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텐의 2021추석

본가에 들러 가족들과 미사를 보고나서

아직 설익은 무가 아삭거리는 탕국에 밥을 말아 

솜씨없는 엄마의 겉은 뜨겁고 속은 차디찬 동태전과 함께 후루룩 아침을 먹었다.

 

급히 갈데가 있었다.

 

할매가 죽고 딱 십년됐다.

내가 서른에 할매가 죽고 이제 나는 마흔이다.

 

할매한테는 11명의 형제가 있었다.

전쟁때 죽고 늙어서 죽고 아파서 죽고

살아있는 할매의 4자매- 나의 이모할매들을 만나러 바삐 움직였다.

 

할매들은 하나 다를것없이 가난하다.

우리 할매도 그랬고, 할매의 언니들도 동생들도 모두 가난했다.

지금도 가난하다.

가난이라면 나도 못지 않다.

이놈의 가난들이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다 옴붙었다.

가난해서 집도 절도 없이 살던 나와 할매들이다.

산으로 산으로 쫓겨가다 가난한 동네에서도 가장 가난한 시멘트 산위에 살던 우리 할매.

다른 할매들도 그렇게 그렇게 더욱 가난한 곳으로 가서

어느 이름없는 산아래에 듬성듬성 살고 있다.

 

등에 맨 배낭에는 할매들 줄 추석 선물이 가득하다.

덜그럭거리는 소리는 홍삼엑기스 병이 부딪히는 소리

수면양말이랑 바세린 이것저것 4명분을 챙겼다.

담배피는 할매들 줄 담배도 몇보루있다.

현금도 미리 뽑아뒀으니 봉투는 할매들 집을 나설때 거실로 잘 던져주고 오면 된다.

곱게주면 안받을테니까.

 

약국이 열지 않는것이 좀 아쉽다.

할매들의 자양강장제 판피린F를 사다줄수가 없으니.

 

첫번째로 이신연할매집에 11시에 떨어졌다.

할매집이 바로 산아래라 제일 먼저 들렀다.

할매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밥상을 차린다.

내가 거들겠다고 하면 삐지실테니 나는 고마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가랑이에 적당히 손을 쑤셔넣고 몸을 쭉 늘리고 빼꼼히 부엌을 들여다 보면 된다.

한 술 뜨다말고 또 가서 뭘 가져오고 맨 밥한술 넣고 반찬 넣을 틈도 없이 또 뭘 얹는다.

차린것이래 봐야 추석이라고 부친 두부전과 큰 돈 썼을 고깃국이다.

허전한 밥상을 채우려 할매는 온갖 장아찌를 자꾸 퍼온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장아찌의 간장냄새가 지독하게도 따라온다. 평생을.

예수평강교회라고 적힌 밥상에는 센터에 빛나는 예수가 번쩍거리고 주변을 애워싼 양떼들이 그려져있다.

오가는 대화는 별로 특별할것이 없다.

벽에서 한 15센티 정도 떨어져 기울어진 액자들에는 이사진 저사진 할매의 삶이 들었다.

자매들이 각기 알록달록 단색 위아래 한복을 입고 루즈를 바른 무뚝뚝한 입들이 오종종한 단체사진도 있다.

왼쪽 두번째 가을하늘 같이 새파란 한복을 입은 내 할매도 있다. 

 

새빨간 뚜껑의 소주를 따는 할매의 손이 바들바들한다.

혈관을 간신히 덮은 얇은 피부가 양파껍질보다 조금 더 질길까.

한잔 목구멍으로 넘어가는데 여간 독한게 아니다.

할매는 한 3걸음 나한테서 물러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담배를 핀다.

살짝 회색빛이 도는 할매의 눈은 어디를 보는지 잘 모르겠다.

홀쭉하게 담배를 빨아 들이고 오그라든 입술을 간신히 떼어 연기가 돌아나간다.

회색빛과 흰빛이 뒤섞인 성성한 머리를 오늘도 은색 비녀로 잘 말아찔러뒀다.

우리할매는 빠글빠글한 머리를 했는데, 나름 도시로 시집나온 신여성이었다.

가끔 할매의 자매들의 집에 들러 며칠씩 지내던 어린날에

침침한 알전구가 일렁일렁 그림자를 만드는 밤에

긴 머리를 풀어 내려 곱게 참빗으로 빗어내리곤 했다.

가지런히 모아쥔 빠진 머리카락을 신문지에 꼭꼭 싸서 쓰레기태울때 함께 태웠다.

 

 

차시간이 다 됐다고 부랴부랴 나서면서 이거는 뜨신물에 요 숟가락으로 한번 떠서 타먹고, 요거는 뒷꿈치에 바르고 요거는…설명을 몇번이고 다시 해주고 할매가 잘 따라 읊으면 나는 궁둥이를 뗀다

 

“나오지마소”

 

“오야오야. 밥 챙겨묵고 이? 감기챈다 옷 단디 입고 이?”

 

얼른 들어가라고 손을 휘휘 저었다. 할매한테서 몇발짝 떼다말고 할매이름적힌 봉투를 냅다 할매조끼주머니에 넣고 내달렸다.

 

물병을 꺼내 훼스탈을 까 입에 넣었다.

할매들이 차리는 밥상을 거절할수가 없다.

다빠진 이빨을 가리고 얼마나 좋아하는데

 

노상 라면한개도 다 못먹는 주제지만,

나는 오늘 소처럼 먹어야한다.

 

우스갯소리로 할매 3호라고 내가 부르는 이고연할매 집에서 나올 때 툭하고 대가리가 얼얼할 지경으로 묵직한 빗방울이 쏟아졌다.

아침을 포함해 벌써 4번째 밥상을 받은 내 위장도 묵직하다.

 

그새 질어빠진 흙길에 발이 푹푹 빠지고 아차하면 미끄러져 논바닥에 뒹굴어 애를먹고 키운 남의 나락을 다 엎을 뻔 했다.

올해는 전화만 넣고 말까 싶은 심정으로 몸이 너무 힘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발이 바빠졌다.

 

알음알음 모여살고 있는 할매들의 집을 각각 돌고 나서 마지막으로 이보연할매집으로 가야한다.

버스정류장에 있는 간이매표소에 들러 우비를 샀다.

갑자기 밀려드는 불쾌감에 잠시 화장실좀 쓰겠다고 하고 비워냈다.

좀 살것같다.

 

보연할매는 자식들이 다 바빠서 집에 나사빠지고, 서랍에 와꾸가 안맞아도, 다마가 나가도 봐줄 사람이 없다.

가난. 할매의 자식들도 가난하다. 밤낮으로 벌어야하니 들여다 볼 틈이 없다.

 

온김에 다마도 갈고, 문고리도 고치고 삐걱거리는 문에 구리스도 칠했다.

서랍까지 고치고나니 밥상이 식어간다.

할매가 내 올때까지 기다렸다고 많이 배가 고팠는지 할매중에 제일 밥을 잘 먹었다.

새로한 틀니도 아구가 잘 맞아서 편타고 고기도 꼭꼭 씹어잡숫는다.

감주가 든 사발에 엄지손가락을 푹 담구고 들고와서 

“아나 이 무라. 속이 쑥 내려갈끼라” 내미는데

머리카락 고춧가루가 둥둥 떠다닌다.

“와 안죽 뜨겁나” 하는 말에 나는 후후 불다 말고 그냥 후루룩 마셔버렸다.

쪼글쪼글한 패트병에 감주한병을 받아서 할매집을 나섰다.

비가 그쳐서 다행이다.

 

“할매 내 또오께. 돌아서면 새해다. 절하러 온데이!”

 

할매가 식혜그릇밑에 둔 봉투를 발견할때쯤 나는 때 맞춰 시내로 나오는 버스를 잡아탔다.

 

 

체한 기분이 들었다

할매 말처럼 쑥 내려갔어야 했는데 잘 안됐나보다

집에 오자마자 다 게워냈다.

 

빨간소주를 집집마다 돌면서 마셨더니 무슨정신으로 집에 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물을 가지러 갈 힘도 없어서 배낭에 든 물이 남았던가 지퍼를 열어보니

할매들이 몰래 배낭에 넣어둔 주전부리들이 나왔다.

피식 귀여워서 웃다가

고마 눈물이 펑펑 났다.

 

나 오면 준다고 아껴놨을 쪼글쪼글한 사과두개.

 
 

할매들의 마음은 절대 가난하지 않다.

 

작품 등록일 : 2021-09-22

▶ 기억의 방부처리

▶ 내 첫 친구 Tommy에 대해서

언니
글 정말 잘 쓴다
눈물나는 글 정말 오랜만이야
건강하세요 할매님들
ji*******   
ㅠㅠ 수필집 내주라..
에어시셰   
ㅠㅠ❤️
살치살 꽃살   
ㅠㅠ할매
roadcf   
언니 글 넘 좋아…
도라지   
문학이네
한국단편소설 이런거보다 언니글이 훨씬더
al**   
마음이 아프요
ba*****   
언니 샤릉훼
깔라만시   
정이 흘러 넘치는 언니ㅠㅜ 글 넘 잘 읽었어.
겨미인   
ㅠㅠ
들숨 날숨 들숨 날숨   
언니 글 읽을 때마다 눈물이 속절없다ㅜ
달과7펜스   
ㅠㅠ
pa***   
ㅜㅜ
잘 읽었어 언니
jj****   
해피 추석!
Mushroom   
언니 나 또 울어 ㅠㅠ
두랄루민   
해피 추석.
ab*****   
너무좋아….
hi*****   
진짜 잘 봤다.
re*****   
ㅠㅠ
진미오징어   
ㅠㅠ
뚜비   
할매같은 사과..
콩떡   
ㅠㅠ
우주인   
미치겠네..ㅠㅠ
Nec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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