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개인적인 경험의 축적에 기반하여 작성하였으므로
일반적인 상황이 아님은 물론이고 직업의 비하의도가 전혀 없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나는 이제 막 나온듯 솜털이 부숭부숭하고
눈알이 맑고 호기심에 가득차 눈빛이 총명하며
사람을 대하는 것에 선입견이 없는
그야말로 보기만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어린 친구들을 참 좋아한다
특히나 소위 말하는 알바생들 중에 그런 경우를 마주하면
오늘 처음 본 사람이지만 아낌없는 애정을 가지게 된다
1. 스벅의 여자알바생 써니
써니는 견습생 앞치마를 두르고 상관의 말 한마디 한마디 놓칠까 졸졸 뒤를 따르며 네! 네! 대답도 곧잘하는 귀여운 아이였다
미인이라고 하기에는 사춘기시절 무성했던 여드름의 붉은 기운이 선크림에 살짝 흐려진 피부와 툭불거진 광대, 꼬막눈, 짧은 얼굴에 커다란 입이 아마 격결사유일 것이다
허나 내 눈에는 약을 치지 않아 벌레에게 여기저기 물어 뜯기고 궂은 날씨 속에서 자란탓에 모양새가 좋지않아 백화점으로는 갈 수 없지만 유기농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그런 노지의 건강한 야채같았다
새카만 똑단발을 한 써니는 어느 세상에서 이렇게 착하고 반듯하게 자라 주었을까 싶을만치 소중한 존재로 보였다
써니가 처음으로 계산대에 섰던 날 나는 운좋게도 스벅을 방문했고
써니가 계산대에 있기에 싸이렌오더 대신 계산대로 곧장갔다
내 주문을 받으면서 써니는 내 스벅 아이디를 부르며
경쾌하게
- ㅇㅇ님 맞으시죵? 자주 오셔서 알아요! 저 오늘 처음으로 포스만져요! 긴장되요!
함박웃음을 지으며 떠벌떠벌 신나게 말을 걸었다
한발 떨어져 서서 지켜보는 직속상관은 마음에 들지않는지 가느다란 미간의 주름을 지어보였다
-비앙코 맞으시져? 제가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보겠슴니다!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자 써니는 내 커피를 만들며 꾸중을 들었다
- 써니, 손님과 너무 긴 사담은 안됩니다. 제품명 마음대로 줄여서 부르면 안되요.
- 네!
혹시라도 풀이 죽었을까 써니의 얼굴을 살피려는데 150정도 키의 써니는 커피머신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ㅇㅇ님 주문하신 리스트레토비앙코한잔나왔습니다!
까랑까랑한 써니의 목소리에 픽업대로 급히 갔다
우리 써니는 (이 날 부터 우리 써니가 되었다)
커다란입에 함박웃음을 걸고
- 예뿌죵? 맛있게드세요!
우리 써니는 날이 갈수록 일이 손에 익고 특유의 밝음으로 어엿한 스벅의 파트너가 되어갔다
그리고 변함없이 까치발을 들고 포스기 너머로 고개를 빼고 손을 들어 나를 반겨주었다
포스를 치고 커피를 내미는 써니의 손가락에 금반지가 하나 둘 늘어갔다
어느날에는 금팔찌가 생기고 목걸이가 생기고
낯빛은 조금씩 어두워졌고 썬크림이 아니라 탁한 파운데이션이 그 위를 덮고
어색한 갈색 아이브로우가 짙게 한줄이라고 해도 좋을 두께로 원래의 눈썹위를 일필휘지로 그어져있었다
써니는 종종 파트너들을 이끌고 내가 하던 술집에 들러 한잔마 마셔도 벌개지는 얼굴을 감싸쥐고 더욱 잦은 웃음으로 가게를 채워주었다
여자 네닷명이 어찌 술을 다들 못먹는지 소주한병 겨우 비우면서도 안주를 끝도없이 시켜먹는 것이 그들이 나에게 보여주는 우정이었다
그리고 스벅에 들르면 모두들 나에게 빛나는 미소를 지어보이고 살가운 안부를 물어주는 것은 최고의 애정이었다
나는 스벅에 한동안 좀 뜸했다
가게도 바빴고 잠시들러 커피를 마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들도 그랬다
파트너들은 오고 또 가며 늘 거기 있을 수는 없다
그 팀이 다시 한자리에 모이려면 이제는 송별회가 아니고서는 어려워졌다
누구더라 앤이었나 메리였나 송별회를 하느라고 오랜만에 가게에 들렀다
노랗게 염색한 나의 써니를 보고 잠깐 멈칫했다
짙은 화장이랄까 얼마전의 그 서툴은 화장이 아니라
광대와 턱을 뒤덮은 짙은 쉐딩이 전문가의 솜씨인것은 맞으나
번쩍번쩍한 하이라이터도 아이라인도 카키색 섀도도 모두 서툰솜씨는 아니지만
뭐랄까... 나의 써니의 저 표정. 표정이 너무도 이제는 써니가 아니었다
써니는 이제 헤벌쭉 웃지않았다
노련하게 감정을 숨긴 사회인의 표정이었다
한몸같이 가지고 다니던 빛바랜 에코백이 아니라 입생로랑 금장로고가 절반이 넘는 핸드백에서 지갑을 꺼내어
체크카드가 아니라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써니의 송별회가 있었다
그리고 써니는 다시 오지 않았고 나도 써니가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수없었다
연락처도 모르고 사실 다시 볼 이유도 딱히 없었다
우리는 각자의 손님이었던 딱 그정도였다
정다운 나의 손님
2. 커피빈의 남자알바생 대현
써니가 옮겨가고나서 곧 알음알음 나를 반겨주던 파트너들이 다 사라지고
우리 가게도 사라지고
주말마다 거들던 편의점도 그만두고
나는 집밖을 나서지않고 집에서만 지내게 되었다
그러다 의사의 조언대로 햇빛을 좀 쬐려고 제법 멀리까지 갔던날
커피빈이 다있네 싶어 들렀다
오랜만에 커피 원두를 사고 집에 돌아왔는데
후로도 종종 들르게되었다
그날 원두를 계산하면서 집에 글라인더가 고장났다는게 생각나서 갈아달라고 요청했는데
굵기를 어떻게 해줄까 묻는 말에 모카포트에 쓴다고했더니
난색을 표하던 알바생이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묻고 또 물었다
괜히 미안해져서 초조해하는 나에게 돌아와서는
환하게 웃으면서 기다려주셔서 감사하다고
금방 갈아드리겠다며 핑그르 뒤도는 모습이 참 예뻤다
대현
180이 훌쩍 넘는 키에 아직도 10대같은 맑은 얼굴이 역시나 내가 참 예뻐하는 꽃띠의 청년이었다
쌍커플없이 커다랗고 까만 눈동자는 부산스레 움직이지않고 신중한 눈빛을 띄었고
말이 느리고 낮고 어눌한 내 이야기를 그 까만 눈동자를 가만히 내 눈에 맞추고 가만히 들어주었다
코로나로 청년의 눈 아래는 볼 수없었지만 날렵하고 높다란.콧잔등이 그의 성격과 참 잘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비에네스가 마침 떨어진 날이었다
입고되면 연락을 준다기에 연락처를 남기고 돌아왔다
이틀뒤에 입고되었다는 문자를 받았고 후로는 꼭꼭 매장에 원두가있는지 물어보고 방문했다
연락처를 저장해 뒀기에 카톡에 뜬 대현의 상태메시지나 프로필 사진을 쓱 둘러보기도 했다
여행에서 찍은 사진
체육대회날 단체로맞춘 옷을 입고 찍은 단체 사진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농구하는 사진
그리고 증명사진
꼭 밀감통조림처럼 촉촉하고 통통한 입술이 마스크 아래에 있었다
상태메시지는
힘!
코로나 해골바가지그림
여행가고싶다
이런식으로 종종 바뀌었다
어느날엔가 커피두잔을 찍어올렸는데 한쪽에 립스틱이 묻어있었다
상태메시지는 하트
애인이 생겼구나 썸인가 뭐 그런 생각을 했다
언제나처럼 눈인사로 나를 반겨주었고 이제는 원두를 건네면 알아서 갈아주었다
여과지도 이제는 몇호가 필요하시냐 물어보지 않았다
그새 머리를 염색하고 귀걸이를 했다
원두를 건네받을때 보니 하얗고 가느다란 그의 손에 실반지가 왼쪽 네번째 손가락에 생겼다
잘되어가나보다 생각했다
이따금씩은 커피를 마시고 오는날도 있었는데
내가 한참 글을 쓰다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면
-제가 노트북 잘 지키고 있었어요
- 글 쓰세요? 와 멋있다
이런 시답잖은 말을 건네곤 했다
가방에서 겉옷을 꺼내입으면 에어콘을 조절하는 소리가 들렸다
상태메시지가 바뀌었다
아령 그림
사진은 헬스장에서 찍은 전신 셀카
그리고보니 유니폼인 피케반팔셔츠아래 매끈한 팔뚝에 근육이 좀 붙은 것도 같다
- 제법 쌀쌀해졌죠 감기조심하세요
살가운 인사도 이제는 아무렇지않게 건네는 대현이었다
상태메시지가 바뀌었다
드라이브중에 여자친구가 찍어준 사진인가 싶었다
너랑 어디든 가고싶어 눈물그림
피아노치는 뒷모습
열혈 피아노 초보 피아노그림
그리고 곧 피아노앞에 앉은 꽃다발은 품에 안은 여자친구의 사진
이벤트. 성공적.
아. 그래서 피아노를 연습했던걸까나 귀엽다 ㅎㅎ
뭐 그런식으로 나는 대현의 생활을 허락없이 업데이트받고 있었다
내가 다시 일을 시작하고 오랜만에 원두를 사러갔을때 대현은 없었고 다른 알바생이 있었다
이제는 얼마로 갈아야하는지 알고있는 터라 익숙하게 부탁했다
기다리는 동안 대현의 카톡프로필을 찾는데
사진도 상태메세지도 모두 지워져있었다
헤어졌나보구나
괜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원두를 건네주러 자리까지온 새 알바생이 물었다
- 혹시 모카포트쓰시는 분이세요?
맞다고 했더니 대현이가 그만두면서 혹시 손님오면 감사했다고 전해달라고 했다고
-대현이 여자친구가 임신해서 돈벌러 공장에 들어갔어요
대현이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어린날의 실수를 책임지려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안쓰럽기도 했다
카톡을 모두 내리고 잠적이라도 했나본데
오죽 무섭고 막막했을까 싶기도 했다
잘 해결되기를 빌었다
두 사람 모두 행복하기를 빌었다
3. 이디야의 여자 알바생
쏟아질 것 같은 눈을 불안하게 움직이는 알바생은
내가 올초부터 출근길에 꼭꼭들러 테이크아웃을 해가는 이디야에서 만났다
말간 얼굴에 동그란 앞머리를 곱게 말아쥔 수채화같은 아이다
매일 들러 같은 메뉴만 시키다보니 이제는 가게에 들어가기만해도 나를 보고는 벌써 커피을 내리고 있다
조심스럽게 날씨나 안부를 묻던 나의 친애하는 알바생
어느덧 화장을 짙게하고
속눈썹 연장을 하고
노랗게 염색을 하고
금목걸이를 하고
금팔찌를 하고
금반지를 끼게되었다
매일 그녀를 마주하면서 왠지 모를 아쉬움이 든다
그리고 곧 그녀도 어디론가 인사없이 가버리겠구나 생각이 들어 못내 울적해졌다
- 행텐입니다
문학관에 옮겨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