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마담 별이 2

7

 

사장은 분명 양아치였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본인의 성형실패에 대한 한탄을 시작했다.

얼굴에 돈을 1억을 들였다느니, 궁금하지 않은 정보를 남발하는 질 낮은 양아치였다.

게다가, 못생긴 양아치였다.

 

 

하지만 거짓말쟁이는 아닌 것 같았다.

사기꾼일 수는 있었지만, 그의 사기 대상이 적어도 나나 아가씨들 쪽은 아닌 것 같았다.

 

 

사장은 테이블에 흐트러져 있던 대여섯 개의 핸드폰을 이것저것 집어 들며 여기저기 전화를 해댔다.

나는 언니를 찾아가봐야 하나, 그냥 집에 가봐야 하나, 혼자서 머리속이 복잡했다.

 

 

그때였다.

 

날씬한 긴 생머리의 젊은 여자 한 명이 문을 홱 열고 들어왔다.

 

사장은 그 여자를 보자마자 소리를 쳤다.

 

- 어휴 저 미친년!

 

그 미친년은 술을 한잔도 마시지 않은 게 분명했지만, 왠지 술에 살짝 취한 것 같은 느낌을 풍겼다. 화장기도 거의 없었지만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 들어앉은 이목구비가 귀여웠다. 무릎까지 오는 블랙 킬힐 부츠를 신은 그녀는 성큼 성큼 걸어와서 긴 갈색 생머리를 한쪽으로 홱 넘기더니 사장에게 허스키한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 김사장 오빠, 그게 아니라, 내가 많이 아팠다니까?

- 됐어, 너는 이제 내가 어휴 아주 어휴 니 말은 믿을 수가 없어

 

미친년은 사장이 뭐라던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할 말을 줄줄 늘어놓은 뒤에 방을 나갔다.

손님과 돈에 관련된 이야기였던 것만 어렴풋이 알아차렸을 뿐, 자세한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미친년이 나가고 난 뒤, 사장은 미친년 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불성실 하다느니, 정신이 나갔다느니, 맨날 어디 쳐박혀서 연락도 안받고 출근도 안하다가 자기 내킬때만 나온다느니, 누가 키워줬는데 은혜도 모르고 자기가 잘난 줄 안다느니.

 

- 근데 저 분은 누구세요?

- 우리 가게 마담들 중 한명이야. 쟤 때문에 요즘 아주 머리가 아파 죽겠네.

 

 

마담?

마담이 왜 저렇게 젊어?

마담이 왜 저렇게 예뻐?

 

 

 

집에 갈지를 고민하고 있던 내 앞에 갑자기 등장한 그녀,

그리고 그녀의 차림새, 태도, 말투, 그 모든 것에 나는 매료되었다.

 

수수한, 그러나 세련되게 꾸민 외모

욕을 먹어도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함

맞은편에 처음 보는 누가 앉아있든 눈길조차 주지 않는 도도함

 

나중에 알게 된 그녀의 이름은 소영 이었다.

물론 가명이었다. (앞으로 등장하는 모든 가게 인물들의 이름은 따로 언급이 없다면, 가게에서만 쓰는 가명입니다)

 

 

나는 그녀를 본 순간, 동경하게 되었다.

 

나도 여기서 일하고 싶어졌다.

나도 저런 세련되고 당당하고 도도한 여자가 되고 싶었다.

 

사장은 소영마담 욕을 그렇게 해댔으면서 이제는 소영이가 얼마나 대단했고 얼마나 돈을 긁어모았는지를 설파하기 시작했다.

그 모든 것의 뒤에는 다 본인의 도움이 있었다는 말도 다시 한번 덧붙이면서.

 

 

 

 

나는 결국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 오늘 하루만 일해 봐도 되는 거죠?

- 하루만 일한다고 해놓고, 하루만 일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

 

사장은 박전무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에는 빨간 롱 원피스를 2벌 배달시켰다.

 

나는 그날 손님들에게 고추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8

 

태어나서 처음 입어보는 디자인의 원피스였다. 긴 팔의 롱 원피스였는데, 거의 드레스 수준으로 치렁치렁했다. 가슴골이 약간 보일 정도의 파임이었고 나에게는 약간 큰 사이즈였다.

 

브래지어가 제일 애매했다.

안하기에는 가슴 부분이 너무 떴고, 하기에는 브래지어 끈이 다 노출되어 보기 안 좋았다.

끈을 어찌저찌 잘 감추니 대충은 해결이 되었다.

원피스에 이미 엄청난 크기의 뽕이 내장되어 있었기에, 뽕과 브래지어는 시너지 효과를 내며 내 가슴을 왕가슴으로 만들어 주었다.

 

문제는 신발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가게 한구석에는 여러 사이즈의 다양한 힐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 중 아무거나 주워 신어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원피스가 치렁치렁하니 거의 발까지 가려주었기 때문이다.

 

옷을 갈아입고 나서 나도 민희언니처럼 박전무 손에 이끌려 대기실로 들어갔다.

 

사장은 대기실에서 일단 전대표를 찾으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일단 민희언니부터 찾을 생각이었다.

 

 

 

대기실에는 이미 많은 아가씨들이 출근해 있었다.

대기실이라고 해봤자, 가게 방들 중에서 제일 큰 방 하나를 비워놓은 것이었는데 그 크기가 매우 컸다. 커다란 테이블을 둘러싸고 자로 쇼파가 벽면을 따라 쭉 놓여져 있었다. 사람들을 쇼파에 촘촘히 앉힌다면 족히 30명도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크기였다.

 

대기실은 소란스러웠다. 다들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고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깔깔대며 수다 떨고 웃는 그녀들의 얼굴에서 오늘은 또 얼마나 돈을 벌어가려나 하는 설렘과 에너지가 느껴졌다.

 

 

한쪽 구석에서 조심스럽게 손거울을 보며 앉아있는 민희언니를 발견했다.

언니는 새빨간 드레스를 입고 서있는 나를 발견하고 크게 웃었다.

나도 언니를 보고 크게 웃었다.

언니는 눈으로 나에게 말했다. 그럴 줄 알았지 내가!

 

 

왠지 재밌는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았다.

앞으로 민희언니와 끝없이 수다 떨 수 있는 소재들이 새로이 생겨날 것이 기대됐다.

 

 

그때 박전무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 혜빈아! 혜빈이 이리 나와봐!

 

깍듯했던 박전무의 모습은 딱 면접때 까지만 이었었나 보다.

갑자기 반말을 하는 모습에 놀라고 있는데, 더 놀라운 점은 혜빈이가 바로 민희언니였는 것.

 

언니는 이 가게에 들어온 이후 일관되게 유지하던 쭈뼛거리는 태도로 걸어나왔다.

 

- 혜빈아, 따라와봐. 다른 가게로 가자.

- ? 왜요?

- 김사장님이 하시는 가게가 몇 개 더 있는데, 한 가게에 오늘 아가씨가 너무 모자라다고 해서 몇 명은 오늘 거기로 보내줘야 할 것 같아. 여기서 바로 근처야.

- ? .. 싫은데.. 그냥 여기 있으면 안돼요?

- 거기 가야 더 돈 많이 벌 수 있어. 거긴 지금 손님 많고 아가씨 없으니까 거기가 더 나아.

 

박전무는 민희언니에 다른 아가씨 3명을 더 추가해서 총 4명을 이끌고 대기실을 나갔다.

 

나는 언니와 제대로 인사도 못했다.

언니가 나가고 나서 나는 대기실에 혼자 남아 언니에게 카톡을 하나 남겼다.

 

- 언니 이따가 끝나면 꼭 연락해.

 

 

그나저나 전대표라는 사람은 어디에 있다는거야? 라고 생각하는 찰나,

전대표처럼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 ~ 여기가 오늘 처음 나온 친구구나. 이름 뭐로 쓰니?

- ,, 이름은 아직 안 정했는데요

- 쓰고 싶은 이름 없어?

- 연희요

- 연희 이미 있어

- 나라요

- 나라 이미 있어

- .......

 

나는 내 나름대로의 머리를 굴려서 내가 알고 있는 지인들 중, 제일 예쁜 지인들을 떠올리며 그녀들의 이름을 모두 대보았다. 하지만 모두 있는 이름이었다.

 

- 그럼 그냥 하나 지어주시면 안돼요?

- 다솜이 어때? 원래 다솜이라는 애가 있었는데 이제 안나오거든?

- 네 그걸로 할게요.

 

 

 

그렇게 나는 다솜이가 되었다.

 

다솜아! 다솜아! 가게 사람들이 날 부르던 그 목소리가 아직도 가끔씩 기억이 난다.

 

 

 

전대표는 내가 이미 박전무와 김사장에게 들어서 대충 알고 있던 가게의 시스템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이미 손님들이 들이닥치고 있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전대표는 나에게 집중하지 못했고, 나도 전대표에게 집중하지 못했다.

 

 

 

여기서 전대표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하고 가자.

 

김사장의 말에 의하면, 전대표는 멀쩡한 회사를 다니다가 때려치고 지금은 돈을 벌기 위해서 이쪽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보통 이쪽 일을 하는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웨이터 출신이라던지, 어렸을 때부터 이쪽에 발을 담그고 있었던 사람들이 많은데 전대표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김사장이 꽤 신뢰하는 사람 중 하나이며 일도 잘하고 매우 올곧은 사람이라고 했다.

 

아가씨들이 가게에 들어가면 누군가의 소속은 되어야 하는데, 나는 전대표 소속인 셈이었다. 전대표가 김사장의 직속 부하직원이기 때문에, 나는 김사장의 소속이기도 했다. 누구의 소속인지는 내 입장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 소속이 확실해야 하는 이유는, 아가씨 TC11만원인데 그 중 1만원은 나를 데리고 있는 누군가가 가져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대표는 키가 작았다.

여기서 일하는 남자들은 모두 키가 작은 것일까?

그래도 박전무나 김사장보다는 키가 컸다.

전대표는 잘생겼다. 부시시한 머리스타일에 옷도 헐렁하게 대충 입었지만 양복을 빼 입고 머리를 82 포마드로 세팅한 박전무보다 훨씬 멋있었다.

부리부리하지만 느끼하지 않은 눈에, 선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고, 코는 살짝 휜 듯 했으나 오똑해서 남자다웠다.

그리고 전대표는 친절했다. 박전무 같은 의도한 깍듯함도 아니었고, 김사장 같은 저렴한 친근함도 아니었다. 친절한 와중에 선을 지키려는 프로페셔널함도 보였다.

 

이렇게 나는 전대표에 대한 좋은 첫인상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 첫인상은 내가 가게를 그만두는 날까지 이어졌고, 나는 아직도 이당시를 떠올리면 전대표에게 여러가지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 다시 가게에서의 내 첫날로 돌아가보자.

 

서로가 서로에게 집중을 못하는 상황에서 전대표는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고 나는 무언가 열심히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아가씨들이 갑자기 우르르 몰려 나가는 것이 아닌가.

 

전대표는 나를 급하게 내보내며 말했다.

 

- 너도 초이스 가야지 다솜아. 일단 초이스 하고 다시 얘기하자. 저기 마담언니 따라가. 달이 언니 따라가면 돼.

 

긴 치마 끝자락이 자꾸 발에 밟히는 것을 억지로 들어 올리면서 나는 엉거주춤 급하게 뛰어나갔다. 먼저 나간 아가씨들 무리에 합류하려 했는데, 그 많던 아가씨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복도에서 헤매고 있자, 웨이터 한명이 급하게 지나가며 말했다.

 

- 오늘 처음 온 누나구나! 달이 언니 따라가세요!

 

달이 언니가 누군지 내가 어떻게 알아?

나는 계속해서 복도를 헤맸다. 방이 총 15개밖에 없는 작은 가게였음에도, 처음인 나에게는 미로가 따로 없었다.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큰 소리로 외쳤다.

 

- 달이 언니!!! 달이 언니 어디계세요!!! 달이 언니!!!!

 

내 외침을 들은 달이언니가 결국 모서리에서 빠끔히 얼굴을 드러냈다.

 

2의 소영언니를 기대했던 나에게, 달이언니의 모습은 큰 실망이었다.

성형을 꽤 했음에도 촌스럽고 아줌마스러운 외모에

줄무늬 티셔츠에 청바지에 운동화. 그냥 길가면서 흔히 볼 수 있는 성형빨이 잘 안 받은 평범한 30대 중반 여자의 모습이었다.

 

- ! 너 오늘 처음 온 애구나! 니가 다솜이니? 이리와!

 

나는 또 다시 발에 걸리는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총총 뛰어 갔다.

드디어 아가씨 무리에 합류했다.

 

우리는 방 문 앞 벽에 붙어 쪼르르 줄을 서 있었다.

 

 

그때였다.

 

내가 좋아하는 소영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워낙 큰소리로 얘기했기에 무슨 말을 하는지 그대로 들렸다.

 

- 이럴 수 있는거야? 내 손님이 제일 먼저 왔잖아!!!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야!!! 이런식으로 한다 이거지? 룰대로 안한다 이거지? 그럼 알겠어. 나도 이제부터 그냥 내맘대로 할거니까 그때가서 또 뭐라고 하기만 해!!!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아가씨들 초이스를 보여주는 순서는 먼저 온 손님 순이다.

소영언니의 손님이 달이언니의 손님보다 먼저 왔으니, 소영언니 방에 초이스를 제일 먼저 가야 맞는 것인데, 어쩌다보니 순서가 꼬여 달이언니 방에 제일 먼저 초이스를 보여주게 된 것이다. 그 사실을 안 소영언니가 화를 냈던 것이다.

 

고개를 살짝 빼고 달이 언니 눈치를 살피니, 달이언니는 새초롬한 무표정으로 모르는 척을 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첫날인데, 가뜩이나 첫초이스인데, 싸움이 나게 생겼으니 잔뜩 쫄아서 눈치를 보고 있는데, 방문이 열리고 아가씨들이 또각또각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무서웠다.

 

 

 

몇시간 전 민희언니와 카페에 마주앉은 그 순간부터 방금전 소영언니의 큰소리를 듣던 순간까지 무섭다는 생각이 든 적은 단한번도 없었는데

 

손님들과 얼굴을 마주할 순간이 다가오자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가게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그날의 내 기준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룸 안에 앉아있을 손님들은, 그 남자들은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들인 것이었다.

내가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남자들, 내가 사귀던 남자들, 내가 알고지내는 모든 평범한 남자들, 바로 그 일반인들이 저 안에 앉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남자들은 나를 그들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보겠지. 저들과 같이 보겠지.

 

여기서 오는 괴리감과 순간적인 인지부조화가 나를 감싼 순간, 나는 두려워졌다.

 

기로에 서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되느냐, 저들이 되느냐의 기로.

 

여기서 방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손님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에서, 김사장과 같은 부류의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었고, 그건 내 아이덴티티의 큰 변화였다.

 

 

하지만, 여기서 도망갈 수는 없었다.

 

 

따라 들어갔다.

 

손님들과 마주 섰고,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들이 아니었다.

저들이 되었다.

 

 

작품 등록일 : 2019-05-03

▶ 청담동 마담 별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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