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가는 길에 같이 걸어가는 동무들이 생겼다.
언니 오빠들도 있고 동갑내기들도 있다.
아주 빠르게, 엄마 아빠가 쓰는 말로 떠들어서 잘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무리에 처음으로 끼어 있는 기분이 든든하고 좋았다.
걸음이 느린 여동생의 손을 끌고 무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따라 걸었다.
그들이 자주 쓰는 문장이나 억양을 따라 했다. 여동생은 제법 그 말투로 말을 할 줄 알았다.
가끔 내가 서울말이라는 것으로 맞장구를 치거나 말을 할 때마다 그들은 놀리는 투로 내 흉내를 내었다.
부끄럽고 눈물이 찔끔 났다. 그럴 때마다 입을 손바닥으로 찰싹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어느 날부터인지 나는 부끄러운 것이 많아졌고,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것이 견딜 수가 없었다.
아빠는 축사를 조그맣게 지어서 젖소를 몇 마리 키우기 시작했다. 소라는 것은 사료랑 지푸라기 같은 것을 먹고 똥을 엄청 싸고, 커다란 목소리로 울어대고 느리게 움직였다. 축 처진 젖에서 우유가 나왔다. 유치원에서 배운 얼룩소 노래처럼 밤새 울어대다가 자기랑 똑 닮은 송아지를 낳기도 했다.
소는 낮에는 집앞 마당에 있는 커다란 살구나무 밑에서 지냈다. 해가 질 때쯤 이랴이랴 축사로 들어간다. 살구나무 주변에 파란 비닐포를 깔고 도망가지마라고 휀스를 빙둘러 놓았다. 아빠가 휀스에 고압전류가 흐른다고 근처로 가지 말라고 했다.
집에 변변한 간식거리가 없다보니 살구는 유용한 먹거리다. 여동생이 멍하니 살구나무만 바라보기에 기다려봐라 내가 살구좀 주워올게 하고 휀스사이로 들락거리다 어느날에 귀를 스쳤는데 뜨악하며 소똥밭에 데굴데굴 굴렀다. 소들이 이따금씩 겅중겅중 뛰어다니는데 아마도 휀스에 부딪혀서 놀라 그러는 걸게다.
소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아직은 어른이 아닌 처녀애였는데, 커다란 눈을 꿈뻑대며 눈물을 흘리는 것 같기도 했다.
- 너 엄마가 보고 싶어 그래? 나도 그랬단다. 근데 엄마를 만나도 울 일은 많아.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소에게 갔다. 코에서 뜨거운 김이 피어나고 내가 주는 사료를 느리게 느리게 씹어삼켰다.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는데, 보는 이마다 아이고 순하다 순하다 해서 소의 이름은 순이가 되었다.
어느 밤에 아빠가 커다란 뿔 소를 데리고 왔다.
동네 어른한테 빌려서 오는 길이라고 오늘 안에 순이랑 합방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나는 내일 유치원을 가야 해서 일찍 자리에 누웠지만 순이가 요란하고 구슬프게 울어대는 통에 그만 나는 축사 쪽으로 향했다.
커다란 뿔 소가 순이 엉덩이에 올라타다가 쿵 하고 떨어지고를 반복했다. 순이는 바닥부터 끓어오르는 소리로 울었다.
어른이 갑자기 목이 긴 장갑을 끼더니 큰 소의 고추에서 허연 물을 손바닥에 받아서는 그대로 순이의 엉덩이 사이로 거의 팔꿈치까지 쑥 집어넣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쓱쓱 비벼닦으며 도대체 내가 뭘 본 걸까 구역질이 나는 걸 삼키며 방으로 튀어들어갔다.
순이랑 나는 날이 밝아 올 때까지도 계속 울었다.
나의 다리사이가 아팠다.
그러고 순이가 자기랑 똑 닮은 송아지를 낳았다.
순이가 송아지를 낳던 날은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갈 즈음이었는데, 아저씨들 여럿이 매달려 힘들게도 낳았다.
송아지는 툭하고 바닥에 떨어졌고 투명한 막에 싸여 있었다. 순이가 부지런히 핥았다. 어른들을 송아지를 일으켰다.
순이는 열심히 머리로 송아지를 밀어서 힘을 보탰다.
곧 송아지는 바들바들 허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소가 조금씩 늘었다.
축사도 커졌고, 아빠를 형님 형님 부르는 일꾼도 생겼다.
소들은 귀에 숫자가 적힌 귀걸이를 하고 있다.
순이는 몇 번이었더라,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다른 처녀 소들도 순이랑 비슷하게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았고 수컷 송아지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버려졌다. 나는 더 이상은 소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처녀 소의 임신 장면을 보아도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다. 버려진 수컷 송아지는 까마귀에게 뜯어 먹히다가 어느 날엔가는 앙상히 뼈만 남았다.
암소들이 송아지를 낳으면 젖이 나오는데 그 젖을 사람들에게 팔아서 우리는 돈을 버는 거라고 했다. 몇 년만 있으면 우리는 다시 서울로 빌딩을 사서 갈 거라고 했다. 커다란 은색 우유 저장고 안에는 소의 젖이 그득했다. 우유를 가지러 우유회사에서 큰 차를 보냈다. 나는 단 한 번도 순이의 젖을 먹지 않았다. 그건 순이 애기 거니까. 그 후로도 어느 소의 젖이든 우유는 먹지 않았다.
- 아빠, 우유는 송아지 건데 왜 사람이 먹어요?
- 마, 사람은 뭐든지 먹는 기다. 먹을 수 있는 건 뭐든지. 전쟁 때는 지 새끼도 먹고 그래쓰.
전쟁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 나는 아빠한테 먹힐지도 모른다. 아니면 엄마가 동생으로 요리를 해서 밥상에 올릴지도 모르고.
가을쯤 아빠가 우유를 땅에 그냥 쏟아버렸다. 우윳값이 폭락했다고 했다. 사룟값이랑 관리비랑 죄다 빚이라고 동네 어른들이랑 낮부터 술을 마시고 아빠는 울었다. 아빠는 내 앞에서 두 번째로 울었다. 안경을 한 손에 쥐고 아빠는 주저앉은 채로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나도 순이도 아빠도 우리는 울 일이 많았다.
아빠가 소 한마리를 포터에 싣고 팔러 갔다가 해가 질 즈음에 그대로 다시 돌아왔다.
아빠는 또 화가 나있었다. 소 값이 형편없다고 했다. 시발 거리면서 끝이 뭉툭한 망치를 들고 다시 소한테 갔다. 순이다.
아빠는 망치로 순이의 대가리를 몇 번이나 휘갈겨서 완전히 박살을 내놓았다.
무겁게 털썩 쓰러진 순이의 머리에서 끈적한 피가 덩어리와 흘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파란 포대기에 싸인 순이는 갈아서 사료로 쓰인다고 다리를 저는 어떤 아저씨가 사갔다.
소는 차례로 처분이 되었다. 순이가 죽은 후로 나는 축사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축사에는 이제 한 마리의 소도 남아있지 않았다. 은색의 거대한 우유 저장고는 뚜껑이 젖혀진 채로 있었다.
며칠이 더 지나서 잔뜩 의식하며 지나던 축사 근처에서 그 망치를 찾았다. 뭔가를 사정없이 깨부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덜컥 잡지는 못했다. 망치에는 아직도 순이의 조각이 붙어있다.
축사는 비었고, 바람이 많이 부는 밤에는 축사를 지나는 바람소리가 웅-웅- 순이의 울음소리 같았다.
아빠는 차 고치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빠를 따라가서 시트커버를 만드는 기술을 배운다고 했다. 할머니한테 단 몇 달만 애들 좀 봐달라고 부탁했지만, 할머니는 시골에 어떻게 몇 달씩 있느냐고, 며칠도 싫다고 했다. 집은 늘 비어있고, 어른은 없으니 나와 여동생은 아침에 유치원을 같이 가고, 남동생은 엄마가 업고 일을 하고, 여동생은 내가 마칠 때까지 여느 때처럼 평상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그러다 여동생이 문둥이에게 납치되는 일이 생겼다. 유치원을 마치고 무리들과 교문을 빠져나오는데 동생이 있어야 할 평상이 비어있다. 분식집 안쪽으로 건성으로 동생의 이름을 몇 번 불러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곧 무리에게 다시 돌아갔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걱정 같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오래 매고 있던 짐을 벗어버린 것처럼 홀가분했다.
나를 기다리는 것이 지겨워진 여동생은 마침 잠든 분식집 아지매한테 나 집에 가요 말을 하고는 우리가 늘 다니던 길로 걸어가다가 마주친 문둥이 손에 끌려서 읍내까지 걷고 걸어갔다고 한다.
- 아저씨, 오줌 마려워요.
해도 화를 내서 오줌을 싸면서 걸었단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참견을 하니 문둥이는 자기가 아빠라고 얘는 딸이라고 화를 냈단다.
하지만 애가 오줌을 지리고 엉엉 우는데도 손을 끌고 가니 아빠라기에는 행동도 행색도 수상할 수밖에 없다. 읍내 시장까지 갔을 때 순경이 신고를 받고 여동생을 파출소에다 데려다 놓았다고 한다.
좁은 동네니 얼마 지나잖아 엄마 아빠가 소식을 듣고 동생을 집에 데려왔다. 나는 엄마가 이모에게 전화로 하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아, 그랬구나 하고 정황을 알았다.
멀뚱히 방안에 누워있던 나는 돌아누운 동생의 등에 대고 물어봤다.
- 야, 너 왜 우리 아빠 아니라고 안 했어?
동생은 느릿느릿하게 대답했다.
- 어, 내가 아니라고 하면 아저씨가 거짓말한 게 들키잖아. 아저씨 쪽팔릴까 봐.
동생을 맡아주는 조건으로 매달 쌀과 부식비를 받던 분식집 아지매가 이제부터는 진짜 애기 잘 보겠다고 사정했다지만, 그날 이후로 여동생은 나와 함께 다니지 않았다. 더 이상은 평상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
유치원이 마치면 나는 필사적으로 동네 아이들을 따라다녔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아이들은 내가 모르는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들은 온갖 이야기를 다 했다.
엄마 아빠가 밤에 뭘 하더라, 문둥이가 누구네 애기를 훔쳐 갔단다, 문둥이가 애기들 간인지 뭔지를 먹으면 문둥병이 낫는단다, 옆집 아줌마는 사실은 목을 매단 게 아니라 카더라.
살면서 이토록 자극적인 이야기를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문둥이가 내 동생의 배를 갈라서 간을 꺼내서 먹는 장면을 상상했다. 배가 열린 채 땅에 나뒹구는 장면을.
그러다 아이들의 관심이 나에게 돌아왔다. 나에 대해 궁금한 것이 참 많았다.
할아버지랑 살다가 여기로 왔더니 동생들이 둘이나 있더라 뭐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할아버지는 사진만 남기고 어디로 멀리 가버려서 못 본지 한참 됐다고.
아이들이 서로 눈을 부산스레 마주치더니 나에게 엄청난 사실을 말해주었다.
느 할아버지는 죽은 거라고. 다시는 안 온다고. 이 세상에 없다고.
목이 대롱대롱 매달린 흰순이와 뻣뻣하게 굳은 깡순이와 며칠 전 아빠가 망치로 때려죽인 젖소와....
내가 아는 모든 죽은 것들이 눈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전에 시민 수영장에 할아버지랑 수영을 다녀온 적이 있다.
나는 꽃 모자를 쓰고 노오란 수영복을 입었다.
할아버지랑 누가 숨을 더 오래 참나 내기 놀이를 했다.
할아버지는 나보다 훨씬 더 숨을 오래 참았다.
이다음에 어른이 돼서 할아버지보다 더 어른이 되면 숨을 아주아주 오래 참을 수가 있어서 그대로 영영 숨을 안 쉬어도 되는 날이 온다고 했다.
나는 조금만 참아도 괴롭고 답답한데, 어른이라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구나. 영영 숨을 참는다니.
그것이 할아버지가 내게 미리 알려준 죽음이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죽음에 대해 더 말해주었다.
사람이 늙어서 죽으면 땅에다가 묻어 버리는데,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불에 태워서 들에 다가 뿌린다고.
농약을 먹어도 죽고, 목을 매달아도 죽고, 어떤 애는 탱크에 깔려서 죽었단다.
죽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죽을 수 있는 방법에 도처에 널려있으니 말이다.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망치로 대가리가 부서져서 죽을 수도 있는 문제다.
나는 그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더 살고 싶지도 않았다.
키가 좀 큰 애가 예배당에서 배웠는데 천국에 가는 거라고 일러줬다.
일 년 내내 따뜻하고 배곯지 않고 아프지도 않고 내내 행복하게 사는 곳이란다.
논도 밭도 안 매고, 살면서 제일 좋았던 일만 하면서 좋아하는 것만 먹고 그런대.
할아버지는 이제 기차를 마중 나가지도 않아도 되고, 자전거 타고 다방에 다니고 멍게랑 막걸리를 원 없이 먹고 있겠구나. 현철 노래를 부르면서 말이다.
나는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야 했다. 어서 가서 현철 노래를 불러주고 멍게 한 입을 얻어먹어야 한다.
할아버지를 만나러 갈 때 쓰려고 아껴뒀던 500원들도 이제 소용이 없다.
방문 앞에서 어른거리던 햇빛도 가버리고 컴컴한 방 한가운데 오도카니 앉아있었다.
나는 이 넓은 들판 위에, 자그마한 초가집 속에 든 채로 놓여있다.
조용히 일어나 육각의 성냥갑을 집어 들었다.
좋은데 갈 때 입는 그 원피스는 이제 작아서 입을 수 없다.
집 밖으로 나가니 달빛이 들판을 온통 눈밭처럼 허옇게 비추고 있다.
지붕에서 툭하고 떨어진 지푸라기 꼰 줄이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성냥에 불을 붙인다. 바짝 마른 지푸라기를 타고 불이 지붕으로 올라간다.
성냥에 불을 붙인다. 뒷문 창호지에 가만히 갖다 대고 불이 옮겨질 때까지 기다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방으로 들어와 이불을 쓰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나는 이제 할아버지를 보러 간다.
작가 돈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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