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마담 별이 4

14

 

나는 개구쟁이에게 분명히 내 의사를 밝혔고 개구쟁이는 포기했다.

 

 

 

둘만의 귓속말을 끝내고 상황을 살펴보니, 모두들 아까보다 한층 더 취해 있었고, 한층 더 신나있었고, 한층 더 질펀해져 있었다.

 

조판이 또 한 번 꼬였는지, 아가씨들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들어와 있었다.

그 큰 방이 사람으로 가득차 좁아 보일 정도였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다들 약간씩 술에 취해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몸을 흔들며 놀고 있었다.

 

그 사이를 뚫고 웨이터 한 명이 힘겹게 나를 찾아냈다.

 

- 아 다솜누나 여기 있었네 휴 이 방 아가씨 왜이렇게 많아요? 하하하

 

그리고 내 옆의 개구쟁이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 다솜씨 이제 시간이 다 되어서요 형님. 다솜이 연장 하실건가요?

 

나는 웨이터의 말을 막았다.

 

- 저 이제 퇴근 할거예요.

 

 

 

 

 

 

오늘 벌써 30만원을 벌었고, 이만하면 첫날로서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다시한번 초이스를 돌고, 다시한번 새로운 손님들과 친한척 하기 귀찮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또라이 4인방이 지겨워졌고, 개구쟁이가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에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개구쟁이는 웨이터에게 나를 곧 내보낼테니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웨이터는 눈빛으로 나에게 괜찮은지를 묻고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연장해서 너 묶을테니까 가지 마. 지금 퇴근을 왜해?

 

(묶는 다는 것은 아가씨가 로테이션을 돌지 않고 한 방에만 3시간 내내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3시간 TC33만원을 지불하고 묶을 수 있습니다. 아가씨는 한 방에 묶이면 30만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

 

이미 벌어놓은 30만원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던 나는 추가 30만원이 탐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30만원을 받고 여기 이 남자 옆에 3시간을 더 앉아있다가는 결국 이 남자의 꼬임에 넘어가고 말 것이 분명했다.

 

 

 

 

결국 개구쟁이는 내 번호만을 건진 채 나를 보내주었다.

 

 

 

나는 전대표를 찾았다.

 

처음 온 손님들이 한차례 빠지고 두번째 텀이 시작되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전대표는 정신이 없었다.

 

- 다솜아. 이렇게 일찍 퇴근하게?

 

- 오늘은 첫날이라서, 너무 힘들어서요.

 

- 그래 오늘은 그럼 들어가고, 내일도 나올거지?

 

- ... !

 

- 꼭 나와야 된다. 오늘 우리 가게 손님 많은 거 봤지?

 

- !

 

전대표는 그자리에서 30만원을 꺼내주었다.

 

첫인상을 좋게 남기려고 일부러 그런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TC는 항상 출근 한 다음 날 계좌로 지급받았다.

 

 

 

퇴근길에 민희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언니! 나 지금 퇴근하는데 언니 어디야?

 

- 나 집이지. 자다가 깼다 얘

 

- 언니 왜 그렇게 일찍 퇴근했어?

 

- 나는 이 일 안맞는 것 같애. 방 하나 들어갔다가 그냥 바로 퇴근했어.

 

 

- ...??

 

 

- 도저히 못하겠더라고

 

- 아니 뭐야? 나 끌여들여 놓고 언니는 발 빼겠다는거야?

 

- 너는 오늘 어땠는데?

 

 

 

나는 장장 2시간에 걸쳐 그날 있었던 모든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았다.

 

- 너는 그 일이 잘 맞는 것 같다. 호호

 

- 언니, 그 개구쟁이 있잖아. 걔 잘 구슬리면 나한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애.

 

- 무슨 도움?

 

- 아니 왜, 나 보러 가게 자주 오고 나 묶어주고 그러면 편하게 돈 벌 수 있잖아. 그리고 지금 나한테 완전 꽂혔으니까 나 출근 못하게 하려고 스폰도 해주고 그럴수도 있지 않을까?

 

 

 

 

이때 나는 몰랐다.

 

나는 이제 막 1일차. 그는 무려 몇 년일지 가늠하기도 힘든 베테랑.

 

우리의 내공은 비교조차 할 수 없었고, 나는 결코 그를 이길 수 없음을.

 

 

 

 

 

 

 

 

 

 

 

 

 

 

 

 

 

 

 

 

 

 

 

 

 

 

 

 

 

 

 

 

 

 

 

 

 

15

 

다음 날 오후, 김사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 어제 방 몇게 봤어?

- 세개요

- 어제 손님 많았는데 왜 3개 밖에 못 했어?

- 저는 12시쯤 퇴근 했어요..

- 오늘 출근 할거지?

 

 

돈이라는 게 참.

 

30만원을 벌었다고 머리속으로 생각했을 때에는, 내일도 나와서 또 30만원을 벌어가야지 라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5만원짜리 8장을 막상 손에 쥐고 다음날이 되니, 굳이? 라는 생각이 나의 게으름을 한껏 자극했다.

 

 

- 오늘은 못 나갈 것 같아요

- 무슨 소리야. 무조건 나와. 오늘도 손님 많아.

- ...

- 어제 무슨 일 있었어?

- 아니요 그냥 오늘은 쉬고 싶어서..

- 헛소리 하지 말고 나와.

- 생각해 볼게요.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를 불러낼때까지 김사장이 얼마나 막무가내로 끈질기게 설득할지 충분히 예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김사장에게서 바로 문자가 왔다.

 

 

- 오늘 꼭 나와라. 오늘 손님 진짜 많을거야.

 

 

 

그 순간, 김사장과 가게에 대한 정이 뚝 떨어졌다.

 

왜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하지?

 

한번 나갔다고 이렇게 옭아매는 곳이라면 나중에는 더 힘들 수도 있겠다.

 

 

 

나는 한번 다른 가게들도 알아보기로 했다.

 

 

 

민희 언니에게 인터넷 어디로 들어가면 구인광고를 볼 수 있는지 물었다.

 

 

 

제일 깔끔하고 담백하게 쓰여진 광고를 하나 골라, 금요일 면접을 보러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논현동에 위치한 작은 가게였다.

 

얼마나 작은 가게였는지, 전무가 아가씨 관리 겸 웨이터 역할까지 동시에 했다.

 

이번에는 김전무였다.

김전무는 적어도 40대후반은 되어보이는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였는데

큰 키에 헐렁한 양복을 입고 있어서 사람이 좀 모자라보였다.

 

- 인상이 참 좋네. 허허. 같이 일하고 싶은데 다음주 월요일부터 할 수 있어요?

 

이 작은 가게는 여사장이 오랫동안 운영해오던 가게인데,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곳이라고 했다. 정재계 주요 인사들도 자주 찾던 가게인데 요즘에는 예전만큼 손님이 많지는 않다고 했다.

 

초이스도 거의 없이 마담이나 사장이 알아서 방에 들여보내는 시스템인 것 같았고 동시에 몇개의 방을 볼수 있는지도 정해져 있지 않고 상황에 따라서 유도리 있게 하는 듯 했다.

 

한마디로 시스템이란 게 거의 없었다.

 

나는 왠지 이 가게가 맘에 들었다.

 

손님들의 퀼리티가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사장이 여사장이란 점도 신뢰가 갔다.

 

 

TC로 많은 돈을 벌기는 힘들 가게였지만, 스폰을 잡기에 좋아보였다.

 

 

 

월요일부터 출근하기로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김사장은 주말 내내 전화와 문자 폭탄을 나에게 투하했지만, 나는 몸이 안좋다는 핑계를 대며 김사장의 연락은 모두 무시해 버렸다.

 

 

개구쟁이 또한 나에게 매일 연락을 해오면서, 자꾸만 한번 보자고 했다.

나는 가게에 출근하게 되면 얘기를 할 테니 가게에서 보자고 했다.

개구쟁이는 또 삐진 척을 하며, 나를 만나려면 꼭 가게에 가야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일단 개구쟁이의 연락도 무시해 버렸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새로운 가게에 출근을 했다.

 

대기실이 아주 좁았다.

 

여사장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젊은 할머니였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생머리 중단발에 성형을 덕지덕지 한 얼굴이 보기 흉했지만, 외모와는 달리 푸근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나는 이 가게에서도 다솜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여사장은 내 본명을 듣더니, 본명의 느낌이 좋다고 본명대로 가라고 했다.

돈 정말 많이 벌어 갔던 아가씨가 있는데 그 이름을 썼었다며.

어차피 손님들은 그 이름을 가명으로 알테니 상관 없지 않냐며.

 

 

나는 잠깐 고민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기로 했다.

 

 

아가씨들이 하나 둘 출근을 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정말이지 태어나서 그렇게 고급스럽게 예쁜 여자들은 그날 그곳에서 처음보았다.

 

레이스가 촘촘한 연분홍색 단정한 원피스를 입은 한 아가씨는 3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머리도 특별히 손질하지 않고 갓 말리고 나온 듯 했고, 화장기도 거의 없었다.

흔한 악세사리 하나 하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귀걸이도 말이다!

 

연예인으로 치자면 이수경과 비슷한 이미지였지만, 이수경보다 훨씬 더 세련된 외모였다.

 

하얗고 긴 목이 여리여리한 그녀의 외모에 화룡정점이었다.

약간 졸린듯이 뜬 눈과 얇은 입술은 도도하고 차가운 인상을 더해주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녀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또 다른 아가씨는 미모로 치자면 앞의 아가씨에는 조금 밀리지만 또 다른 매력의 소유자였다.

깔끔한 단발에 슬림한 체형의 그녀는 흰색 블라우스에 갈색 미디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얇은 팔에 차고 있는 시계가 반짝 빛나면서 그녀의 도회적인 면모를 더욱 부각시켰다.

 

귀여운 콧소리를 잘 내는 그녀는 애교가 넘치는 귀여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작은 대기실에 나 포함 아가씨 총 4, 사장, 그리고 마담 한명, 이렇게 6명이 앉아서 손님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날 손님이 단 한명도 오지 않았다.

 

 

 

 

사장도 당황했고, 나도 당황했다.

 

사장은 나 보기가 많이 민망했는지, 이걸 어쩌나 이걸 어쩌나 수십번을 반복하며 전전긍긍 했다.

 

 

결국 10시 경, 나는 0원을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다음날 일어나보니 김전무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 다솜아. 우리 가게가 원래 이렇게 손님이 없지는 않은데, 어제 헛걸음 하게 해서 너무 미안하다. 오늘은 손님 무조건 있으니까 꼭 나와. 알겠지?

 

 

꼭 나오긴 개뿔. 짜증이 치밀었다.

 

 

그렇게 매력적인 아가씨들이 왜 그 가게의 그 조그만 대기실에 처박혀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한번만 더 출근을 해보기로 했다.

 

 

 

 

 

 

 

 

 

 

 

 

 

 

 

 

 

 

 

 

 

 

 

16

 

화요일에는 출근하자마자 손님이 있었다.

 

초이스 없이 마담언니 손을 잡고 들어가 앉았다.

 

그런데 문제는, 나를 도무지 그 방에서 빼 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꼼짝없이 한 방에서 3시간을 넘게 앉아있었다.

 

중간중간 나를 부르는 웨이터의 목소리를 내가 못들은건가 문쪽을 수시로 쳐다보고

마담언니가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을 내가 못알아챈건가 마담언니 얼굴을 수시로 쳐다보았지만

 

그냥 아무도 날 빼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손님에게서 팁 5만원을 받았고, 김전무에게서 TC 15만원을 받았다. 시간이 좀 오버가 되어서 5만원을 더 넣었다는 말과 함께.

 

손님들은 모두 점잖은 분들이었고, 초이스 없이 편하게 20만원을 번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이전 가게의 로테이션 시스템을 경함한 나로서는, 나를 한 방에만 처박아 놓은 그들의 행태가 괘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였다.

 

 

 

 

수요일에는 다시 김사장의 가게로 출근을 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개구쟁이가 귀신같이 수요일 오후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 다솜아. 오빠 언제 만나줄거야?

- 오빠 나 오늘 가게 출근해. 보러 와.

- 그럼 출근하기 전에 저녁 같이 먹자. 그리고 가게로 가면 되잖아.

 

나는 그러기로 했다.

 

대체 언제 출근할거냐는 김사장에게 드디어 답장을 보냈다.

 

- 사장님. 저 오늘 출근해요. 그런데 손님이랑 같이 갈거예요.

- 누구 손님인데?

- 써니언니 손님이요.

- 써니언니한테 말 했어?

- 저 써니 언니 번호 몰라요.

- 그럼 내가 전대표한테 얘기 해 놓을게. 괜히 딴데로 새지 말고 꼭 출근 해라.

 

사장은 본인이 나에게 하는 얘기가 손님 귀에 들어갈까봐 말조심을 하는 듯 했으나, 불안함을 감추지는 못했다.

 

 

개구쟁이는 벤츠 CLS amg 를 몰고 나를 데리러 왔다.

나는 지금이나 그때나 차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한 번에 좋은 차임을 알아봤다.

 

 

- 오빠 이제 가게로 가자. 써니언니한테 말 했어? 나랑 같이 간다고?

- 아니 이제 말 해야지.

- 말 안했어? 그럼 방 없으면 어떡해?

- 그러게.. 이시간에 방 잡으려면 보통 없던데.

 

 

아 이새끼가 꼼수를 부리네?

 

애초에 가게 같이 갈 생각이 없었구나.

 

 

- 나 오늘 무조건 출근해야해. 사장님한테 출근한다고 말 했어.

- 그냥 안가면 되잖아. 어때.

- 오빠 가게 가기 싫으면 나 혼자라도 갈게 그럼.

 

 

괘씸한 개구쟁이 새끼

 

 

- . 내가 널 어떻게 출근하게 놔두니.

- 그럼 어떡할건데?

- 휴우.. 가야지 뭐. 그런데 나 혼자 간다 그러면 써니가 안 좋아 하더라고. 혼자 가면 술 1병밖에 안마시니까.

- 그럼 누구 부를 사람 없어?

- 올만한 형이 하나 있긴 한데 한번 연락해볼게.

 

 

써니가 안 좋아하는게 아니라, 니가 술 값 혼자 내기 아까운 거겠지.

 

 

개구쟁이는 형이라는 사람과 통화를 길게 하더니 결국 형을 설득해냈다.

 

 

 

 

 

 

 

 

 

 

 

 

 

 

 

 

 

 

 

 

 

 

 

 

 

 

 

 

 

 

17

 

나는 의기양양하게 가게로 들어섰다.

 

이것보라구! 내가 손님을 데려왔다구! 이 가게 딱 하루 출근한 사람인데 말야 내가!

 

내가 첫출근만에 손님을 꼬셔내어 이렇게 가게에 데려왔다구!

 

그리고 나는 오늘 초이스도 안 봐도 된다구! 이 방에 묶일거라구!

 

 

첫날의 쫄아있던 내가 아니었다.

 

 

전대표는 개구쟁이 앞에서 영업용 아첨하는 미소를 활짝 지으며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나는 그 옆에서 우쭐대는 마음으로 전대표의 인사를 같이 받았다.

 

 

- 아휴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누구 찾고 오셨죠?

- 써니 어디 있어요? 손님이 왔는데 안나와있어?

- 아 네, 써니가 지금 손님들 초이스 맞춰주느라 정신이... 오늘 가게가 좀 바빠서요.

- .....

- 죄송합니다. 사장님. 일단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써니보고 바로 들어가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10번 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방이었다.

 

술이 들어오고, 자리가 세팅되자 분위기가 묘해졌다.

 

 

지금 이 개구쟁이는 내 일행인건가? 아니면 내 손님인건가?

 

손님 대하듯이 술을 세팅해주고 재떨이를 비워주고 살갑게 웃으며 애교를 떨어야 하나?

 

아니면 방금 전까지 같이 저녁을 먹던 사람 대하듯이 편하게 굴어야 하나?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그리고 나는 TC를 받게 되는 만큼, 내 할일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술병을 집어 들었다.

 

 

개구쟁이는 술병을 빼앗더니 정색을 했다.

 

- 뭐하는 거야?

 

- 오빠 술 따라주려고...

 

- 니가 내 술을 왜 따라?

 

- ? 오빠가 나 TC 주잖아 오늘..

 

-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니가 오늘 출근하기로 했다고 하니까 억지로 온거지. 니가 다른 손님들 받는게 싫으니까 온거지. 니가 지금 아가씨로 여기 앉아있는거야? 내가 손님이야 지금?

 

개구쟁이가 개구쟁이인데는 이유가 있다. 내가 개구쟁이의 성격을 자세히 묘사한 적이 없지만, 개구쟁이는 항상 장난끼가 넘치는 가벼운 캐릭터였다.

 

그런데 그런 개구쟁이가 처음으로 정색을 하며 화를 냈고 나는 그 모습에 움찔 쫄아서 꼬리를 내렸다.

 

 

 

- 미안... 근데 꼭 손님이라서 술을 따르는 게 아니라, 원래 자작하면 안 되잖아.

 

- 니가 방금 TC 얘기를 했잖아.

 

- 미안..

 

- 나는 이해가 안 돼. 그냥 TC 그거 30만원 내가 너한테 따로 주면 되잖아. 왜 꼭 여기 와야 돼?

 

 

개구쟁이는 참았던 불만을 터트렸다.

 

 

사실 개구쟁이의 말이 맞았다.

술값에 기타 부대비용을 합치면 1병만 마신다고 해도 내TC를 제외하고 50만원이 넘는 돈이었다.

 

대체 그걸 왜 굳이 지출해야하는 지 모르겠고, 나와 시간을 보냄에 있어 왜 굳이 이 가게에 와서 보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개구쟁이의 말은 앞뒤가 잘 맞는 이야기였다.

 

 

 

 

 

 

 

 

 

 

 

 

 

 

 

 

 

 

 

 

 

 

 

 

 

 

 

 

18

 

나는 주도권을 쥐고 싶었다.

 

손님에게 쉽게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김사장의 말도 자꾸만 맘에 걸렸다.

 

 

 

그래서 개구쟁이가 연애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나도 개구쟁이가 싫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렇게 쉽게 넘어가는 여자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일부러 버틴 것이다.

 

 

니가 나를 보러 가게에 여러번 와서 나를 여러번 묶고

 

그렇게 가게에 내 기를 좀 살려주고

 

 

나한테 비싼 밥도 좀 사주고

 

나한테 비싼 선물도 좀 사주고

 

그러면서 잔뜩 애가 타고 있어라

 

 

그럼 애가 탈 만큼 탄 니가 나한테 제안을 하겠지?

 

가게를 나가는 대신 얼마를 줄테니 일을 그만두고 너를 만나달라고?

 

 

그럼 그때가서 못이기는 척 그 제안을 받아들여야지

 

 

 

혼자서 이런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 나는 그냥.. 오빠가 그래도 손님이니까..

 

-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니가 원하는 거는 그냥 손님 아가씨 하자는 거지? 그러니까 가게에서 무조건 만나야 하고, 가게를 통해서 너한테 TC 줘야 하고. 지금 그렇게 선 긋는거지?

 

- .... 아니야 오빠.

 

 

개구쟁이는 세게 나왔다. 왜냐고? 그는 선수니까.

그는 사냥 기술을 다 익힌 다 큰 숫사자고, 나는 초원에 갓 발을 들여놓은 작은 토끼니까.

 

 

내가 주눅이 들어 시무룩하게 앉아있는데 써니언니가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왔다.

 

 

- 오빵!!! 언제 왔어!! 늦게 와서 미안 오빠~

 

 

써니언니는 여전이 에너자이저였다.

 

 

- 오빵!! 다솜이랑 같이 왔네?? 오늘 다솜이 묶는거 맞지?

 

- .....

 

- 근데 여기 분위기 왜이래? 둘이 싸운거 아니지? 깔깔깔

 

- 좀있다가 00형 올거야. 누군지 알지? 오면 여기로 안내해줘.

 

- 00오빠도 오기로 했어? 그 오빠는 아가씨 누구 앉히지? 오늘 아가씨가 좀 부족한데..

 

- 형이 알아서 하겠지. 초이스 보여 줄 애들 몇 명만 좀 미리 빼놔줘.

 

- 00오빠 스타일이 어땠더라? 아 지금 괜찮은 애들 다 갯수가 꽉 차있는데. 한번 생각 좀 해봐야겠다. 그너자나 오빵!! 술 한잔만 줘! 술도 안따라주네!

 

 

써니언니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좀 있다 나갈 모양새였다.

둘이서 술을 한두잔 기울이면서 농담따먹기를 하더니

 

개구쟁이가 갑자기 써니언니에게 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 써니야

 

- 응 오빵!

 

- 나 다솜이 들어앉힐려고.

 

(들어앉힌다는 것은 가게를 더이상 못나가게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스폰의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 엉 오빠???

 

 

 

 

 

 

 

 

 

 

 

 

 

 

 

 

 

 

 

 

 

 

 

 

 

 

 

 

 

 

19

 

써니언니는 개구쟁이의 말을 반농담으로 알아들었다.

 

- 안돼에!! 지금 우리가게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소리야. 우리 아가씨 빼가지마!! 안돼 안돼~!

 

- 얘가 여기 나와서 일하는걸 내가 어떻게 보냐..

 

 

써니언니의 얼굴에서 순간 웃음기가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아가씨를 뺏겨서 사라진 웃음이 아니라, 같은 가게사람으로서, 같은 여자로서 나에게 보내는 무의식적인 경고였을 지도 모른다.

 

 

- 뭐야? 둘이 사귀는거야?

 

- 아무튼 나는 다솜이 들어앉힐 거니까 그렇게 알아.

 

- 오빠 맘대로 해라 뭐.

 

 

 

나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나 빨리 내 계획대로 흘러갈 줄이야?

 

좀 더 애태우려 했는데 안그래도 되겠네 잘 됐다 헤헤

 

 

 

- 오빠 나 오징어 먹고 싶어!

 

기분이 좋아진 나는 개구쟁이에게 애교를 피웠다.

 

 

- 여기 오징어 파냐?

 

 

써니 언니가 개구쟁이를 위하는 척 하며 말렸다.

 

- 팔긴 파는데 비싸. 5만원이야!! 그냥 밖에 편의점에서 사올까?

 

 

나는 써니 언니를 말렸다.

 

- 편의점에서 파는 거 말고, 구운 오징어 먹고 싶은데.

 

- 그냥 시켜 써니야.

 

 

써니 언니는 전화기를 집어 들어 오징어를 시키며 나에게 오버스럽게 윙크를 했다.

 

(방마다 전화기가 있는데 리셉션(?)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손님들이 필요한 것을 바로바로 주문하거나 요구할 수 있습니다. 보통 손님들은 중요한 이야기는 마담에게 전화를 걸어 하는데, 가벼운 요구이거나 바로바로 전달이 되어야 하는 사안들은 이 내선전화를 통해서 합니다.)

 

- 다솜이 잘한다아~~!! 언니보다 영업 더 잘하는데~~? 잘한다 잘한다~!

 

써니 언니는 금세 본연의 활기찬 캐릭터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얼굴 한구석에 남은 찝찝함을 숨기지는 못했다.

 

 

 

오징어로 분위기가 전환된 그때

 

개구쟁이가 부른 형이라는 사람이 들어왔다.

 

 

 

써니언니는 특유의 호들갑으로 형을 맞이했다.

 

- 오빵!!!! 왜이렇게 늦게왔어~!! 내가 오빠 초이스 해줄라고 아~~~까 부터 애들 빼놨는데 이제 오면 어뜨케~~!

 

 

써니언니가 아가씨들을 데리고 오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고 방에는 우리 세명이 남았다.

 

 

 

개구쟁이는 다시 나를 들어앉히는 타령을 시작했다.

 

- 형 인사해. 제수씨야. 이름은 다솜이야.

 

- 아진짜? 아이구 미안하다. 나는 여기 아가씨인줄 알았어.

 

 

개구쟁이는 잠시 멈칫 했으나 설명을 시작했다.

 

- 아 원래 여기 아가씨였는데, 내가 들어앉히기로 했어.

 

- . . . 그래? 아니 나는 안 그래도 이상하다 했지. 옷이 여기서 일하는 복장이 아닌데, 옆에 앉아 있으니까, 아가씨가 왜 저런 옷을 입고 있나했네 하하

 

- 얘가 지난주에 처음 출근했는데, 그때 내가 첫 손님이었던거야. 그래서 내가 그냥 이제 출근 못하게 하려고.

 

- 그래? 그런데 솔직히 이쪽이랑 안어울려 다솜씨는. 내가 이쪽 애들 한두명 보는것도 아니고. 이쪽 일 할 사람이 아니야.

 

- 그니까. 뭣도 모르면서 여기서 일하겠다고 이러고 있으니 내가 답답해? 안 답답해?

 

- 다솜씨. 여기 아예 발 담그지 마요. 뭐하러 그래. 다솜씨는 이쪽 일 할 사람이 아냐. 무슨 말인지 알겠어?

 

 

형의 눈빛이 진지했다.

 

그의 반응이 어색한 것을 그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냥 그러나보다 하고 웃어넘기거나. 한번 본 아가씨한테 웬 오버냐고 면박을 주거나, 둘이 잘 어울린다고 영혼 없는 축하를 해주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일 것인데.

 

맥락에도 어울리지 않게 내 걱정을 해주는 그 형이란 사람의 반응 역시, 써니언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순간 사라졌던 것과 비슷한 무의식적인 어떤 경고이지 않았을까?

 

 

 

 

 

어느덧 형의 옆자리도 아가씨로 채워지고 우리가 들어온 지 3시간이 다 되어갔다.

 

형은 늦게 왔기 때문에 시간이 더 남아 있었고, 처음 시킨 술 1병도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개구쟁이와 나는 형을 남겨두고 먼저 일어났다.

 

 

 

 

써니언니는 여전히 많이 바쁜건지 개구쟁이를 배웅하지 않았다.

전대표가 대신 뛰쳐나왔다.

 

- 사장님, 벌써 가시게요? 조금 더 있다 가시지 그러세요.

 

개구쟁이는 귀찮은 듯이 얼버무렸다.

 

- 아 뭐 예 뭐

 

전대표를 비롯한 가게 사람들이 나가는 우리를 향해 다시 한번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했고

 

나는 또 다시 그 인사를 함께 받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가게도 오늘이 마지막이네.

 

 

 

 

 

 

 

 

 

 

 

 

 

 

 

 

 

 

 

 

 

 

 

 

 

 

19

 

발렛 맡겨놨던 CLS가 나와 있었고, 우리는 차에 탔다.

 

 

- 오빠 대리 안불러도 돼?

 

- 불러야지

 

 

개구쟁이는 근처 골목에 차를 대고 대리를 불렀다.

 

그리고 그의 수작이 시작되었다.

 

 

- 다솜아, 나는 너무 피곤하니까 여기 근처에서 자고 가려고.

 

- .. 그럼 나는 집에 어떻게 가지? 택시 타고 가야겠네!

 

- 집에 꼭 가야해?

 

- 집에 안가면 어떡해?

 

- 나랑 같이 있으면 안 돼?

 

- 음 안돼.

 

- 왜 안돼?

 

-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닌 것 같아서

 

 

내가 너랑 지금 잘거면면, 차라리 첫날에 200만원을 받고 잤지. 누굴 병신으로 아나?

 

 

- ... 너는 아직 나한테 마음을 안 여는구나.

 

- 오빠. 마음이 그렇게 쉽게 열려? 우리가 일반적인 루트로 만난 것도 아니고...

 

- 그래. 또 선 긋는구나. 니가 원하는 관계를 지금 딱 말 해. 그냥 손님이랑 아가씨로 지내고 싶은 거지?

 

 

이건 협박이었다. 마지막으로 흔드는 미끼였다. 여기서 안 물면 낚시대를 거둬버릴 것이라는.

 

 

이미 좀 전에 가게에서 한번 쳐 놓은 덫이었다.

하지만 덫은 그때보다 더 강한 덫이 되어버렸다.

 

나를 들어앉히겠다는 미끼를 넌지시 던져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홱 돌아서야 더 큼지막한 미끼가 걸린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몇 번이고 냉정하게 돌아서야, 미끼가 아닌 실체가 있는 진짜의 무언가가 나온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초원의 생태계에 무지한 순진한 토끼였기 때문이다.

 

개구쟁이가 앞발 한번 살짝 휘둘러도 찍 하고 목숨이 끊길 쉬운 사냥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참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고, 개구쟁이는 푹푹 한숨만 내쉬었다.

 

- 오빠가 원하는 건 뭔데?

 

- 나는 너랑 그냥 평범하게 데이트 하고 애인사이로 지내고 싶지.

 

- 근데 나는 출근을 안 할 순 없어. 돈을 벌어야 돼.

 

 

이번엔 내가 던진 미끼였다. 맨입으로는 안 된다는 암시였다.

 

 

- 너 뭐 가게에 빚 있니?

 

- 아니 무슨 빚이야. 그냥 돈이 필요해서 버는 거지.

 

- 다른 일 해서 돈 벌면 되잖아!

 

- 다른 일은 돈이 이것만큼 안 되잖아.

 

- 너 첫날 30만원 벌었다며. 그렇게 해봐야 한 달에 얼만데?

 

- 그날은 일찍 퇴근했으니까 그런거구..

 

- . 그렇게까지 돈을 벌어서 뭐할꺼냐구 다솜아.

 

 

민희언니의 스토리가 떠올랐다.

 

 

- 나 유학갈거야.

 

- 다솜아. 니가 빚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당장 무슨 병원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유학비용은 한번 천천히 생각해보자. 다른 방법을 오빠랑 찾아보자.

 

 

 

개구쟁이는 전략을 바꿨다. 협박에서 회유로.

 

- 다솜아. 내가 술집 하루 이틀 다녔니? 여기가 어떤 곳인지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내가 너무 잘 알아서 그래. 다 양아치들이야. 너랑 안어울려.

 

 

나도 알아. 김사장도 양아치고. 박전무도 양아치고. 마담언니들도 똑같겠지. 나도 안다고.

 

 

- 다솜아. 나는 진짜로 니가 걱정돼서 그래. 너 같이 순진한 애가 여기서 뭘 하겠다고 그러니. 돈을 모은다고? 돈이 모아질 것 같아?

 

- 그럼 어떡하라고...

 

- 너 원래 이직 준비중이었잖아. 그냥 평범하게 회사 다녀. 그리고 오빠가 조금씩 도와줄게.

 

 

 

대리기사가 도착했다.

 

 

나와 개구쟁이는 뒷좌석으로 옮겨 앉았다.

 

 

개구쟁이가 말했다.

 

- 기사님. 00호텔로 가주세요.

 

 

 

작품 등록일 : 2019-05-07

▶ 청담동 마담 별이 5

▶ 청담동 마담 별이 3

작가는 별이언니? 다솜이? 재밋다 ㅋㅋㅋ더써줘 어서~~~~
희원이   
다솜쓰... 안돼~~~
도맛호   
존나 잼써
tr******   
넥스트넥스트넥스트플리즈
허리허리업업
ei*******   
역대급 최강 존잼이다
개비개비   
헐헐 존잼
ho*******   
개재밌다 글빨 지렷다
mi*******   
하 개재밋다.....빨리 써주세여
se*****   
다음편 기다려요
빡빡2   
더써줘
ca********   
재밌다
ca********   
안되에 ㅠ
baksj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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