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집으로 가는 길(2)

할아버지와 살던 집은 검은 물이 느리게 지나가는 강을 등지고 
주황색 천막이 쳐진 시장길을 지나서 한참을 걸어 올라가면 나온다. 
멀리서 보면 꼭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에 색색깔의 집들이 빼곡히 꽂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벽은 오줌이 배어들어 군데군데가 축축했다. 골목엔 늘 지린내가 진동을 했다.

우리 집 대문은 파란색이다. 셋방 하나가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 내가 쓰는 방 하나, 고모 둘이 쓰는 방이 하나. 
좁다란 계단을 올라가면 대문 위로 이어지는 옥상이 있다. 마당에는 빨간 고무대야가 있다. ​ 
원래는 변소에서 쉬를 싸야 하는데 새벽에나 겨울에는 몰래 마당에 쉬를 하기도 했다. 

막내 고모는 간호대학에 다니고, 두어 살 더 많은 고모는 회사를 다녔다. ​ 
막내 고모를 할머니는 숙이라고 불렀고 언니 고모는 수야라고 불렀다. ​ 
숙이는 맨날 우는소리를 냈고 나만 보면 때리는 시늉을 했다. 
​회사 다니는 수야 고모는 내가 봐도 참 참했다. 늘 나를 안아 줬고 우리 예삐라고 불렀다. ​ 
리본이 달린 머리핀도 사주고 좋은데 갈 때 입는 거라고 체크무늬 원피스도 사줬다. ​ 
숙이는 코웃음 치면서 저거한테 좋은 날이 오겠나 하면서 리본은 무슨 했다. ​
지는 얼굴이 꼭 낮에 할머니가 사온 멍게 같구먼. 할아버지 말대로 저거 시집은 가겠나 싶었다. 

할아버지는 노을이 질 때쯤엔 나를 업고 옥상에 올라가서 멀리 보며 담배를 피웠다. 
​그러면 곧 숙이가 골목에서 나타났다. 아빠, 쫌!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면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할아버지랑 나는 같은 밥상을 썼고, 할머니랑 고모들은 따로 밥상을 썼다. 
갈치는 우리 밥상에만 있었다. 할아버지는 양쪽 옆구리는 떼내고 가운데를 젓가락으로 떠서 네모난 살만 내 밥 위에 얹어줬다. 
​할머니도 숙이도 째려봤지만 수야 고모는 많이 무라 우리 강생이 했다.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수야 고모는 설거지를 하고, 할머니는 빵꾸난 할아버지 양말을 꿰맸고, 할아버지는 PM 무좀약을 발랐고, 숙이는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얼굴에 허연 크림을 퍽퍽 찍어 올려 열심히 문질렀다. 나는 할아버지 목침에 앉아서 아까 할아버지가 사탕봉다리를 어디다가 숨겼을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오줌을 누러 마당에 나갔을 때 달이 훤하니 무슨 꼭 마당이 어디서 봤던 눈밭같이 허옇다. 변소 간에 쪼그리고 앉아서 오줌을 누는데, 벽에 하얀 박하사탕 두 개가 그물에 들어있다. 여기 숨기면 내가 못 먹을 줄 알았나 본데 나는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날름 입에 넣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온통 허연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다. 어째서인지 참 익숙했다. 익숙한 냄새.
머리에 하얀 모자를 쓴 간호원과 할아버지가 왔다. 할아버지는 간호원에게 인자 다 괜찮냐고 물어봤다.
간호원이 내 코를 비틀며 너 여기서 태어난 거 알고 있냐고. 너는 두 번 태어났네 하면서 새침하게 눈을 흘겼다. 할아버지는 이제 사탕을 숨겨두지 않았다. 나는 막 몇 개씩도 먹을 것 같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소한마리 초가집 하나 밖에 없는 가난한 시골집 외아들이었다고 했다. 어느날 옆마을에 사는 처녀가 보따리를 하나 안고 찾아와 퉷마루에 오도카니 앉아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아빠가 옛날에 신세를 진 집에서 입하나를 덜 요량으로 딸애를 맡아달라고 보낸 것이 할아버지의 아내, 나의 할머니가 되었다. 밥은 좀 많이 먹어도 묵묵히 밭일도 잘하고 늘 뚱하게 입이 나와있어도 늘 할아버지 편이었다고 했다. 전쟁이 났을 때 동네 남자들이 다 군에 갈때에도 할아버지는 안갔다고 했다. 베트남에 전쟁이 나도 할아버지는 아무대도 가지 않고 늘 집에서 볏짚을 삼고, 뒷산에 소를 먹이러 가고 술을 마셨다고 했다. 아빠가 고등학교에 갈 즈음에 사내애는 큰도시로 가야한다고 소를 팔아서 할아버지와 아빠는 도시로 나갔다. 할아버지는 철도원으로 취직을 했고, 아빠는 무사히 전문대까지 들어갔다. 그 사이 큰 고모들은 시집을 가고 할아버지는 단촐해진 남은 식구들을 도시로 데리고 나왔다. 그렇게 시멘트 산 위에 고모 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아빠가 살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기차역에서 일을 했다. 모자를 빼딱하게 쓰고 기차 대가리에 매달려서 히죽 웃어 보였다.
곤색 유니폼을 입고 여럿이 모여 담배를 피다가도 땡땡땡 소리가 나면 튀어나가서 기차한테 빨간색 초록색 깃발을 흔들었다. 할아버지를 따라 역에 가는 날에는 과자도 실컷 먹고 몇 살 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실컷 만났다.
  
할아버지가 출근하고 나면 집에 동네 여자들이 찾아와서 할머니랑 도라지를 깠다. 온종일 앉아서 양파망 같은 걸로 도라지를 비벼서 껍질을 깠다. 더러는 깐 도라지를 칼로 쪼개고 했다. 어떤 날에는 밤을 까기도 했다. 나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조심하라며 칼을 쥐여줬는데, 부들부들 힘들 주다가 그리로 곧장 손바닥을 있는 대로 후벼파버렸다. 벌어진 살 틈으로 벌건 피가 울컥 올라왔다. 잠결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 숙이는 저거 오빠 집에 당장 보내버리라고 악다구니를 썼다. 나는 다시는 할머니 일하는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 했다.

동네에는 같이 놀 아이가 없었다. 깜깜해질 때까지 나는 고모방에서 놀았다. 숙이 고모가 공부하는 책은 참 이상한 사진이 많다. 뭔가 사람 살 같은데 온전한 게 하나도 없다. 나는 허벅지에 내 손바닥 보다 조금 더 큰 화상 자국이 있는데 비슷한 걸 가진 사람도 있고 나처럼 살이 째진 사람도 있다. 온종일 그걸 들여다보자니 고모 성질머리가 고약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고모가 자물쇠를 채우고 대학에 가는 날은 꼬챙이를 쥐고 벽을 타닥타닥 치면서 골목을 따라 빙빙 돌아다녔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밥을 달라고 했다. 서울 애기 왔냐 하면서 밥을 내어줬다. 나는 내가 왜 서울애기라고 불리는지는 몰랐지만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다. 

나는 무척 커다랗게 태어났다고 했다. 사람들이 얘는 커서 농구선수를 시키소 했단다. 수야 고모를 따라 종종 놀러 오는 자그만 총각이 내 무릎을 턱턱 쥐어보더니 이거는 확실합니더. 야는 농구선수해야 되니더 했다. 농구가 뭐냐고 물어보니 공을 뺏어가지고 이렇게 바게쓰에 집어넣는 거라며 나를 번쩍 들어 넣는 시늉을 했다. 건넛방 새댁이가 애기를 안고 나와서 미리 싸인을 좀 받아 둘까예. 하면서 웃었다.

할아버지가 자전거 앞에 빨간색 작은 의자를 달아서 나를 어디든 태우고 다녔다. 다방에 가는 것이 좋았다. 좋은 냄새가 나는 예쁜 여자들이 내게 요구르트를 주었다. 커다란 어항에는 물고기들이 많이 있다. 어항 너머로 할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면서 웃고 있다. 한 번씩 탁자에 나를 차렸하고 세워놓고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다. 

외로운 내 가슴에 나비처럼 날아와서 사랑을 심어놓고 나비처럼 날아간 사람.

어른들이 손뼉을 치면서 아가 우째 그런 노래도 다 부르노 좋아했다.

나는 숫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할아버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차의 번호판이나 간판에 전화번호를 읽었다. 할아버지는 동네 어른들이 모인 평상 같은 데서 숫자를 읽게 했다. ​사람들이 이다음에 내가 크면 틀림없이 판사 변호사를 할 거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꼭 500원짜리 동전이 생기면 나를 주었다. 커다랗고 묵직한 그 느낌이 참 좋았다. 지금은 쓰지 말고 이다음에 쓰라고 해서 나는 족족 깡통에 모아두었다. 

수야 고모가 만나던 청년이 친구들이랑 밤에 찾아왔다. 마른 오징어를 얼굴에 쓴 사람이 등에 커다란 상자를 메고 왔다.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나는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이 돌아가고 할아버지는 오래오래 담배를 피웠다. 

수야 고모가 시집가는 날에 나는 처음 보는 고모들을 더 만났다. 어른들이 야가 가가. 야가 헌이 딸래민갑제. 아따 말 잘하네. 많이 컸네 하면서 머리를 만지려고 해서 도망 다녔다. 할아버지는 저만치에 서서 종일 악수를 하고 있다. 할머니는 허연 분칠을 하고 진달래 색깔 립스틱을 바르고 어색하게 웃고 있다. 
수야 고모는 많이 많이 울었다. 도서방이 넙죽하고 바닥에 절을 하니 사람들이 와하하 웃었다. 숙이 고모가 그랬다. 니 인자 우짤래. 언니야 인제 집에 안 온데이. 어쩐지 저 도서방이 고모를 뺏어간 것 같았다.

사람들이 나의 엄마 아빠를 찾았다. 나는 혹시나 오늘 그들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분이 이상했다. 서울이 너무 멀고 바빠서 다니러 올 수가 없다고 못 온다고 했단다. 머시 그리 바빠서 지 동생 결혼식에도 안 오냐고 했다. 나의 엄마 아빠가 서울에 있단다. 그래서 내가 서울애기구나. 나는 사람들과 다른 말을 쓰고, 종종 나는 사람들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토할 것 같은 기분이 자꾸 들어서 앉은 채로 방안이 푸르스름 밝아지는 걸 지켜봤다. 

며칠을 시멘트 산 아래 맏이 고모 집에 다니러 갔다. 한 며칠 있으면 데리러 온다고 할아버지가 그랬다. 
가족이 다 나가고 좀 지나면 고모는 비디오를 틀어서 에어로빅을 했다. 번쩍거리는 스타킹을 신고 구불구불한 파마머리와 엉덩이를 요란하게도 흔들어댔다. 밤이면 언니는 스탠드 불을 켜고 라디오를 들으면서 공부를 했다. 옆방에서 오빠가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언니가 만화책 좀 그만 보라 했제 하고 소리쳤다. 어떤 날은 다 같이 마루에 앉아서 귀곡성이나 얄개 시대 같은 비디오를 보았다.

그날은 낮에 고모가 에어로빅을 배우러 가서 혼자 집에 있었다. 사촌 오빠가 일찍 집에 왔다. 친구들도 같이 왔다. 언니 방에서 놀고 있었는데 오빠가 나를 불렀다. 침대에 누워보라고. 무릎을 세워보라고. 오빠 친구들이 우르르 곁으로 모여들었다. 엉덩이를 들어보라고 팬티를 벗겼다. 까만 눈동자들이 나의 아래쪽을 들여다보았다. 쉬야가 나오는 데를 만졌다. 여기가 보지라고 했다. 기분이 어떠냐고 했다. 스케치북에 노랑 크레파스로 내 보지는 이렇게 생겼다고 그림을 그려서 보여줬다. 누군가는 입으로 빨았다. 누구는 손으로 만졌다. 오빠가 내 손을 가져다가 자기 고추에 갖다 댔다. 보지가 아프다고 했더니 친구에게 하지 말라고 했다. 이다음에는 기분이 좋을 거라고 했다. 오빠들이 웃길래 나도 따라 웃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이사를 했다고 나를 데리러 왔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할아버지가 머 하고 놀았노 했다. 오빠 이야기를 하려는데, 왜인지 잘 되지가 않았다. 나를 태운 자전거를 오르막길로 밀어 올리는 할아버지가 아이고 무거워라~ 마이 컸네 똥깡쌔이~했다. 

우리는 시멘트 산의 다른 편으로 이사를 갔다. 마당이 훨씬 더 작았고, 낮에도 햇빛이 잘 오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출근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자전거는 한동안 변소 옆에 그냥 세워져있었다. 이따금씩 나더러 노래를 하라고 하고는 잠들어 버렸다. 일어나라고 흔들어 깨워도 할아버지는 흐리게 웃기만 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 괴롭히지 말라고 나를 쫓아냈다. 

계십니까하고 기다랗고 까만 옷을 입은 할아버지랑 머리에 까만 보자기를 쓴 할머니가 찾아왔다.할머니가 부엌에서 튀어나가서 아이고 신부님 수녀님 하며 손을 잡았다. 그들은 누워있는 할아버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붙잡고 아주 낮게 말했다. 까만 책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할아버지 몸 위로 손을 휘휘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울었다. 할머니가 울어서 기분이 이상했다. 고모방에 처박혀서 기타 책을 펴고 송골매 사진을 구경했다. 할머니가 나와서 인사를 하라고 했다. 원피스를 입은 그 할아버지는 내 머리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비쩍 마른 영감의 손이 제법 묵직해서 나는 잠자코 서있었다. 

쪼끔만 놀았는데도 날은 금세 어두워지고, 할아버지처럼 내 입에서도 허연 연기가 피었다. 아침에 변소에 가는데 마당에 빨간 대야에 얇게 얼음이 끼었다. 할아버지가 자전거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페달을 천천히 돌리고 기름을 쳤다. 할머니는 부엌에서 끓인 물동이를 들고 나와서 나는 오랜만에 세수를 하고 코를 풀었다. 하얀 타이즈를 신고 수야고모기 사준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고 리본핀도 달았다. 할아버지는 벽돌색 즈봉에 곤색 코트를 입었다. 커다란 가방을 쥔 반대쪽 손을 내밀었다.
  
- 인제 집에 가자.

작품 등록일 : 2020-04-28

▶ 88년 집으로 가는 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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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 하다 멕ㅋㅋㅋㅋㅋㅋ
근데 진짜 행텐언니 유튜버같은거 했으면 나 처음으로 후원계좌에 돈 쐈을거같음 뭐든 퍼주고싶은 그런게 있어ㅜ
jj****   
사촌과 친구들 개객기들
to****   
이언니 글 읽으면 왜케 반찬이라도 해다 멕이고싶고+ 죽창으로 찌르고싶은 인물이 하나(이상)씩 있냐 시발 하드보일드 인 조선 ㅠ
mo*****   
할아버지 왜 짠하실까
사촌오래비와 친구새끼들 벼락맞아라
tl******   
대박 선댓글 후감상
ge******   
사촌오빠랑 친구들 죽여버리고싶네
kx***   
할아버지ㅠㅠㅠㅠㅠ
xoxomoon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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