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집으로 가는 길 (6)

학교에서는 2학년들에게 천자문과 우유 마시기를 시켰다. 

반에는 한글도 아직 잘 모르는 아이들이 꽤나 있었는데, 자기 이름도 잘 못쓰는 아이들이 써놓은 한자는 그림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한자는 어쩔 수 없다 쳐도 나는 우유 마시기가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우유갑을 뜯었을 때 훅 끼치는 우유 비린내는 내게 순이의 울음소리, 막 태어난 송아지의 양수 냄새, 피 냄새를 떠올리게 했다.

 

우유를 안 먹거나 남기면 벌 청소와 운동장에 돌을 골라내야 했다. 

담임선생님들은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벌을 다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했다.

나는 사고 후유증인지 끔찍한 두통을 겪었는데, 때문에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떠들었다는 이유로 단체 기합 같은 것을 받을 때마다 두통은 또 득달같이 달려들어 내 머리를 물어뜯어댔고, 구역질이 나서 화장실로 달려가 빈속을 쥐어짜내 뭐라도 나올때까지 토했다.

그러고나면 온몸이 저려 꼼짝 않고 화장실바닥에 앉아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매일 우유통앞에 서서 단숨에 마셔버리고 곧장 화장실로 가서 토했다.  아주 나중에는 익숙해졌는지, 아무 감정없이 우유를 마시고 토하지도 않게 되었다.


매일 토를 하면 목구멍에 달려있는 무슨 마개 같은것이 다 닳아서 없어진다. 

부모님한테 편지쓰는 날에 역시나 행동이 굼뜬 나에게 선생님은 빨리 풀칠해서 제출하라고 재촉했다. 


- 우표만 붙이면 되요.


편지를 들고 나가면서 교탁 바로 앞에 앉은 아이 책상 모퉁이에서 우표에 풀을 발랐다.

우표 밖으로 풀이 삐져나가서 책상에 조금 묻었다. 책상 주인인 남자애는 그게 너무 싫었는지, 내가 너무 싫었는지 


-아이씨!


주먹으로 내 배를 때렸다.


아팠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배가 눌리니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뱃속에 남아있던 우유가 뿜어졌다.

그 애가 혼났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나는 양호실에 누워있다가 깨어났다.

돌아왔을 땐, 온 교실에 상한 우유냄새가 진동을 했다.

아이들은 한층 더 나를 싫어하게 되었다. 

내 배를 때린 아이가 다 썩어빠진 표정으로 다가와 멀찍이 서서 자기 귀에도 안 들만한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한동안 나는 거의 숨 쉬는 것과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토하는 것이 괴로워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늘 어지러웠고, 그늘진 곳에 앉아 있었다. 

한걸음 뒤에 있었고, 그곳에 없었고, 아이들이 빼곡히 들어찬 교실에서도 나의 존재를 지워갔다.

비쩍 말라 비틀어진 나는 2학년이지만, 세살 아래의 여동생과 비교했을때도 몸무게와 키가 형편없었다.

겨울 쯤엔 여동생보다 작았고, 학교에서 가장 작은 2학년이었고, 팔뚝에 띠를 감아 검사하는 무슨 검사에서도 빨간색이 보일 지경이었다.

   

체육을 하러 아이들이 빠져나가고 텅 빈 교실에 남아 창밖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노을이 교실을 찾아오면 빙빙 돌며 아이들은 어떤 필통에 어떤 연필을 쓰는지, 어떤 가방을 메는지 구경을 했다. 

자리에 돌아와 텅 빈 교탁을 보면서 손가락이 한마디 없던 선생님을 생각했다. 

노을을 얼굴에 물들이고 담배를 피우던 선생님과 할아버지.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엉엉 울고 있자면 왁자하게 아이들이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소리가 나서 나는 눈물을 쓱쓱 닦고 책상에 엎드렸다.

 

원래 2층뿐이던 학교 건물에 3층을 올리는 공사를 시작했다. 

모래를 잔뜩 실은 덤프트럭이 매일같이 교문을 들락거렸다.  

그날은 하늘이 잔뜩 찌푸린 것이 곧 비가 내릴 것 같은데, 바람만 매섭게 불어 대고 비는 오지 않았다. 

오후반 수업이 시작하려면 좀 남아서 아이들은 교문 바로 옆에 있는 강당 현관에서 공기놀이를 하고 놀았다. 

나는 슬쩍 옆에 가서 아이들의 주의를 끌지 않는 선에서 빈손으로 공기하는 흉내를 내며 배우고 있었다. 


그때 황토색 잠바를 입은 애가 헐레벌떡 학교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우리 앞을 지나가나 싶더니, 갑자기 허리를 숙여 토하기 시작했다. 

하얀 삶은 달걀이 하나도 씹지 않은 매끈한 채로 툭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는 이것저것 무슨 음식이었는지 형태를 그대로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 쏟아졌다. 

우리가 떨어지는 토사물을 구경하고, 더러는 더럽다고 소리치거나 우는 시늉을 하고있는 사이 후진하던 덤프트럭이 바로 그 아이 엉덩이까지 와 있었다.

   

- 어? 어! 어!

   

우리가 낸 소리는 그저 어, 어, 어 세 마디였다. 

설마 했다. 설마 저 커다란 차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아이에게 해를 가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덤프트럭은 그 아이의 엉덩이를 가볍게 퉁- 쳤고, 아이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커다랗고 두툼한 바퀴는 아이를 꼭꼭 지르밟으며 천천히 지나갔다. 

트럭이 그 아이를 뱉어낼 때까지 우리는 숨 쉬는 방법도 잊고 멍하니 지켜보았다.

한발 늦은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고,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검붉은 피가 흥건한 구덩이에는 황토색 잠바와 청바지가 피에 푹 절여져 있었다. 

저 꼬불꼬불한 덩어리가 뇌구나 저 펄떡거리는 것이 심장이구나. 

긴 끈에 달린 흰색 동그라미 한 쌍이 눈알이구나. 유심히 관찰했다.


운동장 각지에 흩어져있던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모여들었다. 

선생님들이 뒤늦게 도착했을 때는 아이들이 시체를 동그랗게 에워싼 후였다. 

성인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서 뒤돌아보니 교문 앞에는 앞치마를 입은 분식집 아줌마가 주저앉아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있었다. 

죽은 아이는 분식집이 혼란한 점심때를 틈타 계란이며 음식을 집어삼키고 도망쳐 나왔고, 아줌마는 지금 담던 떡볶이만 마저 퍼담아 상에 내고는 그 애를 잡으려고 뛰쳐나왔다. 

아줌마는 그냥 편하게 앉아서 먹고 가라고 할걸. 엄마도 없는 애가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_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손을 덜덜 떨면서 자리에 주저 앉아서 울부짖었다.

그렇다고 저 죽은 애가 쏟아져 나온 장기를 제자리에 집어넣고 저 구덩이에서 걸어 나와 떡볶이를 계란을 꼭꼭 씹어먹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오후 수업은 취소가 되어서 신발주머니를 툭툭 차며 집으로 돌아왔다. 

일부러 후문을 두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으로 갔다. 다시한번 보고싶었다.  

벌써 시체는 가져가버렸고, 움품패였던 자리에는 파란 비닐포대가 덮고 있었다.

왜 집에 왔냐는 엄마의 물음에 담담히 내가 본 것을 이야기했다. 눈알이 어쩌구 심장이 어쩌구.

그때 옆 가게의 딸이 동구 밖부터 울면서 와서는 울며불며 내가 한 이야기를 또 자기 엄마한테 하기 시작했다. 

저렇게 떠들썩하게 왕왕거리며 울일인가, 생각하고 엄마를 봤는데, 엄마가 나를 보는 표정이 이상했다. 설명하기에도 이상한 그런 표정. 

내가 잘못한 것은 없지만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서 곧장 다락방으로 기어올라갔다

 

공사는 무사히 끝나서 우리 학교는 3층짜리 건물이 두 동이 나 생겼고, 강당 앞의 구덩이는 모래를 메워도 메워도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이내 다시 패었다. 

강당 앞에 가끔 앉아서 그날을 생각했다. 

분식집 앞에는 ‘외상 가능. 이 다음에 갚으세요’라는 종이가 내붙었다.

 

 

 

그 무렵에 학교에는 으스스 한 소문들이 떠돌았다. 

그중 하나가 빨간 마스크 이야기였다.

결혼을 앞둔 여자를 질투한 친구가 사고를 가장해 그녀의 입을 귀까지 찢어 놓았고, 남자는 곧장 헤어지고는 그녀의 입을 찢어 놓은 친구랑 결혼을 해버렸다.

결혼식장에 피로 물든 빨간 마스크를 끼고 나타나, 단상에 선 두 사람의 입을 찢어 놓고 도망쳤다.

그 후로 그 여자는 골목길 같은 데서 갑자기 튀어나와 마스크를 벗고 자기가 예쁘냐고 물어 보고 대답하지 못할 때 입을 찢고, 입을 가리면 여전한 미인이기 때문에 남자들을 유혹한 다음 마스크를 벗고 놀라는 상대의 입을 역시나 찢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길에서 마스크를 낀 젊은 여자를 보면 기절하듯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씩씩한 남자애들은 여자애들을 지키기 위해 달려들어 마스크를 벗기고 아이들을 안심시켰다.

 

또 하나는 홍콩 할매귀신이었다. 

혼자 지나가는 아이들을 붙들고 길을 물어보는 척하면서 무슨 띠나고 물어보는데, 대답을 하면 즉시 그 동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나는 개 띠여서 밤이고 낮이고 비 오는 날에도 정처 없이 떠도는 개가 될까 봐, 아니면 집으로 돌아갔다가 아빠한테 쫓기거나 흰순이 처럼 피떡이 될때까지 맞아 죽을까 봐 그리고 잡아 먹힐까봐 너무 무서웠다.

 

그러다 어떤 아이가 방법을 찾았다면서 무슨 띠냐고 물어보면 허리 띠나 머리띠라고 말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하루가 지나 허리띠라고 말하면 허릴 졸라 죽이고, 머리띠라고 말하면 머리를 쪼여서 죽인다는 더욱 무서운 이야기로 바뀌었다. 

걸음이 느린 나는 다같이 교문을 빠져나와도 희한하게 나 혼자만 길에 남겨지는 일이 많았다.

 

하얀 대낮에 길에 사람이라고는 하나 없는 그 순간들이 가끔 악몽으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정말 다행인 건 학교가 있는 단지를 빠져나와 길하나를 건너면 길 양옆으로 숙이네, 희야네, 앵두, 못 잊어 이런 간판의 가게들이 수십 개씩 늘어져있었는데, 불을 켜고 장사를 하는 것은 내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그 시간이면 눈 밑이 시커먼 민숭민숭한 얼굴에 노란 머리를 한 여자들이 가운 같은 걸 걸치고 가게 앞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거나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배를 벅벅 긁고 있었다. 

그 길을 지나고 나면 언제나 길바닥에서 용접을 하거나 절단하는 시끄러운 철공소나 콤퓨렛샤 가게들이 이어지고 곧 아빠 가게다. 

혼자 길에 남겨진 순간, 허파를 입에 물고 쏜살같이 뛰어 담배 피우는 여자들까지만 가면 나는 빨간 마스크도, 홍콩 할미 귀신도 피할 수가 있었다.

   

카센터의 다락방에서 가게 뒷편 창고로 이사랄 것도 없는 이사를 했다. 

막내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머리를 찧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창고방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달력 뒷장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어느 주말이었다. 

갑자기 엄마가 괴성에 가까운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면서 방문을 열어젖혔다. 

나는 또 얻어맞는 줄 알고 습관처럼 두 팔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 아, 니 집에 있었구나.


- 응.

   

싱겁게 저 한마디만 남기고 엄마는 가버렸다. 

무슨 일인가 파악하려고 슬리퍼를 끌고 집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집 앞 도로공사 현장에서 구덩이 가득히 아스팔트가 차있는 것을 봤다. 가까이서 보려고 다가갔을 때 아스팔트의 끈적한 곤죽 속에서 아이 하나가 사슬에 감겨 건져내졌다. 곁에 선 어른이 내 어깨를 짚으면서 말했다.

   

- 야야, 자가 닌 줄 알고 느그 엄마 실성할뻔했다. 다행이다.

   

어쩌면 나였을지 모르는 아이의 시체를 보았다. 어른들의 키보다 훨씬 높이 들어올려져 옮겨지는 아이는 팔 다리를 축 늘어뜨리고 햇빛 아래에서 번쩍번쩍 빛이 났다. 

아이의 신원이 밝혀졌을 때, 아이의 엄마는 근처 빵집에서 일을 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아이를 데리고 빵집에 늘 일하러 갔는데 아이가 심심할 것 같아 자전거를 하나 사줬고, 그날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빵집 주변을 빙빙 돌다가 땅이 파진 지도 모르고 전력질주를 하여 아스팔트 속에 빠져버린 것이다. 

아줌마는 글자그대로 실성한 것 처럼 울고 또 울었다.

끈적거리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사람의 울음소리 같지가 않았다.

분식집 아줌마의 울음소리와는 또 달랐다. 나는 많은 울음소리를 들었지만, 아줌마의 울음소리는 귀를 막아도 발바닥이나 등으로 들리는 것 같았다.

외지에서 아이랑 둘이 이사 왔다는 그 아줌마는 아이 장례가 끝나자마자 떠나버렸다고 했다.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다행일 수도 있는 상황이 참 불쾌했다. 

내가 살아남았다고 해서, 저 죽은 아이가 내가 아니라고 해서 나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지.


그 날 밤에도, 며칠이 좀 지나서도 궁금하긴 했다. 

아스팔트에 빠져 죽은게 나였다면, 우리 엄마도 그렇게 나를 꼭 끌어 안아줬을까. 

엄마가 울었을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엄마는 나를 안아본적이 있을까. 그게 궁금했다. 

죽은 아이가 사실은 좀 부러웠다. 

죽는 것 따위는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대표사진 : 죽은 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여인 Frau mit totem kind, Kathe Kollwitz, 1903)

 

작품 등록일 : 2020-09-21

▶ 88년 집으로 가는 길 (5)

에고...
성능좋은찌찌   
근데 이거 실화야?? 마음 아프다
쿵짝쿵짝   
와 글 개잘쓰네 숨도 안 쉬고 몰입해서 읽게되네
잉차   
ㅠ.ㅠ
Hi,bs   
하.. ㅜㅜ
팡안리   
시발;
tl**********   
피곤해서 글자가 눈에 안 들어오는데 왜 눈물이 맺히지
Incendio   
읽다가 머리가 백짓장 되는거 같았어....
ch*********   
케테콜비츠 판화랑 잘 어울린다
그 엄마는 저렇게 울었겠지 어휴
푸드덕   
와....
roadcf   
언니 출품해봐 진심.. ㅠ
meuuuu   
동감. 책 내주세요.
Nectar   
쓴거 다 모아서 책으로 내줘
ki****   
이 언니는 정말...
과일뿌셔   
가슴이 먹먹해지는구먼..
The secret life of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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