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박스를 정리하다가
2년전 이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원룸에서 옮겨오는 짐은 평수에 비해 참 단촐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은색 이사박스 4개에 집안살림이 모두 담겼다.
집사람의 아반떼 뒷자리에 두개를 싣고 트렁크에 하나를 싣고날랐다.
집사람이 마지막으로 한번 더 다녀오는 동안 나는 짐을 풀고 정리를 했다.

엄마가 그랬다.
이사를 할 때는 제일 처음 밥솥부터 들어가야 굶지않는다고.
그래서 밥솥은 짐에 넣지 않고 내가 안고 왔다.
그리고 처음이 집의 문을 열고 들어 올때 밥솥을 품에 안고 들어와 
부엌 선반에 쿠쿠에서 나온 제일 싼 모델인 우리 밥솥을 얹었다.
지난 2년동안 집사람과 내가 밥을 지어먹던 그 밥솥을.

나는 학창시절 내내 집 다운 집에 살아 본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다 타버린 초가집
아버지가 어설프게 지은 시멘트벽돌집
아버지 카센타의 천장에 매달린 창고방
곧 스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낡은 아파트

그리고 부촌에 끼인 ㅇㅇ종합상가 라는 소규모 시장의 2층창고
혹은 엄마친구네 건물 옥상에 덩그러니 놓인 컨테이너 박스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이 삼삼오오 각자의 집으로 흩어지거나 학원으로 간다.
나는 일부러 교실을 늦게 빠져나왔다.
내가 시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고,
엄마 친구 딸을 뒤따라 같은 계단을 올라 옥상의 컨테이너로 가야하는 것이 몹시 부끄러웠다.

실제로 놀림을 받기도 했거니와 나의 머릿속에서 그려놓은 홈스윗홈은 그야말로 오버더레인보우에나 있었기에
눈앞의 현실과의 괴리로 몹시 괴로웠다.
어디에 갖힌 것도 아닌데 늘 탈출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곳을 탈출해도 나는 갈 곳이 없었다.

엄마가 백화점구두를 사다주며 나를 부탁했던 수학학원에서는 사실 내게 더 해 줄것이 없었다.
선생들은 알면서도 간곡한 엄마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고,
나도 그 부담감을 억지로 버텨가면서 알지도 못하는 공식을 써내려가고 문제와 문제사이가 어디 대양의 너비에 비할 만한 수학문제집과 의미없는 싸움을 했다.
그 넓은 공간에 나는 무엇을 써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학원을 마치면 역시나 나는 제일 마지막으로 나왔다.
칠판도 지웠고, 책상도 정리하고 교실의 불도 껐다.
학원앞에 아이들을 데리러와 줄지어 주차된 학부모들의 차들이 모두 돌아가고 노란색 학원차도 떠났다.

나는 일부러 아파트 단지를 크게 돌아서 다시 학원앞에 있는 불꺼진 종합상가로 들어갔다.
미용실 옆 계단으로 올라가서 녹이 슬어 뻑뻑한 철문을 발로 몇번 차고 그야말로 당기는 용도일 뿐인 문고리를 당기면 문이 열린다.
곰팡이 냄새가 훅끼치고, 벽을 더듬어 불을 켜면 2개짜리 형광등에 불은 하나만 들어온다.
몇번을 꿈뻑 꿈뻑 느리게 번쩍이다 윙-소리와 함께 침침하게  방을 밝힌다.

사춘기의 중2와 초등학교 5학년, 초등학교 2학년의 우리 남매와 엄마 아빠 다섯식구가 벽하나 가로지르지 않는 단칸방에서 지냈다.
부엌도 화장실도 욕실도 없다.
벽에 툭 튀어나온 수돗꼭지는 레버가 빠져 톱니만 남아있어 사용할 수 없다.

상가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볼일을 봤다.
나는 머리가 아주 짧았기 때문에 아침에 적당히 밀대빠는 수도꼭지에 대가리를 들이밀고 오이비누칠 몇번으로 세수와 머리감기는 해결되었다.
밤에 상가 문을 안에서 잠그고 바가지로 물 몇번 끼얹으면 그게 샤워였다.
가끔 술취한 취객이 밖에서 문을 열려고 철컥거릴때마다 쪼그리고 앉아 아무도 없는 척을 하고 있었다.
소원, 소원이라면 화장실과 욕실이 집안에 있는것.
낯선이의 침입을 걱정하지 않고 내 알몸을 드러내도 괜찮을 안전한 욕실을 가지는 것.
더 욕심을 내자면, 따뜻한 물까지 쓸 수 있는것이었다.

곰팡이도, 쥐도, 바퀴벌레도, 특유의 가난의 냄새도 문제가 되지않았다.
그저, 집을 같이 쓰는 것, 그들과 나누어 쓰는 것일 뿐이었다.
가난한 우리와 세상에 배척을 받는 것들이 같이 살아가는 것이었다.

기숙사,
고시원,
여관달방,
원룸

나는 갈 곳을 만들었다.
그리고 탈출을 했다.
내가 소원을 소박하게 간직했던 탓인지
정말로 욕실에 따뜻한 물을 쓸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에서 살게되었다.
그래서인지 행복했다.
남들한테는 행복하다 떳떳하게 말 할 수 없어도 관짝보다 조금 더 큰 고시원에서 온갖 짐에 에워싸여 누워서도 행복했다.

그 수학학원이 생각났다.

여느날처럼 제일 늦게 학원에서 빠져나와서 아파트 단지를 크게 돌아갈 작정으로 길을 건넜다.
입김이 흐릿하게 삐져나왔다.
많이 춥지는 않았지만 벌써 그런 계절이 왔다.
김종서가 새 앨범을 냈었지 싶다.

그대만큼 사랑하는 세상이 있어
나 이제 너에게 돌아가려해
언젠가 돌아보면 후회없기를
살아본 뒤에야 알게되겠지

사는 꼴과는 별개로 부자이모들이 해마다 바꿔주는 최신식 워크맨으로 나는 노래를 들으며 그날은 아파트 놀이터로 걸어들어갔다.

나는 정말로 놀이터에서 놀아야 할 나이에, 놀아도 될 나이에 놀이터에서 놀아본적이 없다.
그래서 동경이 있었다.
처음으로 그네에 앉아보았다.
잠깐 차가운 기운이 끼쳤지만 금새 괜찮아졌다.
천천히 그네를 굴렀다.
입김과 함께 조그맣게 소리를 내며 노래를 불러보았다.
처음으로 타본 그네는 멀미가 났다.

저녁시간에 반아이들은 강우동인지 장우동인지에 몰려가서 밥을 먹었지만
나는 자판기에서 150원짜리 율무차 한잔을 오래도록 불어마신게 다다.
그래서 멀미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미끄럼틀에 차마 올라가지는 못했다.
무너질 것 같아서.
한번도 타보지 못한 미끄럼틀은, 얼마나 튼튼할지 나로썬 알길이없어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냥 슬라이드에 발라당 누워보았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옴폭파인 슬라이드에 폭 감싸안긴 기분이 그럭저럭 포근했다.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아름다움에 대해 실로 오랜만에 생각했다.
눈을 가만히 감았다.
문득 눈을 떴을때 누군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어폰 한쪽을 빼고 몸을 일으켜서 자세히 보았다.
학원에서 본적이 있는 얼굴이다.
방학이라 기를법도 한 머리를 바짝 깎은 남자애.

소년이 입을 떼었다.
“너도 여기 살아?”
“어? 응.”
“몇동 살아? 나는 107동.”
“어, 나는.. 백,,백십동! 나는 110동.”
“글쿠나. 뭐 들어?”

손에 쥔 이어폰 한쪽을 가져가더니 자기 귀에 꽂고 곁에 잠자코 앉았다.

내가 만든 녹음 테이프에는 윤상도 있고, 김현철도 있고,
아무튼 아이들이 좋아하는 에쵸티같은건 없었다.

“되게 특이한 음악을 듣는구나. 처음 듣는데 좋다.”

가끔 우리는 놀이터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하거나
젤리나 과자같은걸 나누어 먹었다.
날씨는 점점 추워졌다.
그래도 패밀리마트에서 사이다맛 슬러쉬를 옷소매로 감싸서 나눠먹었다.
빨대하나를 나누어쓰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다.
누가 봐도 우리는 소년이었고, 나도 내가 소년이라고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아이의 입장은 잘 모르겠다.
나는 분명 그애도 내가 남자라고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같은 이름의 남중, 여중이 있었는데 내가 말한 적도 없지만 모두가 내가 남중소속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너는 몇반이냐고 물어보지 않아서 사실 안심했던 부분도 있다.

그리고 곧 우리는 또 이사를 가야했다.
엄마친구네 건물 옥상에 놓인 그 컨테이너로.

인사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딱히 뭐라고 인사해야할지도 몰랐다.
고맙다고 해야할지, 좋았다고 해야할지, 또 보자고 해야할지.

일요일 아침 아빠가 빌려온 포터에 짐과 함께 실려서 아파트단지를 떠날때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아파트는 109동까지 밖에 없다는 것을.

그 아이가 몰랐을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속 깊은 배려였을거라고 생각한다.

한층 더 작아진 집에서 중3이 되었다.
그리고 겨울방학이 되었다. 
졸업을 앞두고 고등학교가 다 결정이 난 아이들이 모여서 고등학교 선행학습을 하는 학원을 다니게되었다.
나는 계획대로 집을 탈출하기위해 누구다 빠른 취업을 해야했고, 그래서 여상으로 가기로했다.
좋은곳으로 취업이 되려면 내신관리는 필수였다.
이모가 준 교복값으로 학원비를 냈다.
교복은 예비소집일에 졸업생들이 기증한 것 중에 그나마 깨끗한 것으로 동복, 하복, 체육복까지 받아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학원은 우리집 근처이기도 하고 ㅇㅇ고 근처이기도 했다.
재수학원으로 유명한 학원인데, 해마다 선수학습을 하기위해 예비고 학생들이 몇백명씩 모인다.

처음수업이 시작된 날 학원에서 그 소년을 만났다.
그새 키가 껑충하게 자랐지만 여전히 짧게 빡빡깎은 머리와 앳띤 얼굴은 그대로였다.
인사를, 할까? 손을 살짝 들어보일까? 말을 거는건 좀 그런데.
고민을 했지만, 아무짝에 쓸모없는 짓이었다.

여자아이들에게 둘러싸여 매 쉬는 시간마다 그 아이 주변에는 늘 사람이 붐볐고,
집에 갈때도, 학원에 올때도 혼자인적이 없어서 나는 한달 가까이를 기회만 엿보다가 어느새 포기했다.

나는 보름정도면 수업도 끝이었다.
상고에서는 공통수학만 배우기 때문에 나머지 수업은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보름치 수업료를 지불하려고 수업전에 1층로비에 들렀다. 
확인증을 받으려고 잠깐 기다리는데 곁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이렇게 올려다보니 그 아이였다.

“이번달도 듣지?”
“어, 나는 보름치만. 공통수학만 듣거든.”
“아 진짜? 나도 그럴까? 더 들어봐야 기억못할것 같은데.”

접수처여자가 확인증을 들고왔을때 소년은 자기도 보름치만 결제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한테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요새는 안보이더라?”
“어, 나 이사갔어. 이 근처로.”
“야 나 ㅇㅇ고가는데.”
“공부잘했나보네. ㅇㅇ고 공부잘하잖아.”
“운이 좋았어. 학력고사를 좀 잘봤거든.”
“너네 집에서 여기까지 좀 멀지않나?”
“자전거타고 다녀 요새는.”
“글쿠나. 나는 뭐 걸어가면 10분정도?”
“태워줄까?”

나는 또 집을 속여야하나 고민했다.

명문학군이라 근처에는 아파트가 그야말로 쌔고 쌨다.
아무 아파트나 대도 된다.
그래도 이번 만큼은 그러고 싶지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우리집 ㅇㅇ있는 건물이야.”
“내 친구네 건물이네? 내 친구가 거기 3층산다더라고.”

하필은 엄마친구 딸래미랑 그 아이는 친구였다.
같이 과외를 했다고 했다.

“신기하네. 우리엄마 친구 딸이라던데. 우리는 거기 옥상에 살아. 옥상에 컨테이너 있거든. 거기로 이사한거야.”

어차피 있지도 않은 110동에 살던 나를 아는 소년에게 더 거짓말 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내 몸에서 나는 곰팡이냄새를 모를리가 없다.
그해 겨울에도 내내 보풀이 잔뜩 핀 가디건으로 버텼는데, 우리집이 가난하다는 것을 모를리가 없다.

“태워줄께. 뒤에 타.”

소년의 자전거 뒷자리에 타려고 했더니 또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자기가 쓰고 있던 털모자를 벗어서 뒷자리에 깔았다.

한쪽으로 다리를 가지런히 하고 비스듬히 앉는 모습을 영화인가 어디에서 봤다.
하지만 덜컥 상황이 닥치니까 머릿속에 그린 아름다운 장면은 간데없고 그냥 쩍벌로 덜컥 앉았다.

몸을 살짝 앞으로 밀어 자전거가 출발했다.

“허리를 잡아야 내가 편해.”
안장을 쥐고 있던 손을 풀고 그 애의 허리를 잡았다.
덜컹.하고 앞으로 내 몸이 쏠렸고, 어쩌다보니 그 애 등에 코를 박고 허리를 감은 내 손은 깍지를 끼고 있었다.

금방 건물에 도착했다.

“내일 데리러 올테니까, 내려와 같이가자.”
“괜찮은데...”
“내일보자!”

남은 보름동안 그애는 나를 뒤에 태우고 학원에 오갔다.

학원에서는 여전히 우리는 각자 앉아서 수업을 들었지만 교실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내려오는 나를 그 아이가 1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보름치 수업이 끝난 날이고, 처음으로 내가 카페에 들어가게된 날이었다.
카페앞에 자전거를 세우더니 잠깐 들렀다가자고 했다.

“추우니까, 잠깐만 들어갔다가 가자. 할 얘기도 있고.”

“있잖아, 우리집에서는 내가 남은 보름동안 수업 더 듣는지 알거든.그래서 남은 돈도 있고. 나랑 보름동안 놀자!”
“나는 돈없는데.”
“괜찮아, 나한테 돈있어. 그러면 괜찮아?”

우리는 자전거를 함께 타고 매일 놀러다녔다.
만화방에도 가고, 피씨방에도 가고, 바닷가에도 가고, 각자가 다니던 학교와 살던 동네, 다니던 유치원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다 다녔다.
내가 살던 시골까지 갔던 날은 너무 멀고 험해서 둘다 말그대로 죽을뻔했다.
나는 너무 미안했지만 그 애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서로 테이프를 바꿔서 듣기도하고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서 듣기도하고.

“어디 가보고싶어?
“음... 할아버지랑 살던 옛날 집.”
“기차타고 가면 하루만에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는 기차역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파란색 비둘기호를 탔다.
크게 달라지지 않은 그 동네를 그 아이와 걸었다.
이제는 내가 평생 가난하게 살아온것이, 보여줄 풍경이라는 것이 고작 이런 냄새나는 달동네라는게 부끄럽지 않았다.
골목이 좁은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좁은지는 몰랐다.
할아버지랑 살던 집 두군데를 다 돌았다.
나는 신이나서 그시절 이야기를 떠들었다.
문득 그 애가 내 머리를 항상 쓰다듬고 있다는 것을 깨닳았다.
그 손길이 너무 다정했고, 눈물나게 좋았다.
그 아이 손아래에 내 머리통을 맡겨둔 것 마냥 익숙했다.

약속된 시간은 보름뿐이었다.

생각해보니 하루전날 몇시까지 나오라는 말에 만났던 우리는
핸드폰도 없던 시절에 살았고, 집전화번호는 알 수 없고, 아는 것이라고는 학교가 전부였다.
심지어 이름도 몰랐다.
서로를 야, 저기, 로 불렀으니.

죽을똥 살똥 찾아보려면 찾아볼 수 있었겠지만,
먹고 사느라, 달팽이처럼 느리게 집을 갖추고 사느라 나는 잊고 살았다.

그 애가 나를 찾아봤을지는 모르겠다.

그냥 갑자기 생각났다.
내가 107동에 살고 있다는 것이 생각나서.
택배박스에 붙은 주소스티커를 떼다가.
작품 등록일 : 2020-11-07

▶ 나의 친애하는 알바생들에 대하여

▶ 행텐의 포카리스웨터 어페어 in 2001

ㅜㅜ
산토리니   
영화로 만들고싶다 ㅠ 너무 슬픈데 기특하고 아름다움
ry*****   
읽기가 무섭다 언니글은. 너무담담해서눈물남 ㅜㅜ
라라라   
헐 뭐야 눈물이 ㅠㅠ
na****   
그래 이글 찾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기쁘고도 마음이 아리다
울라울라   
행텐언니 사랑해❤️
살치살 꽃살   
중간에 집 밝히는 장면 울컥했어.
옥상에 살아. 옥상에 컨테이너 박스
태워줄게 타
너를 많이 사랑해   
언니 글 정말 잘 쓴다. 사람의 마음을 툭툭 만지는 글이네.
하루하루   
왜소장이 목에 핏발세우며 행텐행텐 했는지 알것다 .. 이런 글은 정말 오랜만이다 요즘은 사느라 바빠서 책 안읽고 초중학생때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때 읽었었던 뭔가 아련해지는 느낌의 책들이 생각나는 글이다. 행텐 글 모아서 책 내도 될듯
qk*********   
107동 언니 축하해
hy****   
와 모야
푸드덕   
아니 글을 어떻게 이렇게 써?!
li   
사는게 참 녹록치 않은 시간이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조각조각 예쁜걸 품고 사니
태생이 결이 곱고 예뻐서 그런가보다
나는 뾰족한것만 품고 살았는데 이제는 나도
좀 고운 걸 넣고 살아봐야지
순둥순둥 독설가   
언니 삶은 참.. 참 슬프고도 따뜻하네
콩떡   
책 안 내? 내 조..
to******   
와 진짜 문학이다
보이지 않는 손   
언니글 읽으면 그 상황이 눈앞에 그려진다...ㅜㅜ
내가 거기에 있었던것처럼
레이지   
언니 언니는 아름다운 사람이라
스쳐온 사람도 시간도 아름답네
jj****   
언냐 자전거 탔을때 허리를잡지말고
고추를잡았어야지~~~
시트러스   
행텐글은 왜 느닷없이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그 다정한 아이가 나도 궁금해지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어떤건지 알기에 그때 행텐의 어린시절이 너무 맘이 아프다.
br*****   
ㅠㅠㅠㅠ
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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