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비공식 내 첫사랑에 대해 소개하자면
이게 1962년의 그이
나는 82년생이라 저때를 내가 봤을리도 없지만
기껏해야 기억하는 그이의 모습은 엘피판의 마네킨같은 매끈한 45도 옆모습이지만
일본에 유학갔다왔다는
할배집 골방에 살던 아저씨는
근사한 레코드들과 비디오를 갖고있었고
할배가 기차역에 가고 할매가 밤 깎으러 부녀회장 집에가고 집이 비는 낮동안 나를 봐주는 조건으로
그야말로 "차린건 없지만" 많이도 아침 점심밥을 처먹었다
밤에는 어디 오부리밴드하러다녔으니까 저녁밥은 나가서 자셨을려나
코악 코악 가래받으면서 양치소리가 요란하면 나는 골방에 건너가서
The platters 의 레코드를 걸고 Only you 같은 것을 들었다
"껌디들은 하이튼 미칭기라"
맞다 껌디들은 미친거 같다
3 degrees 누나들의 when will I see you again나
Jackson five
the stylistics
earth,wind and fire 같은 미친 노래들을 들으면서
맞지 껌디들은 미쳤지 생각했다
"근데 히야는(형)은 일본에 공부하러가서 왜 미국 노래만 들어요?"
"응 미국까지 갈 돈이 없어서 뱅기에서 중간에 내리라카드라. 내려보니까 일본이데?"
저런 재미있지도 않은 헛소리도 나는 믿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뱅기 새끼들도 참 야박하다 생각할 뿐
껌디들 노래만 듣고 soul train비디오 같은 것을 보다 보니 살짝 질릴만할 때
히야는 종종 "낭만주의여 부활하라!" 이딴 구호을 외쳤는데
그러면서
들려준게 Andy williams의 moon river였다
파란 그야말로 새파란 눈알의 백인아저씨가 두 뺨은 붉고 앙증맞은 마이크를 쥐고
꿈결같은 표정으로 꿈결같은 노래를 불렀다
꼭 참기름을 바른 것 처럼 레코드판의 매끈한 얼굴을 며칠을 뚫어져라 바라볼때
자기가 만든 비디오라며 보여줬던 그날에
앤디는 나의 그이가 되어버린 것
후로 오드리햅번의 영화들이나 엠마뉴엘을 봤다
아마도 히야는 내가 너무 어려서 그게 살색향연의 영화더라도 뭔 문제겠나 했을지도
여하튼 그리그리 나는 앤리오 모리꼬네 라던가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빙 같은 실로 대단한 사람들도 알아갔다
히야는 3개월 정도 골방에서 지냈다
그리고는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하면서 달동네의 꼭대기에서 구루마를 밀고 산아래로 내려갔다.
달랑달랑 구루마끝에 앉아서 따라 내려갔다가
히야가 이별의 선물로 준 내가 좋아하던 엘피 몇장을 품에 끌어안고 돌아왔다
히야는 그 달동네 꼭대기를 떠나 서울의 또 어느 달동네 산꼭대기에 자리를 잡았다고
달이 밝다 이런 내용이 적힌 편지를 나에게 보냈다
할줄 아는 건 코파기 뿐인 내가 읽을 수는 없으니 고모가 대신 읽어줬다
친애하는 나의 가장 어린 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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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무료한 너의 시간들은 무얼하며 보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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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시대는 꼭 다시 올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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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열심히해서 서울에 대학을 오너라
그때는 내가 어디 사장쯤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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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중간에 내리지 않도록 돈은 많이 벌어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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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사랑하는 나의 꼬마 친구야 잘 지내라
이만 펜을 둔다.
Tommy 히야로부터
애석하게도 비행기를 타면 미국까지 못하고 중간에 내려야 할판으로 모아둔 돈은 없지만
공부를 못해서 서울에 대학도 못갔지만
음악은 여전히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