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dy’s file #2
도우 캘러핸 경감은 더블린 경시청에서 일하는 47세의 카톨릭 신자였다. 그는 주말마다 가족과 성당에 가는 독실한 신자였으나 신의 용서를 믿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의 신념으로 한번도 고백 성사를 보지 않았다. 죄를 저질렀으면 처벌을 하고 전과 기록을 남겨 낙인을 찍어야지 아무리 신이라도 죄인을 자기 마음대로 용서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캘러핸은 작년 래쓰다운에서 있었던 여고생 살인 사건을 어제 일처럼 기억했다. 툴리 고등학교에 다니던 17살 피오나는 일요일 아침 놀이 공원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다 근처 공사중인 건물로 끌려가 맞아 죽었다. 범인은 피오나를 강간하려다 반항이 거세자 코뼈가 함몰되고 턱뼈가 부서질 때까지 때렸고, 숨진 피오나를 시간(屍姦)한 뒤 시체를 태우려다 동네 주민에게 발견돼 도망갔다.

그는 신이 분명 세상을, 아주 천천히, 더 나아지게 하고 있다고 믿었다. 언젠가 신은 그런 인간이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그는 미해결 사건을 자신이 평생 짊어지고 갈 업보로 여겼다. 그는 범인 검거를 신의 뜻을 수행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캘러핸은 올해 초 브로디의 아버지를 만난 것도 그런 이유라고 믿었다. 식당에서 곤욕을 치르던 브로디의 아버지 윌리엄 버크를 발견한 것도, 그를 돕게 된 것도 모두 신의 뜻이라 믿었다.

캘러핸은 그러나 아직도 브로디가 자진해서 경찰을 돕겠다고 나선 것은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엔 도시 물정 어두운 아버지를 도와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이라 생각했지만, 그보다 더 절실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브로디 버크는 버크 오거닉스 인터내셔널(Burke's Organics International)의 실질적 소유주이자 경영자였다. 회사의 법적 대표는 아버지 윌리엄 버크이지만, 버크 오거닉스는 순전히 브로디 버크에 의해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회사였다.

"농업계의 모차르트", "대지의 마법사", 유럽 언론이 브로디 버크에게 붙여준 수식어였다. 브로디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돈이 많은 30대 사업가였으며, 2010년 아일랜드 정부가 뽑은 가장 촉망받는 기업가였다.

브로디는 경시처에 제출한 신상 명세에 자신의 직업을 농부라 적었다. 그는 농부가 하는 일과 범죄를 소탕하는 일은 유사점이 많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범죄자 잡는 일을 하고 싶었으나 기회가 닿지 않았다고 했다.

브로디는 냄새를 잘 맡는다고 했다. 냄새 맡을 일은 경찰견에 맡기면 된다고 하자 브로디는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개는 말을 못하잖아요.

그 후로 몇 주 동안, 캘러핸 경감은 인간의 두뇌와 개의 코가 결합되면 어떤 기적이 일어나는지 목격했다. 브로디는 범죄 현장에 들어서면 이곳에 누가 있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언제 그랬는지, 공기 중에 떠도는 극소량의 분자 알갱이만으로, 모두 다 알아낼 수 있었다. 브로디의 코는 세상만물의 잔상을 볼 수 있었다. 보커 나이프가, 도려낸 눈알이, LSD와 페라가모 가방이 어떤 궤적을 그리며 현재 위치에 놓이게 됐는지 리와인드 영상을 보듯 파악할 수 있었다.

브로디는 냄새를 과거를 보는 감각이라고 했다. 시각과 청각이 현재를 인지하는 감각이라면 후각은 과거를 인지하는 감각이라고 했다. 냄새만 맡으면 그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뭘 했는지, 무얼 먹었는지, 누구와 있었는지 뿐만 아니라, 어떤 부모로부터 태어나 어떻게 길러졌는지도 알 수 있다고 했다.

브로디의 후각이 경이로운 건 다른 개체 사이에 유사성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폐암 환자의 냄새를 반복해서 맡으면 폐암 환자들에게서 느껴지는 냄새 패턴을 인지해 폐암 발병률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들을 가려낼 수 있다. 개체 간 냄새의 유사성은, 수많은 개체의 유전자와 분자 화학 구조를 파악해 수백만 가지의 패턴을 가려낼 수 있다. 암 유전자 뿐 아니라, 면역력, 학습 능력, 기억력, 호전성, 그리고 범죄 성향까지.

캘러핸 경감은 신의 기적을 믿었다. 자기 눈 앞에 브로디가 그 증거였다. 하지만 아직도 브로디가 일부러 이 불쾌하고 위험한 일을 맡은 의도는 알 수 없었다. 자신과 브로디의 만남은 분명 신의 뜻이겠지만, 브로디에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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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디는 검시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의 이 20대 중반 여성은 희생자의 시신을 세번째 뒤집는 중이었다. 피가 어디서 새는지 몰라서 당황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폰 벨이 울리고 있었다. 이미 한번 끊겼다 두번째 울리는 중이었다. 시체를 뒤집어 놓은 채로 전화를 받았다. 

대답하는 내용으로 보아 어머니의 신세 한탄 전화인 것 같았지만 크리스틴은 전화를 끊지 않았다. 빨리 시신을 처리해야 했지만 그는 쓸데없는 전화 통화를 끊지 못했다. 

아침에 동거남과 성관계를 한 것도 원해서 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매일 아침 동거남과 우격다짐 섹스를 하고 출근했다. 그도 분명 동료들로부터 브로디가 상대방의 최근 30시간 행적을 전부 다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매번 현장에 나올 때마다 남자친구와 일을 벌이고 냄새를 지우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건 이 여자 성격이 그만큼 단정치 못하단 얘기였다. 

브로디는 애당초 크리스틴이 부주의한 유전자를 물려받아 단정치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한 때 고딕 문화에 심취했다 시체 검시로 밥벌이를 하기로 한 모양인데 지금은 그 선택에 만족하는 것 같지 않았다.

브로디는 니암을 생각했다. 니암은 브로디 회사의 물류 시스템에서 일하던 직원이었다. 400파운드의 주급으로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착하고 정 많은 여자였다. 겨울에 회사 물류 창고에 길고양이를 데려와 키우기도 했다. 옆 부서 직원에게 돈을 빌려주고 여러 차례 떼였지만 아무 원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니암은 주의력이 부족했다. 원산지 기입란에 킬데어와 킬케니를 두번이나 바꿔 넣었다. 니암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브로디의 사업엔 해가 되는 사람이었다. 브로디는 니암의 부주의가 실수가 아니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니암을 해고할 때 많은 직원들이 간청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자기들이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브로디는 니암이 회사를 떠나며 남긴 이메일을 기억했다. 이 회사에 연인 같은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고.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결별 통보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지만 자기는 회사가 잘 되길 바란다고 했다. 앞으로도 좋은 제품 많이 만들어 달라고 했다. 자기는 언제나 이 회사의 충성 고객일 거라고. 그동안 이 회사에 일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브로디는 크리스틴에게서 니암의 냄새를 맡았다. 크리스틴도 분명 선량한 사람일테지. 그래서 캘러핸 경감의 신뢰를 얻은 거겠지. 

브로디는 사람들이 느끼는 신뢰가 자신이 아는 신뢰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는 감정적 신뢰로 사업에 실패한 이들을 기억했다. 단지 “착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믿었다 천문학적 손해를 본 사람들을 생각했다. 자신에게 그들의 신뢰가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생각했다. 

브로디는 자신이 캘러핸 경감과 얼마나 다른 종류의 인간인지 생각했다. 선한 의도는 신뢰의 함정이라고 생각했다. 브로디는 선한 의도에 관심이 없었다. 사람이 뭘로 만들어졌는지에 관심이 있었다. 의도는 의도일 뿐이다.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다. 하지만 유전자는,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로 이어진다. 브로디는 지금껏 한번도 예외를 보지 못했다. 

밖에서 캘러핸 경감의 차 냄새가 났다. 캘러핸 경감은 브로디가 오는 범죄 현장을 매번 방문했다. 직장 멘토 역할을 하려는 것 같은데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매번 찾아와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물었다. 

뭔가 발견했어?

브로디는 부엌 싱크대 밑에 죽어 있는 10살 남짓 남자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는 두개골이 깨지고 치아가 여럿 부러져 있었다.

아이 아빠가 왔었어요.

캘러핸 경감이 물었다.

아빠? 고아 아니었나?

브로디가 말했다.

남자애 입 안에 피가 고여 있는데 다른 사람 피랑 섞여 있어요. 절반은 같은데 절반은 다른 피. 아빠 아니면 엄마일텐데 아빠일 가능성이 더 크겠죠?

캘러핸이 수사대 직원들에게 남자 아이 입 안의 피를 수거하도록 했다. 브로디가 설명했다.

거실에서 죽은 여자는 양부모겠죠? 입양한지 꽤 된 것 같은데. 혼자 살면서 남자 아이를 키우고 싶었겠죠. 아이가 크면 자신을 보호해 줄 수도 있고.

브로디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이가 충분히 크기 전에 이렇게 돼 버렸네. 그것도 아이 아빠한테.

남자 아이는 양모와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 보였다. 집안엔 친아들의 포즈로 찍은 사진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아이는 몸집이 작았다. 하지만 자신과 양모를 지키려 했던 것으로 보였다. 집안에 침입한 아버지를 물어 입 안에 피를 남겼다.

살인범은 타이어 공장에서 일하고 있을 거에요. 아이가 이빨 자국까지 남겼으니 쉽게 분간이 가겠죠.

브로디는 돌아가는 길에 죽은 아이의 냄새를 곰씹었다. 아이는 그를 살해한 아비의 냄새와 많이 닮아 있었다. 그 아이도, 만일 죽지 않았다면, 커서 자기 아버지 같은 망나니가 됐을까? 키워 준 어머니를 두들겨 패고 술에 절어 사는 인생을 살았을까?

정성주는 생명체가 설계 도면에 따라 조립된 제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수십년이 걸렸다고 했다. 브로디는 아직도 그 말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지금껏 이해한 생명체는 DNA라는 설계 도면에 따라 움직이는 생산품이었다. 예외 케이스가 있다 해도 그 수는 무시해버려도 좋을 정도로 적었다. 지금껏 그렇다고 믿었다. 

정성주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불치성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정성주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운명을 판단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면 도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에게 페티쉬가 있었거나. 아니면 그저 진취적인 성격이었을지도 몰랐다. 목적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목적지향적인 성격이었을 수 있었다. 

브로디는 그가 뭘 알게 됐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서 얻은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브로디에게 사람의 운명을 예측한다는 건 젊은 시절의 객기였다. 어릴 땐 모든 게 다 가능할 것 같았다. “이런 유전자에게선 이런 냄새가 나” 이런 얄팍한 느낌으로 사람의 미래를 점칠 수 있다고 믿었다. 

브로디는 생각했다. 나도 의사였다면 그가 아는 걸 알 수 있었을까? 내가 지금 모르는 건 직업이 농부이기 때문일까? 동물이 아닌 식물을 연구했기 때문일까? 

가업을 물려 받은 사업가들 중엔 제 애비에게 열등감, 경쟁심을 느끼는 이들이 있었다. 브로디는 자신이 그런 경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정성주의 기록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이 자는 분명 자신보다 지적으로 월등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더 월등한 후각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정성주는 브로디에게 경이이자 미지의 세계였다. 어릴 때부터 전해 들었던, 혹은 상상해 왔던 전설 속 이야기의 현실 구현이었다. 

“저는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의사 정성주는 병든 자들의 병든 유전자에 대한 데이터를 얻었을 것이고, 그 데이터의 결과 값을 얻기 위해 수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범죄자들의 범죄 유전자는 세월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저는 무슨 죄를 지어서 왔어요.” 냄새는 과거를 읽는 능력이기에 브로디는 미래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기로 했다. 범죄 전과자처럼 과거가 선명한 샘플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기보다 우수한 능력을 따라 잡으려면 지름길을 택해야 했다. 정성주가 정말로 사람의 운명을 읽을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면, 브로디는 그가 택하지 못했던 다른 방식으로 목표 지점에 도달해야 했다. 

그는 정성주의 유전적 영향력은 잊기로 했다. 비록 같은 능력을 물려 받았지만 브로디는 그와는 다른 삶을 살 것이라 생각했다. 생명체가 설계 도면과 다른 삶을 산다는 건 아마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작품 등록일 : 2023-04-23

▶ Brody’s file #3

▶ Brody’s file #1

흥미롭다
my*********   
종이책으로 소장하고 싶음
너무 재밌다ㅠㅠㅠㅠㅠ❤️
Ashera8   
정성주는 북한 사람같고,
브로디는 미국 사람같은데,
둘다 같은 능력을 물려받았군..!
Sunn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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