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역덕 3호] 약자에게 좋은 친구는 없다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 유럽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어.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유럽은 여전히 2차 대전의 직간접적 영향 아래 있다고 봐야 해. 종전 100년이 채 안되어 유럽 내에서 또 다시 침략 전쟁이 벌어졌으니 트라우마 버튼 제대로 눌린거지.

 

러시아의 침공이 현실화되자 유럽은 정말 오랜만에 일치단결한 모습을 보여줬어. 개전 직후 한 목소리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 성명 및 러시아에 대한 성토를 쏟아냈고, 그 스위스까지 중립기어 풀고 경제제재에 동참했을 정도야. 역사적인 독일의 재무장 선언이 있었고,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군사적 중립을 고수해온 핀란드와 스웨덴마저 나토 가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종전과 소련 붕괴 후 오랜 기간 유럽사회에 정립된 하나의 틀이 깨지기 시작한 거야. 시간이 지나 이 전쟁에 대해 역사가 내릴 평가, 무수히 쏟아져 나올 서적과 다큐 내용이 궁금해지기까지 해.

 

그동안 누구도 해내지 못한 유럽 통합을 이런식으로 이끌어낸 푸틴의 전략적 안목에 전세계는 그저 감탄해마지 않는 중이야. 사분오열 직전 유럽을 위해 기꺼이 악역을 자처한 이 시대의 진정한 다크나이트라 할 수 있지. 그렇게 오랜 분열을 끝내고 이제부터라도 진정한 통합의 길로 나아가나 했지만...

 

 



전쟁이 불확실성에 접어들자 서로 다른 길을 모색하는 나토국들.jpg 기사링크

 

예상보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유럽의 유구한 전통에 따라 귀신같이 서로의 머리채를 잡기 시작했어. 러시아의 침공과 전쟁범죄에 대한 비판에는 이견이 없으나 전쟁에 대한 향후 전망이나 전후처리를 놓고서는 각국의 셈법이 엇갈리면서 파열음이 들리고 있지.

 

러시아라면 치를 떠는 동유럽과 발트 3국은 개전부터 지금까지 초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다시는 저 시베리아 불곰놈이 유럽안보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단교를 각오하고 제대로 손 봐줘야 한다며 펄펄 뛰는 중.

 

유럽 수장인 독일, 프랑스의 경우 입으로는 열심히 러시아를 규탄하고 있지만 속내가 매우 복잡해. 이들은 예전부터 러시아와의 관계가 딱히 나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수입 비중이 높은 국가들이라 예상보다 전쟁 장기화되니 입장이 굉장히 난처해졌지.

 

특히 탈원전으로 더더욱 가스 수입을 러시아산에 의존하고 있는 독일은 곤혹스럽기 짝이 없어. 세계대전에 대해 공부한 사람이라면 독일이 전쟁을 일으킨 데는 자원의 문제가 크다는 걸 알고 있을거야.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독일처럼 제조업이 발달해 에너지와 자원을 많이 소비하는 국가는 점점 버티기가 힘들어져. 푸틴이 침공 시기를 한겨울 다 지나서 잡은 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일 지경.

 

이 시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는 주요국들의 시각을 간단히 정리해볼까?

 

 

-미국



직접적인 군사개입 없이 러시아를 마구 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가장 신나있음. 전쟁을 장기화하여 러시아의 역량과 군사력을 최대한 갉아먹고 다시는 국제무대에서 나대지 못할 정도로 밟아 놓길 바라는 중. 

 

얼마 전 랜드리스가 77년 만에 부활하여 미국 상원을 통과하고 하원 의결만 앞둔 상태야. 랜드리스란 2차대전 당시 미국이 독일과 싸우는 연합국에 무제한으로 무기와 전쟁물자를 대여해 준 법안을 말해. 독소전에서 소련이 전세를 역전하고 승리를 거머쥔 결정적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고. 랜드리스의 최대 수혜자였던 소련의 후신이 80여 년 만에 개같이 부활한 랜드리스에 역으로 당하게 생긴 것. 랜드리스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러시아는 지금쯤 뒤통수가 싸늘할 듯.

 

 

-영국



유럽 주요국 중 러시아 비판에 앞장서고 있는 건 물론 실제 대응에 있어서도 가장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음. 역사적으로 러시아를 지근지근 밟는 게 대영제국 DNA이기도 하거니와 보리스 총리가 코로나 봉쇄령 중 측근들과 파티를 열다가 들킨 일 등으로 지지율이 간당간당한 상태라는 걸 감안해야 함. 

 

어제 보리스가 키이우를 깜짝 방문해 젤렌스키와 도심 시가지도 함께 돌아봄. 보여주기식 행보라도 언제 포탄이 날아올지 모를 전쟁통을 방문하기 쉽지 않을텐데 대단하다는 반응이 중론. 우크라이나 전쟁을 당면한 영국의 행보는 현재 총리님이 꼬라박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목숨 걸고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보면 돼.

 

 

-독일


메르켈 시절 독일과 러시아의 유착관계가 재조명되며 전방위로 욕 처먹는 중. 그동안 달달한 러시아 가스맛에 취해 유럽 전체의 안보위기를 불러오고 전쟁 전 우크라이나로 가는 병력과 무기지원을 막기까지 하며 적극적으로 러시아 역성을 들었다는 것. 

 

거기에 최근 밝혀진 주독 우크라이나 대사 인터뷰에 따르면 개전초 독일에게 지원 요청을 하자 당국 관계자들이 대놓고 48시간 만에 망할 나라를 우리가 왜?ㅋ 라는 사탄도 혀를 내두를 혐성질을 시전했다고. 젤렌스키가 부차 학살과 관련해 예전에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을 반대한 메르켈을 공개저격하자 발끈한 당사자가 그 때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맞받아침. 전세계 여론이 더 험악해진 건 당연지사. 

 



최악의 타이밍에 취임한 숄츠만 욕받이 행. 안 그래도 한 줌 남은 머리 다 빠지게 생김.

 

 

-프랑스



독일 만큼은 아니지만 예나 지금이나 전쟁 전 입만 턴다며 욕먹고 있음. 지랄맞은 유럽에서도 가장 콧대 높은 동네인지라 이번에도 미국 영국에 밀려 또 들러리 신세가 됐다며 자존심 팍 상해부림. 대선을 앞두고 경쟁 후보의 지지율이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상황이라 마크롱의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 현재 지지율 2위인 르펜은 프랑스 극우꼴통의 선두주자로 순혈주의를 내세우는 반EU 반나토 반미 친러 노선임. 나머지 후보들도 전부 맛탱이 간 친러 성향인 건 대동소이. 프랑스 네티즌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선 연일 양측 진영에 의한 개싸움이 벌어지는 중.

 



초접전이 예상되는 프랑스의 대선 1차 투표는 이제 시작이야. 다같이 마크롱의 무운을 빌어주도록 하자.

 

 

-폴란드



가장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나섬과 동시에 연일 목에 핏대 올리며 독일과 프랑스를 까는 중. 이런 폴란드의 행보에 감동 받았다는 사람이 많은데 여기에도 속사정이 있어. 사실 이런저런 역사적 이유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사이가 꽤 험악했던 편이야. 그럼에도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지는 순간 바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야 하는 폴란드로선 순망치한이라 돕지 않을 수가 없는 것. 

 

또 최근 독일과 프랑스 대표되는 EU와 폴란드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이어졌다는 것도 유념해야 해. 권위주의적인 폴란드 정부의 행보가 삼권분립과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고 EU가 여러 차례 우려를 나타냈거든EU 입장에선 지원은 지원대로 다 받아내면서 시대를 역행하며 막 나가는 폴란드가 영 맘에 안 들고, 폴란드는 폴란드대로 지정학적 이유로 대러시아 안보는 독박 씌워놓고 내정간섭이 지나치다는 식으로 맞섰어. 자꾸 내 말 안 들으면 지원금 끊어버린다? 응 폴렉시트~이러면서 으르렁거리는 와중에 이번 일이 터진 것. 

 

폴란드 입장에선 안 그래도 얄미운 독일과 프랑스를 깔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고 하루가 멀다 하고 자진모리 장단에 맞춰 둘에 대한 성토를 쏟아내는 중.

 



얼마 전 폴란드 총리가 전쟁 전 대화한답시고 푸틴한테 그렇게 들락거리더니 무슨 성과가 있었냐며 히틀러와의 회담에 빗대어 마크롱을 비아냥 거리는 일이 있었어. 이런 비판에 발끈한 마크롱은 폴란드 총리에게 LGBT 반대하고 시류를 거스르는 극우꼴통이라는 식으로 받아쳤고. 기사링크

 

개판이지? 다들 입으로는 도덕과 정의를 외치며 우크라이나를 돕는 것 같지만 속으론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는 중인거야.

 

 




이번 전쟁은 우크라이나 뒤에 있는 제1세계의 대리전으로 이해해야 해. 특히 자유진영의 수장인 미국 입장에선 가능한 이 전쟁을 오래 끌어서 수렁에 빠진 러시아의 기력을 완전히 소진하길 바라고 있어. 마치 우크라이나의 라스푸티차 진흙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러시아 전차처럼.

 

국제 사회에서 인류애와 평화에 의한 협력은 허상일 뿐, 21세기에도 각국은 철저하게 국익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거야. 그 누구도 진심으로 먼저 손 내밀지 않고 이유 없는 호의를 베풀지 않는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이지. 이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해. 러시아를 완전히 몰아낼 때까지 목숨 걸고 싸워서 이기면 되는거야. 이미 협상을 하기엔 양쪽 다 너무 멀리 왔어. 부차 학살까지 공론화 된 이 시점에서 적당히 영토를 넘기고 휴전협정을 맺는 건 우크라이나의 패배나 마찬가지야. 푸틴과 타협하지 않고 자력으로 러시아를 몰아내서 승리를 쟁취해야 해. 러시아의 마수로부터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진정한 유럽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입성하겠다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숙원을 이루고 싶다면 말이야.

 

 


 

폴란드볼 만화 중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의 일부를 가져왔어. 제정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후에도 끊임없이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핀란드의 역사에 대해 다룬 내용이지. '핀란드화'라는 용어처럼 핀란드에게도 소련의 압박에 의해 중립을 강제받고 굴종적으로 그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시기도 있었어. 그럼에도 그들이 동유럽처럼 소련에 병합되지 않고 독립국 지위를 지켜낼 수 있었던 건 소련에게 결사항전하여 치명적인 피해를 안겨준 경험이 있기 때문이야.

 

가끔 왜 세상은 온통 미국과 서방 중심으로만 돌아가느냐며 부당함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보곤 해. 사실은 너무 간단한 문제인데 말이야. 인류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이 평화의 시대는 그들이 흘린 피 위에서 이룩한 체제거든. 

 

미국과 서방이 2차대전에서 나치를 물리쳤고, 냉전에서 공산주의에 맞서 싸워 승리했고, 자유 평등 인권 민주주의 등 현재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실현했어. 지금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들이 그만큼 목숨값을 지불하고 무수히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이야.

 

 



국제 관계에서 감정과 동정심에 호소해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어. 지금 우크라이나가 흘리는 피는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위해 그들이 지불하고 있는 대가야. 몇 년이 걸리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러시아로부터 온전한 승리를 쟁취한다면 서방은 우크라이나의 가치를 인정하고 진정한 자신들의 일원으로 맞아주겠지. 지금까지의 역사가 그랬던 것처럼.

 

 

질문댓 달아주신 분들 답글은 이쪽으로

https://idpaper.co.kr/counsel/item/item_view.html?cnslSeq=852780

 

작품 등록일 : 2022-04-11

▶ [주간역덕 4호] 핀란드의 나토 가입, 우크라이나와의 차이점

▶ 우크라이나 전쟁 전후 마리우폴

유익한데다 존잼!
상콤레알딸기   
재밋셩 역덕쵝오
โชติรส สุริยะว   
자유, 민주주의, 인권, 평등을 누리기 위해 서방세계에서 그만큼 목숨값을 지불했기 때문이라는 구절이 넘 와닿는다. 늘 남의 손으로 구원을 받았던 나라에 사는 국민으로써
as****   
재미있고 유익하다 국가간의 역학이지만 개인에게도 도움이된다
어쩌면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내가 유크래인이면
러시아만큼 독일 존나 싫을듯ㅋㅋㅋㅋ 착한척 위선떨다 제일빅엿줌 스카이캐슬 이태란같음
해커***   
너므 잘쓴다,,,
hae   
4딸라! 진짜 존나 재밌다 뇌에 피가 싹돎
gl***   
난 이런 글 쓰는 여자 뇌가 너무 섹시한거 같아

완전 매력 있음

약자에게 좋은 친구는 없다
이건 사실 개인에게도 거의 적용되는 룰인듯
You'll never know   
후아 존잼..!!
wi******   
최고에요
sk********   
메르켈 히틀러 콧수염ㅋㅋㅋㅋ
내용도 좋지만 사진 셀렉 센스 굿
er****   
캬 넘재밌다
초장   
돈을 받아야 마땅한 글이다!!
ye***   
약자에게 좋은 친구는 없다. 여러모로 귀에 박히는 말이야
th******   
재밌다
ii******   
언니 글 너무 좋다. 글이 길어지면 읽다 말게 되는데, 적절하면서도 핵심내용은 놓치지 않고 넣어서 좋네.
사진도 저거 다 하나하나 골랐을 거 생각하면 글이랑 해서 시간 많이 들었을텐데, 고마운 마음에 소액 드리고 갈게.
새봄   
어떻게 매번 일케 잼게 글을 써 미쳣어 최고야
루루 짓던   
진짜 재밌다. 난 우크라이나가 이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건지 궁금해. 계속 싸우는 것보다 협상해서 영토 좀 주는 게 나은 게 아닐까?
sa*******   
딸라!!드림!!!
키위**   
내용 넘 재밌어요
h****   
너무 좋다 내용
to******   
와우
ku키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연재 기다립니다.
reiha2   
언니 완전 멋있다 돈받으세요
방뎅이   
일단 있는거
다 털어드림

존경합니다
ra선생님!!!!!!!!!!!!!
진미오징어   
잘 읽었어 시야가 조금씩 틔이는듯해
비프로선언   
독일은 메르켈새끼가 친러였을걸. 러시아말도 할줄 알아서 공식석상에서 러시아어도 하고 그랬심.

난 폴란드 속사정을 첨 알았네ㅋㅋ 체코도 같이 러시아 존나 패던데 속사정 궁금..
냥냥   
근데 러시아가 그럴거 뻔히 알면서 독일 프랑스는 탈원전을 왜 한 거야?
마크롱은 반러 노선이야?
댓글에 가스비 120마넌은 내가 못 본건가? 어디 나와?
호수를달려요 개초딩   
애독잡니다. 글이랑 떨어지는 사진 셀력션이 일품이네요.
Le***   
가스비가 120만원이 나올 수 있다니!
푸드덕   
나 이번에 가스비 백이십만원 나왓다. (독일) ㅠ 작년이랑 똑같이 썻는데 미쳤네 완전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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