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집으로 가는 길 (5)

환복을 벗고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다 타버린 집터가 보인다. 얼굴이 화끈 거렸다.

한편에 새로 지은 회색 블록 집이 보인다. 아빠가 퇴근하고 매일 잠도 안 자고 지었다고 했다.

갈색 알루미늄 프레임에 유리를 끼운 신식문. 집 밖이긴 해도 욕실도 있고 변기통도 있다.

창문 틀에 바른 니스 냄새가 아직 가득하다. 방이 두 개나 있고, 거실도 있다.

그중에 하나가 나와 여동생의 방이라고 했다.

낡은 철제 책상이 덩그렇게 놓여있다. 천장에 바짝 붙은 작은 창문이 있다.

대낮에도 빛이 잘 들지 않았기 때문에 늘 회색빛이었다.

오랜만에 여동생을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이 작은 아이는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자고 있다.


나는 허공에 대고 밤새 많은 이야기를 하고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다.

봄비가 내리는 밤에는 청개구리가 창문에 찾아오기도 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은 나뭇가지가 사정없이 창문을 할퀴었다.

나는 가로누워 수많은 밤의 창문을 지켜보았다.

나는 불면증이라는 단어는 아주 나중에 알았지만 그 병은 그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아침이 기어코 꾸역꾸역 밝아올 때의 상실감과 비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곧 내가 다니던 병설유치원의 국민학교에 입학을 했다.

사인펜으로 이름을 쓴 손수건을 가슴팍에 달고 운동장에 모여서 차렷 열중쉬어를 배웠다.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 한마디가 없는 할아버지 담임선생님은 곧 죽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이 생명력이 아주 흐린 사람이었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글자를 쓸 줄 알았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기역 니은을 배울 때 단어를 읽고 쓰고 문장을 쓰고 했다.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양치기 소년이나 헬렌 켈러같은 책을 주면서 옮겨 쓰기 숙제를 따로 내어주었다.

 

나는 아주 짧은 글을 썼다. 감꽃을 보고 처음 쓴 글은 한 장, 그리고는 장수가 조금 늘어서 4장씩도 썼다. 그것이 동시라고 알려주셨다.

 

선생님은 내게 원고지를 선물로 주셨다. 문장부호라든지 원고지 쓰는 방법을 배웠다.

4분단까지 노을이 뻗어 들어와 교실을 벌겋게 가득 채울 때까지 나는 남아서 글을 쓰거나 학급문고를 읽었다. 선생님은 별 다른 말씀없이 기다려주셨다. 노을이 물든 얼굴로 창밖을 보면서 담배를 피우는 선생님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겨울 방학이 지나고 담임선생님은 폐병이 와서 죽었다고 들었다. 교실에 있던 청동 재떨이와 육각의 성냥갑이 생각났다.

 

 

내가 2학년에 올라가자마자 우리 가족은 시내로 이사를 나오게 되었다.

아빠는 시내에서 카센터를 운영하게 되었다. 가게의 높다란 천장을 반쯤 가로질러 다락방을 만들어 거기서 지내게 되었다. 온 가족이 반듯하게 누우면 책상으로 쓸 개다리 소반 하나 놓을 자리만 남는다.

 

여동생은 교회에서 하는 유치원에 들어갔다. 주황색 체육복을 입고 노란 가방을 등에 매고 아침마다 그레이스 봉고차를 타고 갔다. 남동생은 시에서 하는 유아원에 다니게 되었다.

   

2학년은 12반까지 있는데, 오전 오후 반으로 나누어서 수업을 하고, 한 반에는 58번까지도 있었다.

나는 2학년 8반에 57번으로 전학을 갔다. 오후 반이었기 때문에 동생들이 빠져나간 다락방에서 조금 더 눈을 부치다가 이르게 점심이라고 해봐야 보름달빵 뿐이지만 꾸역꾸역 먹고 학교에 걸어가면 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색소가 좀 빠진 것 같은 옅은 갈색의 눈동자에 창백한 얼굴, 갈색 단발머리의 여자 선생님이었다. 전학 간 날 나를 소개해주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을 것 같다.

선생님이 알려준 자리로 가서 좀 껑충하게 높은 의자에 앉았다. 키도 들쭉날쭉 앞자리에 아이가 갸웃갸웃하면 나도 따라 갸웃갸웃해야 칠판이 보였다.

 

점심밥을 먹고 학교에 갔더니 나른하니 졸렸다. 앞자리의 키 큰 아이의 든든한 등을 바라보며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흐릿한 선생님의 눈동자처럼 나는 그 무렵이 참 흐리다. 내가 4살 5살이었던 시절보다 한참 나중인데도 나의 기억은 어째 갈수록 더 흐린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전학 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직은 봄날이었다.

오후반 수업이 시작하려면 조금 남았고 나는 친구가 없어서 운동장에서 흙바닥을 발로 차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오전반 아이들이 개미떼처럼 현관앞을 채워갈 즈음 교실에 가볼까 하고 그네 앞을 지나갔다.

몸집이 아주 큰 여자아이를 태운 그네가 앞으로 돌아올 차례였다. 벽돌처럼 생긴 그네의 나무 발받침은 내 머리통을 쏜살같이 찍어냈고, 순간 내 위로 지구가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픽하고 무릎을 꿇었다. 물 빠진 개나리색 치마 위로 붉은 피가 후드득 떨어졌다. 뜨끈한 피가 얼굴과 뒤통수를 타고 흘렀다. 하나뿐인 반바지인데 피로 물들어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피는 금새 식었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잠시 멈춰있던 세상의 소음이 일제히 쏟아졌다. 아이들의 비명소리. 손금 사이에 선명한 핏 길.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더욱 파르스름해진 얼굴빛의 선생님이 흐린 눈동자에 선명한 동공을 새기고 나에게 달려왔다.


선생님의 등에 업혀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의식이 흐릿한 사이에 따끔따끔하면서 머릴 꿰매는 느낌이 쩌릿쩌릿했다. 턱을 힘껏 당겨서 발치를 보니 피투성이의 여자가 나를 보며 울고 있었다. 엄마인가?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당시 상황을 간호원에게 울먹이면서 이야기했다. 몸무게가 육십 킬로쯤 되는 여자애가 있는 힘껏 굴린 그네라 거의 과속하는 차에 차인 것과 다름없다고. 자기가 원래 운동장에서 애들을 인솔해서 교실에 들어가야 되는데 진짜 3분 차이였다고. 전학 와서 온통 낯설을 아이가 얼마나 놀랐을까 숨을 헐떡이면서 울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마취 때문에 혀가 움직이질 않았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이 내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며칠이 지나서 나는 학교를 갔다. 그간 좀 오래 잠을 잤고, 병원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와서 또 잤다. 병원 가는 길에 어지러우면 길가에 앉아 있다가 또 걷다가했다.


엄마 아빠는 늘 바빴기 때문에 대낮에 애가 집에 있다는 것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나는 그림자처럼 기민하게 움직였고 눈에 띄지 않는 방법을 배워갔다.

아프다던지 어디가 불편하다던지 아이들이 괴롭힌다던지, 내게 생긴 일 중에 엄마 아빠에게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말해봐야 소용이 없다. 하지만 그 덕분인지 나는 이전보다 맞을 일도 욕을 먹을 일도 거의 없었다.

 

학교에 돌아갔을 때 아이들은 피범벅이 되었던 나를 죽지않고 살아 돌아온 괴물 취급했다. 그렇잖아도 다리와 팔에는 흉측한 화상자국들이 있는데 이제는 머리에 붕대까지 감고 있으니.


괜찮냐고 물어주는 아이는 없었다. 나는 끔찍한 존재가 되었다.
작품 등록일 : 2020-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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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눈물난다
성능좋은찌찌   
아씨
너무 슬프다
내가 언니때매 많이 운다
ki****   
선생님 두분 다 좋다
할아버지도 그렇고 학교 선생님들도 그렇고 그래도 언니 옆에 좋은 어른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해
xoxomoon00   
으엉 ㅜㅠ
쿨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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