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텐의 포카리스웨터 어페어 in 2001
대학다닐때 같은 과에 나날이 포카리스웨트를 마시던 애가 있었다

1학년인데도 신입생다운 촌스러움이나 풋풋한 기색도 없이
꼭 되게 잘 노는 막내고모 같은 애였어
당연히 몇 십년 동안 단련된듯 매너리즘에 빠진 완벽한 화장솜씨는 물론이었고,
앞머리 없이 꼭 무슨 잘 말린 옥수수 터럭같은 탈색머리를 한번씩 훼까닥 훼까닥 넘기는 버릇이 있었다
피죽도 못먹은 사람처럼 삐적 마르고 거무튀튀한 얼굴에 팔자주름이 깊게 패었는데,
참 다 티나는 부라자 뽕을 몇겹이나 차고 항상 브이넥을 끌어내려서 슬쩍슬쩍 부라자를 보여줬지
흰색 하이힐에 가죽바지나 가죽미니스커트를 입고 상의는 호피무늬나 얼룩말무늬를 즐겨입었다
난생처음 망사스타킹을 신은 사람도 걔 덕분에 봤고
키가 174라고 했는데 구두까지 신어서 180도 넘어보였다
한번씩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것 처럼 앙상하게 마른 시커면 속살을 보여줬다
눈물이 찔끔 맺히도록 하품을 하면서 알뜰살뜰 썩은 어금니들과 번쩍이는 금늬도 달랑거리는 목젖도 보여줬다
그덕에 배꼽에 피어싱을 한 사람도 처음 봤다


음... 이름을 정란이라고 해두자
아무튼 정란이는 입학할때부터 자기는 태어나서 한번도 물을 마셔본적이 없다면서
매일 포카리스웨트를 마시면서 등장하고, 쉬는시간마다 포카리스웨트를 뽑아마셨다
아주 어렸을때부터 물을 먹으면 곧장 토했고, 이제는 물을 먹으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심하면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고.


교실에 들어설때부터 풍기는 술냄새와 담배냄새 향수냄새로 우리는 정란이가 학교에 왔구나 알게되었다
오자마자 정란이는 안그래도 자그마한 엉덩이의 반쪽만한 핸드백을 의자에 걸치고 모나미볼펜하나와 두번접은 에이포용지를 꺼냈다
그리고 출석을 부르고나면 책상에 엎어져서 두팔을 축 떨어뜨리고 가끔 코까지 골면서 잤다


쉬는 시간이되면 기가막히게 잠에서 깨고는 또 포카리스웨트를 마시러나갔다
자판기에서 캔을 꺼낼때마다 구부렸던 상체를 일으킬때마다 북실북실한 탈색머리를 훼까닥 하면서 일어났어
로비를 가로지르는 정란이의 구둣소리는 캡이 다 닳아서 멀겋게 드러난 구두심을 깡깡까르륵까르륵 쩌렁쩌렁 울리다가 불현듯 나를 보고는 
"어머~ 뫄뫄야!"하면서 더욱 요란하게 로비를 채우며 나에게 달려왔다.
뽕이 두둑한 젖을 내 팔뚝에 비비면서 숙제를 보여달라거나 필기한 것 좀 보여달라며 콧소리 가득 아양을 떨었다
나도 과에 마땅히 친구가 없었던 터라 정란이자리도 맡아주고, 정란이가 엎어져 숙면을 취하는 동안 등 절반이 쑥 나오고 티팬티 끈이 황망하게 허리춤을 가로지르면 겉옷을 벗어서 덮어주고 뒤편에 남자놈들을 한번 째려봐주었다


정란이는 복학생이나 고학년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데려다주는 남자도 자주 바뀌었고, 밤에 내가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는 으슥한 벤치에서 들춰진 상의 아래로 앙상한 갈빗대를 드러내고 물고 빨고 하는 정란이를 봤다
정란이는 항상 80년대 영화주인공처럼 허공에 붕 뜬것 같은 목소리로, 솜사탕같은 말투로 이야기를 했다
허스키했지만, 자주 가래가 끼었지만 약해빠진 정란이는 필시 어디가 많이 아픈것 같았다
검은손가락 끝에 발린 매니큐어의 색은 정란이처럼 곱고도 달콤했다
정란이가 꿈결같은 말투로 자리 좀 비켜달라고하면 대강의실 명당자리에도 함께 앉을수있었다


거의 매일 살다시피하던 학교 밑 허름한 술집에서 정란이 이야기를 하는 공대생들도 봤다
매일 포카리스웨트를 마시는 인문대여신이라고도, 오는남자 막지않고 자자고하면 다리벌려주는 갈보년이라고도 하고 하여간 유명세를 어지간히 타고있었다
술이 좀 올라서 야이 씹쌔끼들아! 늬들이 뭘 알어! 하고 플라스틱테이블을 쾅 치고 일어나면 같이 술먹던 찌질이 동아리녀석들이 야 참어 참어 하면서 다시 끌어앉히곤 했다


과 여자애들이 정란이에게 싸가지없게 굴거나 옷차림 화장따위를 지적할 때도 정란이는 욕마디 하지않고 웃으면서 넘겼다
정란이는 정말이지 멋진 여자어른이었다



시험기간이 되자 술이 꼭대기까지 오른 정란이가 도서관에 처박혀있는 나에게 찾아왔다
공부해야되서 빨리 왔다고 이제부터 뭐뭐 공부하면 되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정란이는 내가 요점정리해둔 노트를 꽤나 진지하게 읽고 쓰면서 아침까지 함께 공부했다
나는 돈이 없는 가난뱅이였지만, 점심값이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정란이가 기특해서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 포카리스웨트를 뽑았다
돌아왔을 때는 정란이 책상에 포카리스웨트가 무슨 열 몇개가 쌓여있었다
멀찌기서 칸막이 넘어 정란이 얼굴을 힐끗거리는 새끼들이 나없는 틈에 다녀간모양이다
열람실앞에서 포카리스웨트를 원샷했다
처음먹어보는 포카리스웨트
이런 맛이었구나 정란이는 이런 맛을 좋아하는구나
아니다, 정란이는 물 대신에 마셔야한다고 했으니 포카리스웨트는 피에 섞여 말라빠진 정란이의 몸을 구석구석 돌고 있겠구나
정란이가 살기위해 마시는 포카리스웨트는 꼭 무슨 생명수같고, 게임의 파란포션 같았다

줄줄이 하루만에 3개의 시험을 보고나니 정란이는 덕분에 시험 잘 봤다고 나를 꼭 안아줬다 
고맙다며 밥을 사주겠다고 학식으로 데려갔다
뭘 먹을지 키오스크앞에서 별 소득없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여보세요? 어, 오빠!" 정란이는 전화를 받았다
정란이가 눈썹을 늘어뜨리며 곤란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어, 어, 어 만 반복하고 있었다
대충 뭐 저 오빠라는 사람이 밥산다, 데리러오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겠구나 짐작했다
나는 손을 훠이훠이 하며 어서 가보라고 했다
정란이는 키오스크에 급히 현금을 쑤셔넣고 제일 비싼 돈까스정식을 눌렀다
그리고는 계속 어,어,를 하며 손을 흔들고나서 전화하겠다는 수신호를 보냈다
정란이는 한번도 전화한 적이 없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정란이와 나는 서로 연락처를 몰랐던 것 같다
나는 워낙에 동선이 교실 도서관 기숙사 아니면 동아리방 학교밑 술집으로 뻔해서 때되면 어디있을지 아는 사람은 다 알 정도로 빤했으니
정란이가 가끔 내 앞에 불쑥 나타나도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그리고 곧 학교체육대회날이 다가왔다
누구든 과사람들은 축구 족구 진행팀 물품조달 뭐 이런거를 맡아야했다
과 씨씨들이 2인3각을 하고 복학생들이 전투축구의 진면모를 보여주겠다 나섰다
뙤약볕에 타기 싫은 여자애들은 천막아래에만 있으면 되니까 너도나도 진행팀 물품조달로 몰렸다
어차피 여자애들은 무거운거 안들거니까
어쩌다보니 덩치크고 인기없는 애들과 정란이 나만 남았다
그래서 남은 쩌리들은 피구를 하게 되었다


나는 생긴것과 참 다르게, 운동을 좋나 못했다
특히나 공던지기는 제구력이 1도 없었기때문에, 소싯적 일진들이 던지는 쓰레기피하던 실력을 발휘해서 그냥 좋나 잘 피하기만 했다
승부욕에 쩌는 덩치큰애들은 무리해서 맞추려다 되려 당하고 그러다보니 나랑 정란이 둘만 남았다


이 날은 내 인생의 크고 작은 충격적인 사건들 중에 꽤나 굵직한 일이 벌어진 날이었기 때문에 모든 순간이 꼭 어제처럼 선명할 뿐더러,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 처럼 왜곡되었을지도 모른다.


공대생들의 핏대세워 내지르는 정란이를 연호하는 응원소리가 늦 봄의 운동장을 가득채웠다
정란이는 배꼽과 등이 훤히 보이는 벨벳츄리닝을 입고, 깊게패인 팔자주름을 한껏 뽐내며, 회색잇몸을 반짝이며 환한 미소로 장내를 한바퀴 멋드러지게 돌며 훌리건들에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누런 흙바닥에 야무지게 두 발을 디디고선 정란이의 호피무늬에 찡 박힌 운동화의 움직임이 묘한 기운을 뿜으며 각을 다잡았다
정란이는 손에 쥔 배구공을 가볍게 손 안에서 몇번 가볍게 던지고 받더니 뭐랄까 예상을 빗나가는 엇박의 순간에 공을 던졌다
앙상하지만 길다란 손가락으로 공을 한손에 잡아쥐고는 한껏 뒤로 재친 팔이 일시에 앞으로 뻣어나갔다 그 엇박의 순간에


공을 잡겠다고 호기롭게 손을 내민 사람을 맞추고 튕겨나가는 공에 줄줄이 세명을 탈락시켰다
남은 사람은 이제 한명
정란이를 향한 응원의 소리들은 짐승의 표효같았다
심드렁히 그늘막에 앉아있던 과 여자애들도 드디어 양지바른 곳으로 기어나와 폴짝폴짝 뛰고 곁에선 선배에게 안기며 응원에 합세했다


나는 뭐 한것도 없이 정란이 곁에 뻘쭘하게 서 있을 뿐이지만, 덕분에 환호속에 곁들이로 그 열광을 즐겼다
어차피 정란이가 쟤가 던진 공도 멋있게 잡아서 맞출거니까 다 된 밥이었다


쏘아올린 공을 정란이가 잡으려고 손을 뻣었는데, 그 엇박에 내지른 손에 맞고 튕겨나온 공은 그대로 턱을 맞췄다
정란이는 순간 꼭 쥔 두 주먹을  양 옆구리에 붙이고 가슴을 내밀며 하늘을 향해 소리질렀다


"아 쒸바!"


장내는 일순간 적막에 휩싸였다
형편없는 내 공은 던져졌고, 별 소득없이 잡혔고 다시 돌아와 나를 팡-하고 쳤다
우리과는 졌다
그걸하나 못하냐고 온갖 성화가 쏟아졌지만 내 눈은 정란이를 보고있었다


일부러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물품조달팀은 포카리스웨트를 한병도 사다두지 않았다
정란이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천막으로 들어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1.5리터 생수병을 들고 벌컥- 벌컥- 왠지 마이크를 대고 마시는 것 처럼 그 소리가 마치 학교 전체에 깔린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 같았다
정란이에게 바칠 포카리스웨트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던 훌리건들은 그 장면을 턱빠진 병신들마냥 바라보고있었다

"정란아, 너 물 못마신다며"
"맞아, 너 포카리스웨트밖에 못 마신다며"

이때다 싶게 모여들어 다다다 쏘아부치는 여자애들에게 반쯤 마신 생수병을 안겨주고 정란이는 그대로 운동장을 떠났다


한번도 실수한적 없었는데, 오후에 있던 동아리 공연에서 나는 개판을 쳤다
무대가 끝나고 세트 뒤편에서 선배들한테 얼차례를 받았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감정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넋이 나가서 공연을 했고, 전을 부치고 막걸리를 퍼날랐고 땀에 절어서 기숙사에 돌아왔을때 방언니들이 정란이를 신나게 씹고있었다
조용히 목욕바구니를 들고 세면장으로 가려는데, 방언니들이 너 같은과 아니냐 너 정란이 아느냐 물었다
나는 그냥 고개를 저었다

"저 과에 친한사람 없어요"

정란이는 남은 축제기간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 다음 월요일이 와도 학교에 오지 않았다


수요일 쯤에 정란이가 돌아왔을때는 3학년 과대와 함께 교실에 들어왔다
교수님이 3학년 과대가 왠일이냐고 물으니 교수님 수업이 없어서 보고싶어서왔다 청강해도 되느냐 너스레를 떨었다
3학년 과대는 소문에 반건달이라고 나이도 서른인가 그렇다고 문신도 봤다 이혼했는데 애도 있다카더라 학교 곳곳에 부하들도 심어뒀다 하더라 
여튼 진짜 무서운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정란이에게 대놓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뒤에서 수근거리는 사람도 없었다


정란이는 체육대회 후로 한번도 나에게 말을 걸지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한참뒤에 정란이를 화장실에서 마주쳤다 
거울앞에서 입을 반쯤 벌리고 마스카라를 바르고 있던 정란이는 손을 씻는 나를 거울로 힐끔 보더니

"뫄뫄야, 잘 지내지?"

그런 어른같은 인사를 건냈다.

"응, 똑같지 뭐"

하고 나도 적당한 대답을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화장실앞에 서있는 3학년 과대와 눈이 마주쳐서 가볍게 목례를 했다

"정란이 많이 도와줬다믄서?"

"아, 아닙니다"


정란이는 2학년 2학기를 마치고, 모대학 지방캠퍼스로 편입을 했다


나도 그 학교로 편입을 생각중이었지만, 왠지 정란이가 과거를 털고 편하게 학교를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러지 않았다



졸업하고 4년뒤엔가 그리고 정란이를 못본지는 6년만인가 회사 종무식에서 정란이를 만났다
그날 종무식에는 본사와 분점의 직원이 모두 참석했는데, 나는 본사에 있었고 정란이는 다른 분점에서 일하고 있던 모양이다


짙은 스모키에 파란색 아이쉐도를 칠하고, 호피무늬 블라우스에 위아래로 빨간 수트를 입은 정란이를 한눈에 알아볼수 없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정란이의 시그니처 하얀색 하이힐이 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걷고 있었다


인사를 할까 생각했지만, 나는 얼굴이나 분위기가 너무 많이 변해서 어지간한 친인척도 못 알아 볼 정도로 환골탈태를 했기 때문에 인사를 하고 나서 누구세요? 멋쩍게 머리를 긁으며 나야, 뫄뫄 할 이 과정이 참 귀찮기도 머쓱하기도 의미없기도 해서 하지 않았다


꼭 자기처럼 짙은 카키색 쉐도와 반짝이를 얹은 여자와 나란히 앉아 연신 지네다리같은 속눈썹을 붙인 눈을 꿈뻑이며 서로 귓속말을 주고 받고 있었다
 

본사팀과 각 분점의 직원들을 일으켜 세워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소개를 할 때 정란이를 바라보았지만, 정란이는 옆사람과 이야기가 길어지는지 남들 박수치는 타이밍에 그저 박수만 치고 있었다.
정란이의 순서가 되었을 때 정란이는 다른 이름으로 본인을 소개했다


이윽고 식사시간이 되어 스테이크가 둥근 식탁에 차례로 놓였다
정란이는 투명한 와인잔에 반쯤 담긴 물을 아무렇지 않게 - 당연하지만 - 아주 자연스럽게 마시며 식사를 했다
웨이터가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물을 채워줬다


연회장을 빠져나가면서 아주 잠깐 정란이와 눈이 마주쳤지만, 별다른 인상을 가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내심 몇번이고 다시 봐주지 않을까 생각는데 그러지는 않았다


후로 정란이를 다시 본 일은 없다



나는 아주 가끔 정란이를 생각한다
정말로 물을 못 마시는 아이가 그날 타는 갈증을 못 이기고, 죽음을 불사하고 물을 마셔버린건 아닐까
그러면서 물을 극복해버린게 아닐까 하고


무엇때문에 포카리스웨트만 마실 수 있다고 거짓말을 했을까
정란이는 태어나서 딱 한번 그날 욕을 해 본걸까
정란이는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어쨌든 남은 평생 물을 못 마시면서 살 뻔한 정란이가 이제 물을 잘 마실 수 있게 된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등록일 : 20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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