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s files #30
브로디가 오라일리 교수를 다시 만난 건 농림청 행사 후 일주일만이었다. 이번엔 브로디가 요청한 미팅이었다. 그날 농림청 건물 앞에서 발생한 사건은 아무리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려 해도 그럴 수 없었다. 가족 앞에 그런 살인마가 나타났다는 건 지금 당장 조치가 필요한 일이었다. 

예상과 달리 오라일리 교수는 염려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의 입장은 단순했다. 맥닐리의 축구 선수는 브로디에게 용건이 없었다는 거였다. 자신에게 있었다는 거였다. 

…팜플러스는 저와 사연이 있습니다. 동업자였죠. 

맥닐리와 오라일리의 동업 이야기는 이십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라일리 집안은 교육 재단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일랜드에서 제일 큰 교육 재단 중 하나로 국정 교과서를 발행하는 곳이었다. 맥닐리는 교육 사업에 투자를 하고 싶다고 했다. 제안이나 의사 표현이 아니었다. 맥닐리가 오라일리를 직접 찾아와 격식을 갖출 정도로 간절한 요청이었다. 

유통 기업이 무슨 이유로 교육 사업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아일랜드를 부강한 나라로 만들고 싶다고 그럽디다. 그러기 위해 청소년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청소년들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젊음의 역량을 쏟아 붓도록 어릴 때 정신 무장을 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가 배운 건 없고 가진 건 돈 밖에 없으니, 그동안 번 돈을 청소년 교육에 투자하고 싶다, 교육 재단을 만들어서 가난한 학생들 장학금도 주고, 학교도 세우고, 교재도 만들고 싶다, 그런 쪽에 연줄이 없으니 도와주시면 좋겠다,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맥닐리의 진짜 목적은 금방 드러났다. 역사 교과서를 쓰고 싶었던 거였다. 역사 교과서에 자신의 증조부인 코난 맥닐리의 이름을 넣기 위함이었다. 맥닐리는 외팔이 코난 맥닐리의 전설을 지어냈다. 독립 운동을 하다 영국인들에게 고문을 당하고 왼쪽 팔을 잃었다고. 그 이야기를 역사 교과서에 실어 정설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자신의 집안을 존경받는 애국 명문가로 만들기 위해 오라일리 재단을 찾아 왔던 거였다. 

…제가 교과서 내용을 꼼꼼히 검토하지 않았으면 그 내용이 그대로 교과서에 실릴 뻔 했죠. 막판에 제가 내용을 고치게 했어요. 외팔이 코난 맥닐리는 대기근의 혼란 속에서도 선진 금융 서비스를 사회에 도입했다고. 사채업이라는 말을 점잖게 돌려 썼죠. 

맥닐리는 보기 좋게 뒷통수 맞은 셈이었다. 오라일리에게 투자한 게 말짱 헛 것이 돼 버리고 혹 떼려다 혹 하나 더 붙인 결과를 얻었다. 

…맥닐리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저희 쪽에서 원하는 교과서가 나오지 않으니까 제3의 업체를 찾아가 기어코 자기가 원하는 역사 교과서를 발행했죠. 워낙 영세 업체라서 그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거의 없었지만, 지금 아일랜드 역사 교과서에는 2명의 외팔이 코난 맥닐리가 나와요. 하나는 독립 운동가 코난 맥닐리, 다른 하나는 사채업자 코난 맥닐리. 

수 틀리면 살인도 주저하지 않는 맥닐리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해도 괜찮은 거냐고 묻자 오라일리는 맥닐리는 개인적 감정으로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가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언제나 “자기들 기준에 합당한” 비즈니스 목적 때문이라고 했다. 

…굳이 왜 그런 짓을 했냐고요? 재미있으니까요. 원래는 코난 맥닐리 부분을 전부 삭제하는 게 맞겠지만, 그러면 재미가 없지 않습니까? 대기근 중에 그렇게 살았던 사람도 있었다고 알려주면 역사 교과서가 더 흥미진진하잖아요? 

오라일리는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제가 왜 버크 씨에게 접근했는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버크 씨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농업을 재미있게 만든 사람입니다. 인류가 농경 사회를 꾸리고 정착을 시작한 지난 1만 5천년 동안 농업은 지옥 같은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었지 절대로 재미일 수는 없었단 말이죠. 버크 씨가 유명해진 뒤로, 농업에 투신하겠다는 아일랜드 학생들이 급증했어요. 예전에 상상도 못했을 일인데, 장래 희망이 농부인 학생이 생겨난 겁니다. 저는 버크 씨가 재미있어서, 흥미로워서 접근 한 겁니다. 공익이고 나라의 미래고 뭐고 일단은 재미가 있어야 흥미가 돋아야 사람이 움직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맥닐리를 싫어하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재미가 없어서 그런 거에요. 애국심 고취라든가, 젊음의 역량이라든가, 정신 무장이라든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정상입니까? 그런 말 같지 않은 가식적인 표현이나 늘어 놓으면서 사람을 설득하려 한다는 게, 정말 제 정신인가 말이죠. 

…아 그러니까, 맥닐리 축구 선수 이야기를 한다는 게 지금껏 엉뚱한 얘기만 했군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지금 국영지에 라나-아이먼 농법 도입을 중단시키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팜플러스 매출이 줄었거든요. 팜플러스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한 거라서 위기감이 상당할 겁니다. 지금 맥닐리는 로비스트를 많이 고용하고 있어요. 더 이상 라나-아이먼 농법이 확산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그런데 로비가 먹히지 않는 거에요. 그 이유가 저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제가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까, 저만 없어지면, 제가 보복이 무서워서 생각을 바꾼다면, 라나-아이먼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거죠. 

오라일리는 맥닐리를 우습게 보고 있었다. 그에 대한 주된 감정은 경멸이었지만, 무시와 조롱으로 그를 못 살게 구는 게 더 재미있어 보였다. 보기 싫은 개를 약올리고 괴롭히듯이, 거기서 삶의 희열을 얻는 듯이. 오라일리는 개에게 물릴 걱정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배짱일까? 아니면 도파민 중독? 브로디는 문득 오라일리 재단에서 발행한 책을 전부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재미에 중독된 삶을 사는 사람은 어떤 책을 만들까? 

…독립 운동가 얘기가 나오니 진짜 독립 운동가 한명이 생각납니다. 제프리 헤거티라는 시인이 있었습니다. 코난 맥닐리와 동시대에 살았던 19세기 저항 시인이었죠. 펜으로만 저항을 한 게 아니라 테러 조직에도 몸을 담았던 열혈 운동가이자 혁명 사상가였죠. 해거티는 타가트 척살단 4인방 중 한명이었습니다. 타가트는 대기근 당시 아일랜드에 대한 해외 원조를 막은 빅토리아 왕실의 식민지 정책 결정권자였습니다. 

…타가트는, 역사 책에 등장하지 않는,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진 정치인이었습니다. 원래 인도의 식민지 정책을 입안하던 인물이었는데 왕실 관계자 눈에 띄어 본국으로 송환됐죠. 거기서 아일랜드 식민지 정책에 관여했습니다. 그는 기계주의적 문명론자였습니다. 문명은 어떤 자연적 변수에도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정상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죠. 타가트는 대영제국의 강대함이 예측 가능한 항상성에 기반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일랜드 대기근 같은 예측 불가한 변수에 예외를 둔다면 문명의 항상성은 유지될 수 없다, 대영제국의 강성함은 무너지게 된다, 이런 논리였죠. 

…원래 왕실에서도 해외 원조는 받아주자는 의견이 다수였지만 타가트는 완강했습니다. 아일랜드인들이 죽은 건, 우리가 자선을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감자병 때문이다, 그들이 굶어 죽은 건 먹을 감자가 없었기 때문이지 누군가 돕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가뭄 때마다 떼죽음 당하는 하천 물고기들도 박애주의 결여 탓이란 말인가, 해외 원조를 동원해 그들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는 말인가, 문명은 자연의 변수에 굴해선 안 된다. 그의 논리는 일관됐습니다. 그의 완강한 논리는, 최소한, 그들 리그 안에선 반박이 불가했죠. 

…결과적으로 많은 아일랜드 인명이 희생됐고 타가트를 암살하기 위한 비밀 척살단이 조직됐습니다. 타가트라는 인물의 존재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누가 아일랜드 식민지 정책을 정했는지 아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기에, 암살을 위한 최적의 조건이었죠. 계획은 나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타가트는 허점을 노출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평소 삶도 자신의 문명론대로 살았죠. 돌발 변수를 최소화 하기 위해 모든 행동을 철두철미 조심했죠. 그의 주거지 근처에 암약하며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던 척살단 중 한명이 순찰 중이던 경찰에 발각되는 바람에 4인조는 일망타진 됩니다. 해거티는 유일한 생존자였습니다. 암살을 위해 노숙자로 변장하고 있었던 덕에 감시망을 빠져 나올 수 있었죠. 

…해거티는 아일랜드로 돌아온 이후로도 저항 운동에 참여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나이 40에 시골로 내려가 은둔 생활을 합니다. 이 시기에 글을 썼죠. 영국에서 공부를 했고 거기서 사회 생활도 했던 해거티는 영국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그들은 아일랜드인들만 도태시킨 게 아니라 자국민 역시 같은 방식으로 도태시켰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굶어 죽는 사람들, 근면성실한 삶을 영위하다 한순간 노숙자로 전락하는 사람들, 절대 빈곤층이 급증하고 거리마다 산 채로 몸이 썩어 가는 크롤러들이 넘쳐 나자 그들은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돈을 쓴 게 아니라 제거하기 위해 돈을 썼다, 문명의 찬란한 발전을 도모한다는 이들이, 야생의 삶의 방식을 미개와 야만이라 묘사하는 자들이, 실제론 야생 약육강식보다 더 잔인한 사회를 만들었다, 이들이 국민들에게 강요한 삶의 방식은 그 어떤 야생의 자연보다 더 미개하고 야만적이다, 문명은 인간의 삶을 야생의 고통에서 구원하기 위해 발달했지만, 대영제국의 문명은 인간의 삶을 야생의 고통보다 더 지독한 고통으로 몰아 넣었다, 최대 다수의 최대 고통을 위해 치달았다.

…해거티는 대영제국이 지배하는 세상을 바위 절벽에 비유했습니다. 

.............인간들의 삶을 짓누르고 그늘 드리우는 바위 절벽, 아무리 망치와 곡괭이로 내리 찍고 부수려 해도 흠집조차 나지 않는 차가운 바위 절벽, 이백년 간 저항하고 몸부림 치고 설득해도 절벽은 더욱 높고 단단해졌다, 천만년 동안 비와 바람이 바위를 스치면 무너질까, 구멍이라도 생길까, 절벽이 사라질 날은 올 수 있을까. 

…해거티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백년 뒤의 세상이었다, 눈을 떠 보니 어느덧 이백년의 세월이 흘러 있었다, 집 밖을 나가 보니 눈부시게 하얀 꽃들이 피어 있었다, 하얀 꽃들이 하얀 꽃가루를 흩뿌리고 있었다, 새하얀 안개처럼, 햇빛에 반짝거리는 꽃가루들이 머리 위에, 손등 위에, 지붕 위에 뒤덮여 있었다, 숨을 들이 마시면 꽃가루들이 폐 안으로 빨려 들어 온다, 숨을 내쉬면 콧구멍으로 꽃가루들이 반짝반짝 뿜어져 나온다, 웩스포드 사는 몰로니가 뛸듯이 기쁜 표정으로 달려 온다, 몰로니는 2년 전 죽었지만 이백년 뒤 다시 살아난 것 같다, 몰로니가 말했다, 영국이 망했다고. 

…해거티가 꿈 속에서 본 꽃은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꽃이라고 했습니다. 이 꽃가루를 들이마시면 불을 무서워하게 된다고 했죠. 불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된다고. 사람들이 공장에 오지 않게 된 거죠. 용광로도, 발전기도, 엔진도 모두 멈추고, 기차는 달리지 못했고, 군인들도 총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 버린 겁니다. 영국이 이룩한 산업 혁명, 불의 문명이 하루 아침에 멈춰 버린 거죠. 

…해거티는 자신의 꿈을 신의 계시, 예언이라고 믿었습니다. 해거티는 꿈에서 본 꽃에 “브로나”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 꽃을 찾아 헤맸죠. 그의 집 앞에는 아일랜드에 존재하는 수천 종의 꽃이 심어졌고, “브로나”를 찾기 위해 유럽 일대를 떠돌며 잠시도 쉬지 않았습니다. 해거티는 그렇게 “브로나”를 찾기 위해 10년을 전세계를 떠돌다 벨기에의 어느 항구에서 객사합니다. 아일랜드로 돌아가는 배를 기다리던 그의 손에는 꽃씨가 쥐어져 있었죠. 그 꽃씨가 그가 찾던 브로나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이야기는 실화일까, 아니면 오라일리 교수의 창작일까, 브로디는 생각했다. 브로디는 오라일리 교수의 정체가 궁금했다. 교육 재단을 운영하는 집안이라지만 원래 투기꾼 아니었던가? 학문과 담 쌓은 삶을 살았던 사람 아니었던가? 언제 학문적 업적을 이루고 어떻게 대학 교수가 된 걸까? 

.............왕궁의 대리석에 이끼가 자란다. 한번도 빛을 잃지 않던 천년의 광택이 새파랗게 스러진다. 장인이 제련한 강철 전함에 곰팡이가 자란다. 한번도 녹 슬지 않았던 제국의 기함이 싯누렇게 침몰한다. 

…해거티는 아무리 강대한 문명도 대자연의 아주 작은 조각이라는 사실에, 그 어떤 막강한 세력이라도 결국 대자연의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심취했습니다. 개인 혼자 아무리 날뛰어도 지배 문명을 무너뜨릴 순 없지만, 대자연은 이야기가 다르다는 거였죠. 묘하죠? 철통 같은 기득권에 평생 저항하다 좌절한 인간이 발견한 최후의 무기가 꽃이라니. 세상 그 어떤 막강한 군사력보다 강한 힘이 꽃에 있었다니. 재미있지 않나요? 

작품 등록일 : 2026-03-21
최종 수정일 : 2026-03-21

▶ Brody’s files #31

▶ Brody’s files #29

뭔짓을 해도 안되던게
꽃으로 해결되다니

꽃잎몇장 휘날려 무너진 대영제국

신기하고도 아이러니한 대자연의 법칙
진미오징어   
난 맥닐리가 넘 싫은데 더 두고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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