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에 이어서)


바렌츠 해는 아름다웠고, 동시에 세상의 마지막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싶을 정도로 광활하고 허망한 공간이었음.

사람이 사는 건가?


좋다고 놀다가 동사하기 직전에 밥 먹으러 레스토랑 들어옴. 레스토랑 내부와 천장에 걸려있던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무언가..


뒤늦게 블로거 빙의해서 메뉴판 찍었다. 메뉴가 생각 외로 많았고 가격도 바가지는 아니었음. 음식들이 맛은 없으나 일단 이곳에 오면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여기밖에 없다.
순록 고기가 있었는데 별로라는 후기를 봐서 안 시켰음. 샌드위치는 허기만 달랠 정도의 사이즈이고 반면 파스타는 양이 엄청 많다. 연어와 대구 스테이크가 안 비리고 맛있었고 디저트는 안되는 게 많았음. +러시아 놈들은 무슨 음식이던 간에 딜을 왕창 뿌려대는 것을 좋아하니 여행 오는 분들은 참고하길 바람

모르스 보며 북극해 한잔~
모르스는 러시아 전통 음료수인데, 설탕물에다 베리 쬐끔 넣어서 색을 낸 듯한 밍밍한 맛이다. 근데 계속 먹다보면 맛있음..
배를 채운 뒤, 근처에 슈퍼가 있다는 정보를 얻곤 어두워지기 전에 한 번 가보기로 했다. 걸어서 7분 정도랬는데 막상 나가니 사방이 눈밭이여서 뭐가 뭔지 전혀 알 수 없었음. 대략 방향만 잡고 무작정 전진했다.

눈이 얼마나 많이 쌓여 있던지 나무들이 죄다 파묻혀서 저렇게 가지만 나와 있었음. 눈은 수분이 없는(?) 푸석푸석한 눈이었고 사막 모래 마냥 바람에 마구 휘날렸다.


너무 생소한 광경이라 걷는 내내 현실감이 없었다. 저 멀리엔 눈 덮인 산들이, 설원에는 폐가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범위가 전부 눈밭이었음.
와중에 사람이 살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 낡은 소련식 빌라에서, 전쟁을 겪었을 법한 지긋한 연배의 할아버지가 시베리안 허스키 데리고 산책 나와서 걷다말고 깜짝 놀랐다.
오른쪽의 불 켜진 건물은 그 동네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건물이었는데 간판 보니 문화센터라고... 놀랍고 어이없어서 웃었음


추워서 막 찍느라 다 흔들렸는데 대충 이런 분위기이다. 창문 깨진 버려진 목조 건물들.. 가까이 가면 부정 탈 것 같은 스산함이었음. 게임 맵에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시공간을 타넘은 것 같기도 하고. 유령도시에 온 기분이었다. 이곳엔 언제, 어떤 사람들이 살았던 걸까..?? 여기 남아있는 사람들은 대체 뭘까????


역시나 추워서 외관 사진은 없지만ㅎ 어쨌든 놀랍게도 정말 슈퍼가 있었다. 내부는 교실 하나 정도 크기이고 물건 종류도 다양했음. 기본 생필품과 식료품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초코파이(러시아에 오렌지맛 같은 별 희한한 초코파이 개많음)와 각종 샴페인까지도 갖추어져 있었다. 계산대에 가서 무엇을 달라고 말하면 직접 가져다주는 시스템임.
방에서 먹으려고 생수와 와인, 감자칩, 초콜렛, 쿠키들을 잔뜩 샀다. 쿠키는 포장된 것이 아니라 진열 된 것 중 고르면 원하는 수량만큼 비닐에 담아주는데, 어떤 건 맛있었으나 어떤 건 오래된 밀가루 맛이 났음. 이것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일행 한 명이 다음날 배탈났다. 근데 내가 제일 많이 처먹었는데 난 멀쩡했음

사진은 숙소뷰. 이것저것 사고 다시 돌아가려니까 하늘이 이미 깜깜해지기 시작(오후 두시였는데^^). 후딱 들어가서 영화 보고 수다 떨고 뭐 그럼. 미처 쓰는 걸 까먹었는데 당시 숙소 욕실에서 뜨거운 물을 틀면 녹물이 나왔다.. 직원한테 말하니까 이 동네가 지금 다 그렇다고, 수리하려면 며칠 기다려야 된대서 내내 찬물로 머리감음. 다른 사람들 후기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 걸 보니 우리가 있을 때만 재수 없게 그랬던 거 같긴 하다.
지금 생각하니 보상을 요구했어야 했는데, 저 때는 추위에 손발이 잘릴 것 같아 따뜻한 곳에 얼른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음.. 아무튼 진한 쇠냄새 맡으며 씻다보니 이곳이 지긋지긋해지더라는 이야기. 햇빛이 보고 싶었고 문명이 너무너무 그리웠다 인간 사회 최고야

다음 날은 도시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요리사 친구 아저씨가 돌아갈 때 태워주겠다고 했는데, 전날에 일이 생겨서 먼저 급하게 가심. 때문에 버스 시간에 맞춰 꼭두새벽에 일어났다.
생크림처럼 맛있게 쌓여있는 눈.. 너무너무 예뻤지만ㅠ 밤사이에 내린 눈 때문에 기껏 감 잡아놓은 길이 다시 사라져 있었음.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무릎까지 오는 눈을 푹푹 밟아가며 힘겹게 걸었다. 눈보라가 약하게 일었고 바람 부는 소리와 파도치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음. 좌우전방 몇 십 킬로미터가 다 이런 설원이라는 사실에 오싹 소름이 일었다.
러시아에서 생활하며 이들의 어처구니없는 공간 활용에 ㅂㄷㅂㄷ거렸던 적이 많은데, 도시를 빠져나와 광대한 벌판을 직접 마주하니 짜증나는 걸 넘어서 공포스러웠다. 공간감을 잃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체감했고, 스스로가 문명에 길들여진 하찮은 소동물임을ㅠ 온몸으로 느꼈음. 정류장까지 가는 짧은 시간 동안 초딩 적 남극에서 살아남기 만화책에서 본 조난당한 모모패밀리의 심정을 떠올렸다.

말이 정류장이지 아무것도 없음. 과연 버스가 있긴 있는 건지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얼어죽기 직전에 오더라. 버스표는 버스가 오면 기사한테서 사면된다. 기사님이 인쇄된 종이에 손수 끄적끄적 사인해서 티켓을 만들어주심.
그렇게 4시간을 달려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
+ 혹시나 무르만스크에, 그 중에서도 테리베르카에 가려는 분이 있다면 절대절대 우리처럼은 다니지 않길 바람. 돌이켜보면 고생은 둘째치더라도 다신 하지 않을 미친짓이었음.. 지나가는 사람 찔러서 바다에 던져놔도 모를 것 같더라.
유사시에 제대로 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장치가 아무것도 없거니와, 우리만 해도 러시아어를 못했다면 첫날 정류장 잘못 내렸을 때 이미 뭔일이라고 당했을듯.. 그리고 어차피 할 것도 없음. 북극해 보고 싶으면 그냥 관광 상품 하나 골라서 반나절 잠깐 다녀오는 것을 추천
다음 편은 짤막한 번외로 러시아식 사우나 반야 체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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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사진 넘나이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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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 잼나 사진도 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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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숫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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