냐오냐 키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 아들 키우기가 어렵고 딸 키우기가 쉽다는데, 자신의 집은 정반대였다고 생각했다. 제임스처럼 키우기 쉬웠던 아들도 없었던 것 같다. 사춘기가 오면 다르겠지, 다른 집 아들이랑 똑같겠지 단단히 각오하고 있었는데 왠걸 세상 이쁜 짓만 골라 하던 네살 때와 똑같았다. 문제는 트리시였다. 어릴 때부터 주관이 강했다. 그 주관이 대부분 유치했다. 이치에 맞는 게 없었다. 싫다는 것도 너무 많았다. 문제는 일관성이 없다는 거였다. 트리시는 모든 게 즉흥적이었다. 너무 감정적이었다. 그래서 키우기 어려웠다.
트리시가 캐런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모리스는 기쁘기도 했지만 화가 나기도 했다. 캐런도 제멋대로였지만 상식적이었다. 주관에 뚜렷한 일관성이 있었다. 캐런은 외로웠던 거였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가족도 친구도 교사도 찾지 못한 거였다. 그래서 엇나간 거였다. 자기 마음에 드는, 자신과 생각 수준이 맞는 누군가를 만났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다.
주은은 훈육이 잘 된 아이였다. 누가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모든 말과 행동이 절제돼 있다. 심지어 시선과 표정까지도. 주은은 트리시에게 그런 황당한 일을 당하고도 눈빛 하나 바뀌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10대 여자애 같지 않다. 처음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당황했지만 그것 역시 엄격한 훈육의 결과였다. 제임스를 밖에 데리고 나가면 “가정 교육이 정말 잘 된 아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주은과 비교하면 제임스는 아무것도 아니다.
캐런은 주은을 어떻게 키운 걸까 궁금했다. 그렇게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아이가 자기 딸은 이렇게 키우다니. 캐런은 분명 딸을 강하게 키우고자 했을 것이다. 어디서도 헛점을 보이지 않도록 교육시켰을 것이다. 유전 형질은 훈육된 형질과 차이가 있다. 주은은 유전자 조합의 랜덤 게임 결과가 아니었다. 주은은 캐런이 만든 아이였다.
모리스는 트리시를 훈육할 생각이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강하게 훈육을 시켜야 했다. 애비로서 부끄러움 느껴야 했다. 캐런은 짐작도 하기 힘든 그 열악한 환경에서 아이를 저렇게 키웠는데 나는 지금껏 뭘 했단 말인가?
다행인 점은 트리시는 성격이 강하지 않다는 거였다. 캐런은 때리면 부러질지언정 굽히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트리시는 반대다. 겉으로만 센 척 할 뿐 실제론 젤리보다 물러 터진 성격이다. 훈육으로 다스릴 방법이 많은 아이였다.
트리시는 주은에게 사과해야 했다. 영어로 사과하고 중국어로도 사과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 트리시는 중국어를 배워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트리시는 용돈을 받을 수 없다. 등하교 외 외출도 불가하다. 효과적인 훈육을 위해선 감정을 자제해야 한다. 감정이 섞인 훈육은 실패한다. 우호적이지만 단호한 태도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건 이러하니 이렇게 해야 한다고 논리적인 사실만 말해야 한다. 트리시는 단단하지 않은 아이다.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쉽게 바뀔 수 있는 아이다.
모리스는 외유내강 형 남자였다. 그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였지만, 병원장으로서는 자기 아버지 헨리보다 엄격한 사람이었다. 아버지 대부터 10년을 끌어 왔던 법정 분쟁을 1년 안에 마무리 하고 불필요한 인력 50명을 해고했다. 사적으로는 한없이 친절하고 신사적이었지만, 병원장으로는 타협의 여지가 없는 까다로운 상대였다. 병원에는 번영을, 가정에는 평화를. 모리스의 모토였다. 번영을 위해선 강업적 통제와 희생이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했다. 병원을 운영하면서 그는 지금껏 강압적 결단을 주저없이 행사했다. 그게 더 많은 이들을 위한 최선이라고 믿었다. 지금 보니 평화도 그런 것 같다. 통제와 희생이 없으면 평화는 지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